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일의 협궤철도 노선이었던 수인선이 폐선될 당시 나는 아직 10대였다. 그 만큼 타볼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결국 마음만 있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제 영영 못타볼 환상의 철도가 되고 말았다.
다만 폐선 이후 해당 노선을 표준궤 철도로 바꾸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원체 철도 관련 예산에 쪼잔한 국회의 예산안 심의와 IMF 덕에 공사는 수도 없이 중단되고 지연되었고 지금도 상태는 나아졌다고 할지언정 여전하다. 그나마 인천 쪽에서는 아시안 게임 유치도 있고 해서인지 갑자기 공사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수원 쪽 잔여 구간은 아직 제대로 공사가 되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그저 환상으로만 머물고 있던 그 수인선이 비록 오이도~송도 일부 구간 만이기는 하지만 올해 6월 30일에 드디어 개통되었다. 제한적 철덕으로서 대단히 기쁜 소식이었고, 개통 당일 오후에 4호선을 타고 오이도역으로 향했다.
오이도역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인선 전동차. 원래 승강장은 모두 4호선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수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 방향 왼쪽의 승강장이 수인선 전용으로, 반대쪽은 4호선 전용으로 운용되는 것으로 보였다.
승강장 역명판도 예전의 4호선 역명판이 아닌 수인선 역명판으로 새롭게 교체되었다. 다만 아직 부분 개통이라, 이전 역인 정왕역으로 가려면 어쨌든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차내 노선도. 개통한 구간만 표시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아담한 편이다. 하지만 이제 인천 구간만이라도 공사에 속도가 붙었으니 송도 이서 구간은 그리 머지 않은 시기에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월곶역에서. 특이하게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마치 차양막처럼 된 지붕과 벽을 얹은 듯한 디자인이었는데, 여름에는 비교적 시원하겠지만 겨울에는 어떨 지 모르겠다.
새롭게 건설된 소래철교를 건너면서. 강을 건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갯벌이 깔려 있어서 여기가 강이 아닌 엄연한 바다임을 실감케 했다. 반대편에서는 옛 수인선의 협궤용 철교를 인도교로 개축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종착역인 송도역. 여타 새 수인선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도 원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데, 다만 옮긴 위치가 좀 동떨어진 곳이라 이용에 불편이 예상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역 구내는 아직 단촐한 모습이지만, 이렇게 인천 방향 동쪽에 꽤 커다란 공터를 만들어 남겨놓고 있었다. 아마 인천역까지 연장되면 이 공터에 주박용 선로나 여타 철도 시설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일부 개통이기는 하지만, 시흥에서 인천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전철에서 버스 등 다른 교통 수단으로 갈아타지 않고도 바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객은 아마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건 노선 이름대로 수원~인천 전구간이 뚫려야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그리고 엿새 뒤에는 개통은 했지만 지역 사회에서 말이 (안좋은 쪽으로) 많다는 의정부 경전철도 타봤다. 이미 부산에서는 부산도시철도 4호선과 부산-김해 경전철이라는 국내 최초 상용 경전철 노선이 두 개나 완공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거리의 문제가 있어서 결국 처음으로 타본 경전철은 이 노선이 되었다.
1호선과 환승은 그다지 번거롭지는 않은 편이었다. 개찰구를 나와 쭉 걷다 보면 바로 이렇게 경전철용 개찰구가 나오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요금안내 공고문. 공항철도나 9호선, 신분당선 같은 소위 '사철' 은 그나마 다른 노선과 개찰구는 별도로 사용한다고 해도 수도권 통합 요금제가 적용되어 환승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거 없었다. 게다가 성인 기본 요금이 교통카드든 1회용 승차권이든 얄짤없이 1300원이라는 모친부재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었고, 노인과 장애인에게도 무임 혜택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여기 주민도 아니고, 시험 삼아 타러 온 뜨내기였던 만큼 조금 켕기는 구석은 있어도 그냥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갔다. 다만 이걸 계속 이용해야 하는, 혹은 이용할 의정부 시민들은 이 높은 가격과 환승할인 없는 핸디캡을 감수해야 할 것이 뻔하겠지만.
반대편 승강장에 도착한 열차의 모습. 부산도시철도 4호선과 마찬가지로 철제 바퀴가 아닌 고무타이어 바퀴가 달린 차량이었다.
승강장의 모습. 한산한 것을 보니 어중간한 시간대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18시 27분의 모습이었다. 딱 러시 아워인 퇴근 시간대라 1호선은 사람이 꽤 많았지만, 경전철 승강장은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여기서 부터 이미 이 노선이 걷게 될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일단 발곡역으로 가봤다. 전 차량이 무인 운전이라 운전석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맨앞과 맨뒤의 운행 상황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차량 내부 모습. 의자가 양쪽에 다 붙어 있지 않고 지그재그 식으로 설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다만 차량 맨앞과 맨뒷쪽에는 양편에 객석이 다 들어가 있고, 모두 경로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탑석역에 도착한 뒤. 승강장 끝에 아무 것도 없던 발곡역과 달리, 여기는 차량기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저렇게 인입선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왼편에 보면 올라오고 있는 지 내려가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차량의 모습도 보인다.
이후 다시 돌아오는 와중에 경전철의정부역에서 열차가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관제소에서는 운행 계통 고장이라고 했는데, 며칠 전에도 열차가 짧게는 20분, 길게는 한 시간이나 운행이 중단됐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버스 등을 갈아탈까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약 5분 뒤 다시 운행이 재개되었다.
결국 예상대로 의정부 경전철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는 지금까지도 거의 부정적인 논조의 것들 뿐이다. 시민의 발이라는 역할은 계속 하고 있을 지는 몰라도, 그것이 출퇴근 같은 기본적인 목적이 아닌 여가선용이라는 역할로 가끔씩 타보는 놀이기구 역할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수도권 통합 요금제에서 열외되어 있고 기본 요금까지 비싼 상황은 마치 코레일에 인수되기 전에 '공황철도', '공기철도' 등의 굴욕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던 공항철도와 비슷한 모습인데, 결국 공항철도는 사실상 공기업이 운영하는 민영화 사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의정부 경전철은 공항 같은 국가 중요 시설을 이어주는 기능도 없고, 또 운영도 인천교통공사에 위탁하는 식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적자가 이어질 경우 인천에까지 재정 부담이나 법정 소송까지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골치아픈 애물단지로 전락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제 내일이면 또 오랫동안 공사 지연에 시달려온 다른 노선인 분당선의 왕십리~선릉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다. 물론 그렇다고 쳐도 아직 수원까지 이어지려면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1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완전 개통도 아니고, 또 선릉~수서 구간에서 강남구 일부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로 인해 쓸데없는 추가역이 더해졌기 때문에, 원래 이 노선의 최대 수혜자로 여겨졌던 성남 시민들이 이 추가 개통 소식을 얼마나 반길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더 기대되는 소식은 이번 달 말에 있을 7호선의 부천/인천 구간 연장 소식인데, 과연 이 연장의 목적인 경인선 구간의 혼잡 완화에 얼마나 도움을 줄 지가 궁금하다. 이 연장 구간도 예산 문제로 계속 공사가 지지부진하던 터라, 정말 올해에 세계가 멸망하는게 아닐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