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포스팅에서 서울예고 교향악단이 2007년 빈에서 공연한 실황의 CD 이야기를 주절댔는데, 이번에는 또 황학동과 신촌 쪽의 이런저런 중고음반점과 헌책방을 전전하다가 찾아낸 CD들이 더 있어서 추가했다.
서울예고 교향악단이 얼마나 자주 해외 공연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04년에도 이들이 미국을 방문해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이 때는 박은성이 지휘자로 출연했는데, 6월 27일에 뉴욕의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 야외무대에서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카네기홀(6.28),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주립대 극장(7.1)과 윌셔 연합 감리교회(7.2), 호놀룰루의 닐 블레이스델 콘서트홀(7.8)을 차례로 돌았다고 되어 있다.
이 중 카네기홀 공연 실황을 담고 있는 CD를 신촌의 공씨책방에서 입수했는데, 다만 이 CD는 공연 전체의 실황이 아닌 주요 연주곡인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과 앵콜곡인 르로이 앤더슨의 '피들 패들' 만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좀 신경이 쓰이는 뱀다리들도 있었고.
미국의 대도시에서, 그것도 세계적으로 내노라하는 공연장에서 공연했다는 상징성에 촛점을 맞췄는지, CD의 첫 번째 트랙은 청중에게 악단과 학교를 소개하는 6분 45초의 영어 나레이션이 그대로 들어갔다. 다만 내게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어서 그냥 스킵하고 교향곡이 들어있다는 다음 트랙으로 넘겼다.
그런데 바로 곡이 시작되는게 아니라, 조율하는 소리가 들리고 지휘자가 입장하고 나서야 연주가 시작되도록 담아놨다. 나레이션이야 그렇다 쳐도, 굳이 조율하는 모습까지 담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크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때 공연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청중 구성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청중석의 분위기가 꽤나 어수선했음을 소리로나마 쉽게 알 수 있었다. 각 악장마다 마지막 음의 잔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터져나오는 박수 소리가 특히나 거슬렸는데, 물론 박력있게 끝나는 1악장이나 4악장에서야 '본능적 반응' 이라고 넘긴다고 쳐도 고요하게 침잠하며 끝나는 3악장 말미에서까지 이랬으니 말이다.
꽤나 매너 꽝인 청중들 덕분에 감상 기분을 잡쳤지만, 짜증을 애써 억누르고 연주와 녹음 상태만 판단해 보면 오히려 2007년 빈 실황보다 한층 더 균형잡히고 그러면서도 학생 악단 특유의 혈기와 박력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공연 전의 비음악적인 요소들과 박수 소리만 잘 편집했다면야 일반 감상용으로 충분할 수도 있었을 음반이었다.
(물론 그 편집은 내가 직접 웨이브 편집툴로 투박하게 해버렸다. 나레이션과 조율, 지휘자 등장시 박수소리는 통째로, 박수 소리가 섞인 마지막 잔향은 그냥 페이드아웃 처리해서 날려버리니 한결 들을만 해졌다.)
두 번째 CD는 선화예고 교향악단의 25회 정기연주회 실황 일부를 담은 것이었는데, 이런저런 사가반을 많이 제작해오고 있는 이즘레코드에서 발매했다고 되어 있었다. 다만 이 CD에는 공연 장소와 일자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았는데, 정기연주회였던 만큼 아마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유니버설 아트센터(구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교롭게도 이 CD에는 서울예고 교향악단이 2007년 빈과 브라티슬라바에서 연주했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 메인으로 들어 있었다. 그 외에는 1부에서 연주되었을 로시니의 오페라 '도둑 까치' 서곡과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이 같이 수록되어 있는데, 다만 협주곡의 경우 1악장만 수록되어 있었다.
선화예고 자체도 서울예고와 함께 서울 소재 예고로는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어서, 황학동의 장안레코드에서 발견된 이 CD도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구입했다. 다만 다 들어보고 난 뒤의 느낌은 그냥 평작 정도?
지휘는 현재 청주시향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인 유광이 맡았는데, 로시니 서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에서 모두 상식 선보다 약간 느린 듯한 템포를 취해 좀 더 정확한 합주력 발휘를 노린 것 같았다. 물론 그런 효력이 어느 정도 발휘되기는 했지만, 반대급부로 로시니의 발랄함은 다소 건조함으로 바뀌었고 차이콥스키의 강렬함도 약간 밋밋해진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차이콥스키 교향곡에서 종종 나오는 실수나 합주력의 해이 등도 걸렸고.
녹음 상태는 당일치기 실황인 점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다만 좀 멀리서 잡은 듯한 소리라 현장감이 좀 덜한 감은 있었다. 해외 공연이라 '각잡고' 연주했을 서울예고의 공연에 비하면 다소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터라 아쉬웠는데, 학생 악단의 기교와 경험 부족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발전과 개선 가능성을 믿고 좋게좋게 넘어갈 수도 있을 듯.
이외에 국내 예고 관현악단들의 연주가 담긴 다른 CD가 또 있을까? 있다면 언젠가 또 듣거나 접할 기회가 있겠지. 정교하고 품위있게 가공된 보석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많지만, 투박하고 잡석에 가리워진 모양새의 원석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별로 없는 사람들 중에는 나도 끼어있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찾아다니는 거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