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프로그램에 뭔가 신선한 것이 있다면, 휴전선 이북 빼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게 내 신조처럼 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서울/수도권 바깥을 뻔질나게 왔다갔다할 만큼의 시간과 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있을 때는 못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 또 광주시립교향악단의 패밀리 콘서트 관람 차 네 번째로 광주를 찾아갔다.
다만 원래 좀 일찍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날 개인적으로 경애해 마지않는 만화가 모리 카오루의 '엠마' 3~4권 신장판이 발매된다고 해서 시간을 좀 늦춰야 했다. 우선 집에서 멀지 않은 동대문 총판에 가서 해당 책들을 구입한 뒤, 고속터미널로 가서 광주행 차표를 사고 버스에 올랐다. 사실 발매일을 좀 지난 뒤 산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물론 가게 외관은 딱히 변한 건 없었다.
이번에는 가게 내부가 저녁 직전이라 좀 한산했기 때문에 메뉴판을 찍어올 수 있었다. 지난 번 볶음밥에서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한결 두둑해진 지갑을 들고 왔으니 좀 더 고급스럽게 먹어 보자는 생각으로 삼선볶음밥을 주문했다. 다만 공연 직전 너무 배부르게 먹어두면 졸릴 까봐 그냥 보통을 시켰다.
주문한 삼선볶음밥. 사실 그냥 볶음밥은 자주 먹어봤어도, 삼선볶음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다 못해 삼선짜장, 삼선짬뽕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대체 삼선이 뭐지?' 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일단 한국에서는 해물 세 가지로 조리하는 거면 대체로 삼선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물 때문에 가격도 다른 볶음밥이나 짜장면, 짬뽕보다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이 곳의 삼선은 볶음밥에 든 재료로 추측해 보면 새우와 오징어, 쭈꾸미였다. 물론 개인적으로 모두 좋아하는 해물이었고, 이런 재료가 푸짐하게 든 볶음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뭔가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짜장이 나오긴 했지만, 볶음밥이 비벼먹을 정도로 싱거운 건 아니어서 먹으면서 떠먹는 식으로 비웠다. 볶음밥 자체의 맛도 좋았고, 해물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너무 오래 요리하면 질겨지기 십상인 오징어와 쭈꾸미가 적당히 탱글탱글한 상태여서 씹는 맛이 꽤 쏠쏠했다.
물론 볶음밥과 짜장 소스, 달걀국 모두 깨끗하게 비워냈다. 곱배기가 아닌데도 충분히 배가 불렀는데, 역시 곱배기를 시켰다면 아마 심한 배고픔을 느끼지 않은 이상 괴롭게 비워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저녁을 먹은 뒤, 버스에 올라 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다. 광주의 버스를 이용하면서 늘상 드는 생각이지만, 이 도시의 교통 상태는 그다지 좋지가 않다는 거다. 물론 퇴근길 정체 같은 거야 다른 대도시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문제지만, 배차 간격이라던가 도로의 상태 등은 확실히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해 소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래, 소극장에서. 지난 번 갔을 때 이미 느낀 거지만, 저 공연장 역시 언제 대대적으로 보수 작업을 해야 할 만큼 거지같은 음향 상태를 자랑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음향 상태에 결코 만족하지는 않지만, 일단 공연 프로그램-특히 2부-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또 온 거였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특이하게 관현악곡-협주곡-관현악곡-협주곡 식으로 짜여졌다. 1부에서는 19세기 작품들인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1번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후지와라 하마오 협연), 2부에서는 20세기 작품인 재독 작곡가 박영희의 실내 관현악 작품인 '고운 님' 과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관악 합주를 위한 협주곡(오스카 미하엘손 협연)이 연주되었다.
1부에서 기대한 곡은 베토벤 서곡이었는데, '레오노레' 라는 이름을 단 서곡은 모두 세 곡이 있지만 그 중 자주 연주되는 곡은 3번 정도고 1~2번은 연주 빈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일단 실연으로 들어본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첫 곡이다 보니 곳곳에서 눈에 띄는 실수가 나타나서 그리 기분좋게 들을 수는 없었다. 특히 현 파트의 리듬이 까다로운 편인 알레그로 주부에서 갈짓자 걸음을 걷는 모습이 그랬는데, 아무래도 연습 부족이 원인인 것 같았다.
