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이라는 단어는 흔히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을 일컫는 단어라고들 한다. 다만 이건 좁은 의미의 뜻이고, 실제로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라는 점에서 서양의 스낵과 비슷한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쓰고자 하는 곳들은 정작 '분식' 타이틀을 달았으면서도 나름대로 저렴한 가격에 식사할 수 있는 곳들을 뜻한다.
종로라는 동네는 서울의 한강 이북에서 명동 등지와 함께 상당히 알려진 '번화가' 에 속하는데, 그 만큼 유동 인구도 많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이나 술집도 많다. 하지만 땅값이 그리 자비롭지는 않아서인지, 많은 경우 다른 동네보다 비싼 값을 지불해야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뭘 먹으러 간 적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거기서 약간 북동쪽으로 비껴간 낙원상가 쪽에서 죽돌이였기는 했어도.
하지만 그 동네에도 물론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존재한다. 특히 이런저런 어학원이 많은 만큼, 그 쪽 학생들을 위해 나름대로 저렴한 가격에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들을 팔고 있다. 그 중 두 군데를 연초에 갔다 왔는데, 지난 번 소개한 노량진 노점상보다는 가격이 좀 비싸겠지만 이 곳들은 그래도 '가게 안에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종로타워와 피자헛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은 예전에도 값싼 식당이나 술집이 많이 있기로 유명했는데, 그 때문인지 이렇게 아예 먹거리에 특화된 골목이라고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다. 첫 번째 갔던 곳도 이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골목 왼편을 주시하며 계속 걷다 보면 이렇게 매우 평범해 보이는 분식집이 보인다. 첫 번째 목표였던 종로분식이었는데, 사실 온오프에서 주로 언급되는 종로분식이라는 가게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영풍문고와 SK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분식집이다. 여기는 떡볶이와 오뎅, 순대, 튀김 등에 특화되어 있는 곳인데, 다만 밥 종류는 없다.
그 종로분식 말고 이 종로분식은 오히려 그런 분식은 취급하지 않고, 주로 식사용으로 적합한 국수나 라면, 찌개, 비빔밥 종류를 파는 밥집이다. 겉보기에는 꽤 비좁아 보이는 가게였지만, 들어가 보니 오른편에 기역자를 뒤집은 모양새로 주방 공간을 겸한 식사 공간이 또 나 있어서 꽤 넓어 보인다.
메뉴는 이렇다. 김밥과 기본 라면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메뉴의 가격이 3000원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제육덮밥과 뚝배기불고기(약칭 뚝불)도 구제역 파동 전까지는 각각 3000원과 3500원이었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가짓수가 꽤 많아 보이는데, 다만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시켜도 나오는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아직 겨울이었기 때문에 뭔가 따뜻한 국물 요리를 밥과 먹고 싶어서 두 가지 씩을 택했다.
첫날 가서 먹은 김치찌개. 물론 따뜻한 요리를 원했다고 해도 혀를 데이고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것을 원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내 기호에 딱 맞게 나왔다. 이 날 밑반찬은 콩나물 무침과 미역 초무침, 배추김치, 오뎅볶음 네 종류였다.
3000원짜리 김치찌개지만, 나름대로 찌개가 갖춰야 할 구색은 다 갖추고 있었다. 단가 문제 때문에 얇게 썰어 넣기는 했지만 돼지고기도 있었고, 그 외에 두부와 라면사리, 가래떡사리도 들어 있었다. 좀 더 익힌 김치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3000원 내고 한 식사로는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두 번째 가서 먹은 메뉴는 이 집의 최고가 메뉴...라고는 해도 4000원인 뚝배기불고기. 이건 지난 번 김치찌개와 달리 펄펄 끓는 모습으로 나와서 좀 두려웠다. 김을 빼기 위해 이리저리 저어주고 난 뒤, 밥 위에 건더기들을 덜어 가며 먹기 시작했다. 밑반찬 구성은 비슷했지만, 이 날에는 콩나물 무침 대신 도토리묵이 나왔다.
