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었다가 문을 닫고 흉가처럼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던 공화춘 건물은 나에게도 그리 생경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도 무슨 용도 변경인지 아니면 개축인지는 몰라도 2010년 무렵부터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결국 이 자리에는 짜장면 박물관이 새로 들어서게 되었다.
짜장면이라는 음식을 중딩 때야 처음 익숙하게 먹기 시작한 나로서는 저 음식에 이전 세대 사람들 만큼의 추억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인들에게 가장 깊게 뿌리내린 퓨전 음식이라는 평에 반기를 들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저 음식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돼서, 5월과 7월에 두 차례 갔다왔다.
박물관 후면과 정면. 사실 박물관 개장 후 처음 가본 것은 5월 21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이 하필이면 월요일. 결국 건물만 찍고 돌아와야 했다.
간단한 한국어/영어 소개.
물론 그 짓만 하고 온 건 아니었고, 오긴 왔으니 끼니나 때우자고 생각하고 근처의 대창반점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나왔다. 하지만 나중에 두 번 갔을 때는 짜장면이 아니라 다른 것을 먹고 왔는데, 그건 나중에.
결국 나흘 뒤에 다시 찾아가서야 처음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하기 전에 월병을 사러 갔던 복래춘에 물어보니 '지금은 개장 초기라 무료지만, 나중에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라고 귀띔해 주었다. 이렇게 티켓 발매기가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봐서는 정말 그럴 것 같다.
박물관 동선은 우선 2층부터 관람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 당시 모습을 최대한 복원했다는 계단을 올라갔다. 물론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가 오른쪽으로 가면 차이나타운 성립 배경과 과정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고, 당시 화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인명부나 신분증, 이발용 칼 등의 기증품과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초창기 짜장면을 먹는 소위 '쿨리' 라는 하역 인부들의 모습을 재현해놓고 있는데, 해설에 따르면 초기 짜장면은 지금과 달리 고기나 야채 꾸미는 없었고 그냥 면에 춘장을 올린 투박한 모양이라고 했는데, 모형으로 재현된 짜장면은 지금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설정오류???
그리고 다음 방에서는 간이 음식이었던 짜장면이 이제 식당으로 옮겨가 현지화되기 시작하는 일제강점기 시기를 다루고 있다. 한 사람은 간짜장을, 다른 두 사람은 우동을 먹고 있는 것으로 재현해놓은 것 같다.
탁자에 올라가 있는 음식 모형 중 밑반찬 류가 특이했는데,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춘장과 단무지, 양파 외에 대파 썬 것이 올라가 있었다. 이건 7월에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박물관 큐레이터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당시 중국집은 지금과 달리 중국 손님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흔히 곁들이는 대파를 썰어준 것이라고 했다. 단무지야 당연히 일본 손님들을 의식한 것이겠고.
젓가락에 대해서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삼국의 젓가락 재질과 용도에 대해 이렇게 따로 설명해 놓은 안내판을 붙여놓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 내부에서는 이렇게 허름한 의자를 비롯해 상당히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문짝과 현판 등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잘 보이지 않지만 '공화춘 수습유물' 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가능한한 상태가 좋은 건물 내 유물이나 자재들은 이렇게 그대로 혹은 간단한 수리를 거쳐 보존하는 것이 설립 취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다음 전시 공간은 해방과 한국전쟁 후 짜장면이 혼분식 운동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에게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시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춘장에 캐러멜을 첨가한 것이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아이디어임을 알 수 있었다.
짜장면을 내오는 주방을 간단하게 재현한 장면. 이외에 어두워서 사진은 못찍었지만, 1960~70년대에 실제로 사용된 중국집 메뉴판도 붙어 있다. 물론 화폐 개혁이 있었고 당시 물가를 감안한다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1000원은 커녕 500원도 안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에 이런저런 식사나 요리의 표기가 중국어에서 일본어나 한국어 식으로 점차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도 읽을 수 있다.
