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밥 만큼은 아니지만 고기를 너무도 좋아하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 등 육체적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채식주의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족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자연적으로 몸이 예전같지 않게 되면서 몸 관리를 위한 식이 요법의 일환으로 야채를 많이 먹는 것을 보면, 고기를 끊지는 못해도 야채 등 식물성 음식 섭취의 비중을 늘려야 할 때가 오기는 할 것 같다.
그런 문제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채식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호기심이 있기는 해서 몇 년 전 아차산역 근처에 있는 모 채식 뷔페도 한 번 갔다왔었다. 하지만 거기는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어느 신흥종교의 홍보가 너무 노골적이라서-그 종교에서 내보내는 방송만이 텔레비전을 통해 줄창 나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무교인인 내게는 거부감만 만땅으로 채워진 덕에 다시 가지도 않고 포스팅도 올리지 않았다.
물론 6월 초순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던 이 '진리루' 라는 중국집도 어느 종교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위의 뷔페와 달리 그것을 강요받고 있는 거다!강요받을 일이 없었던 일반 중국집 분위기 그대로여서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회기역 2번 출구로 나가서 외환은행만 찾으면 그 뒷편이라고 했기 때문에, 길찾기는 매우 간단했다. 가게는 저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약간은 좁아보이는 계단을 올라가면 이렇게 열어둔 문과 철가방이 보이는데, 다른 중국집과 달리 '버섯' 이라는 단어가 확연히 눈에 띈다. 그리 크지는 않았던 가게 내부의 식사 공간은 온돌식 위주로 되어 있지만, 서양식 테이블도 4인석 1조로 조촐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거기서 주로 먹었다. 물론 양반다리로 앉아서 먹는게 편하지만, 고질적인 발냄새로 인한 본의 아닌 화생방 공격의 우려가 있어서 가능하면 피했다.
코팅된 메뉴판 겉표지. 뉴 스타트(NEW START)라는 표어가 눈에 띄는데, 이걸 보고 이 중국집이 어느 종교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이들이 있을 것 같다. 삼육대학교와 삼육식품으로도 유명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상징하는 표어로 내세우는 것이 저 뉴 스타트인데, 그렇다고 손님이 저 종교 신자인지 확인하거나 포교 활동을 하는 등 내가 질색하는 행위는 일체 없었다.
메뉴판. 겉보기에는 일반 중국집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메뉴 중 버섯을 강조한 것들이 꽤 많이 있고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요리의 재료가 쇠고기 아니면 닭고기로 바뀌어 있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재림교회 교인들의 식사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식사법인 코셔(Kosher)와 비슷해서 돼지고기를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독실한 교인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육류와 어류, 유제품, 난류, 벌꿀까지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비건(Vegan) 스타일 채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외에도 면을 밀가루가 아닌 쌀가루로 만드는 메뉴들도 따로 표기하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면은 밀가루면을 더 선호하고 또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일반적인 '버섯' 면류 두 종류와 밥류 한 종류를 차례로 먹어보기로 했다.
우선 먹어본 것은 버섯짜장(4500\). 고기 대신 버섯을 넣고 만든 짜장면인데, 다만 오이채가 나오면 빼달라고 했기 때문에 저렇게 한켠에 버림받은(?) 오이채를 따로 빼놨다.
겉보기에는 일반 짜장면과 다를 바 없게 생겼고,
비벼봐도 그렇다. 맛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고기 대신 들어간 버섯이 꽤 쫄깃쫄깃한 식감이었고 그 덕분인지 느끼하지 않아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결과는 단무지와 양파, 춘장 빼고는 완식. 덕분에 다음에 먹을 버섯짬뽕(5000\)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아흐레 뒤에 가서 시킨 버섯짬뽕. 진한 춘장 소스로 가려져 외관상 차이점이 없었던 버섯짜장과 달리, 이건 나온 모습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일부러 뒤섞어본 모습. 이것도 고기 대신 버섯을 넣은 것은 비슷했지만, 들어간 버섯의 종류가 더 다채로와서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했다. 물론 짬뽕이라는 메뉴의 특성상 뜨겁고 매운맛은 여전해서 땀을 엄청나게 흘려가며 먹어야 했는데, 나중에는 그걸 아예 즐기기까지 했다.
물론 결과는 깨끗한 완식. 하지만 매운 음식을 이렇게 호탕하게 먹은 댓가는 역시 설사로 돌아왔다. 매운 것에 빌빌대는 내 장을 탓해야 되는 건가.
그리고 그 달 말에 세 번째로 갔을 때는 버섯볶음밥(6500\)을 주문해 먹었다. 여느 중국집처럼 짜장이 딸려나왔는데, 밥과 같이 주지 않고 다른 그릇에 따로 담아주는 세심함이 포인트였다.
이 메뉴도 역시 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 볶은 것인데, 당근의 압뷁이 있기는 했지만 날것이 아닌 볶은 것이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역시 일부러 풀어헤친 모습. 이 메뉴도 버섯짬뽕과 마찬가지로 버섯 인심이 매우 후했다. 다만 달걀이 풀어져 있는 모습에 비건 채식인들은 조금 흠칫할 수도 있을 듯 보인다. 물론 주문 전에 달걀도 빼달라면 빼주니까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이 메뉴도 비록 '불맛' 은 없었지만 느끼하지 않게 적당히 볶아내서 깔끔한 맛을 냈고, 짤방은 못만들었지만 깔끔하게 비워냈다.
그리고 꽤 한참 뒤, 그러니까 이 포스팅을 하기 이틀 전 갔을 때는 버섯우동(5000\)을 시켰다. 이 날은 이미 4인석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온돌식 식탁에서 먹었다.
사실 우동보다는 짬뽕을 먹고 싶기는 했지만, 전날 저녁을 마성의 매운맛으로 유명한 불닭볶음면으로 때웠다가 포풍설사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또 매운 국물을 들이부었다가는 집에도 못갈 것 같아서 안먹어본 것도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짬뽕과 국물만 다를 뿐, 다양한 버섯과 야채가 듬뿍 든 것은 똑같았다. 국물은 약간 마늘 맛이 많이 나기는 했지만 개운한 편이었고, 짬뽕과 달리 달걀을 풀어서 내오기 때문에 맛이 한결 부드러웠다.
한편 이렇게 폰카질을 하고 있자니 주인장 분이 꽤 관심을 보였는데, 식사 때가 아닌 한가한 때 주로 찾아갔기 때문에 주문이 없을 때는 주방 옆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이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꽤 이채로웠다. 온라인 상의 평판에 민감한 건지 혹은 각별한 관심이 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형태의 중국집이 한국 전역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흔치 않기 때문에 가끔 올라오는 평들도 관심있게 주시하는 듯 보였다.
물론 고기를 그것보다 비싼 버섯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다른 중국집의 같은 메뉴들보다 가격대가 좀 셀 수밖에 없었지만, 고기 없이도 충분히 중국집 음식의 맛을 낼 수 있고 그걸 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딱히 채식인이 아니라도 가볼 만한 곳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