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의 포스팅을 마지막으로 거의 한 달 가까이 블로그 갱신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못하고' 가 아니라 '않고' 다. 개인적으로 돈이 급해서 이런저런 알바를 뛰었던 탓도 있고, 또 4일 주기로 하던 걸 어느 순간 안하게 되니까 밑도 끝도 없이 안하게 되는 귀차니즘을 떨치지 못한 것도 있다.
물론 그 사이 했던 트윗질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만, 블로그도 일단 트위터로는 소화할 수 없는 장문의 배설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버려두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침묵 후 첫 포스팅은 모처에서 거의 한 달 가까이 알바를 하고 내 자신에게, 또 지인에게 한 턱 '쏜' 식사가 되겠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근처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인 '카페 사마리칸트' 는 집에서도 꽤 가까운 곳이고, 2007년에도 한 번 가본 곳이라 낯선 곳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방문을 무려 6년 뒤에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혼자 먹기에 좋은 곳이 아니었고, 또 그 만큼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동안의 물가 상승은 이 곳의 음식 가격도 요동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메뉴의 희소성이나 가성비를 따져보면 그렇게 자비심 없게 확 치솟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개의 외식을 혼자서 해결하는 내게 동네 분식집 마냥 뻔질나게 드나들 만한 조건은 아닌 것도 분명했다.
어쨌든 그 동안 지하실에서 영 좋지 않은 공기 마셔가며 일한 돈으로 새 외장하드도 구입하고, 밀어 놓았던 CD도 (주로 해외 구매로) 주문을 했으니 노동의 보람은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저런 지름 만큼은 아니었지만 먹는 데도 일정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이 끝난 뒤, 클래식 음악과 관련해 만나기 시작한 어느 지인을 '끌어들여' 오랜만에 저 식당을 다시 찾기로 했다. 적어도 두 사람이서 가면 시켜먹을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는 한결 많아지기 때문이었는데, 다만 시켜먹은 것은 2007년에 갔을 때 먹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어느 정도 모험을 각오하고 지인을 초대한 것이었는데, 나와 달리 우즈베키스탄 음식이든 러시아 음식이든 먹어본 적이 없는 이에게 미지의 요리를 권하는 것은 호불호를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용도 내가 다 부담하기로 결정한 것이었고.
6년의 세월 동안 식당 내부의 분위기도 많이 변해 있었다. 처음 갔을 때만 해도 한국말이 서툴렀던 우즈벡 사람들은 이제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손님이 오면 꽤 유창한 한국어로 주문을 받고 있었고, 덕분에 의사 소통의 어려움을 각오하고 다시금 러시아어 기초 회화책을 꺼내들고 어설프게 외운 단순 회화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아예 안쓴 건 아니었지만.
갔을 때 좀 정신줄이 풀린 상태라 메뉴판이고 가게 앞이고 안이고 찍은 사진은 없어서 바로 음식 사진 돌입. 일단 세 종류의 요리에 빵 하나를 시키고 음료수는 그냥 물로 했다. 기본찬으로 나온 양파절임과 당근 절임. 하지만 생당근에 가까운 식감과 맛인 당근 절임은 결국 손도 못댔고, 양파절임만 먹었다.
그리고 이어 나온 빵 한 접시(2000원). 둘이서 먹기 좋게 네 조각으로 잘라서 내왔다. 크기도 꽤 커서, 요리 없이 저 빵 하나만 먹어도 충분히 한 끼를 때울 수 있을 정도다. 바게트나 브뢰첸 같은 서유럽식 빵과 달리 딱딱하거나 질기지는 않지만, 맛 자체는 맹맹한 편이고 꽉 찬 질감이라 역시 주식 개념의 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빵을 시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수프다. 보르시(6000원). 모양새는 예전과 비슷했는데, 이번에는 감자가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잘게 썬 양파와 당근, 사탕무에 뼈가 붙은 큼직한 쇠갈빗살이 들어가 있던 것과, 섞으면 수프를 딸기우유 색으로 만드는 스메따나는 여전한 필수요소였다.
그리고 2007년 때처럼 만띠(8000원)도 주문했다. 큼직한 만두 다섯 개가 담긴 모양새는 여전히 친숙했다. 맛도 마찬가지였고. 중앙아시아 음식에 낯선 지인을 의식해 주문했는데, 입에 맞았으려나.
보르시와 만띠를 반 쯤 처묵하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나온 양고기 샤실리크 두 개(개당 4000원). 길거리에서 파는 닭꼬치나 중국식 양꼬치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훨씬 커서 몇 꼬치씩 마구 먹기는 힘들다. 그리고 나야 양고기 맛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지인은 어떨 지 좀 걱정하면서 시켰고.
이렇게 해서 24000원을 들인 '만찬' 이 마무리 되었다. 물론 보르시와 만띠, 샤실릭 모두 내게 6년이라는 세월을 보상해줄 만큼의 맛을 선사해 줬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외에 모리 카오루 화백의 '신부 이야기' 를 보고 급땡겼던 라그만(쇠고기와 당근, 양파 등을 넣어 만드는 우동 비슷한 음식)이나 쁠로프(마찬가지로 쇠고기와 당근, 양파 등을 넣고 볶은 볶음밥)도 맛이 어떨 지 궁금했지만, 두 사람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알바가 끝나고도 또 이것저것 찾아보고 조건이 맞으면 계속 하고 있지만, 우선은 늦깎이 유학 준비가 우선이고 또 지를 물건들의 대금 확보도 중요하기 때문에 또 언제 이렇게 개인적인 기준으로 '거하게 차려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라그만이든 쁠로프든 여타 양고기 요리든 또 먹고 싶은 건 마찬가지다.
다음 식충잡설 포스팅은 콩비지와 국밥, 돈까스로 이어질 예정이다. 물론 음악잡설도 그 동안 구해온 이런저런 음반들과 함께 재개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