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를 잘 먹기는 하지만, 어디가 맛있다고 해서 특별히 찾아가서 먹을 만큼의 애착은 없다. 심지어 10년 넘게 떡볶이 골목 근처에 살고 있는 데도 거기 먹으러 가본 적은 겨우 세 번 정도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먹거리 가격이 꾸준히 치솟고 있는 현시창 속에서 여전히 1000원 어치 떡볶이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거리와 교통 수단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찾아가보기로 했다.
일단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가서 쭉 걸어갔다. 물론 버스 노선이 몇 개 있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이 역 북단 거리의 한적함을 즐기고 싶기도 했고. 다만 그 한적함도 상대적인 것이었고, 중국 불법 조업 어선 선원들이 한국 해경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중국대사관 건너편에서 확성기를 동원한 항의 시위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걷다가 눈에 띄어 찍어본 족발집. 현수막에 적힌 글귀는 '맛집 방송 거부' 와 '단골손님에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였다. 어느 독립영화가 오버액션을 떡칠해대는 요즘 맛집 방송 프로그램들의 폐해를 고발한 이래, 미디어의 맛집 소개가 과포화 상태일 뿐 아니라 되레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받는 현실을 역으로 노린 전략이 아닌가 싶은 '선언문' 이었다.
물론 그 방송들은 그 영화나 자신들에 대한 비판 여론들을 무시한듯 시큼하게(←오타 아님) 내버려두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니, 하다 못해 여기서도 그 영화와 관련된 포스팅이 상당히 많이 올라올 때조차 'TV에서 본 맛집!' 어쩌고 하는 제목의 포스팅들도 역시 계속 올라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영화도 비슷하게 독선적인 면모로 비판받는 모 블로거가 자문을 했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계속 걷다가 새마을금고가 보이는 왼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2차선 도로가 뻗어 있는 오른편에는 초등학교와 막 신축 중인 건물 공사 현장이 있었는데, 초등학교가 근처에 있다면 으레 학생들을 주 고객으로 삼는 분식집이 한두 곳 있기 마련이다. 내가 찾아간 곳도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세탁소가 보이는 저 골목으로 다시 들어갔다. 녹색 의류 수거함 오른쪽에 보이는 검은색 간판에 이 날의 목적지가 적혀있다.
하지만 저 간판만이 이정표일 뿐이었고, 그 외에 다른 간판이나 표식은 없어서 '정말 여기 있는거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 일단 지하로 내려가 보았다.
어쨌든 이렇게 가게 이름이 적힌 아크릴판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약간 뻑뻑한 철문을 열자, 지하실을 개조한 분식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근처의 학교가 방학 중이었고 어중간한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손님은 나 뿐이었는데, 먹는 중에도 몇 사람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모두 포장해가는 손님들이었다.
메뉴판. 떡볶이와 거기에 들어가는 부재료들에 라면과 김치볶음밥 정도로 단촐했는데, 분식집 하면 단골로 같이 들어가는 순대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아무튼 기본 메뉴인 떡볶이는 들어본 대로 1000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1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기껏해야 길거리 노점에서 사먹는 떡볶이 1인분 아니면 그보다 적게 나오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떡볶이는 그냥 시식하는 수준으로 생각하고, 점심을 거른 탓에 주려있던 배는 김치볶음밥으로 채우자는 생각을 하고 두 가지를 모두 주문했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무모한 선택이었는지는 주문할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먼저 나온 떡볶이 1000원어치. 하지만 1000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많았는데, 노점이나 요즘 유행하는 이런저런 체인점에서 시켜먹는 떡볶이 1인분 어치의 두 배 좀 넘어 보이는 양이었다.
떡볶이에 으레 따라나오는 오뎅국물 외에 이렇게 채썬 파가 담긴 통이 따로 나왔는데, 이걸 떡볶이에 뿌려먹는 것이 이 집의 특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뿌려서 먹어봤다. 뻘긋뻘긋한게 꽤 매워보이지만 별로 맵지 않고 오히려 달달했고, 떡은 밀가루떡이라 부들부들했다. 떡볶이가 생각보다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다 먹을 수 있겠네 했는데,
떡볶이를 먹던 중 나온 김치볶음밥. 헐퀴. 떡볶이 그릇보다 더 큰 그릇에 잔뜩 담아서 내왔는데, 방금 볶은 것이라 뜨겁기까지 해서 '이거 다 비울 수 있으려나' 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볶음밥을 중간 쯤 비울 때 이미 뱃속에서는 포만감이 느껴졌지만, 시킨 음식을 남길 수는 없다고 생각해 무리를 해서라도 다 먹기로 했다.
그렇게 정말 힘들게 두 가지를 비웠다. 그러고도 볶음밥과 같이 나온 단무지에는 전혀 손을 못댔는데, 가격이 싼 대신 양은 적겠지 했던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가버리고 말았다. 평소에도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내 위장이 힘들게 받아들였을 정도였으니. 덕분에 이걸로 점심과 저녁 두 끼는 모두 패스해 버렸다.
두 메뉴 모두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의 맵싸함은 없었고, 그냥 평범한 분식집 음식 그 자체였지만 가격이 가격이었던 만큼 몇 차례 더 찾아가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서울임에도 교통 오지에 속하는 자하문길 쪽에 있는 탓에 얼마나 더 자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다음에는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뭔가 해장국이 먹고 싶어서 어느 해장국집을 두 차례 찾아가봤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