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을 한참 넘기고 이제 더위에 찌들 때도 됐는데, 게다가 비까지 안와서 더욱 덥게 느껴진다. 100여 년 만의 가뭄이래나? 작년에는 여기가 한창 더울 적에 지구 반대편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시원한 여름을 보낸 덕에 더 덥게 느껴진다. 이제 요리하려고 가스레인지 불을 땡기는게 귀찮아질 정도인데, 앞으로 남은 두 달은 어떻게 버티려나.
아무튼 그 덕인지 바깥이든 집이든 아예 작정하고 매운 것을 먹는 때가 많아졌다. 물론 입과 몸을 괴롭힌 댓가는 거의 매번 설사로 치르고 있는데, 그래도 김치찌개 같은 경우에는 생각보다 설사로 이어지는 빈도가 그리 많지 않아서 괜찮은 것 같다.
종묘 사거리 남서쪽에 어느 헌책방이 들어선 뒤로 가끔 여기를 들르러 종로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 쪽 큰길이야 많이 다녀봤지만 파고다어학원 뒷쪽의 골목길은 거의 들락거리지 않아서 좀 생경한 편이다. 하지만 5월 중순에 별 소득 없이 헌책방을 나선 뒤 우연히 들어갔다가 뭔가 솔깃한 곳 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거킹과 어학원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서서 걷다가 마주친 입간판 두 개. 'since 1999'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10년 조금 넘은 가게 같았다.
그리고 건물에도 이렇게 현수막을 걸어놓고 있었는데, 5000원이라고 표기된 가격 자체는 평균적인 식당 김치찌개 값이라 가격 면에서 크게 감동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가격이 물가가 비싼 편인 종로통 기준이면 나름대로 적절한 가격으로 생각돼서, 한 번 먹어볼까 하고 가게 앞으로 가봤다.
아직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문도 없이 탁 트인 가게라서 더 눈에 띄었다. 가게 안의 식사 공간은 드럼통을 개조한 식탁 여섯 개가 전부라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식사는 오로지 김치찌개 하나고 나머지는 안주로 되어 있어서 점심에는 식사 위주로, 저녁에는 술자리 위주로 영업하는 가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보자니 영업 시간이 별로 길지가 않은 것도 또 미묘했다.
가게 영업 시간 안에는 들어 왔고, 또 밥먹자고 들어온 것이었으니 김치찌개를 시켰다. 기본적인 연장들과 김치찌개를 끓일 때 쓰는 가스 버너.
그리고 5분 정도 기다리다가 펄펄 끓고 있는 찌개 냄비를 받았다. 주방에서 미리 한소끔 끓여서 내오는 것 같았는데, 안에 있는 라면사리와 떡사리가 익을 때까지 추가로 끓였다가 먹으면 되는 것 같았다.
밑반찬 세 종류. 하지만 달걀프라이를 빼고는 별로 손을 대지 못했다. 맛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찌개가 주된 식탁이다 보니까.
그리고 가게 이름답게 돌솥밥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장을 섞어서 지은 밥이라 반가웠는데, 다만 돌솥에 나온 것이다 보니 무척 뜨거웠다. 밥을 공기에 덜어놓고 남은 돌솥에는 물을 부어두면 숭늉으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밥을 다 덜어놓는다고 해도 뜨거운 것을 잘 못먹는 터라 조금씩 덜어서 식혀먹었는데, 이게 좀 문제였다. 찌개와 밥 모두 뜨거워서 입을 화닥거리면서 먹기는 했지만, 너무 시지도 짜지도 않은 찌개 맛은 꽤 괜찮았다. 껍질과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도 씹는 맛이 느껴질 정도로 적당한 크기로 썰어져 나왔고.
하지만 미리 물을 부어놓지 않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돌솥에 붙은 누룽지가 잘 떼어지지 않았는데, 숟가락을 주먹쥔 손으로 꽉 붙잡고 마구 쪼아대면서 한참을 떼어야 했다. 차라리 찌개 덜어먹으라고 내온 그릇에 밥을 모조리 덜어놓고 미리 물을 부었으면 누룽지도 더 쉽게 뗄 수 있고 밥도 더 잘 식었을 테니 괜찮았을 것을. 아무튼 그렇게 생쑈를 해가면서 간신히 누룽지와 숭늉까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에 와서 사먹어본 김치찌개 중 유일하게 돌솥밥을 내놓는 등 찌개 뿐 아니라 밥에도 공을 들이는 곳이라서 인상적이었는데, 다음 번에 가게 되면 좀 더 쉽게 숭늉을 만들어 먹어봤으면 싶다. 괜히 주인장이 미리 물부어 놓으라고 충고한게 아닐 테니까.
여길 갔다온 지 1주일 가량 뒤에는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방산시장 쪽에 있는 어느 보쌈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한 끼 식사에 쓴 돈이 꽤 큰 편이었지만 그 만큼의 맛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