멘델스존 협주곡은 화려함과 강인함 보다는 서정미와 경쾌함이 필요한 곡인데, 아무래도 공연장의 특성상 대단히 강직하고 투박하게 들린 것이 문제였다. 독주자로 초빙된 일본 원로 바이올리니스트도 컨디션이 안좋았는지, 아니면 연습을 많이 못한 것이었는지 좀 불안불안한 연주였고 관현악 쪽-특히 목관부-도 자주 독주자와 부조화를 이루며 갈짓자 걸음을 걷고 있어서 좀 안습이었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1부에 비해, 2부는 아예 들어보지도 못한 현대곡도 있었고 특이한 편성의 협주곡도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박영희 작품은 양 사이드에 타악기를 배치한 소편성 곡이었는데, 긴 음길이의 활용이라던가 타악기의 다양한 편성과 활용 등이 두드러져서 상대적으로 난해한 곡이었다. 하지만 호른 주자의 마우스피스 없이 하는 취주라던가 타악 주자들이 나무/대나무 윈드 차임에 바람을 불어넣는 등 일종의 '호흡' 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끌어온 것은 청중들에게 어느 정도 솔깃함을 유도했다.
추상적인 박영희 작품에 이어 공연을 마무리지은 스트라빈스키 협주곡에서는 덴마크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협연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공연에서 가장 연습이 많았던 게 2부 레퍼토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특히 스트라빈스키 곡은 비록 신고전주의에 경도하던 시절의 작품이라 악상이나 곡의 진행 방식은 상당히 명쾌한 편이지만, 이미 '봄의 제전' 때부터 청중들과 연주자들에게 충공깽을 안겨준 잦은 변박과 불규칙한 리듬의 취급은 여전하다.
멘델스존 협주곡에서 관악진의 부진을 본 터라, 그보다 더 어려운 리듬으로 뒤범벅된 이 곡을 어떻게 제대로 해내려나 하는 우려가 당연히 있었다. 다만 생각보다 심히 어설픈 연주는 아니었고, 이 곡에서는 오히려 홀의 비쩍마른 음향 상태가 곡의 리드미컬한 대목을 좀 더 살려주는 기대하지 못한 효과도 있었다.
협주곡 연주 후 작곡가와 작품명을 알 수 없는 피아노 독주곡의 앙코르를 끝으로 공연이 마무리되었는데, 대체 무슨 곡인 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니스트가 작곡가이기도 하다니 자작곡이 아닐까 하는 애매한 추측만 하면서 공연장을 나와 남광주시장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왜 남광주시장 쪽? 사실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의 다소 비참한(...) 여정과 달리 좀 더 고급스럽게-물론 개인적인 기준-즐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급스럽다고 해서 찜질방 대신 호텔에서 묵는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좀 잘 만한 모텔을 잡으려고 한 것 뿐이지만. 남광주시장 쪽으로 간 이유는 일단 다음 날 아침을 남광주시장 국밥골목에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므 로드뷰로 본 시장 근처의 모텔들 중 한 곳을 잡아서 짐을 풀었다. 1박에 25000원이라, 생각보다 숙박비가 비싸지는 않았다. 일단 무겁게 싸들고 온 노트북을 켜서 사온 CD를 리핑한 뒤 쭉 듣고 확인해 봤다. 생각보다 CD 상태가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아서 '혹시 튀기라도 하면 어쩌나' 는 노파심 때문이었는데, 다행히 모든 트랙이 무사했다.
다음 날 좀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씻고 짐을 다시 챙겨 나온 뒤, 바로 국밥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내 선택은 행복식당.
물론 메뉴판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이번에 주문한 건 맨 왼쪽 위에 있는 소머리국밥이었다. 사실 특모듬국밥도 땡기긴 했지만, 안먹어 본 것도 좀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먼저 깔린 반찬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자조림도 있었다.
