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이루어진 창원-마산-진해 세 개 도시의 통합은 문화예술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창원시립예술단과 마산시립예술단 소속의 두 시립 교향악단의 경우, 과연 통합된 시의 체제 아래 어떻게 운영될 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한 시에 두 예술단을 운영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는지, 일단 시립 교향악단의 경우 두 단체를 통합해 하나로 재조직하는 방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마산시립교향악단(이하 마산시향)은 2012년 1월 부로 창원시향에 통합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창원시향은 두 단체를 통합한 결과 총 단원 수가 130명에 이르는 대규모 관현악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두 악단이 통합하는 경우가 해외에서도 그다지 드문 편은 아닌데, 가령 이웃 일본의 경우 2001년에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재정난에 허덕이던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합병하기도 했다.
통합 전의 마산시향이 CD를 적어도 한 장 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기는 했는데, 그 중 들어본 것은 국립예술자료원에 소장되어 있는 이동호(현 제주도향 상임 지휘자) 지휘의 CD가 전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지막 마산시향 상임 지휘자가 된 백진현이 재임기에 다섯 장을 또 내놓았다는 사실은 작년 연말에야 알 수 있었다.
먹통닷컴에서 발견한 창원시향의 윤이상음악콩쿨 CD 외에 그 중 하나가 올라와 있길래 같이 구입했는데, 그 때까지도 마산시향의 차후 행보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말에 결국 통합이 결정되면서, 이게 결국 마산시향의 이름을 단 마지막 음반들 중 하나가 되었다.
ⓟ 2008 Masan Philharmonic Orchestra
내가 구입한 것은 다섯 종류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2008년 9월 5일에 마산 3·15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음악회의 실황을 녹음한 것이었다. 곡목은 아마 2부에 연주되었을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번 구입한 서울예고 교향악단 CD가 있어서 두 악단의 연주를 비교 청취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전체적인 템포는 서울예고보다 마산시향 쪽이 더 빠른 편이었고, 연주의 인상도 좀 더 타이트하고 추진력이 강했다. 다만 합주력 면에서 다소 느슨하고 엉성하다는 느낌이었고, 섬세한 표현력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아쉬웠다. 오디오가이가 맡았다고 되어 있는 녹음은 비교적 깔끔했지만 다소 붕뜨는 느낌이었고, 악단에 마이크를 밀착해 녹음했는지 약간 귀가 피곤하기도 했다. 물론 정말 바짝 붙이고 녹음하는 KBS나 예술의전당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의아한 것은, 서울예고 녹음과 마찬가지로 3악장 마지막에서 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온 박수 소리였다. '이게 이 곡을 들을 때 관례적으로 치는 박수인가?' 싶을 정도의 데자뷰 현상이었는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의 3악장에서야 이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치더라도 이 녹음에서까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 굉장히 이상했다. (물론 이 박수 소리도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르고 페이드아웃 시켜서 듣고 있다.)
슈만의 교향곡 1번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등을 담고 있는 나머지 마산시향의 CD들도 지금까지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한데, 악단이 통째로 창원시향에 통합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될 지는 불투명한 것 같다. 물론 마산시향의 공연 자료도 창원시향의 것에 그대로 들어가고 있다면야 희망이 있을 것 같은데, 만약 아니라면...아니길 바랄 뿐이다.
여담으로, 백진현은 악단이 통합되기 직전까지 계속 직책을 유임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0월 13일에 열린 148회 정기 연주회가 악단과 개최한 마지막 공연으로 여겨지며, 여기서 1부에 출연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2번 '소러시아' 를 지휘하고 2부는 엑토르 구스만이라는 스페인 혹은 라틴아메리카계 지휘자에게 맡겼다고 한다.
정치용의 지휘 아래 합병되어 공연하게 된 구 마산시향이 과연 창원시향과 조화로운 소리를 빚어낼 수 있을 지, 그리고 편성이 한국의 시립 교향악단 치고는 상당히 커진 만큼 이 몸집을 이용해 어떠한 레퍼토리들을 연주할 지 궁금하다. 그리고 퇴임 직전까지 한국에서는 좀처럼 연주되지 않고 있던 차이콥스키의 초기 교향곡들을 계속 지휘하던 백진현의 행보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