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또 음반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제 공연을 보러 굳이 콘서트홀이나 오페라극장, 클럽에 가지 않아도 되는 '혜택' 을 누리고 있다. 물론 이들 매체가 실제로 직접 가서 보았을 때의 현장감을 100% 보상하지는 못하지만, 지리적 요건이나 재정적 문제로 이러한 혜택을 직접 향유할 기회가 적거나 없는 이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수단 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음악 분야에서도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항상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다. 지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치의 악명 높은 선동가 괴벨스가 제국 방송국들에 정치 선동용 방송의 비중을 줄이면서까지 음악 방송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도록 명령한 것도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카라얀은-비록 그 기술의 진정한 선구자가 되지는 못했지만-2차대전 후 녹음 세션에 오픈 릴 테이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과 LP의 대중화, 스테레오 녹음 기술의 실용화에 맞추어 엄청난 수의 음반을 만들어 자신과 베를린 필의 이름값을 드높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예술적 성취 보다는 기술의 진보에 지나치게 집착해 녹음했던 곡을 계속 사골 마냥 재탕한 것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아바도를 거쳐 래틀을 후임자로 맞아들인 베를린 필은 음반 시장의 불황을 감안했는지, 자신들의 연주를 웹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지털 콘서트 홀' 로 인터넷 세대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악단들도 자체 음반사를 만들어 자신들의 음반을 제작하거나, 다른 음반사 혹은 자신들이 직접 공연 실황의 음원이나 동영상을 아이튠즈 등지에서 시판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활발한 움직임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런 시도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미진해 보였다. 그러다가 작년 즈음에 서울 예술의 전당(이하 예당)에서 공연 실황 동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한국 관현악단들의 음반과 영상물 사냥에 여념이 없는 나로서는 꽤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정보였다.
그렇게 해서 예당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 본 것은 2012년 5월 26일에 콘서트홀에서 개최되었던 서울대 음대 교향악단의 브루크너 교향곡 8번 공연이었다. '어차피 발췌 영상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악장 별로 영상을 나누었고 재생 시간도 꽤 길어서 '설마 전곡을 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저 공연은 당시 직접 가서 본 것이기도 했고, 매우 만족스럽다고까지 하기는 어려워도 실연으로 저 곡을 처음 들어본 순간이기도 해서 '공연 끝나고 사가반이라도 내주려나' 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반도 아니고 공연 동영상 전체가 서비스될 줄이야. 덕분에 다른 공연의 동영상이 올라오기를 계속 기대하는 것이 웹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다.
서울대 브루크너 이전에 업로드된 영상으로는 공연 전체의 실황은 아니었지만, KBS의 파업 장기화로 실황 중계가 완전히 중단되어 몇 번의 공연만 공연장에서 들었던 게 고작이었던 2012 교향악축제의 실황 일부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기대는 했지만 가보지는 못했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중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전곡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는 최희준의 지휘로 9월 6일과 10월 11일 두 차례 열린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에 참석했는데, 이 때 연주가 모두 강한 인상을 남겨줬기 때문에 '설마 이것도 유튜브에서...?' 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사실이 되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의 폭발적인 연주와, 베를린 필 수석 클라리네티스트 벤첼 푸흐스와 보자르 트리오의 멤버였던 노장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의 협연 무대를 다시금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에도 유튜브 채널에서는 여러 공연의 동영상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올 초에만 해도 작년 12월 17일에 있었던 서울대 음대 교향악단의 두 번째 공연 중 2부에서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3번의 전곡 영상이 올라왔고, 또 이 글을 끄적이기 며칠 전에는 11월 8일에 로랑 프티지라르의 지휘로 개최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 실황 전체가 업로드 되었다.
예당 측에서 이 유튜브 채널로 국내외에 적극적인 홍보를 한다는 전략을 확실히 수립한 것 같은데, 몇몇 초기 영상물이 1280X720 사이즈 화면으로 제작된 것을 제하면 대부분의 영상이 HDTV 사이즈인 1920X1080의 와이드 화면으로 제작되었고 녹음도 예당 자체 음향 스탭들이 손을 봤는지 비교적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예당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기 전에도 내가 웹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 수단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는데, 문화예술 전문 채널인 아르떼TV를 통해 이런저런 공연을 스트리밍 VOD로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저 채널은 생긴 지가 꽤 되었음에도 녹음 장비가 시원치 않았는지 기술이 뒤떨어져 있었는지, 연주자에 마이크를 너무 바짝 들이댄 듯 한 '피아노와 포르테의 차이가 별로 없는 시끄러운' 녹음 때문에 편하게 감상하기는 좀 힘들었다.
물론 아르떼 측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는지, 2011년 무렵 부터 제작된 영상들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소리를 잡아내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테이프 녹음에서나 들을 수 있는 히스 노이즈가 계속 잡히는 등 오히려 '후발 주자' 인 예당의 유튜브 채널보다는 좀 뒤떨어지는데, 작년 교향악축제의 부산시향 연주 중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를 비교 감상해 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일단 음향 면에서는 예당 채널 쪽이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중계 전문 스탭이 상주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런지 공연장 안에 고정 설치된 카메라 몇 대 만으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정식이다 보니 앵글이나 줌인/줌아웃 효과 등이 한정되어 있어서 소위 '영상미' 면에서는 오히려 여러 대의 카메라와 여러 명의 카메라맨이 동원되는 아르떼보다는 훨씬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편이다.
그래도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고, 또 이 채널의 홍보 효과가 입증된다면 예당 측에서도 녹화/녹음을 위해 관련 스탭을 충원하거나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도 있을 테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장' 으로 자신하며 웹으로 진출하고 있는 예당의 이러한 움직임에 다른 공연장들이나 방송국들이 어떻게 반응할 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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