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과 학원이 밀집해 있는 노량진에서 싼 값에 끼니를 때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주로 몇 개월 단위 식권으로 영업하고 있는 소위 '고시 식당' 에서 한 끼만 먹는다고 해도 4000원 정도 수준이고, 밖에서 서서 먹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면 그 이하의 가격으로도 충분히 이것저것 사먹을 수 있다.
물론 노점에서 서서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내에서 앉아서 먹는게 편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노량진의 수많은 볶음밥 가게들 중 노점이 아닌 곳이 한 군데 있었고, 몇 차례 드나들다 보니 단골 아닌 단골이 되었다.
맥도날드 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쭉 걷다 보면, 왼편에 이렇게 손글씨로 쓴 것 같은 간판의 식당이 하나 나온다. 노량진 일대의 노점상 볶음밥이 2000~2500원 정도인데, 여기는 기본 가격이 2000원이고 피크 타임이 아닐 때 가면 200원 깎아준다는 것을 보면 최저가라고 내세우는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이 집에서 원래부터 볶음밥을 한 것은 아니었고, 뷔페식 고시식당 형태였다가 볶음밥 전문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게 안은 그다지 넓지는 않았고, 식사 공간은 모두 벽을 마주보게 붙여놓은 좁은 테이블이었다. 어차피 이것저것 다채롭게 차려내는 집은 아니고, 대부분 빨리 먹고 나가는 손님들이 많으니 가능한 것 같다. 예전에는 저렇게 벽 한켠에 가격과 메뉴를 인쇄한 현수막을 붙여놓고 있었지만, 지금은 떼어놓은 상태다.
젊은 남자 주인 한 사람만이 꾸려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먹고 난 뒤 그릇이나 식기류는 직접 갖다놓아야 한다. 물론 물도 셀프. 소스병에는 케첩과 돈까스 소스가, 반찬통에는 단무지가 들어 있어서 취향에 따라 뿌려 먹거나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만 나는 볶음밥이나 덮밥 종류는 그 자체로 반찬이나 소스가 필요없어서 손대지 않고 있다.
맨 처음 시켜먹은 것은 간장볶음밥 곱배기. 주로 김치볶음밥이 대세인 노량진에서 간장 소스에 볶는 볶음밥은 꽤 보기드문 메뉴인데, 그 희소성 때문에 주문했다.
볶음밥 구성은 보는 바와 같이 단촐했지만, 돼지고기를 넣어준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노점 쪽은 아무래도 입지와 회전률 때문인지 미리 볶은 밥을 데워서 주기 때문에 다소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주문을 받고 그 자리에서 볶아주기 때문에 밥이 지나치게 꼬들꼬들해지거나 하는 문제가 없었다.
두 번째 갔을 때는 김치볶음밥 곱배기를 청했다. 다른 곳과 달리 색깔이 좀 밋밋해 보이는데, 원래는 칠리 소스를 더해 볶지만 이 날 저녁에 소스가 다 떨어져서 그냥 김치로만 볶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치로만 볶았다고 해도 감칠맛 돋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크게 상관은 없었다.
간장볶음밥에만 들어가는 줄 알았던 돼지고기는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빨리 조리하기 위해 아주 얇게 썬 고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노점에서는 토핑 등으로 추가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도 하나의 장점으로 보였다.
이렇게 찾아갈 때마다 간장볶음밥과 김치볶음밥 두 가지 메뉴를 번갈아가며 먹고 있었는데, 9월 초순 들어 가게 인테리어와 메뉴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9월 초순에 갔을 때. 같은 외벽이지만 현수막이 없어지고 새로운 메뉴가 들어가 있었다. 스팸(=런천미트)을 곁들인 김치제육덮밥이었는데, 이건 재료 때문인지 가격이 다른 볶음밥보다 500원 더 비싼 '고급' 메뉴였다.
다른 볶음밥은 처음 시켰을 때도 그 이후에도 무조건 곱배기였지만, 이 덮밥의 경우 혹시 너무 맵거나 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에 일단 보통을 시켰다. 보이는 바와 같이 밥에 김치제육을 얹고 잘게 썬 김을 뿌린 다음 달걀물 입혀 부친 런천미트 세 조각을 더한 메뉴였다.
풀어헤친 모습. 다만 이 때는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제육이 좀 많이 짜다고 느껴졌다. 거기에 원래 짭짤한 조미김과 런천미트까지 더해지니 폭풍나트륨 섭취가 우려될 정도였는데, 이후 몇 차례 더 가서 먹어 보니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맛에 균형을 맞춰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진은 못찍었지만, 대략 저 때부터 볶음밥에 얹어주는 달걀도 프라이가 아니라 미리 섞은 달걀물을 풀어서 부치는 달걀부침으로 바뀐 상태다. 다만 세부적인 것만 바뀌었을 뿐 메뉴 구성이나 맛에는 별 차이가 없어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모양인 것 같다.
이런저런 가게가 생기고 또 단시간에 사라지는 등 변동이 심한 곳이 노량진인데, 특히 밥 이외의 것으로 승부를 보려던 가게들이 덮밥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꾸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다. 똑같이 저렴하다고는 해도 역시 밥을 먹어야 뭔가 먹은 것 같다고 느끼는 한국인 종특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나도 노량진에서 뭔가 먹는다고 하면 거의 밥이나 밥이 곁들여지는 메뉴라서 이 편견(?)에서 열외는 아닌 것 같다.
더위가 한창 절정에 달했던 8월 초에는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저 남쪽 평택으로 내려가서 처묵처묵 행보를 이어갔는데, 한 곳은 이미 예전에 가본 적 있었고 다른 곳은 처음 가본 곳이었다. 어쨌든 다음에 차례대로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