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원어 식으로는 뷔페, 한국식으로는 부페. 아무튼 대식가 기질이 있는 이들에게는 뭔가 설레이게 하는 마법의 단어로 여겨진다. 물론 그 정도로 환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뷔페라고 하면 뭔가 은근한 도전 욕구(?)를 발휘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여길 정도니까. 다만 '한식뷔페' 라는 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를 통해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고.
3월 29일에 네 시간짜리 소집 훈련을 받기 위해 지지리도 입기 싫은 전투복을 입어야 했다. 이미 2주 남짓 전에 당일치기 훈련을 갔다온 터라 왜 이 짓을 또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이번에는 하루 꽉 채워서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홀가분하게 집을 나섰다. 다만 훈련통지서가 영 좋지 않게 작성되어서, 통지서에 표기된 부대로 갔다가 낚여서 군용 버스를 잡아타고 다른 부대로 이동해야 했고.
소집 훈련은 어차피 실내 교육이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끝났고, 소집 필증을 받은 뒤에는 허기만이 남아 있었다. 헌데 과연 군부대 밖에는 없어 보이는 이 변두리 지역에서 뭘 먹을 수 있으려나? 하지만 훈련 오기 전에 부대 근처에 한식뷔페가 하나 있다고 해서 조사해 봤는데, 다행히 잘못 찾아간 부대에서든 실제 훈련을 받은 부대에서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해서 훈련 끝나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네이뷁 지도에도 떠 있는 곳이라, 가는 길과 교통편은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다만 훈련이 있었던 부대에서는 좀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었고, 체감상 약 1km 정도 걸어가야 했다. 평소라면 그냥 가볍게 걸어갈 수 있던 정도였지만, 무거운 전투화가 계속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내버스 노선도 부대 정문에서 딱 끊겨 있어서 대중 교통도 열악한 편이었는데, 아무튼 걷다가 어느 삼거리 쪽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버스타고 갈 때부터 이미 봤던 곳이었고.
가게 이름은 '서오릉 한식부페' 였는데, 근처에 서오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나중에 버스 타고 돌아가면서 보기로는 서오릉과 걸어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가게 안은 약간 이른 저녁 시간이라 손님이 적은 편이었지만, 뷔페 식당의 특성상 음식 더는 데 양손을 모두 써야 했기 때문에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다. 신발 벗고 올라가 먹는 온돌방식 공간과 테이블 놓고 먹는 공간이 절반 정도 나뉘어 있었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계산대에서 1인당 6000원을 선불로 낸 뒤 알아서 배식해 먹는 식이었다.
배식 코너는 들어가서 맨 오른쪽에 쌀밥과 현미밥, 조밥 세 종류의 밥솥과 잔치국수, 중간에 이런저런 밑반찬과 제육볶음, 쌈채소, 카레 등이 있는 배식대, 그리고 맨 왼편에는 미역국과 된장국 등 국 종류가 담긴 솥이 있는 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왼편에는 국통 외에도 이렇게 자기가 직접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원래 전기 프라이팬을 쓰는 것 같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그냥 휴대용 가스레인지에서 부쳐먹도록 되어 있었다. 다만 달걀 크기가 작은 편이라 두 개 부쳐서 먹었고.
프라이 부치는 동안 찍어본 음식 쟁반. 담아온 음식 종류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일단 양은 꽤 빠방하게 담았다. 특히 상추의 압뷁에 주목. 상추에 가려서 잘 안보이지만, 중앙에는 제육볶음과 연근조림, 멸치볶음, 버섯볶음이 잔뜩 들어 있었다. 쟁반 윗쪽에 보이는건 생선까스와 두부. 밥은 조밥과 현미밥 두 종류를 덜어왔다.
어느새 프라이도 다 되어서 식탁으로 가져왔고,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입안에 때려넣기 시작했다. 한 쟁반을 깨끗이 비우고 좀 아쉬워서 제육볶음과 상추, 생선까스를 추가로 가져다 먹었는데, 벌써부터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두 번째 쟁반도 먹는 속도를 줄여가며 비워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기로 했는데, 마침 국수 코너에 국수 사리가 다 삶아져 올라와 있었다. 사리 두 덩이를 솥에 따끈하게 보관되어 있던 그릇에 넣고, 온수통에 담긴 육수를 붓고 김가루와 송송 썬 파, 양념장을 쳐서 쟁반에 올렸다.
그 외에 디저트 격으로 딸기잼 발라 만든 식빵 샌드위치와 달걀 프라이 만드는 곳 왼쪽에 있는 식혜통에서 퍼온 식혜 한 그릇을 더 가져와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GG친게 아쉽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음식들은 먹을만 했다. 특히 고기가 고팠던 터라 제육볶음과 상추는 원없이 먹고 왔고. 개인적으로 쌀밥보다 더 좋아하는 조밥-실제로는 기장밥-이 있던 것도 꽤 마음에 들었다.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는 편이라 작정하고 찾아가기는 그리 쉽지 않은데, 다행히 702B번 시내버스가 근처 정류장을 지나고 있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저걸 타고 갔다. 저녁밥 때보다 이른 시간에 꽉꽉 채워넣은 터였는지 다음 날 아침까지도 식욕이 없을 정도였는데, 역시 과도한 폭식은 피해야 할 듯.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는 건 여전해서, 한두 번은 더 가서 재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