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한참 안했던 알바를 했다. 외장하드가 급하고 이것저것 살 음반도 있어서였는데, 물론 아직 목표에 도달하려면 좀 모자라지만 당장 토요일에 서코에서 쓸 돈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고, 그 전날에 인터넷 중고음반 쇼핑몰 두 군데에서 그 동안 눈독만 들이고는 구입하지 못한 음반들을 미리 주문하고 황학동 중고음반 가게들을 돌며 사들이고도 꽤 많이 남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서코에서 구입한 것은 레인보우 이펙트(C17)에서 예약한 창작 회지 '네게서 봄을 떠올려' 한 권(3500\) 뿐이었다. 아쉬웠을 거라고 생각했을 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 때 절약할 수 있다면 다음 서코는 5월이니 큰 재정난은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5월에는 케이크 스퀘어라는 행사까지 같이 열린다는 게 함정
서코 답사를 끝낸 뒤에는 바로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이동해 회현지하상가와 그 일대의 중고음반점을 돌며 또 중고음반 사냥을 하면서 이것저것 건졌고, 이러고 나니 꽤 배가 고파졌다. 지지난 주만 해도 외식을 하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지만, 아직도 돈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회현지하상가에서 가까운 곳 중 예전에 물색해둔 한 곳을 처음 찾아갔다.
대로변이 아닌 곳에 짱박히듯 위치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사거리에서 숭례문 방향으로 걷다가 이렇게 오른쪽으로 꺾이는 골목길만 찾으면 헤맬 일도 없었다.
그리고 그 골목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이렇게 한우곰탕과 콩국수 두 메뉴가 적힌 세로 간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게 이름인 '애성회관' 보다 한우곰탕을 유달리 강조한 간판을 내건 것을 보면 음식에 꽤 자신있는 집으로 보였는데, 사실 지금까지 밖에서 제대로 된 곰탕을 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를 하고 찾아갔다.
밖에 내건 음식 사진도 대부분 쇠고기가 기본인 것들이었는데, 물론 돈은 충분했지만 혼자서 한우수육이나 불고기를 처묵할 만한 뱃심과 패기는 없었기에 그냥 한우곰탕을 먹기로 하고 들어갔다. 토요일 오후 네 시 반이라는 애매한 시간이었는데, 주된 고객들인 직장인들이 없어서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밖에서도 봤지만 메뉴는 단순했다. 콩국수의 경우 여름에만 파는지 가격 표시가 없었고, 곰탕의 경우 기본이 7000원, 특이 9000원이었다. 좀 비싼 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 한우를 쓰고 그 중에도 질 좋은 고기를 쓴다면 지불 못할 가격은 물론 아니었다.
그리고 단체 손님을 받는 온돌방 쪽에는 이렇게 좀 유난스러워 보이는 문구까지 붙어 있었다. 도축업자나 육류도매상이 아닌 이상 내가 저 등급의 존재 여부를 알 길이 없지만, 일단 먹으면 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가 결정날 테니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간단한 테이블 세팅. 물론 물잔과 물병은 앉으면 가져다 준다. 다만 설렁탕집에서는 기본적으로 비치되어 있는 소금통이 없고 후추병만 있었는데, 아마 간이 돼서 나오는 것 같았다. 곰탕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따뜻한 곰탕 한 상이 차려졌다. 따로 내온 파,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섞인 김치 그릇, 중면 굵기의 국수 사리와 밥이 말아져 나오는 옅은 갈색 빛의 곰탕까지 모두 내게는 상당히 생경한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곰탕은 뼈를 넣지 않고 고기만, 혹은 고기와 내장만으로 끓이기 때문에 뿌연 색이 나올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면 일단 모양은 제대로 나온 셈이다. 고기도 물론 특보다는 적겠지만 충분히 입맛을 자극할 만큼 들어 있었다.
이제 뭘 볼 게 있을까. 바로 파를 떠넣어 주고,
국수부터 건져먹은 뒤 남은 밥과 고기, 국물을 우적우적 처묵했다. 후추를 따로 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잡내도 없었고, 간도 적당했다. 무엇보다 국물의 감칠맛이 무척 기분좋게 느껴졌고, 고기도 너무 질기거나 흐느적거리지 않고 적당히 씹는 맛을 유지하고 있어서 먹는 재미가 무척 쏠쏠했다.
깍두기는 살짝 달착지근했고, 배추김치는 약간의 신맛이 있었지만 모두 너무 푹 익지는 않아서 국밥과 먹기에 딱 좋았다. 개인적으로 김치는 푹 익혀먹는 게 취향이지만, 설렁탕 같은 국밥 종류와 먹을 때는 그렇게 취향을 심하게 타지는 않아서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맛난 곰탕 한 그릇을 비워냈다. 외식이라는 형태로 처음 접한 곰탕이라는 것에 상당히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곳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인 맛집으로 삼고 싶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명동에 있는 모 음식점을 거론하면서 내포(내장)가 없다거나, 다양한 곱배기 등 응용 메뉴가 없어서 아쉽다거나 하고 나름대로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거기도 (개인적으로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모 만화에 소개된 이후로는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던가 고객 응대가 형편없다던가 하는 안좋은 소리가 꽤 자주 들려오고 있어서, 그에 합당한 해명이나 개선책이 없다면 굳이 찾아갈 이유가 있을 지 회의적이다. 내가 그 만화와 그 만화의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또 명동이라는 동네는 뭘 먹을 곳이 못되는 관광객 접대용 지역일 뿐이라는 편견이 있어서인 지도 모르겠지만.
여기 다음으로 가보고 싶은 음식점들도 비슷하게 국밥 종류를 하는 곳들인데, 다만 이번 주에도 계속 일을 하고 있어서 주말에나 찾아갈 수 있을 듯 하다. 일단 주중에는 거의 반나절 동안 일을 하기 때문에 집에 오면 쳐자빠져 자면서 체력 회복을 하는 게 일상이라, 이렇게 블로그용 뻘글을 쓸 시간과 여력이 모두 안되니 문제다. (사실 이 글도 토요일 서코 끝나고 바로 쓴 뒤 나흘 주기를 맞춰서 예약 등록한 것이다.)
아무튼 이번 주 일로 또 돈이 들어온다면 외장하드를 구입하고 미국 아마존에서 CD 두 종류를 지를 예정이다. 그 외에도 일본 HMV에서 지르고 싶은 물품도 있고, 독일 아마존에서 지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열거하자면 욕심은 끝이 없다. 적정선에서 끊는 자제력이 필요하지만, 그게 참 어렵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