그리고 소머리국밥. 특이하게 따로국밥 식으로 나왔는데, 나온 방식보다 좀 의외였던 게 설렁탕을 생각나게 하는 국의 모양새였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고추장 혹은 고춧가루가 주가 된 강렬한 맛의 국밥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일단 담백한 맛의 국밥도 나쁘진 않았으니 크게 실망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들어가 있는 고깃점들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는데,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에 양지머리 위주로만 만들었던 대중옥의 설렁탕을 연상케 했다. 특히 저 쫄깃한 젤라틴의 식감이 그리워서 주문한 것이었으니까.
고기도 너무 질기거나 퍽퍽하지 않았고 국물도 간이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딱 맞춰져 있어서, 기분 좋게 아침을 뚝딱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침을 먹은 뒤 버스를 타고 광주고 쪽으로 갔다. 이 쪽에 헌책방이 밀집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는데, 이곳 저곳을 돌아봤지만 애석하게도 이 쪽에서 얻은 건 없었다. 내가 생각한 헌책방은 서울에서도 종종 보이는, 책 외에 CD 같은 음반도 곁다리로 같이 다루는 점포였지만 이 쪽에 몰려 있는 헌책방들은 죄다 책만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라 더 배차 간격이 뜸해진 버스를 잡아탄 뒤 다시 금남로 쪽으로 갔다. 이대로 광주를 뜨기는 뭔가 아쉬웠고, 또 노트북이 들어가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알라딘 광주점에서 멀지 않은, 이 지역의 유명한 제과점이라는 궁전제과에 가보기로 했다.
가게 외관. 1층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구입하고 2층 카페에서 먹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러 종류의 빵과 과자가 있었는데, 일단 배가 그리 고픈 편은 아니어서 딱 두 종류만 골라 계산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음료수로 주문한 밀크셰이크와 함께. 포크는 2층에서 먹고 간다고 하면 사람 수대로 챙겨주는 것 같은데, 고른 게 크림 같은 것이 잔뜩 든 빵이 아니어서 쓸 일은 없었다. 물론 음료수는 꼭 주문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목이 말라서 시켰다.
메론빵. 혹시 메론 맛이 나는 '사도' 가 아닌지 좀 의심스러운 생각으로 주문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구운 지 얼마 안되어 온기가 남아 있는 빵을 베어물며 아침 식사 때 부족했던 단맛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카스테라처럼 보이지만, 이름은 전혀 달랐던 케이크. 이름은 까먹었고, 메론빵과 밀크셰이크만 먹어도 충분했기 때문에 그냥 집으로 가져와 가족들에게 줬다. 그래서 맛도 어떤 지 모르겠다(...). 일단 다음에 또 갈 일이 있다면 먹을 기회가 있겠지.
이렇게 짧지만 달콤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차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오다가 서울요금소 부근에서부터 차가 꽤 막히기 시작해서 40분 지연을 먹었던 것만 빼면, 별 탈 없이 깔끔한 마무리였다.
그나마 편한 주말을 지내면서 또 빈 집이 되었던 블로그에 오랜만에 글을 남길 수 있게 됐지만, 다음에는 또 어떨 지 모르겠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자꾸 또 돈을 갈구하게 돼서 이것저것 일을 하고 있어서, 4일 주기 포스팅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자꾸 생기고 있다. 다만 그렇게 번 돈은 문화 생활에, 또 처묵처묵에 조금씩 투자하고 있으니 시간은 안나도 꺼리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시간만 좀 나기를 바랄 수밖에.
