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통해 내가 '필윤그룹' 이라는 재즈 쿼텟(4중주단)에 대해 상당히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 바 있었는데, 다만 이들의 공연을 오랜만에 다시 본 것은 해를 넘겨서였다.
이런저런 서울 재즈 클럽들의 홈페이지 스케줄을 검색하다가 2월에 두 곳에서 공연이 잡힌 것을 발견했는데, 물론 두 곳 모두 갔다왔다. 처음 간 곳은 이태원의 올댓재즈였는데, 지난해 말 이태원역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으로 이전한 이래 첫 방문이기도 했다.
눈이 꽤 많이 왔던 2월 3일의 올댓재즈 공연 일정은 이랬다. 하도 재즈 공연을 안본지 오래라서 입장료 제도가 있는 것도 까먹었다가 못볼 뻔했는데, 어느 클럽이든 이렇게 입장료는 무조건 현금 지불이라서 반드시 얼마 간의 현금을 가져가야 한다. 여기는 짤방에 보이는 대로 5000원.
이전한 올댓재즈는 단층에 다소 비좁은 인상이었던 이전 자리와 달리 두 개 층을 임대했기 때문인지 훨씬 탁 트이고 넓어보이는 모양새였다. 무대가 자리잡은 벽은 덕분에 면적이 꽤 넓어서, 공연 전이나 막간에 스크린으로 재즈 공연 동영상이나 고전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재즈 클럽 공연은 늦은 밤에 열리고, 또 조명도 분위기나 몰입도를 생각해 상당히 어둡게 하기 때문에 폰카로는 사진빨을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 아무튼 희미하게 찍힌 책은 위의 포스팅에 써갈겼던 '재즈 앤 더 시티' 고, 맥주병은 흔히 '호가든' 이라고 부르는 벨기에 밀맥주인 후하르덴이다. 사실 밀맥주는 독일에 갔을 때 그 쪽 것을 주로 마셨고 이 맥주는 뻥 안치고 이번이 첫 대면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독일 밀맥주가 취향이긴 했지만 이것도 그럭저럭 마실 만했다.
공연 시작 직전 의견 조율 중인 필윤그룹. 왼쪽부터 이명건(피아노), 송우영(베이스), 이종원(테너색소폰), 필윤(드럼)이다. 이 날 세트 리스트(공연 곡목)는 다음과 같았다;
-1부-
Softly, as in a Morning Sunrise (Sigmund Romberg. 송우영 & 필윤 편곡)
Bull's Eyes (필윤)
Promise (필윤)
Joshua (Victor Feldman. 필윤 편곡)
-2부-
E.J. (필윤)
Sorrowness (필윤)
Noleo (필윤)
여느 때처럼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골라 연주했는데, 1부와 2부 첫 곡은 1집에, 나머지는 2집에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Bull's Eyes나 Joshua 같은 경우에는 2집이 나오기 훨씬 전에도 클럽에서 자주 선곡해 공연했기 때문에 익숙했고, 특히 전자의 경우 아예 코러스를 외울 정도로 친숙했다.
클럽 분위기는 꽤 운치있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이 날 손님들 중 상당수가 재즈 공연에 익숙치 않거나 아예 모르는 눈치였다. 솔로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이 절대 결례가 아님에도 오히려 첫 곡에서 내가 박수를 치니까 신기하게 보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그것도 그렇지만, 분위기에 비해 음향 상태는 예전보다 더 안좋아진 것 같았다. 피아노와 드럼은 잘 들리는 편이었지만 색소폰과 베이스는 공기가 되기 일쑤였고, 피아노도 마이크와 앰프 출력이 지나치게 높게 잡혀서 심하게 튀는 인상이었다.
재즈 외의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클럽의 사운드 엔지니어는 이 때문에 중요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날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점은 공연이 계속 진행되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물론 재즈를 안주삼아, 혹은 BGM 삼아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라이브 공연 위주로 운영되는 클럽이라면 사운드 체킹에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필윤그룹의 2월 두 번째 공연은 상수역 근처의 클럽 에반스에서 열렸는데, 설 연휴를 하루 남겨둔 7일이었다. 올댓재즈에서 얻은 교훈 덕에 이번에는 입장료를 지불할 현찰도 지갑 속에 있었고 더 이상의 실수나 오해는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공연 시작 시간으로 알고 19시 30분에 찾아가니 '클럽 개장은 지금 부터지만 공연 시작은 21시 부터' 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미리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몇 시간 동안 혼자서 죽때리고 있기는 거시기해서 결국 근처 PC방에서 좀 틀어박혀 있다가 시간 맞춰서 다시 클럽으로 갔다. 올댓재즈 공연이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있었다면, 이번 에반스 공연은 칼바람이 부는 강추위 속에서 있었기 때문에 날씨 덕은 별로 못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반스 공연의 세트 리스트는 올댓재즈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밴드 없이 단독으로 공연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였는지 2집의 Healing 한 곡이 더 들어갔다;
-2부-
Healing (필윤)
Sorrowness (필윤)
Softly, as in a Morning Sunrise (Sigmund Romberg. 송우영 & 필윤 편곡)
Joshua (Victor Feldman. 필윤 편곡)
에반스는 올댓재즈보다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음향 상태는 오히려 좀 더 좋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믹싱 콘솔이 바로 무대 앞에 있었기 때문에 클럽 주인이 수시로 사운드 엔지니어 역할도 하며 음향을 조절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네 악기 모두 비교적 균일한 음량을 들려주고 있었다. 청중들도 올댓재즈에서 느꼈던 뻘쭘함 같은 인상은 없었고.
다만 여기는 입장료가 7000원으로 좀 더 비싼 편이었는데, 덕분에 여기서도 음료는 신용카드로 계산해야 했다. 이번에는 독일 라거인 벡스를 주문했지만,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사진 자체가 안보였기 때문에 그냥 지웠다. 입장료는 좀 되었지만 음료는 오히려 올댓재즈보다는 1000원 가량 저렴했기 때문에 쌤쌤 아닌가 싶었는데, 공연이 주 목적이라 맥주는 부차적이었는데도 독일에서 양질의 맥주를 실컷 마셔댔던 기억이 떠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물어보니 이번 달 공연 스케줄은 이게 끝이라고 했지만, 아르떼TV에서 재즈 프로그램 시리즈인 '필윤의 재즈스토리' 에서 호스트를 맡아 매달 한 번씩 아르떼홀에서 재즈 공연의 녹화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21일부터 시작이라고 하는데, 임미정 퀸텟(5중주단)이 초기 뉴올리언스 (혹은 딕시랜드) 재즈 위주로 공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단 티켓 이벤트에 응모하기는 했는데, 당첨될 지 어쩔 지는 모르겠다. 안되더라도 공연 입장료가 20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 그냥 돈 내고 가도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그리고 라이브로는 주로 비밥 이후의 모던 재즈만 들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음악, 그것도 재즈 초창기의 음악을 어떻게 되살려 공연할 것인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