이번 가게는 고시촌으로 유명해진 노량진에 있었다. 아무래도 주머니 사정이 그리 풍족하지는 않은 고시생들이 많다 보니, 이 곳의 요식업소들은 대개 박리다매를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 길거리 노점에서 제육덮밥 같은 식사를 저렴하게 팔고 있는데, 노량진역으로 가면서 이번에 추천받은 음식점은 과연 어떨지 기대해 봤다.
목적지가 입점해 있는 곳은 노량진역에서 만양로를 따라 대략 250~300m 정도 떨어져 있는 아파트 지하상가였다. 왼쪽으로 붙어가다가 신천지약국이라는 가게를 끼고 도는 골목에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일반 아파트의 상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마 안에 할인마트와 사우나가 입점해 있는지, 입구의 아치형 네온사인에 큼지막하게 써넣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이렇게 입점한 점포들의 이름과 호수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가게들 중 이날 목표였던 배길분식의 이름도 보인다. 하지만 정작 내려가서 보니 가게 호수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점포들에 숫자가 병기되지 않아 있어서 자기가 눈썰미있게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상가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았는데도 두 차례 계속 돌아다니다가 겨우 찾았고.
마구 흔들리고 촛점이 개판인 짤방이지만, 메뉴를 적어붙인 하얀 종이들 밑으로 쳐진 노란색 현수막의 왼쪽 끝에 빨간 바탕의 가게 이름이 어렴풋이 보인다. 메뉴는 한식에서 중식까지 꽤 다양한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밥집이었다. 이 날 목표인 볶음밥은 3500원이었고, 다른 메뉴도 대개 3000~4500원 이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다.
식사 공간도 이렇게 복도에 칸막이도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서, 다른 집에서 식사하는 모습이나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미처 주방에 둘 공간이 없었던 식재료들도 복도 한 켠의 선반 등에 쌓아두고 있었고.
앉자마자 나온 물병과 식탁마다 놓여 있는 냅킨통과 수저통. 특별할 것은 없고, 물병은 플라스틱 우유병을 재활용하고 있었다.
앉은 자리 뒷쪽의 자그마한 벽에 붙은 원산지 표시와 휴일 안내문. 쇠고기 빼고는 국산을 쓴다고 되어 있다.
주방에서 밥 볶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받은 볶음밥 한 상. 참고로 그냥 보통을 시켰다. 하지만 볶음밥 자체 보다는 딸려나온 반찬들의 가짓수에 압도당했는데, 배추김치와 무채, 부추무침, 오징어채, 감자조림, 햄 달걀부침, 배추된장국이 같이 나왔다.
볶음밥 자체는 짜장과 달걀프라이를 곁들이는 중국집 스타일이었는데, 다만 불맛은 기대보다는 덜한 편이었고 기름을 좀 많이 쓰는지 약간 느끼했다. 양은 보통임에도 꽤 되는 편이었고, 거기에 반찬까지 이것저것 곁들여 먹으니 꽤 배가 불렀다. 그러고도 몇 가지는 남기기는 했지만, 밥과 국은 싹싹 비웠다. 아주 수준급의 볶음밥은 아니었어도, 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노량진 일대의 여느 음식점들과 다를 바 없는 강점으로 여겨졌다.
여담이지만, 저 상가는 예전에 가본 잠실나루역(구 성내역) 근처의 장미아파트 상가 분위기를 약간 닮기도 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간소한 칸막이 벽 혹은 그것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음식점들은 확실히 옛스러운 분위기가 났지만, 상가 끝쪽에 있던 중형 마트나 PC방 같은 경우에는 요즘 추세를 따라가는 듯 꽤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양자가 공존하는 모습이 좀 이질적이기도 했고, 또 묘하게 조화롭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연말까지 추천받았던 가게들을 모두 돌아다녀봤다. 물론 볶음밥 말고도 이것저것 처묵처묵하고 있으니 식충잡설 포스팅이 끊길 일은 아마 없을 듯 한데, 정작 이 블로그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 음악잡설 뻘글용 소재가 고갈되고 있어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