다만 원래 좀 일찍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날 개인적으로 경애해 마지않는 만화가 모리 카오루의 '엠마' 3~4권 신장판이 발매된다고 해서 시간을 좀 늦춰야 했다. 우선 집에서 멀지 않은 동대문 총판에 가서 해당 책들을 구입한 뒤, 고속터미널로 가서 광주행 차표를 사고 버스에 올랐다. 사실 발매일을 좀 지난 뒤 산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광천터미널에 도착한 뒤 바로 알라딘 중고책방 광주점으로 갔는데, 여기에 드럭의 컴필레이션 시리즈인 Our Nation의 4집이 있다는 것을 검색해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음반은 다른 지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여기서 가장 싸게 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는 김에 사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위치 조회를 한 뒤 음반을 찾아서 3900원에 구입했는데, 이걸로 저 시리즈의 여섯 개 음반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다만 아직까지 내가 구입해야 할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인디 음반은 아직도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내가 그 당시 저 음반들을 거의 카세트 테이프로만 구입했기 때문인데, 결국 기술의 변화에 뒤처진 탓에 그걸 만회하기 위해 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제는 CD도 사양길을 걷고 있으니 내가 그 변화를 따라잡고 있는 것도 결코 아니지만.
이렇게 첫 일정은 무난하게 소화했는데, 일단 가장 중요한 공연 관람 전에 밥은 먹어둬야 했다. 그리고 미리 정해놓은 대로 동구청 옆의 삼미관으로 갔다.
짜장이 나오긴 했지만, 볶음밥이 비벼먹을 정도로 싱거운 건 아니어서 먹으면서 떠먹는 식으로 비웠다. 볶음밥 자체의 맛도 좋았고, 해물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너무 오래 요리하면 질겨지기 십상인 오징어와 쭈꾸미가 적당히 탱글탱글한 상태여서 씹는 맛이 꽤 쏠쏠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저녁을 먹은 뒤, 버스에 올라 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다. 광주의 버스를 이용하면서 늘상 드는 생각이지만, 이 도시의 교통 상태는 그다지 좋지가 않다는 거다. 물론 퇴근길 정체 같은 거야 다른 대도시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문제지만, 배차 간격이라던가 도로의 상태 등은 확실히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해 소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래, 소극장에서. 지난 번 갔을 때 이미 느낀 거지만, 저 공연장 역시 언제 대대적으로 보수 작업을 해야 할 만큼 거지같은 음향 상태를 자랑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음향 상태에 결코 만족하지는 않지만, 일단 공연 프로그램-특히 2부-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또 온 거였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특이하게 관현악곡-협주곡-관현악곡-협주곡 식으로 짜여졌다. 1부에서는 19세기 작품들인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1번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후지와라 하마오 협연), 2부에서는 20세기 작품인 재독 작곡가 박영희의 실내 관현악 작품인 '고운 님' 과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관악 합주를 위한 협주곡(오스카 미하엘손 협연)이 연주되었다.
1부에서 기대한 곡은 베토벤 서곡이었는데, '레오노레' 라는 이름을 단 서곡은 모두 세 곡이 있지만 그 중 자주 연주되는 곡은 3번 정도고 1~2번은 연주 빈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일단 실연으로 들어본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첫 곡이다 보니 곳곳에서 눈에 띄는 실수가 나타나서 그리 기분좋게 들을 수는 없었다. 특히 현 파트의 리듬이 까다로운 편인 알레그로 주부에서 갈짓자 걸음을 걷는 모습이 그랬는데, 아무래도 연습 부족이 원인인 것 같았다.
멘델스존 협주곡은 화려함과 강인함 보다는 서정미와 경쾌함이 필요한 곡인데, 아무래도 공연장의 특성상 대단히 강직하고 투박하게 들린 것이 문제였다. 독주자로 초빙된 일본 원로 바이올리니스트도 컨디션이 안좋았는지, 아니면 연습을 많이 못한 것이었는지 좀 불안불안한 연주였고 관현악 쪽-특히 목관부-도 자주 독주자와 부조화를 이루며 갈짓자 걸음을 걷고 있어서 좀 안습이었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1부에 비해, 2부는 아예 들어보지도 못한 현대곡도 있었고 특이한 편성의 협주곡도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박영희 작품은 양 사이드에 타악기를 배치한 소편성 곡이었는데, 긴 음길이의 활용이라던가 타악기의 다양한 편성과 활용 등이 두드러져서 상대적으로 난해한 곡이었다. 하지만 호른 주자의 마우스피스 없이 하는 취주라던가 타악 주자들이 나무/대나무 윈드 차임에 바람을 불어넣는 등 일종의 '호흡' 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끌어온 것은 청중들에게 어느 정도 솔깃함을 유도했다.
