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교향곡들은 그 숫자의 어마어마함에 듣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이들이 종종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소위 '명곡' 에 드는 곡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한 권위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한국의 관현악단들에서는 이들의 교향곡을 그리 자주 연주하지 않는 모습인데, 아무래도 좀 '뽀대나고', 또 연주하면 '뭔가 있어보이는' 후기 낭만 위주의 곡목을 선호하는 인식 때문으로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도 공연을 통해 들어본 모차르트 교향곡은 기껏해야 40번과 41번 정도고, 31번 이후의 나머지 중요한 교향곡 레퍼토리들은 지금도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귀차니즘이나 정보력 부족 탓도 있겠는데, 실제로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곡의 실연 청취 기록도 2012년에 와서야 달성했으니 게으름 탓이 크지만.
그런데 2006년에 어느 생소한 이름의 실내 관현악단이 서곡이나 협주곡 없이 모차르트 교향곡들만 가지고 연주회를 가졌다는 기록이 있었고, 그 연주회 실황이 사가반 CD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중극장 규모의 IBK챔버홀이 생겨서 공연 수요가 분산되고 있지만, 예전에 실내 관현악단이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연주를 할 때는 어지간한 이름값을 지닌 악단이나 창단 몇 주년 기념 공연 같은 중요한 기회가 아니면 리사이틀홀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06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 5월 18일에 열린 서울 튜티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리사이틀홀에서 열렸다.
저 실내 관현악단은 검색해 보니 1988년에 피아니스트 이옥희가 결성한 서울 튜티 앙상블을 모체로 한 사설 악단이라고 하며, 상임 지휘자 없이 객원 체제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실내악 그룹이 모체라고 하고 있어서, 실내악 그룹에 공연 때마다 비상근 단원들로 인원을 보강해 편성하는 악단으로 여겨진다.
2006년의 저 공연에서는 정치용이 지휘를 맡았는데, 1부에서 31번 '파리' 와 38번 '프라하' 가, 2부에서 41번 '주피터' 가 연주되었다고 한다. 서곡-협주곡-교향곡의 코스 요리 식으로 구성하는 일반적인 관현악단 연주회와는 꽤 다른 모양새였는데, 물론 모차르트 교향곡들이 전반적으로 연주 시간이 짧기 때문에 가능한 세팅이라고 하지만 주요리 세 가지만 가지고 꾸역꾸역 코스를 도는 것 같은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 공연이 있을 적에 나는 군대에 있었고, 이런 공연이 있었다는 것도 전역 후 아르코예술정보관(현 국립예술자료원)에 평생 회원으로 가입한 뒤 이런저런 음반을 빌려 듣다가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런 무모해 보이는 프로그램 구성으로 국내 악단이 연주한 보기 드문 모차르트 교향곡 음반이라는 점은 충분히 흥미를 자극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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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예술자료원에 소장된 실황 CD는 당시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각 부 별로 한 장씩 두 장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전체 수록 시간을 보면 77분 약간 넘기 때문에 충분히 한 장에 담아도 되는 음원이었다. 실황인 만큼 각 교향곡 연주 종료 후의 박수도 담고 있지만, 31번의 경우에는 박수 소리를 자를 수 있을 만큼의 텀이 있었는지 삭제하고 있다.
구로아트밸리에서 개최한 시리즈 공연 때도 느낀 거지만, 정치용은 정규 관현악단 외에 실내 관현악단의 공연에도 상당히 능숙한 지휘자다. 미하엘 길렌의 제자인 탓도 있는지 중용을 지키면서도 이지적인 타입의 음악을 들려주는데, 이 모차르트 교향곡 3연속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이다.
물론 하룻밤 실황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 38번 3악장 시작 부분의 좀 어설픈 움직임이라던가 가끔 거슬리게 튀어나오는 트럼펫과 호른의 삑사리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작은 편성의 악단을 작은 공연장에서 깔끔하게 울려주는 순간은 잘 잡혀 있다. 녹음 상태도 한정 배포된 사가반이지만 상당히 좋은 편이다.
CD 속지에는 단원 명부와 곡 해설, 악단 창설자 이옥희, 지휘자 정치용의 프로필 외에 당시 공연의 비평까지 들어 있는데, 보통 호평한 부분만 발췌해 넣는 것과 달리 당시 공연의 난점까지 그대로 들어간 통짜 비평문을 싣고 있어서 이것도 또 특이했다.
이 CD 외에 또 어느 한국의 실내 관현악단 혹은 관현악단이 모차르트 교향곡을 녹음했는 지 궁금한데, 내가 아는 바로는 금난새 지휘의 유라시안 필이 40번을 녹음한 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후기 3대 교향곡이라는 39번, 그 전의 35번 '하프너' 와 36번 '린츠', 그리고 제목은 없지만 마찬가지로 중요한 33번과 34번도 상당히 중요한 레퍼토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누가 31~41번 연속 공연이라도 돌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뱀다리로, 사실 한국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기록이 있기는 하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였는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대전 소재 관현악단들이 여러 지휘자의 연주로 완주에 성공했다고 한다. 다만 아직까지 단일 악단 혹은 단일 지휘자에 의한 완주 기록은 없는데, 2014년에 강동아트센터에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두 번째 전곡 연주에 도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기가 시기라 나는 못 볼 가능성이 크지만.
이 모차르트 교향곡 CD 외에 또 한 장의 특이한 CD를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는 헌책방 강남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는데, 이건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