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카페 문화는 많이 왜곡되어 있다고 본다. 프랜차이즈 매장이든 개인 사업자가 차린 아담한 곳이든, 카페는 주로 여성들 혹은 남녀 커플들이 가는 곳으로 여겨지는데, 이 때문에 남자 혼자 카페에서 다과를 들거나 할 경우 다소 뻘쭘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카페의 '원산지' 들인 서구나 미국 쪽에서는 남녀노소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가끔 외국인들이 한국 카페의 풍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주위의 눈치를 좀 많이 보는 편인 나도 카페에 혼자 가본 적은 거의 없다. 여친이랑 같이? 모태솔로라 그런 거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그걸 감행할 수 있었는데, 음료 보다는 다른 달달한 것이 상당히 땡겨서였다. 다만 이 방문은 내 지엽적인 판단 때문에 다소 볍신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영생덕에서 만두를 실컷 먹고 나온 뒤에도 내 미각은 뭔가 달달한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요구하지 않았어도 그 다음 장소는 거의 강제 방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다음 날(일요일)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앙로를 쏘다니며 얼추 소화를 시킨 뒤, 버스를 타고 경북대 북문으로 갔다. 미리 약도를 준비해 갔기 때문에 별다른 착오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여기. 그냥 작고 평범한 흔한 대학가 카페로 보이는 곳인데, 점포명은 '반짝반짝 빛나는' 이었고 타르트 전문점이라고 되어 있었다.
타르트는 대략 열 종류 되는 것으로 나와 있었는데,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서울 번화가 카페의 타르트나 케이크가 이 가격에 1000~2000원은 더 붙는다고 생각하면, 카페의 주 고객들인 여성들 뿐 아니라 단 걸 좋아하는 중년 남성인 나로서도 무시 못할 매력이었다.
하지만 이미 카페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거기서 먹고 나오려면 또 기다려야 했는데, 물론 공연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공연 전의 무대 리허설도 보려고 일찍 온 거라서 기다리기 위한 인내심은 부족했다.
그래서 타르트 만이라도 포장해 오려고 일단 들어갔다. 다만 싸고 맛있기로 입소문이 많이 나서였는지, 모든 타르트가 종류 별로 다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먹어보려고 했던 바나나 코코넛이 떨어진 게 아쉬웠는데, 그래도 다른 것도 단호박 퓨레 빼면 모두 땡겼기 때문에 그 중 세 가지를 주문해 포장을 부탁했다.
하지만 다시 대구시민회관으로 돌아와 무대 리허설을 참관한 뒤에도 일정은 좀 꼬였다. 잠깐이나마 로비에서 처묵하려던 계획도 열심히 청소를 하며 공연 준비를 하시는 미화원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틀어졌고, 그렇다고 다른 카페에 이걸 당당히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이렇게 된 이상 경북대로 간다!" (...)
다시 퇴근 시간대라 만석이 된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가공할 만한 뻘짓이라고 자학했는데, 다행히 폐점이 임박한 시점이라 자리가 있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들어가 같이 마실 커피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커피 메이커를 세척 중이라 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꼭 커피가 아니어도 좋으니 아무 거나 가능한 걸 달라고 했고, 홍차 라떼 한 잔을 가까스로 받을 수 있었다.
포장해 왔던 이 가게의 타르트. 박스 오른쪽에 있는 건 에그타르트다.
박스 안에 든 나머지 두 가지는 크림치즈(왼쪽)와 초코 가나슈(오른쪽). 폐점 임박이라고 해도 아직 손님들이 두 사람 있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가져간 레스피기 로마 3부작 풀 스코어를 보며 여유를 갖고 먹어봤다.
에그타르트. 단순해 보이기는 하지만 영 좋지 않은 걸 고르면 달걀 비린내가 난다던가 타르트가 아닌 달걀찜을 먹는다는 것같다던가 하는 참사가 종종 발생할 수 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비교적 작기는 하지만 버터쿠키처럼 고소하고 바삭한 피와 함께 적당히 달달한 맛이었는데, 여기서 가장 잘 나가는 타르트라는 게 납득이 갔다.
크림치즈 타르트도 치즈 특유의 진한 맛이랑 끝에 남는 새콤한 맛이 비교적 잘 어우러졌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포장하고 나오면서도 '차라리 같은 값이면 레몬커드 생크림으로 주문할 걸 그랬나' 하고 살짝 후회하기도 했지만, 치즈 타르트 특유의 진한 맛도 좋아하고 또 그 시점에서 이미 모든 타르트가 다 팔렸으니 이것도 맛있다며 만족했다.
그 사이에 들어온 한 중년 여성 손님은 타르트가 이미 다 떨어졌다는 점원의 말을 듣고 '여기는 왜 이렇게 빨리 떨어지나. 미리 많이 만들면 되지 않나' 라고 다소 푸념 섞인 간접적 항의를 했지만, 대형 카페도 아니고 소규모에 몇 안되는 점원만으로 운영되는 가게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할 리가. 그러다가 자신이 미리 연락해 보고 올 걸 그랬다며 명함을 받아갔다. 그 다음 주에라도 그 여성분이 자신이 원하던 타르트의 맛을 보셨기를.
마지막으로 먹은 초코 가나슈 타르트. 사실 세 종류 중 하나는 과일이 든 걸로 주문할까 했지만, 초콜릿 타르트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결국 이걸로 골랐다. 이것도 그냥 밀크초콜릿 풍으로 달달한 맛 일색이 아니라 당도 조절을 좀 했는지 달콤쌉쌀한 다크초콜릿에 근접한 맛이었다. 경대생들은 이런 타르트들을 저렴한 값에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좀 더 앉아서 여유를 즐기고 싶기는 했지만, 이미 점원들은 내부 청소에 바빴고 나도 공연을 보러 다시 나와야 했으니 다음 방문을 기약하고 다시 나와 시민회관으로 돌아갔다. 물론 공연은 제 때 볼 수 있었고, 과식했기 때문에 걱정된 식곤증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만두로 배를 꽉 채운 데다가 타르트까지 먹어댔으니, 공연이 끝난 뒤에 야식이니 뭐니 이런 걸 즐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하룻 밤 묵어갈 모텔을 알아봤지만, 토요일 밤에 방 잡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길의 어느 허름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숙박비는 다른 도시보다 좀 센 편이었는데, 그나마 여기가 싼 편이라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35000원을 내고 들어가 짐을 풀고 인근 PC방에서 폰카 사진을 편집해 외장하드에 저장한 뒤, 다시 모텔로 돌아와 샤워를 한 뒤 바로 잠을 청했다.
공연은 끝났지만 다음 날 일정도 물론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제대로 진행하지는 못했고, 원래 가려던 곳 중 한 곳은 결국 못가고 돌아서야 했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