추상적인 박영희 작품에 이어 공연을 마무리지은 스트라빈스키 협주곡에서는 덴마크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협연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공연에서 가장 연습이 많았던 게 2부 레퍼토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특히 스트라빈스키 곡은 비록 신고전주의에 경도하던 시절의 작품이라 악상이나 곡의 진행 방식은 상당히 명쾌한 편이지만, 이미 '봄의 제전' 때부터 청중들과 연주자들에게 충공깽을 안겨준 잦은 변박과 불규칙한 리듬의 취급은 여전하다.
멘델스존 협주곡에서 관악진의 부진을 본 터라, 그보다 더 어려운 리듬으로 뒤범벅된 이 곡을 어떻게 제대로 해내려나 하는 우려가 당연히 있었다. 다만 생각보다 심히 어설픈 연주는 아니었고, 이 곡에서는 오히려 홀의 비쩍마른 음향 상태가 곡의 리드미컬한 대목을 좀 더 살려주는 기대하지 못한 효과도 있었다.
협주곡 연주 후 작곡가와 작품명을 알 수 없는 피아노 독주곡의 앙코르를 끝으로 공연이 마무리되었는데, 대체 무슨 곡인 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니스트가 작곡가이기도 하다니 자작곡이 아닐까 하는 애매한 추측만 하면서 공연장을 나와 남광주시장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왜 남광주시장 쪽? 사실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의 다소 비참한(...) 여정과 달리 좀 더 고급스럽게-물론 개인적인 기준-즐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급스럽다고 해서 찜질방 대신 호텔에서 묵는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좀 잘 만한 모텔을 잡으려고 한 것 뿐이지만. 남광주시장 쪽으로 간 이유는 일단 다음 날 아침을 남광주시장 국밥골목에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므 로드뷰로 본 시장 근처의 모텔들 중 한 곳을 잡아서 짐을 풀었다. 1박에 25000원이라, 생각보다 숙박비가 비싸지는 않았다. 일단 무겁게 싸들고 온 노트북을 켜서 사온 CD를 리핑한 뒤 쭉 듣고 확인해 봤다. 생각보다 CD 상태가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아서 '혹시 튀기라도 하면 어쩌나' 는 노파심 때문이었는데, 다행히 모든 트랙이 무사했다.
다음 날 좀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씻고 짐을 다시 챙겨 나온 뒤, 바로 국밥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내 선택은 행복식당.
이렇게 아침을 먹은 뒤 버스를 타고 광주고 쪽으로 갔다. 이 쪽에 헌책방이 밀집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는데, 이곳 저곳을 돌아봤지만 애석하게도 이 쪽에서 얻은 건 없었다. 내가 생각한 헌책방은 서울에서도 종종 보이는, 책 외에 CD 같은 음반도 곁다리로 같이 다루는 점포였지만 이 쪽에 몰려 있는 헌책방들은 죄다 책만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라 더 배차 간격이 뜸해진 버스를 잡아탄 뒤 다시 금남로 쪽으로 갔다. 이대로 광주를 뜨기는 뭔가 아쉬웠고, 또 노트북이 들어가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알라딘 광주점에서 멀지 않은, 이 지역의 유명한 제과점이라는 궁전제과에 가보기로 했다.
이렇게 짧지만 달콤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차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오다가 서울요금소 부근에서부터 차가 꽤 막히기 시작해서 40분 지연을 먹었던 것만 빼면, 별 탈 없이 깔끔한 마무리였다.
그나마 편한 주말을 지내면서 또 빈 집이 되었던 블로그에 오랜만에 글을 남길 수 있게 됐지만, 다음에는 또 어떨 지 모르겠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자꾸 또 돈을 갈구하게 돼서 이것저것 일을 하고 있어서, 4일 주기 포스팅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자꾸 생기고 있다. 다만 그렇게 번 돈은 문화 생활에, 또 처묵처묵에 조금씩 투자하고 있으니 시간은 안나도 꺼리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시간만 좀 나기를 바랄 수밖에.
Posted by 머나먼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