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택시나 택배 기사들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이곳 저곳을 차로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이면 하루에 적어도 한 번 하게 되는 게 '외식' 이다. 물론 거창한 외식은 아니지만, 바쁜 와중에 먹는 재미가 없다면 그것도 꽤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블로거들이 떠드는 맛집 같은 걸 믿지 말고 기사들이 이야기하는 곳을 찾아가라' 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직접 차를 몰지는 않지만, 그런 계통의 일을 쭉 해오면서 나도 이런 소소한 '외식' 의 즐거움을 여러 차례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경양식 계통의 집도 또 한 군데 있었는데, 비록 지하철로부터 멀리 떨어진 편이라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굳이 찾아가게 만들었다면 내 눈과 입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장한평역 3번 출구 쪽에서 2112번과 2233번의 면목동 방면 차를 타고 장안동근린공원에 내리면 되는데, 물론 역에서 버스 타는 거라고 하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저 두 버스가 이 지역을 지나갈 때는 상당히 복잡한 동선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디 방면으로 가는 지 확실히 알고 타야 하므로 초행길인 사람이 방문하기는 확실히 까다로운 편이다. 나도 혼자 처음 갔을 때는 이것 때문에 꽤 엿을 먹기도 했으니까.
다닥다닥 붙어있는 편은 아니지만, 이 곳도 기사식당이 꽤 여러 군데 있고 여기도 그 중 한 군데다. 여느 기사식당이 그렇듯, 음식들의 가격은 대충 5000~7000원대로 고정되어 있다.
메뉴는 이렇게 '경양식' 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하러 갔을 때 여기서 처음 먹어본 것은 돈까스였다. 다만 이동 시간을 줄여가며 먹는 것이었던 만큼 특을 주문해 여유있게 먹성을 과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혼자 처음 갔을 때야 비로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집게가 꽂혀 있는 오른쪽 통에 담긴 건 깍두기인데, 먹을 만큼 직접 덜어먹도록 되어 있다.
뭘 시키든 간에 먼저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나온다. 단무지 옆의 빈 접시가 깍두기용이고, 수프는 흔히 맛볼 수 있는 밀가루맛 크림 수프다. 수프 외에 콩나물국이 같이 나오는 것도 꽤 이채로웠다. 여름에는 콩나물국 대신 오이냉국이 나온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렇다면 나는 100% 물릴 수밖에 없겠지만...
그리고 밥과 돈까스가 나오면서 식사 준비 완료.
돈까스는 보통을 먹었을 때도 꽤 든든했기 때문에, 특은 어떨까 하면서 칼질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처음 다루던 때라 폰카의 촛점을 맞추는 것이 상당히 서툴렀기 때문에 화질은 상당히 별로지만, 고기를 얇게 펴서 튀겨내는 '한국식' 돈까스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얇게 폈다고는 해도 너비 자체는 꽤 넓었고 또 특으로 주문했으니 다 먹고 나면 꽤 배가 불렀다.
그렇게 무난한 첫 끼니를 때웠는데, 아주 특출나게 훌륭하지는 않다고 해도 흔히 기대할 수 있는 한국식 돈까스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이 가게를 계속 찾게 만들었다. 물론 계속 가면서 다른 메뉴도 먹게 됐는데, 두 번째 갔을 때는 함박스텍을 먹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특으로.
소스는 돈까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메뉴들과 마찬가지로 데미글라스 소스였다. 두 덩어리가 나왔는데, 보통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보통은 어떻게 나오는 지 모르겠다.
한 덩어리 위에는 함박의 베프라고 할 수 있는 달걀프라이도 얹혀 나왔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한 함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집 함박이 꽤 특이한 건 일단 구워낸 뒤 겉을 살짝 튀겨서 내온다는 데 있다. 그래서 썰어서 입에 넣어 보면 의외로 첫 식감은 딱딱한 편인데, 내가 가 본 여러 경양식 계통 식당 중 함박을 이렇게 조리해 내놓는 집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부드러운 식감의 함박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런 게 있구나' 하는 느낌은 받았지만 다른 까스류 보다는 좀 덜 찾게 된다.
물론 먹성은 여전해서 식감이고 뭐고 상관 없이 다 먹어치웠는데, 다음에 노린 건 생선까스였다.
생선까스 특 한 상. 특이다 보니 다섯 조각이 나왔는데, 양만 따져 보면 다른 까스류나 함박에 꿀릴 것이 없었다.
다만 소스의 경우에는 그냥 데미글라스를 썼기 때문에, 만약 하루이틀 주기로 연속으로 가서 먹는다면 좀 물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야 주중의 일이 끝나는 금요일 밤마다 찾아갔으니 그럴 일은 없었지만.
어째저째 해서 처음 제대로 촛점이 맞춰진 짤방. 생선은 아마 명태살 포뜬 것을 쓰는 것 같은데, 가시 같은 것이 걸리지 않아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올클리어. 이제 남은 건 정식과 비후까스였는데, 물론 단품 위주로 노렸기 때문에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비후까스 상차림. 물론 특으로 주문했는데, 정식 특과 함께 이 집 최고가 메뉴다.
겉보기에는 그냥 돈까스와 다를 바 없는데, 세 장 가량을 겹쳐서 올린 게 꽤 푸짐해 보였다. 물론 돈까스에서 이미 예감했기 때문에, 고기 두께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기로 하면서 썰기 시작했다.
다 썰어놓은 뒤. 예상대로 고기 두께는 얇았다.
고기는 여타 저가형 비후까스들과 마찬가지로 다소 질긴 맛이 강한 편이었는데, 또 쇠고기라는 특성 상 뜨거울 때 먹어야 이런 게 덜한 편이다. 물론 먹어가면서 식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입에 우겨넣으며 후다닥 먹었다.
여느 때처럼 뚝딱 먹어치웠는데, 다만 쇠고기보다는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또 비후까스를 돈까스의 서자(???) 취급하는 내 취향으로는 딱히 가격대 차이가 아니더라도 아무래도 돈까스 쪽에 더 눈길과 입맛이 동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가격대로 먹을 수 있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편이었고, 또 기사들이 주 고객층인 만큼 평일에는 자정까지 오래 문을 열기 때문에 야근을 끝내고 가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여느 기사식당이 그렇듯 음식 회전율이 활발하지 않을 때 가면 다소 미지근한 것이나 기름에 쩐 것을 먹을 수도 있다. 고상한 칼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에 안찰 수도 있겠고.
물론 기본적으로 먹는 입이 싼 편이고, 또 아주 망한 게 아닌 이상 감사히 먹어치우는 내게는 또 한 곳의 박리다매 경양식당을 찾았다는 즐거움이 더한 편이었다. 다만 요즘은 돈까스 보다는 갑자기 일본식 라멘이나 차항(볶음밥)이 땡겨서 이 쪽을 주로 노리고 있는데, 물론 돈에 여유가 있어서 할 수 있는 짓이다. 일단 홍대 근처에서 먹은 닭곰탕/닭칼국수와, 또 그 사이에 먹어치운 이런저런 것들을 우선 정리해 합본으로 쓴 뒤에 다룰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