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키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음반 소개글에 따르면, 알데보그는 1984년 7월 세션 이후 추가로 한 차례 더 스튜디오 녹음을 진행해 2집과 3집 음반을 계속 내놓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문제인지 결국 저 세션 이후 추가 녹음 작업은 없었고, 음반도 발매되지 않았다. 버키는 지난 해(2011년) LP를 스캔해 첫 음반을 복각하면서 알데보그에게 미발표 상태인 나머지 음원들의 사용권을 얻었고, 그게 이번 음반에 실린 곡들이다.
무반주 혼성 4부 합창을 위한 장송가(Totenlied) WAB 47
세 대의 트롬본을 위한 에쿠알레(Aequale) 제 1번 WAB 114
남성 4부 합창과 세 대의 트롬본을 위한 '아르네트의 묘지 앞에서(Vor Arneths Grab)' WAB 53
세 대의 트롬본을 위한 에쿠알레 제 2번 WAB 149
혼성 5부 합창, 세 대의 트롬본과 통주 저음을 위한 '저를 구하소서(Libera me)' WAB 22
독창, 합창, 관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레퀴엠(Requiem) WAB 39
레퀴엠의 독창자는 음반에 기재되지 않았지만, 같은 세션에서 녹음된 마니피카트와 장엄 미사에서 참가한 네 성악가가 그대로 들어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앨범 커버에 노란 글씨로 뭔가 보너스로 더 수록되었다고도 인쇄되어 있다.
브루크너는 1852년에 에퍼딩 근교의 장크트 마리엔이라는 마을 학교 교장이었던 친구 요제프 자이버를에게 마을 공동 묘지에서 입관식 때 쓸 장송가를 부탁받았는데, 작자 불명의 가사에 두 종류의 음악을 붙여서 완성했다. 이 음반에서는 그 중 한 곡을 골랐는데, 겨우 열 마디 밖에 안되는 매우 짧은 곡이고 죽은 자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위로하는 듯한 부드러운 가락으로 되어 있다.
2년 뒤 브루크너는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장 미하엘 아르네트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아르네트는 브루크너가 어린 나이에 부친상을 당하고 장남으로 가족의 생계를 떠안아야 하던 시기에 기숙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해 주었고, 브루크너가 사적인 일로 자신을 부려먹는데 재미들린 교장 밑에서 고생하던 빈트하크에서 장학사의 권리인 '직무 태만에 대한 징계' 를 가장해 더 근무 조건이 좋은 크론슈토르프로 전근 명령을 내려주는 등 힘들 때마다 큰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브루크너는 그 즉시 장례식에 쓸 두 곡을 작곡했는데, 모두 소박하기는 하지만 브루크너가 자신의 은인의 죽음을 접한 뒤 진지한 자세로 쓴 곡이라 주목할 만하다. 장송곡 '아르네트의 묘지 앞에서' 는 장크트 플로리안의 신부 에른스트 마리넬리가 쓴 추도시에 곡을 붙였는데, 처음에는 무거운 단조로 시작하지만 이후 조바꿈을 거쳐 죽은 자가 천국으로 인도되기를 바라는 듯이 평화로운 장조로 끝맺는다.
이 곡만은 유독 테너 두 파트와 베이스 두 파트로 구성되는 남성 합창을 택했는데, 이 당시 브루크너는 소규모 남성 합창단을 조직해 자작곡을 포함한 세속 합창곡을 부르는 등의 활동으로 가외 벌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종교음악 금관악기로서 단골로 쓰이는 트롬본 세 대를 기악 반주로 붙였는데, 이 편성은 '저를 구하소서' 에서도 응용되었다.
포레와 베르디가 레퀴엠에서 추가해 유명한 '저를 구하소서' 는 다소 세속적인 '아르네트의 묘지 앞에서' 보다는 좀 더 엄격하고 장중한 종교음악 본연의 자세에 충실한데, 연주 시간만 따져 보면 오히려 마니피카트보다도 더 대규모의 곡인 셈이다. 브루크너는 이 곡에서 특이하게 소프라노만 두 파트로 쪼갠 5성부 합창을 사용했는데, 여기에 트롬본 세 대와 통주 저음을 붙여 중후함을 더했다. 이 곡에서 통주 저음은 오르간과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구성해 녹음했다.
'에쿠알레' 는 같은(equal) 악기들로 구성한 소그룹이 연주하는 장례용 기악 음악이라고 하는데, 베토벤도 네 대의 트롬본을 위한 에쿠알레 세 곡을 작곡한 바 있다. 브루크너의 에쿠알레 두 곡도 1847년에 트롬본 세 대를 위해 작곡되었는데, 두 번째 에쿠알레의 경우 베이스트롬본 파트의 악보가 소실된 관계로 국제 브루크너 협회 공인 악보에는 편집자 한스 바우어른파인트가 베이스트롬본 파트를 작곡해 보완했다.
다만 이 녹음이 제작되던 시기에는 아직 공인 악보가 출판되지 않고 있었고, 그 때문에 윌리엄 캐러건이 작곡한 베이스트롬본 파트를 대신 차용했다. 물론 이 소박한 두 곡만으로는 유추하기 힘들겠지만, 브루크너는 이후 교향곡들에서 금관의 중요성을 한층 끌어올려 자신의 독특한 '파이프오르간 풍의 관현악 울림' 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덕에 금관 주자들은 브루크너 곡을 할 때마다 욕을 한다고 카더라브루크너는 초짜 시절에 아르네트 외에도 여러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중에는 장크트 플로리안의 서기로 재직하던 프란츠 자일러도 있었다. 아마추어 음악인이기도 했던 자일러는 브루크너가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고, 심지어 사비를 털어 브루크너를 빈 음악원에 입학시켜 주려고까지 한 대인배였다.
