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주로 교향곡에 집중되어 있고, 종교음악의 경우 번호 붙인 미사 세 곡과 테 데움, 시편 150 등의 걸작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덜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 문제는 브루크너가 살아있던 시절보다 그 후에 발생했다고 보는데, 바그너 만큼은 아니지만 브루크너 교향곡을 상당히 좋아했던 히틀러의 취향에 발맞추기 위해 나치 선전선동의 달인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은근히 브루크너의 종교음악에 대한 공헌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도록 한 것에 기인한다. 또 나치라는 집단 자체가 히틀러 숭배를 먹고 자라는 곳이었던 만큼, 히틀러 외의 '신' 을 섬기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에 대한 반감도 있었겠고.
이런 편견은 독일의 패전 후에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빈번히 연주되고 재평가를 내리던 유럽과 달리 아시아 쪽에서는 종교음악도 교향곡도 보급이 상당히 더뎠다. 한국에서도 브루크너 작품은 주로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고, 종교음악의 경우 백남용 신부가 가톨릭 합창단을 이끌고 브루크너의 모테트 전곡을 연주했다고 들었지만 미사나 레퀴엠 같은 대규모 종교음악이 연주되었다는 소식은 이상하게 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모테트와 미사 1~3번, 테 데움, 시편 150은 오이겐 요훔의 지휘로 도이체 그라모폰에 남긴 것들을 구입했기 때문에 음반으로는 친숙한 편이지만, 요훔도 초기 교향곡 00번과 0번을 녹음하지 않은 것처럼 미사 1번 이전의 초기 종교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이들 작품을 듣기 위해 다른 음반들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 목록으로 유명한 미국인 존 버키(John Berky)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특이한 음반 두 장을 발견해 주문했는데, 이번 뻘글의 주된 소재이기도 하다.
1984년 7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데이비드 H. 알데보그(David H. Aldeborgh)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시온 산에 있는 도미티오 수도원(Dormitio-Abtei)에서 LP 두 장 분량의 녹음을 진행했다. 다만 이 녹음으로 공식 출반된 음반은 한 장 분량 정도였다. 녹음에 참가한 합창단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몬테베르디 합창단(Monteverdi-Chor Hamburg)이었고, 관현악단은 이스라엘 실내 관현악단(Israel Chamber Orchestra)이었다. 지휘는 합창단 지휘자인 유르겐 유르겐스(Jürgen Jürgens)가 맡았다.
역사적으로는 쇼아(홀로코스트)의 가해국이었던 독일의 합창단과, 주요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이 세운 나라인 이스라엘의 관현악단이 협연했다는 모양새에 거의 모든 기독교 종파가 성지로 여기는 곳인 시온 산의 수도원에서 녹음했다는 흥미로운 물건이었는데, 내게는 그보다 브루크너가 린츠 근교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의 음악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의 종교음악을 모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브루크너는 집안의 장남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 운명이었는데, 그 때문에 초기의 희망 직업도 교사와 교회 오르가니스트라는 그다지 야망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크트 플로리안에서 희망대로 두 분야의 교육을 받은 뒤 자그마한 시골 마을들인 빈트하크와 크론슈토르프를 거쳐 1845년에 다시 모교인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 부속학교의 음악 교사로 부임했다.
이 시기에 브루크너는 세속곡이든 종교곡이든 상당히 다양한 성악 작품을 남겼는데, 알데보그가 제작한 녹음은 이 시기의 종교곡 대부분을 커버하고 있다. LP로 공식 출반된 수록곡을 보면 다음과 같다;
독창, 합창, 관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마니피카트(Magnificat) B플랫장조 WAB 24
독창과 오르간을 위한 크리스마스 성가 '사랑스러운 어린 예수(O du liebes Jesu Kind)' WAB 145
독창과 오르간을 위한 수난 성가 '저 마지막 밤들에(In jener letzten der Nächte)' WAB 17
독창, 합창, 관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장엄 미사(Missa solemnis) B플랫단조 WAB 29
ⓟ 1984 Jerusalem Records / 2011 Bruckner Archive
마니피카트와 장엄 미사의 독창은 칠라 그로스마이어(Cilla Grossmeyer, 소프라노), 미라 자카이(Mira Zakai, 알토), 빌프리트 요헨스(Wilfried Jochens, 테너), 아센 바실레프(Assen Vassilev, 베이스)가 맡았고, 오르간은 베르너 카우프만(Werner Kaufman)이 연주했다. 두 편의 성가는 요헨스가 불렀다.
