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내 몸에는 잘 안맞는 음식이라는 주변인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 자신도 닭백숙과 훈제치킨을 잘못 먹고 두 번이나 체해서 데인 적이 있었음에도 닭고기는 여전히 내게 친숙한 음식이다. 물론 개인 취향으로는 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늘 우선 순위에서 콩라인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암울했던 군 시절에도 그나마 내가 만족했던 게 밥 잘나온 거였는데, 원체 입맛이 그리 까다롭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웬만한 음식은 내 입에 맛난 한 끼였다. 그리고 그 때도 나는 1년에 몇 번 안나오던 삼계탕 배식에 환장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내가 직접 삼계탕을 사먹어본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삼계탕은 내 입맛에는 좀 미묘하다면 미묘한 음식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즐기지 않는 인삼과 과일로 여겨 후식 외의 음식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대추가 들어간다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삼계탕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나는 먼저 저 두 식재료를 먹지 않고 골라내 같이 먹던 다른 이에게 주곤 했다. 이래서는 닭백숙과 다를 바 없겠지만, 나는 그게 더 편하다.
어쨌든 한창 더웠던 여름에 좀 먹어보자고 생각했던 삼계탕은 여름이 지나고 짧은 가을이 또 지나가는 시점인 11월 말에 처음으로 내 의지로 사먹을 수 있었다. 다만 어디서 먹을 지 좀 고민했는데, 언론 같은 데서 한참 떠든 곳은 오히려 그 인파 때문에 별로 발길이 가지 않아서 그냥 현금호송 알바 하다가 우연히 을지로 백병원 근처에서 본 곳을 그냥 가보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붉은색 네온사인에 나온 것처럼 '서울삼계탕' 이었다. 건물 1층이 아닌 2층에 입점해 있었는데, 일단 주로 파는 것은 삼계탕인 것 같았지만 통닭구이라던가 백숙, 닭도리탕, 옻닭, 심지어 전복죽 같은 것까지 팔고 있는 걸로 보였다.
위생과 모범 등급을 붙인 식당이 하도 많아 이제는 그 진위조차 의심스러운데, 이걸 찍은 건 딱히 신뢰가 가는 게 아니라 모범음식점에 붙은 현 거주지인 중구의 옛 캐릭터 '쥬쥬와 구구' 때문이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하티라는 정체불명의 마스코트인지 엠블럼인지 상표인지 모를 단순하기 짝이 없는 걸로 바뀐 것에는 별로 정이 안가서, 이미 공식적으로는 용도 폐기가 됐어도 차라리 저 캐릭터 쪽이 좀 더 괜찮게 보인다.
아무튼 음식점으로 가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계단을 올라갔다. 다만 계단 외에 다른 건 없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의 경우 방문하기가 다소 힘든 위치였다.
저녁 시간보다 좀 이른 평일 초저녁 때 방문해서 그랬는지, 가게 내부는 다소 한산했다. 3층에도 단체 손님을 위한 좌석이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혼자 갔으니 올라갈 이유는 없었고, 나 외에는 어느 회사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전기구이통닭과 소주를 시켜놓고 금융 관련 잡담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느릿느릿하게 삼계탕을 비우고 있을 때는 제법 손님들이 많이 왔지만.
기본적인 메뉴판. 일단 여기서 10000원 미만의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만큼 가격대가 좀 세게 보였지만, 사실 삼계탕은 다른 데도 저 가격에서 1000원 정도 비싼 정도에 받는다고 하니 그렇게 위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먹는 데 한해서는 꽤 수전노인 내게 한 끼 식사로 지불할 돈으로는 다소 센 게 분명했지만.
그리고 그 센 가격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을 위해 비교적 최근에 새로 만든 것 같은 이런 식사 메뉴도 있었다. 다만 여기 들어간 건 분명히 삼계탕을 먹으려고 한 거였고, 그에 상응하는 돈을 가져왔으니 그냥 그대로 삼계탕으로 주문했다.
자리잡은 창가 쪽에는 이렇게 인삼주며 이런저런 약재를 담가 만든 술병들이 들어차 있었고,
그 밑에는 수저통과 냅킨통, 소금과 후추가 든 양념통, 그리고 뼈를 발라내라고 준비한 비닐 씌운 들통이 마련된 테이블이 있었다.
삼계탕을 주문한 뒤 곧장 깔린 밑반찬 등등. 그런데 좀 특이한 것 두 가지가 같이 나왔다.