비록 이 계획은 자일러의 갑작스러운 병환과 죽음으로 무산되었지만, 대신 자일러는 브루크너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최신형 뵈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를 유산으로 넘겨주었다. 브루크너는 이 피아노를 죽을 때까지 소중하게 간수하며 작곡에 사용했고, 자일러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가 죽은 지 반 년 뒤인 1849년 3월에 레퀴엠을 완성했다.
사실 그 때까지 브루크너는 빈트하크에서 쓴 것 하나와 크론슈토르프 시절 쓴 것 두 곡까지 세 곡의 미사곡을 작곡한 상태였다. 하지만 모두 무반주 합창 혹은 소규모 기악 반주를 동반한 매우 아담한 곡들이었고, 관현악을 구사한 작품은 세속곡이든 종교곡이든 한 곡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세 대의 트롬본과 호른 한 대-베네딕투스에서만 사용됨-, 현악 합주와 오르간을 동반한 이 곡의 편성은 브루크너의 종교음악 작품에서 꽤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셈이다.
이 곡은 자일러의 사후 1주기 기념 위령 미사에서 초연되었고, 지금도 비록 후기 미사곡들의 지명도에는 많이 밀리지만 브루크너의 초기 종교음악 대작으로 간주되어 이런저런 녹음과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브루크너는 이전에도 남성 4부 합창과 오르간을 위한 또 다른 레퀴엠을 작곡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곡은 초연도 되지 않은 채 브루크너가 말년에 쓸모 없다고 여겨 소각했고 다른 레퀴엠은 1875년에 구상되다가 중단된 단편만 있어서 유일한 레퀴엠이 되었다.
보너스 트랙은 교향곡 4번의 4악장인데, 흔히 연주되는 1881년 하스판이나 1886년 노바크판이 아닌 그보다 더 이전인 1878년에 해당 악장만을 개정한 소위 '민중의 축제(Volksfest)' 라는 제목이 들어간 판본을 사용한 녹음이다. 1986년 6~7월에 네덜란드 출신의 위베르 수당(Hubert Soudant)이 멜버른 교향악단을 지휘해 모나쉬 대학의 로버트 블랙우드홀에서 녹음했는데, 원래는 흔히 통용되는 1886년 노바크판을 사용한 전곡 녹음만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데보그는 자신이 직접 스폰서를 맡아 1981년에 노바크의 편집으로 간행된 이 '민중의 축제' 4악장을 추가로 녹음했다. 이게 이 1878년판 4악장의 세계 최초 녹음이었는데, 다만 음반화가 이루어진 것은 1886년 노바크판 전곡 녹음 뿐이었다. 이 때문에 이 녹음도 유르겐스가 남긴 다른 녹음들처럼 미공개 쩌리 신세였는데, 버키가 마찬가지로 알데보그에게 음원 사용을 허락받아 세계 최초로 음반화했다.
수당은 2004년에 도쿄 교향악단 음악 감독으로 부임해 브루크너빠가 많은 일본에 '브루크너 복음' 을 전파하고 있는 지휘자인데, 2004년 6월과 2007년 11월에는 KBS 교향악단을 지휘해 각각 9번과 8번 교향곡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이 녹음은 속지에 따르면 특이하게 PCM(디지털) 인코딩 기능이 있는 비디오 테이프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비디오에서 추출한 음원 치고는 상태가 매우 양호해서 다른 수록곡들의 음질과 확실히 비교된다.
음질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유르겐스의 종교음악 녹음들은 분명히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녹음들이다. 하지만 LP에서 스캔해 제작한 CD로는 그걸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첫 번째로 나온 CD는 괜찮은 편이지만, 두 번째 CD의 경우 미공개 녹음이라고 했음에도 LP에서 뜬 티가 너무 심하다.
두 CD 모두 LP 특유의 그루빙 노이즈가 느껴지고 음역대도 묘하게 좁아져서 듣기가 좀 답답한데, 알데보그가 원본 녹음 테이프를 갖고 있었다면 그걸로 복각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테이프가 있어도 저작권 등의 문제로 못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이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버키는 이외에도 여러 진귀한 녹음들을 자신의 브루크너 교향곡 디스코그래피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데, 만약 다음에 주문할 기회가 또 있으면 벨기에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라는 세바스티앙 르토카르가 복원한 4악장을 포함한 9번 교향곡 CD를 지르려고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르토카르 복원판 보다는 2010년에 최신 개정된 윌리엄 캐러건 복원판을 사용한 게르트 샬러 지휘의 필하르모니 페스티바 연주가 담긴 독일 음반사 프로필의 CD가 더 탐나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는 밀린 상태인데, 문제는 저 CD가 브루크너 교향곡 9번만 담고 있는게 아니라 4번과 7번까지 담은 세 장짜리 세트라는 거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9번만 필요한데 저 세트를 사야 한다는 현실이 도무지 납득이 안가고, 다운로드 음원으로 주문하려고 해도 가격이 만만찮아서 우선 순위를 바꿀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어쨌든 이 첫 주문에서는 주문하지도 않은 CD 하나가 추가로 딸려왔는데, 그걸로 이 시리즈를 마칠까 한다. 역시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