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쪽에 가본 적은 그 쪽 재학생이 아닌 탓도 있지만 매우 드물었는데, 기껏해야 독일어 어학시험인 ZD(Zertifikat Deutsch) 필기와 듣기 시험을 봤을 때가 좀 기억에 남는 정도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그 주변에서 유명하다는 막걸리는 커녕 뭔가를 먹어본 적도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집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탓에 이것저것 수소문해 보다가 고대병원 근처(6호선 안암역)에 솔깃한 곳 두 군데가 있어서 왔다갔다 했다.
이것저것 거하게 차려내는 것보다는 밥이나 국수, 만두 같이 식사가 될 만한 것을 더 선호하는 입장에서 만두 한 판에 2000원을 받는다는 집은 아무래도 관심이 안갈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싼 가격에 비례해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도 들 수밖에 없고. 일단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처음 찾아간 곳은 '만두방' 이라는 곳이었다.
참 솔직한 가게 이름이라고 생각되는데, 정말 주력 메뉴는 만두 종류밖에 없다. 물론 창가에 라면도 표기되어 있지만, 시판품 신라면을 끓여내는 것이라 결국 이 가게의 존재 가치는 만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게 안의 분위기는 좁다란 여느 분식집과 다를 바 없었는데, 차림표도 매우 단순했다. 고기만두 한 판을 일컫는 통만두와 떡만두국, 떡라면, 라면이 전부였는데, 일단 국물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해서 라면이랑 만두를 하나씩 시켰다. 그래도 지출은 합해 봐야 4000원이었는데, 음식의 질은 어떠려나 하면서 기다렸다.
테이블 세팅은 단조로운 편이었지만, 만두를 찍어먹을 초간장을 만들 수 있는 3요소인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는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었다. 윗쪽에 조그맣게 찍힌 것들이 만두 찜통이었는데, 손님이 보는 바로 앞에서 만두를 빚어 찜통에 올려놓고 쪄내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주인 아저씨의 뒷편에 쪄낼 채비를 마친 만두 한 판이 보인다. 옆의 냄비에서는 내가 시킨 라면이 펄펄 끓고 있었는데, 주방을 오픈 식으로 해놓은 것으로 볼 때 나름대로 가게의 만두에 자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문을 받으면 나오는 단무지와 간장 종지. 앞서 말한 것처럼 간장은 자기가 직접 재주껏 만들어야 한다. 단무지는 물론 라면과 마찬가지로 시판품이었는데,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하고는 좀 맞지 않아서 몇 조각 집어먹고는 패스.
먼저 라면부터 나왔다. 계란을 풀어넣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신라면 자체였으므로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이 만두가 정말 제대로였다. 한 판에 열 개를 주는데, 박리다매를 표방하는 여타 만두집에서 정말 작게 빚어내오는 것과 달리 크기부터 뭔가 범상치 않았다.
만두피도 너무 두껍지 않게 잘 빚어서 나왔는데, 한 입 먹어 보니 2000원 내고 먹기에 아까울 정도의 맛이었다. 속도 너무 질척하거나 느끼하지 않게 균형을 잘 잡은 맛이었는데, 김치만두 같은 다른 종류는 일체 취급 안하고 고기만두만 내오는 우직함이 이해가 되었다.
라면으로는 배를 채우고 만두로는 입을 즐겁게 하는 식으로 깔끔하게 비우고 나왔는데, 사진은 못찍었지만 두 번째 갔을 때는 그냥 만두만 두 판 시켜먹었다. 한국식 만두를 싼 값에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으로까지 여겨져서,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제대로 된 곳 하나를 찾은 느낌이었다.
고대 하면 막걸리라는 키워드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이웃 학교 학생에게도 귀에 자주 들어온 다른 키워드가 '영철버거' 였다. 원래는 허름한 노점상에서 시작한 가게가 이제 소규모지만 프랜차이즈 체인점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았는데, '그래도 패스트푸드는 패스트푸드지' 하고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막상 가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이미 가게의 대표 메뉴인 스트리트 버거가 단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한참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스트리트 버거 외에 다른 버거들도 기존 햄버거 체인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고, 얼마나 차별화되려나 하고 들어가 봤다.
가게 앞은 못찍은 대신 가게 안의 버거 메뉴 사진들. 어라? 단종되었다는 스트리트 버거 사진이 보란듯이 나와 있었다. 여기 본점에서만 파는 건가 싶었는데, 다만 개인적으로는 저것 보다는 다른 버거 쪽에 눈이 가서 결국 불고기버거를 첫 번째로 골라 먹었다.
다른 패스트푸드 체인들과 달리 세트 메뉴는 없는지, 메뉴판에는 버거와 음료수, 그리고 특별 메뉴인 샐러드 정도가 전부였다. 다른 손님들도 버거에 음료수 한 잔만 곁들여서 먹고 있었고, 나도 이걸로 한 끼를 제대로 때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사이다 한 잔만 추가로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3600원.
솔직히 가져다 주는 음식 쟁반을 받은 뒤에도 뭐가 다른 게 있냐는 생각이었는데, 버거를 집어들고 빵을 만져보니 꽤 독특했다. 다른 곳은 부드럽고 촉촉한 빵을 쓰고 있지만, 여기서는 마치 살짝 토스터에 구운 듯한 바삭한 질감과 식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버거류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토마토와 가득 채운 양상추도 인상적이었다. 패티도 기름을 적게 쓰는지 느끼한 맛이 한결 덜했고.
첫 인상이 꽤 좋기는 했지만, 두 번째로 찾아간 것은 한 달도 더 지나서였다. 본격적인 한여름 날씨에 비도 드물게 내려서 한반도 전체가 가뭄크리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들어갔는데, 이번에도 목을 축일 겸 사이다 한 잔과 함께 뉴클래식버거를 주문했다. 이건 가격이 좀 되는 버거라 합쳐서 4300원이었다.
길쭉한 모양이 마치 롯XX아의 불갈비버거나 리브샌드를 연상시켰는데, 모양 자체는 사실 닮은꼴은 아니었다. 여전히 바삭한 식감의 빵과 양상추, 토마토는 그대로였지만, 패티가 혼합육이 아닌 닭가슴살 그 자체여서 좀 놀랐다.
다만 사진에서 보듯이 좀 작아보인 것이 아쉬웠는데, 먹다 보니 오히려 패티 면적이 사다리꼴처럼 넓어지는 진기한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럼 뒤집어 넣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리고 몇 입 베어물다 보니 웬 버섯도 보였고, 피클처럼 보이는 게 있어서 잠깐 얼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할라페뇨였다. 어째 좀 매콤하다 했지.
같은 가격, 혹은 이보다 비싼 가격의 버거도 속재료가 부실하다고 까이는게 현실이지만, 여기는 과거 스트리트 버거의 영광을 물가 인상에 희생시킨 대신 재료를 나름대로 괜찮고 독특한 것으로 쓰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소위 '수제 햄버거집' 의 화려함에는 못미치겠지만, 애초에 그런 레스토랑급 개념이 아닌 대학가 패스트푸드점으로서는 다른 체인과 충분히 경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이외에 계절 한정 메뉴인지 패티를 삼치 살로 쓴 버거나 파스트라미 버거 같은 것도 4000원대의 가격으로 팔고 있었는데, 특히 삼치 버거의 경우 롯XX아에는 아예 없고 맥XX드에서는 매출 부진으로 내려버린 생선 계통의 버거를 판다는 것이 꽤 솔깃해서, 이것도 언제 한 번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