하나는 요 닭똥집 볶음이었고,
또 하나는 소줏잔보다 더 작은 잔에 담아낸 인삼주였다. 인삼주는 희석식 소주에 담갔는지 인삼맛 보다는 희석식 소주 특유의 역한 단맛이 더 강했지만, 일단 같이 나왔으니 쭉 들이키고 닭똥집 볶음으로 입을 가셨다. 닭똥집은 평소 먹던 것보다는 좀 더 꼬들꼬들한 식감이었다.
그리고 삼계탕이 나오면서 세팅 완료.
여느 뚝배기 요리가 그렇듯, 이것도 펄펄 끓는 상태로 내왔기 때문에 바로 한 술 뜨기는 힘들었다.
김 좀 나가라고 저어주면서 닭의 뱃속을 풀어헤친 뒤. 닭은 사진은 못찍었지만 웅추를 쓴다고 나와 있었다. 뱃속에는 꽉 찬 찹쌀 외에 예의 인삼과 대추가 들어 있었다. 평소라면 남 주던가 했겠지만, 어차피 혼자 왔으니 그냥 먹기로 하고 이것들부터 쏙쏙 빼먹었다.
그리고 국물 속의 닭을 부위별로 해체해 이렇게 개인 접시에 덜어놓고 손으로 잡아 뜯어먹었다. 물론 좀 더 고상하게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발려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기술은 없고 뼈 붙은 고기는 뜯어먹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이라 손이 더러워지든 어쩌든 그렇게 게걸스럽고 또 느릿하게 먹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나는 백숙이든 삼계탕이든 간에 보통은 이렇게 목과 날개부터 먹는다. 이 부위들을 다 먹으면 갈비뼈와 등뼈 쪽에 붙은 자잘한 부위들-닭다리-닭가슴살 식으로 차례차례 손을 댄다. 발려먹기 가장 귀찮은 쪽부터 가장 쉬운 쪽까지 순차적으로 나가는 방식인 셈이다. 물론 이렇게 먹으면 나중에는 닭고기가 입에 꽉 찰 정도로 집어넣으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만, 처음에 귀찮은 부위를 공들여 발려먹느라 고기가 빨리 식는다는 단점도 있다. 어떻든 취향 나름.
그리고 손으로 계속 집어먹다 보니 폰카를 만지작하기도 귀찮아서, 다른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먹는 것 자체에만 집중했다. 사실 사진이 너무 주가 되다 보니 오히려 광고글처럼 되어 버리기 쉬운 게 음식 포스팅인데, 사진은 못찍더라도 음식은 일단 먹어야 그 의미가 있으니 딱히 못찍었다 해도 아쉬울 건 없다는 생각이다. 잘 먹었으면 그만이니까. 다만 개인적인 맛의 기억을 남겨두기 위한 증거물이기도 하니, 나도 찍을 필요가 있으면 찍는다. 화질구지가 날아다니든 아니든.
그리고 그렇게 닭 한 마리를 해치우면서 직접 시켜먹은 삼계탕이라는 첫 경험을 마무리했다. 비릿하거나 심하게 뻑뻑하지 않아서 먹기에는 별로 불편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닭 크기가 작다 보니 양에 대한 미련이 좀 남았다. 사실 전통적인 조리법 대로 영계를 요리해 내놓는 삼계탕집은 요즘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유명한 곳이라도 대개 영계가 아니라 이렇게 양계장의 잉여 생산물로 취급받는 웅추를 쓰기 때문에 양적인 측면에서는 대식가들에게 불리하다고들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보기 드문 경험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삼계탕이 아직까지 내 외식 식단에 자주 오를 것 같지는 않다. 양도 양이지만, 가격이 그렇다. 차라리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직 칼질도 제대로 못하는 내게는 그냥 손질된 닭 한 마리 사서 시중에서 파는 삼계탕 재료랑 물이랑 압력솥에 넣어 요리하면 될 정도로 조리법이 단순하다고 하니까 더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매우 거창한 외식을 한 다음에도 나는 이런저런 곳을 찾아보고 있다. 다만 땡기는 데가 있어도, 요즘에는 시간이나 예산 등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실제로 발을 떼기 까지의 과정이 좀 어려워지고 있다. 언제 뗄 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써놓고 저장해둔 뒤 올라올 즈음에는 적어도 한 곳은 방문할 것 같다. 어디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