졸업식 때 가족들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다...고 하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까. 근데 그 당시에는 정말 그랬다고 한다. 심지어 내가 초딩 때도 그러는 집이 드물지는 않았고. 밀랍 인형으로 재현된 학생들의 명찰에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의 법정 동명인 북성(남학생), 예전 동명인 선린(여학생)이 깨알같이 새겨져 있는 것도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그리고 과거 공화춘의 연회장이었다는 다음 방으로 가보면 배달용 철가방이나 자전거, 오토바이, 당시 쓰였던 식기나 고량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철가방 철가방 하지만, 초기 배달용 가방은 두 번째 짤방에서 보듯이 '목가방' 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잔반 닦기도 쉽고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금속제로 바뀌면서 흔히 이야기하는 철가방이 나왔다고 되어 있다.
짜장면이 맞는지 자장면이 맞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이어진 소모적 논쟁의 끝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짬뽕은 허용하면서 짜장면은 안된다고 하던 국립국어연구원의 이중잣대가 상당히 고까웠는데, 짜장면을 먹고 싶어도 먹기가 힘들었던 독일 체류 시기였던 작년 8월에 가서야 결국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연회장 정면에는 이렇게 스크린을 놓고 짜장면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찍혀있는 건 영화 '김씨 표류기' 에 나온 옥수수 짜장면 먹는 모습이다.
이런저런 짜장의 변종들. 어릴 적에 저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것은 기껏해야 옛날짜장과 간짜장, 삼선짜장 정도였는데, 그러다가 중딩 때부턴가 쟁반짜장이 나와서 인기 메뉴로 자리잡더니 매운 맛을 좋아하는 종특 덕분인지 사천짜장과 고추짜장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저 짜장들 중 아직도 못먹어본 것들이 몇 가지 섞여 있는 걸 보면 짜장면에 대한 내 애착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게 맞나 보다.
소위 '빼갈' 이라고 부르는 고량주 재현품. 사실 집에서도 가족들이 그렇게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었고, 본격적으로 술을 맥주와 소주 위주로 편협하게 배운 것도 대딩 시절이라 이런 독주 계통에 속하는 술은 마셔볼 기회가 별로 많지 않다.
하지만 옌타이 고량주의 향긋함과 뒤끝없음을 경험한 뒤로는 중국 증류주도 싼 값에 비해 품질이 꽤 괜찮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챌 수 있었다. 다만 여기 나온 재현품들은 모두 국산. 진로고량주는 이미 단종된 지 오래고 수성고량주는 고딩 때도 중국집에서 파는 걸 어렵잖게 볼 수 있었는데, 지금도 생산되는 지는 모르겠다.
이외에도 당시 사용되던 그릇 같은 것도 기증 자료로 진열되어 있는데, 사진은 못찍었지만 7월에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어 보니 꽃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 그릇은 국물 없는 식사나 요리를 담는 데 쓰였고 새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은 탕이나 국물이 있는 면 혹은 밥 같은 것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런 전통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릇에 있는 그림으로 담는 요리를 구별한다는 점에서 당시 화교 중국집의 꼼꼼했던 모습이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연회장을 나오면 2층도 거의 돌아본 셈인데, 해외 교포들을 통해 중국과 일본, 미국 등지에 뿌리내린 짜장면의 위치와 현황 외에 한국 각지에 있다는 또 다른 짜장면의 변종들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들 중에 먹어본 건 재작년에 광주에 갔을 때 먹은 메밀짜장과, 아직 포스팅은 안하고 있지만 회기역 인근의 어느 중국집에서 먹은 버섯짜장 정도.
그나마 버섯짜장의 경우도 저기에 설명된 것처럼 양파가 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서울의 수제비 짜장은 서울 토박이인데도 여기서 처음 보는 것이었고, 경산의 냉짜장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다 먹어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전주의 물짜장이나 마라도 톳짜장은 나름대로 무슨 모양과 맛인지 궁금한 편이다.
단을 다시 내려와 보면 1층에도 전시 공간이 있다. 서빙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플라스틱 (혹은 석고) 인형.
