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철을 타본 뒤 다시 부산역으로 올 때도 꽤 시간이 걸렸는데, 일단 역에 닿고 나니 오후 다섯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느긋한 저녁을 즐기고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밤차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오느니 차라리 지하철 막차 시간 맞춰서 오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좀 서둘러야 했다.
이번에 갈 곳은 1번출구에서 가장 가깝다고 했으니, 그 쪽으로 나갔다.
나와서 오른쪽으로 틀면 나오는 중앙대로179번길로 들어갔다. 세 골목 쯤 지날 즈음 삼거리 비슷한 풍경이 나오면서 이렇게 커다란 패루가 눈에 띄었다. 인천 차이나타운과 달리 석제가 아니라 목제로 여겨졌지만, 크기는 둘 다 엇비슷한 것 같아 보였다.
패루 오른쪽 길로 방향을 바꿔 몇 발짝 걷다 보니 이렇게 부산에서 마지막 처묵처묵을 즐길 곳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날 쌍둥이 돼지국밥에서 수육백반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또 다른 돼지수육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나는 비흡연자였으니 당연히 1층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보다시피 수육과 국수 두 가지 뿐인 매우 단촐한 가게였는데, 이렇게 단순한 메뉴를 내는 가게는 그 음식에만 집중한다고 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신뢰가 갔다. 수육과 국수를 주문하니 '둘 다 같이 드릴까요, 수육 다 드실 쯤에 내드릴까요?'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일단 후자를 택했다.
기본적으로 수육을 시키면 밑반찬이 나오기는 하지만,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알아서 추가로 덜어먹을 수 있게 따로 마련해 놓았다.
수육 1인분 한 상. 물론 수육백반보다 고기 양은 당연히 많았으니 벌써부터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무생채와 부추무침, 배추김치, 양파와 마늘, 풋고추 썬 것과 함께 특이하게 양념장이 세 종류 나왔는데, 간장 베이스 하나와 새우젓, 그리고 뭔가 쌈장 색이면서도 훨씬 묽은 묘한 것이 각각 담겨 나왔다.
비계가 적당히 붙어 있는 것도 모양새가 좋았고, 고기 자체도 질기거나 퍽퍽하지 않게 잘 삶은 것이었다. 다만 오돌뼈의 경우 치아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주변 살만 갉아먹고 관뒀다.
우선 부추무침과 새우젓을 올려서 먹어봤고,
독특한 모양새의 저 양념장에도 찍어먹었다. 생각보다 짜거나 맵지는 않고 오히려 달달했는데, 듣기로는 질금(엿기름)을 넣어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무생채와 생마늘도 같이 얹어먹기도 했고, 짤방은 없지만 배추김치랑 같이 먹기도 했다. 어떻게 먹든 다 맛은 좋았는데, 다만 간장 양념장은 개인적으로 돼지고기랑은 좀 안맞는 것 같아 한 번만 시도하는데 그쳤다. 워낙 입맛과 식욕이 좋아서 무생채와 부추무침, 양파는 한 번씩 더 덜어먹었다.
수육을 3/4 쯤 먹었을 때 타이밍 좋게 나온 국수. 그냥 가볍게 먹고 싶은 사람은 꼭 수육을 시킬 필요 없이 국수만 주문해도 무관한데, 실제로 옆자리에서도 국수만 먹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보다시피 그냥 멸치육수에 김치와 파 송송 썬 것을 넣고 소면을 말아낸 평범한 국수였지만, 수육으로 뱃속에 기름칠해준 뒤 깔끔하게 마무리하기에 딱 좋았다.
물론 양념장이랑 오돌뼈 빼고는 몽땅 먹어치웠다. 이렇게 이번 여정의 마지막 한 끼 끝. 오히려 주된 목적이었던 공연 관람보다 먹는 데 쓴 돈이 훨씬 많기는 했지만, 입과 위장에 그 만큼의 값어치를 해준 덕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먹고 나온 뒤 잠깐 기차를 타고 올라갈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부산역에 가서 시간표를 확인해 봤지만, 거의 새마을호 아니면 KTX라서 비용 감당도 무리였고 시간대도 별로 맞지 않았다. 결국 다시 1호선 부산역으로 가서 노포역까지 쭉 올라간 뒤 거기 터미널에서 마침 10분 뒤에 출발하는 고속터미널행 차가 있어서, 그걸 타고 돌아왔다.
도착 예정 시간대가 좀 안맞아서 터미널에서 택시타고 갈 각오를 했지만, 다행히 길도 안막히고 해서 오히려 15분 가량 일찍 도착했다. 덕분에 서두를 필요 없이 3호선 열차를 타고 손쉽고 알뜰하게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갈 때는 마음대로가 아니었지만 올 때는 마음대로인' 모양새였는데, 몇 가지 생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 뭐하자는 계획이 대부분 실현돼서 아쉬울 것도 별로 없던 여정이었다.
그리고 평산옥에서 나온 뒤 근처 슈퍼마켓에서 마지막으로 구입한 부산우유의 멸균가공유 두 팩. 개인적으로는 커피우유가 없는게 좀 아쉬웠지만, 달달한 거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딱 맞는 레어템이었다. 맛은 물론 그냥 다른 가공유와 별 차이는 없었지만.
물론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도 빈도 수는 좀 떨어졌지만 두 군데에서 또 색다른 경험을 했는데, 한 군데는 뷔페였고 또 한 군데는 그 동안 언제 재개업하나 발을 동동 구르던 곳이었다. 다만 그 전에 하드에 쌓여 있는 잡다화려한 처묵 사진들부터 한 해 결산 겸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