뚝배기 안에는 뚝불인 만큼 쇠고기와 가래떡사리, 당면사리와 다진 파가 들어 있었다. 다만 김치찌개와 마찬가지로 원가 문제 때문인지 일반적인 형태의 고기가 아닌 간 고기, 속칭 민찌를 쓰고 있었다. 국물 맛은 달콤짭짤한 간장 육수 맛이었다.
물론 더 '제대로' 된 것을 먹고 싶다면 다른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갑 사정에 의해 저지될 경우에 택할 수 있는 곳이 이 곳으로 여겨진다. 물론 집 근처에도 이렇게 비슷한 메뉴들을 갖춘 분식집들도 여러 곳 있지만, 여기는 종로다.
첫 번째로 김치찌개를 먹은 이유는 김치 관련 메뉴가 땡겼기 때문인데, 물론 독일에서 몇 달을 살면서도 초반과 중반 까지는 김치 없이도 그냥 살았을 정도로 김치에 대한 그리움 따위는 없었다. 그러다가 체류 후반기에 가서야 한인 마트에서 팩으로 된 김치를 한 번 사다가 먹은 것이 전부였는데, 이상하게 귀국하고 나서야 김치찌개며 김치볶음밥, 두부김치 같은 것이 땡겼다.
그래서 두 번째 '분식집' 은 김치볶음밥을 하는 곳으로 찾아봤다. 마침 예전에 독일어를 배우러 다니던 어학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에 한 군데가 있었고,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고향분식이라는 이름의 가게는 소위 '피아노 거리' 에서 커핀 그루나루를 끼고 도는 골목에 있는데, 워낙 작고 마치 '짱박혀' 있듯이 자리잡고 있어서 한눈 팔다가는 놓치기 딱 좋은 곳이었다. 가게 안은 밖에서 본 것처럼 상당히 좁았는데, 주방을 겸한 1층 외에 2층에도 식사 공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거 다 합쳐도 15명 이상은 못들어갈 만큼 좁았다.
좁기는 해도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기다렸다가 먹을 만큼 미어터지는 것은 아니어서, 바로 들어가 1층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은 벽을 둘러치듯이 붙어 있었는데, 꽤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짤방 만들기가 여의치 않아 일부만 찍었다. 종로분식과 달리 여기서는 떡볶이 같은 '학교 앞 분식' 에 속하는 것도 팔고 있었는데, 밀것이 그리 땡긴 것도 아니고 위에 쓴 대로 김치볶음밥을 위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걸로 주문했다.
이 곳의 메뉴도 종로분식만큼 다양했지만, 가격은 라면 종류가 2500~3000원, 나머지 밥이나 국수류는 3500원으로 종로분식보다 약간 높게 매겨져 있었다. 아무래도 학원가와 번화가가 맞물리는 지점에 있어서 자릿세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볶음밥과 거의 동시에 나온 밑반찬과 국물. 국물은 짤방만 봐서는 정체불명으로 보이지만 평범한 오뎅국물이었고, 이 날 밑반찬은 배추김치와 콩나물, 치커리무침과 특이하게 김치빈대떡을 얇게 썬 것 네 종류였다.
그리고 김치볶음밥. 3500원짜리 메뉴이기는 하지만, 주문하면 직접 볶아서 내오기 때문에 냉동 볶음밥을 데워주는 다른 곳보다는 훨씬 성의있는 모양새다. 한창 퍼먹느라 찍지는 못했지만 달걀프라이도 반숙으로 잘 익혀져 나왔고, 간도 너무 짜거나 맵지 않게 잘 맞춰져 있었다.
이것 외에 돈까스도 좀 궁금했는데, 옆사람이 시켜먹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시판품을 그대로 튀겨주는 것 같아서 그냥 포기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이 동네에서 배고프고 돈없는데 돈까스가 땡긴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주문할 것 같지만.
포스팅이 뜸하고 불규칙해져서 아직도 남은 곳이 적어도 여섯 군데에 통영 이야기까지 주절대야 하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이런 글도 귀차니즘 때문에 쓰기가 힘들다. 물론 이런 니트 생활도 다시 유학가게 되면 언젠가는 청산해야 겠지만. 아무튼 다음에는 계속 통영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