짜장면 만드는 주방의 모습도 물론 재현되어 있다. 볶음밥이나 여타 중식도 마찬가지겠지만, 역시 강한 화력과 두터운 냄비, 그리고 이것들을 다룰 능숙한 솜씨가 없으면 집에서는 도무지 중식 맛을 재현하기 힘든 이유를 알 수 있다.
식재료 다듬는 모습과 수타면 치는 모습. 커다란 도마도 '공화춘 수습유물'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아까 매표기가 있었던 박물관 1층의 왼편에는 특별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다. 들어가는 길에는 이렇게 공화춘 건립 당시 세워진 내력벽 일부가 유리로 덧씌워져 보존되고 있다.
특별 전시실에는 공화춘 설립자였던 우씨 가문의 집안 내력과 가문에서 기증한 이런저런 물품들, 계산서나 주식 증서 등 서류, 그리고 여타 수습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찍힌 것은 술통들.
우씨 가문 3대의 이력이 적힌 안내판. 안내판 밑에는 이미 빛이 바랜 상당히 오래된 흑백 사진도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과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의 깃발이나 일본의 괴뢰 정권이었던 만주국과 몽강자치연합정부의 깃발로 장식된 연회장 사진에서 1930~40년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 큰 규모가 아님에도 짜장면 외에 화교나 차이나타운, 분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 등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큐레이터의 경우에도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는 일 없이 관람자들의 물음에 자세히 답해주고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외국에 비하면 아직까지 초라한 모습의 차이나타운에서 하나의 명소를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세운 박물관 다운 모습이라, 박물관을 나오면 보이는 (부실 공사와 여타 건설 비리 혐의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는) 월미은하레일과 대조를 이루는 것 같기도 하다.
위에 쓴 것처럼 두 번의 관람 후에 식욕이 땡겨서 차이나타운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게속'.
짜장면이라는 음식을 중딩 때야 처음 익숙하게 먹기 시작한 나로서는 저 음식에 이전 세대 사람들 만큼의 추억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인들에게 가장 깊게 뿌리내린 퓨전 음식이라는 평에 반기를 들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저 음식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돼서, 5월과 7월에 두 차례 갔다왔다.
하지만 옌타이 고량주의 향긋함과 뒤끝없음을 경험한 뒤로는 중국 증류주도 싼 값에 비해 품질이 꽤 괜찮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챌 수 있었다. 다만 여기 나온 재현품들은 모두 국산. 진로고량주는 이미 단종된 지 오래고 수성고량주는 고딩 때도 중국집에서 파는 걸 어렵잖게 볼 수 있었는데, 지금도 생산되는 지는 모르겠다.
이외에도 당시 사용되던 그릇 같은 것도 기증 자료로 진열되어 있는데, 사진은 못찍었지만 7월에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어 보니 꽃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 그릇은 국물 없는 식사나 요리를 담는 데 쓰였고 새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은 탕이나 국물이 있는 면 혹은 밥 같은 것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런 전통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릇에 있는 그림으로 담는 요리를 구별한다는 점에서 당시 화교 중국집의 꼼꼼했던 모습이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그나마 버섯짜장의 경우도 저기에 설명된 것처럼 양파가 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서울의 수제비 짜장은 서울 토박이인데도 여기서 처음 보는 것이었고, 경산의 냉짜장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다 먹어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전주의 물짜장이나 마라도 톳짜장은 나름대로 무슨 모양과 맛인지 궁금한 편이다.
그리 큰 규모가 아님에도 짜장면 외에 화교나 차이나타운, 분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 등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큐레이터의 경우에도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는 일 없이 관람자들의 물음에 자세히 답해주고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외국에 비하면 아직까지 초라한 모습의 차이나타운에서 하나의 명소를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세운 박물관 다운 모습이라, 박물관을 나오면 보이는 (부실 공사와 여타 건설 비리 혐의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는) 월미은하레일과 대조를 이루는 것 같기도 하다.
위에 쓴 것처럼 두 번의 관람 후에 식욕이 땡겨서 차이나타운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게속'.
Posted by 머나먼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