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공원행을 포기한 뒤 배터리가 떨어져가며 '배고파' 라는 경고음을 연발하던 스마트폰 충전도 시켜줘야 했고, 또 버스에서도 와이파이가 잡히는 신기한 경험을 했지만 개인정보 유출의 달인 KT망을 쓰는 내게는 별 상관이 없던 터라 결국 어느 PC방을 찾아가 시간을 때우니 어느 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광주에 오면 꼭 먹는 게 시장 국밥인데, 예전까지는 남광주시장 쪽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대인시장을 택했다. 금남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통 시장인데, 다만 남광주시장과 달리 이 시장의 국밥 골목은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고 위치도 좀 시장 변두리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 여러 정보를 얻은 광주 현지인의 블로그 서술에 따르면 대인시장 국밥 골목은 이제 너댓 개만 남은 채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는 탄식조 위주였는데, 물론 직접 가서 확인해본 결과 갯수는 정말 그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갯수가 적어진 데 반해, 각 국밥집은 대개 식사 공간과 조리 공간을 두어 군데나 두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그 블로거가 쓴 것처럼 큰 쇠락의 이미지까지 주지는 않고 있었다.
아무튼 그 국밥집들 중에서 어딜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선일식당이라는 곳을 잡기로 했다. 전통 시장 상권 활성화 등의 명목으로 요즘 시설 현대화와 더불어 예술인들을 시장에 상주시키는 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직접 찍지는 못했지만 여기서도 피카소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문에 그려져 있었다.
여느 국밥집과 마찬가지로 실내는 약간 어수선한 편이었는데, 단체 술손님들이 막 떠나간 뒤라서 손님은 나 외에 2인 1조 두 팀 정도로 단촐했다. 아주머니 혼자 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일단 내가 앉을 식탁을 같이 정리한 뒤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에서 내가 고른 건 특국밥이었지만, 정작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 했을 때는 내가 먹은 게 그냥 국밥이라고 했다. 어수선한 상을 치우면서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쨌든 그냥 국밥이라고 해도 내용물이 많이 부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선 밑반찬이 담긴 쟁반을 받았는데, 들깨가루를 미리 넣어주는 게 아니라 취향껏 넣을 수 있도록 따로 내온 것이 눈에 띄었다. 또 특이하게 소금을 같이 줬는데, 다만 국밥 간은 새우젓으로 하는 게 취향이라 쓸 일은 없었다. (새우젓은 밥과 같이 나왔다.)
그리고 주연인 국밥 그릇이 나왔고,
공기밥과 사진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새우젓 종지까지 나와서 세팅이 완료되었다. 기본적으로 밥이 토렴되어 국밥 그릇에 같이 담기고 밥 따로 국 따로 먹으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남광주시장식과 달리, 여기서는 아예 기본이 따로국밥 스타일이었다.
대인시장 국밥이 다 그런 건지는 아직 모르지만, 여기는 남광주시장과 달리 국밥에 콩나물을 넣지 않았다. 대신 마치 부산의 돼지국밥처럼 부추를 많이 넣어주는 스타일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는 육물은 머릿고기와 곱창, 염통, 오소리감투 등 내장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남광주시장의 그것과 비슷했다.
다대기를 풀어주면서 저어 보니 꽤 양이 많아서, 특국밥이라고 착각할 만도 했다. 다만 새끼보 같은 특수 부위는 보이지 않았는데, 특국밥도 비슷한 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문제는 따로국밥 스타일이라는 차이점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밥을 말면서 생겼다. 국물 양이 많은 데도 바로 공기밥을 다 말아버리면서 국물이 흘러넘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우선 국물을 어느 정도 들이켜 사태를 진정시키면서(...), 또 들깨가루를 적당히 넣어가며 국물의 점도도 조절하면서 천천히 국밥 그릇을 비워 나갔다.
특국밥이라고 착각하고 먹기는 했지만, 그냥 보통 국밥의 맛도 괜찮은 편이었다. 터프하고 진한 스타일의 남광주시장과 달리, 여기서 먹은 국밥 맛은 첫 인상에서 느낀 대로 좀 더 깔끔하고 담백한 편이었다. 이 지역의 시장마다 각기 국밥의 특색이 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렇게 국과 밥을 모두 비우고, 계산을 하면서 서로의 착오를 확인한 뒤 나왔다. 이제 숙박 장소를 결정해야 했는데, 원래대로라면 이 시장 근처의 모텔 하나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아예 처음 가는 곳을 택해야 하는 지, 이미 한두 번 묵어서 검증된 장소를 잡아야 하는 지를 놓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남광주시장 쪽으로 가서 예전에 묵었던 시장 근처의 모텔을 잡기로 했다.
주말이라 숙박비에 가산 요금이 붙기는 했지만, 타지보다는 저렴한 편이었고 또 예전에 묵었던 방과 똑같은 곳을 줬기 때문에 일단 만족스러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동인 행사를 보기 위한 다음 날 일정을 시작했는데, 다만 이것도 예정 보다는 좀 꼬인 상태로 시작했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