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에 모텔을 나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대구점이었다. 다만 뭘 사야 겠다고 미리 정하고 간 곳은 아니었는데, 일단 음반 쪽을 보다가 인디파워 1999가 눈에 띄길래 곧장 구입했다. 인디 밴드들이 기존 가요를 리메이크한 것을 실은 컴필레이션 앨범인데, 이후에도 몇 장 더 나왔다.
여타 인디 전성기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도 카세트 테이프로만 구입한 뒤로 CD를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집에 와서 다시 들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렇게 기분좋은 하루를 시작했지만, 일단 아침을 못먹은 상태라서 미리 생각해둔 곳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생각해둔 곳은 칠성시장 돼지불고기 골목이었는데, 불고기 하면 최소 두 사람이서, 그것도 식사라기 보다는 소줏잔을 기울이며 먹는 요리 축에 넣겠지만 여기는 식사 개념의 불고기를 파는 곳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다만 질 좋은 고기를 쓰거나 양이 특출나게 푸짐하거나 한 곳은 아니니까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게 일반적인 평인 것 같다.
골목 초입. 돼지불고기 골목이라지만 족발이며 편육, 보쌈고기, 돼지머리 등이 잔뜩 늘어선 모습이 식욕을 돋궜는데, 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런 류의 먹자골목이 그렇듯이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하지만 딱히 어디가 원조이거나 잘한다는 건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대충 잡아끄는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진 왼쪽에 노란 간판으로 된 함남식육식당이었다.
내부는 전형적인 시장통 식당다운 분위기였는데, 늦은 아침이었지만 일요일이라 그랬는지 그 시간대에도 소주 안주로 불고기를 드는 사람도 많았고 가족 단위 손님들도 있었다. 일단 북성로 기사우동처럼 여기서도 우동을 같이 파는 것이 눈에 띄었지만, 우선 밥이 고팠기 때문에 돼지석쇠불고기 1인분에 식사는 공기밥으로 주문했다.
내부 벽에는 여느 식당들이 그렇듯 이런저런 방송 출연 사진 등이 붙어 있었는데, 솔직히 별 관심은 없었고 그 위에 붙은 대나무술이나 도정막걸리 광고지가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물론 술이 엄청 고팠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막걸리 같은 경우에는 좀 땡긴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얌전히 밥만 먹고 나왔지만.
우선 이렇게 밑반찬과 쌈채소가 깔렸다. 단촐한 모양새였지만, 상추 외에도 상추겉절이가 따로 나온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리고 이어 나온 돼지불고기 접시. 흔히 돼지불고기 하면 고추장 양념으로 만들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간장 양념이 기본이었다. 거의 비계 반 고기 반 식으로 나왔는데, 돼지비계를 꺼리기는 커녕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반가웠다. 다만 느끼한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생길 것 같은 모양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공기밥이 나오면서 식사 채비가 거의 갖춰졌다. 원래 공기밥에는 된장찌개가 같이 나온다고 하는데, 주문이 좀 밀려 있어서 이 사진 찍은 후에야 나왔다.
찌개가 나오든 안나오든 나한테는 크게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먹기 시작했다. 부산에 간 이후로 이제 생마늘도 고기랑 싸서 먹으면 어느 정도 먹을 수 있게 됐는데, 특히 기름진 부위가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싸먹어야 느끼함을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된장찌개도 나왔다. 그냥 두부와 애호박, 무, 파를 넣어서 끓인 단촐한 식사용이었는데, 다만 고기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이건 좀 남겼다.
상추가 다 떨어져갈 즈음에는 깻잎에도 싸먹어봤다. 다만 풋고추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약오른 것을 잘못 먹고 화닥거리는 게 두려워서 쌈채소는 상추와 깻잎 두 가지만 손을 댈 수 있었다. 그나마 간장절임 고추는 별로 맵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한 상을 비웠다. 솔직히 그 당시 먹성으로는 1인분 더 시켜서 먹을 수도 있었지만, 전날 과식한 후유증도 있고 해서 자제하기로 했다. 주위의 의견 대로 좋은 질의 고기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주문한 즉시 석쇠에 바싹 구워 내놓는 고기라는 점에서 충분히 식욕이 동하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2인분을 먹어볼...수 있으려나?
다만 내 예정대로 진행한 일정은 대충 여기까지였고, 그 뒤로는 이런저런 트러블의 연속이었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