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난 서코가 인생의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깨지고 말았다. 비자 신청이나 대학 입학 신청서 등에 필요한 서류와 양식을 준비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는데 꽤 시간이 걸려서 봄에나 갈 수 있을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운좋게도(?) 통산 100회라는 기록을 세운 이번 행사에도 가볼 수 있었다.
다만 점심 때 느긋하게 출발하는 관행을 이번에도 이어갈 수는 없었는데, 특정 부스 때문이었다. 행사장 안팎은 예상했던 만큼의 헬게이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북적대고 있었다. 아마 봄방학 시즌이고 날씨도 겨울 치고는 그리 춥지 않았던 것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늘 후달리는 자금 사정 때문에 지른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특전 등으로 딸려온 것을 빼면 모두 일러스트북인 것도 특이사항이었다.
전자는 영인 화백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북이었고, 후자는 라휘아 화백의 메구포이드 온리 일러스트북이었다. 특히 영인 화백 작품은 원래 12월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작가가 병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발표가 미뤄진 책이었다.
개최 바로 전날 밤에 다행히 확인을 할 수 있었던 탓에, 12월에 구두예약했다고 알린 뒤 예약자 한정 특전들인 엽서와 책갈피, 러프스케치 등을 받아올 수 있었다. 주된 컨셉은 체크와 무늬였다고 되어 있었다.
SNOOZE (D15): 일러스트북 'Mirage' (3500\)
티루 화백 작품. 이 작가도 꽤 그림체가 깔끔하고 선이 가는 편이라 마음에 드는 축에 속했지만, 그 동안 무슨 이유인지 실제로 책을 사본 적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보컬로이드나 케이온 같은 작품의 합동 앤솔로지 같은 경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구입한 것이 전부였다.
사실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려고...했지만, 구매자에게 특전으로 준다고 되어 있던 소형 브로마이드와 책갈피, 엽서 외에 하츠네 미쿠가 묘하게 요염하게 그려진 클리어 파일 덕분에 마음을 움직여 구입했다. 신사인증 orz 일러북 컨셉은 소악마나 설녀, 강시, 베어볼프 등 동서양 요괴들에게 모에선을 쬔 것으로 여겨졌다.
딱 15000원 선에서 끝났는데, 물론 이런 구매 행위 말고도 사정상 참가를 못한다고 했던 지인의 부스를 빌려 오랜만에 서코에 출몰한 로리꾼 화백을 만나는 일도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참가였고, 모 게임 회사 일로 바쁜 터라 새로 준비한 것 없이 지금 남아있는 물품들만 싹 긁어온 터라 크게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보복으로 가져간 노트북에 저장한 해당 작가의 과거 그림 파일들을 보여주어 OME 고문을 시전했다(...).
책이나 물품에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아도, 부스 디스플레이가 독특해 시선을 잡아끄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차두리가 나오는 모 강장제 광고를 패러디한 원피스 부스, (아마도) 북한의 호전적인 선동 포스터를 패러디한 듯한 초전자포 부스, 최근 제대로 된 병신인증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MBC 뉴스데스크의 '게임 폭력성 실험' 을 패러디한 케로로 부스 등등.
그리고 코믹월드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보기로는 이번 행사에 여러 모로 문제가 되고 있는 헤타리아 팬부스가 참가할 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했는데, 다행히 실제 참가한 부스는 내가 관찰한 바로는 없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헤타리아 뿐 아니라 안녕 절망선생이나 스트라이크 위치스, 학원묵시록 하이스쿨 오브 데드 같이,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의 견해나 주장에 심히 치우쳐 있거나 전쟁의 도를 넘은 모에화 등을 행한 작품의 팬 활동도 자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사실 왜곡의 자유나 근거없는 중상모략의 자유로 확대되는 순간 벌어질 일은 결코 이로울 것 없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MBC의 이번 병크처럼, 이 쪽 문화를 마치 퇴폐와 타락, 일탈의 온상처럼 여기는 언론들이 항상 까잡수려고 대기하고 있는게 이 한국이라는 나라고. 코믹월드 측에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조치를 취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헤타리아의 팬부스 참가는 계속 금지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