작사자 불명인 두 곡의 짤막한 성가는 작곡 연도가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1845~46년(크리스마스 성가)과 1848년(수난 성가)으로 추정된다. 크리스마스 성가의 경우 샨도스 음반처럼 반복 가창하고 있고, 수난 성가는 독창+오르간판과 4성부 혼성 아 카펠라 합창판 중 전자를 택해 녹음했다.
장크트 플로리안의 성가대 지휘자였던 이그나츠 트라우밀러에게 헌정된 마니피카트는 1852년 작품인데, 연주 시간이 4분 좀 넘는 소규모 종교곡이지만 편성이 꽤 크고 축전적인 성격인 것은 바흐의 작품과 비슷하다. 네 명의 독창자와 4성부 혼성 합창, 관현악과 오르간이 동원되는데, 관현악은 특이하게 비올라를 뺀 4부 현악 합주(바이올린 두 파트와 첼로, 콘트라베이스)와 트럼펫 두 대, 팀파니로 간소하게 구성되어 있다.
성가 두 곡과 마니피카트의 경우 세계 최초 녹음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마니피카트는 그 시점까지 공식 출판본이 없었던 관계로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의 협력을 받아 자필보 원고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해 국제 브루크너 협회 소속 음악학자들인 윌리엄 캐러건과 레오폴트 노바크 등의 감수를 거친 임시 정서판을 사용했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마니피카트가 폴 호크쇼의 편집과 국제 브루크너 협회의 승인을 거쳐 공식 출판된 것은 1997년에 가서였다.)
1854년에 완성되고 초연된 장엄 미사는 5년 전 완성한 레퀴엠에 이어 브루크너가 작곡한 두 번째 대규모 종교음악인데, 선종한 미하엘 아르네트의 후임으로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장으로 부임한 프리드리히 테오필루스 마이어의 취임 미사를 위해 쓰여졌다. 독창자 네 명과 4성 합창, 관현악과 오르간이 필요한 것은 마니피카트와 비슷하지만, 이 곡에서는 비올라가 더해진 통상 5부 현악 합주에 관악기도 오보에 둘, 트럼펫 둘, 트롬본 셋으로 보강되어 있다. 물론 팀파니도 들어가 있고.
이 곡도 이후 작곡된 미사 1~2번과 마찬가지로 대영광송과 신앙고백의 첫 문단이 생략되어 있어서, 합창단/성가대의 테너 파트장 또는 테너 독창자가 그레고리오 성가의 해당 문단에서 따온 가락을 선창하고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 녹음에서도 대영광송 시작 때는 그 관습을 따르고 있지만, 신앙고백의 경우 그냥 선창 없이 곧바로 시작하고 있다.
후기 미사곡들에서 보여준 독자적인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작품이지만, 축전적 성격을 고려한 대작으로 작곡한 만큼 브루크너 자신은 꽤 공을 들인 곡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곡이 초연된 미사에 참석한 빈 궁정악단의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 종교음악 작곡가였던 이그나츠 아스마이어는 이 곡을 호평하면서 당시 빈에서 최고의 음악이론 교육자 중 한 사람이었던 지몬 제히터에게 개인 교습을 신청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알데보그가 직접 집필한 음반 속지에는 이 곡의 초연 때 벌어진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같이 싣고 있는데, 브루크너는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의외로 이 곡에 자신감이 있어서 칭찬을 받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사 자체가 새 수도원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것이었고, 브루크너는 다른 높으신 분들에 밀려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상심한 브루크너는 장크트 플로리안 근처의 가스트하우스(여인숙) '슈페를' 에서 혼자 코스요리를 시켜 처묵처묵하면서 "미사가 벌어준 거야!(Mess' verdient's!)" 라고 씁쓸하게 뇌까렸다고 한다.
두 번째 CD의 경우 이 때 녹음되기는 했지만, 무슨 사정인지 음반 발매까지는 되지 못해 미공개로 남은 여타 장크트 플로리안 시기의 종교음악들에 보너스 트랙 하나를 더한 것이다. 이건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