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은 생각날 때마다 날 잡아서 이곳저곳 들락거리며 처묵할 정도니 그 애정도를 따로 주절거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오리알을 진흙과 겨에 싸서 발효시킨 피단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를 안한 것 같아서 따로 쓰고 싶다.
어릴 적에 가끔씩 뷔페에 갈 때면, 나는 주로 고기에 환장한 초딩 모드에 돌입하곤 했다. 초밥이나 회 같은 경우에는 있어도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주로 골라다 먹은 건 한식-양식-중식 세 부류였다. 그런데 중식 메뉴 중에서는 주요리 취급도 아닌, 요리 옆에 소위 가니쉬로 장식해 놓은 무언가를 즐겨서 덜어먹었는데, 그게 피단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피단을 요리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피단은 지금도 내게는 외식 나가서 가끔 먹을 수 있는 별미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이것도 발효시킨 정도에 따라 심하면 취두부에 버금가는 향기로움을 자랑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아직 내가 먹은 피단들은 그 정도로 발효를 오래 한 건 아닌 것 같다.
피단이 들어가는 요리는 중국집들에서도 그다지 쉽게 보기 힘든데, 있다고 해도 대체로 내가 싫어하는 오이가 섞인 냉채류라던가 하는 것들이라 알아서 거부하게 된다. 그런데 그 피단을 연두부와 함께 먹는 요리인 '피단두부' 를 갖춘 곳이 있다고 해서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마포구 연남동에는 인천 차이나타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식 식당들이 꽤 여러 곳 산재해 있다고 하는데, 다만 내가 외출할 때 늘 따지는 '지하철역 인근' 이 아니라서 아예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피단에 대한 욕망 때문에 결국 어디에 있는 지 자동적으로 검색하게 되었고, 지난 달 말에 처음 가봤다.
사실 지하철역에서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일단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쪽에서 탈 수 있는 마포05번 마을버스를 타면 좀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충 거리를 따져 보니 굳이 버스까지 탈 수고를 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 쪽에서 제일 가까운 3번 출구로 나와 걸어갔다.
간판 밑에 '만두전문점' 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때문인지 한국식 중국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짜장면이나 짬뽕은 물론이고 일체의 면요리를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노리고 온 건 피단두부였으니 결격 사유가 되지는 않았다.
가게 내부는 그냥 동네 중국집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특이하게 사각형 탁자가 아니라 원탁을 너댓 개 들여놓은 공간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은 원탁에 빙 둘러앉아 요리를 들며 환담을 나눈다고들 하는데, 그런 점에서 한국식 중국집의 이미지에서 좀 벗어나 있는 셈이었다. 물론 안쪽에도 한 네 개의 사각형 탁자가 비치된 식사 공간이 있었는데, 다른 일행이 없던 나는 그 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메뉴가 인쇄된 코팅지는 이렇게 탁자 마다 수저통 뒤에 비치되어 있었다.
메뉴를 보니 만두나 식사류는 평균적인 가격대였지만, 요리가 꽤 저렴한 편이었다. 한국식 중국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지볶음이나 동파육 같은 메뉴도 있었는데, 다만 가지는 내게 있어서 오신채나 마찬가지고 어느 요리든 혼자 시켜먹을 만큼 만만하지는 않아서 단체 식사 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혼자 가서도 부담없이 시켜먹을 수 있는 '작은 요리류' 라는 메뉴도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내가 찾던 피단두부가 있었다. 그래서 식사류 중에서는 새우볶음밥을, 작은 요리류 중에서는 피단두부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사실 만두 전문점이라고 해서 식사로 찐만두나 왕만두를 주문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일단 밥이 들어가야 좀 제대로 먹은 거라고 생각하는 내 습성 상 순위는 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나온 밑반찬들. 단무지와 양파, 춘장이라는 중국집의 필수요소에 자차이-흔히 짜사이라고 부르는 것-가 추가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도 다른 중국집과 차별화된 모습인데, 다만 자차이의 경우 아직 익숙하지는 않아서 그다지 많이 손대지는 않았다.
먼저 나온 피단두부. 연두부 한 모 위에 간장 계통으로 보이는 소스와 가츠오부시를 뿌리고 그 옆에 채썬 파와 피단을 담아놓은 모양새였다. 일식에서 주로 쓰이는 식재료인 가츠오부시가 올라간 것이 특이했는데, 일단 두부나 다른 식재료와의 궁합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새우볶음밥도 뒤이어 나왔다. 곱배기가 되는 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시켰는데, 이것 만으로도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양이었다.
이걸로 처묵할 준비가 완료된...건 아니었다. 우선 피단두부를 들쑤셔 섞어야 했다.
이렇게 연두부를 으깨고 옆의 피단과 파를 섞어 버무렸는데, 모양새가 좀 별로인 것 같지만 입에 떠넣었을 때의 느낌은 제대로였다. 피단은 적당히 발효되어 있었고, 가츠오부시 특유의 감칠맛까지 더해져서 간단한 요리임에도 계속 숟가락으로 입에 떠넣게 되었다.
볶음밥도 소위 '불맛' 까지는 아니었지만 고슬고슬하게 잘 볶아냈고, 새우볶음밥인 만큼 새우살도 충분히 들어 있었다. 특히 짜장을 같이 내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한국식 볶음밥이 아닌 중국식 볶음밥에 더 가까웠다. 실제로 손님들 중에도 중국인들이 꽤 많아서, 내 앞쪽 탁자에서도 중국인 유학생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산동쇼우기와 해파리무침 등의 요리를 늘어놓고 중국어로 잡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볶음밥에 따라나온 국은 달걀국이었다. 볶음밥이 간간해서 그런지, 국의 간은 싱겁게 맞추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한 끼를 뚝딱 해치웠다. 다만 이 가게를 언제 또 올 지 알 수는 없었는데, 의외로 빨리 재방문을 할 수 있었다. 다음에 쓸 수유동의 어느 함박스텍집에서 달린 뒤였던 이번 달 첫 번째 주말에 예전에 하던 알바를 다시 할 수 없겠냐는 전화를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모이는 집결지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일을 끝낸 뒤 저녁을 먹으러 다시 찾아갔다.
그래서 뭘 시켰냐고?
첫 번째 갔을 때와
똑같은
메뉴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만두를 시킬까 했는데, 의외로 일이 늦게 끝나서 상당히 배가 고팠기 때문에 결국 또 밥을 먹자 하고 새우볶음밥으로 했다.
물론 이번에도 뚝딱 먹어치웠다. 다만 서빙하시는 분께서 약간 착각을 하셨는지, 메뉴를 두 가지 시켰으니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이 온 줄 알고 물컵과 개인 접시를 2인용으로 챙겨 오셨다. 일단 혼자 왔다고 말을 해봤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이 가게가 화상이다 보니 중국어로 얘기해야 소통이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중국어를 모르니...
그리고 다음 식충잡설 포스팅은 예전에 이미 예고했고, 이 글에서도 다시 한 번 지나가듯 언급한 수유동 기사식당 거리의 함박스텍 집으로 잡았다. 여기서 먹은 함박스텍과 생선까스, 돈까스는 사실 흔하다면 흔한 메뉴지만, 곁들임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꽤 색다른 것이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