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라면은 인스턴트 라면을, 라멘은 일본식 라면을 가리키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둘째 치더라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조차 접객 인사를 일본어로 하는 등 일본식 컨셉을 잡고 운영하는 곳이 많다. 그 덕에 '일본인도 아닌데 왜 굳이 일본인 행세까지 하느냐' 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소위 '힙스터 문화' 가 상당히 눈에 띄는 홍대 쪽은 온갖 이국적인 음식들의 흥망성쇠를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실제로도 내가 일본식 라멘이나 카레를 '제대로 잘' 먹어본 곳 중 한 군데도 이 쪽 동네였다. 하지만 이런 가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리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인데, 얼마나 오래 존속할 지는 모르지만 홍대 쪽에서 유명하다는 부탄츄를 가보게 된 것도 올해 4월 들어서였다.
사실 부탄츄는 이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원래 가보려고 했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돌아선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무지가 가까운 덕에 혼자서 먼저 가서 음식을 맛보고 이후 지인을 결국 끌어들여(?)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일이 늦게 끝나는 것이 오히려 인파의 홍수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부탄츄 홍대점. 이 포스팅을 하고 있는 현 시점에는 꽤 장사가 잘 되는지, 신촌 쪽에도 분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먼저 가본 쪽은 여기였다. 들어가니 '이랏샤이마세~!' 라는 인사가 크게 터져나왔는데, 다만 주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유심히 들어보니 일본인은 분명 아니었다. 역시 여기도 일본식 가게라는 '컨셉' 유지를 위해 간단한 대화는 일본어로 하는 집이었다.
컨셉이야 아무래도 좋았고, 우선 뭘 먹을 지 메뉴부터 봤다. 내가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이 곳의 간판 메뉴가 라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진한 톤코츠라멘이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제일 터프하다는 토코톤코츠라멘을 골랐다.
면발도 지정 가능했는데, 인스턴트 라면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것과 매우 비슷해 보이는 치지레멘을 골랐다. 그리고 여기에 차슈와 아지타마고를 추가해 주문 완료. 라멘 한 그릇에 9500원이라는 꽤 큰 돈을 지불했는데, 그나마 쭉 일을 해서 모은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배짱' 이었다.
숙주와 파의 토핑은 무료라고 하는데, 다만 이런 문제가 있으니 신중하게 해달라는 뉘앙스의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사실 느끼할 것 같아서 숙주라도 더 추가하고 싶기는 했지만, 구원투수 격 반찬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퉁치자고 생각했다.
톤코츠가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계절 메뉴 비슷하게 탄탄멘도 시작했다고 붙어 있었고, 왼쪽 밑에는 치킨난방이라는 것도 새로 시작했는 지 따로 붙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아직까지 먹어보지는 못했다.
생맥주 피처에 갖다주는 물을 제외하면, 여느 일본 라멘집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셀프라 이렇게 탁자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 뭔가 신경쓰이는 스테인리스 찬합에는,
이렇게 잘게 썬 김치가 들어 있었다. 나는 한국 라면 먹을 때도 김치나 단무지를 잘 먹지 않지만, 이 곳의 라멘을 먹을 때는 꼭 필요한 밑반찬이었다.
그리고 좀 있다가 나온 토코톤코츠라멘. 국물 색깔만 봐도 상당히 진하고 느끼해 보였는데, 실제로 먹었을 때의 느낌도 그랬다.
면발을 보기 위해 살짝 뒤섞어본 뒤. 예상 대로 면발의 모양이나 식감은 인스턴트 라면과 비슷했는데, 나는 이게 오히려 더 먹기가 편해서 이후 주문한 라멘의 모든 면은 치지레멘으로 택했다. 추가한 차슈의 경우 그릇에 빙 둘러붙였을 때는 제법 많아 보이지만, 사실 두께는 상당히 얇다.
그래도 느끼한 걸 잘 먹는다고 자부해온 나였지만, 반 정도 비우자 확실히 느끼함과 진함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라멘을 김치에 싸서 드셔보세요' 풍으로 김치를 꽤 많이 곁들여 먹었는데, 늘 청라멘만 먹었던 하카다분코에서도 못먹어 본 진짜 진득한 톤코츠를 여기서 처음 먹으며 '꽤 호불호가 갈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김치의 지원을 받아가며 한 그릇을 비웠다. 워낙 기름져서 그런 지 속은 든든했지만, 부작용인지 집에 가서는 설사를 좀 했다.
이렇게 고된 신고식(?)을 치른 지 5일 만에 또 신촌점으로 가봤는데, 물론 직영 분점이니 맛이나 컨셉에서 차이는 없었다.
다만 이 곳은 홍대 본점과 달리 혼자 가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물론 본점에도 작게나마 창을 마주한 일렬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신촌점에는 주방을 둘러싸는 형태로 더 길게 되어 있어서 좀 더 널찍했고 조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면사리와 공기밥을 공짜로 추가해준다고 되어 있었지만, 정작 이용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만큼 이 곳의 톤코츠가 진하고 기름졌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너무 진하다고 느낀 토코톤코츠 대신 '깔끔한 맛' 이라고 된 쇼유톤코츠로 골랐다. 토핑 추가나 면의 형태는 홍대의 그것과 똑같이 했다.
다만 깔끔한 맛이라는 것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어서, 일단 보증(??)을 위해 김치를 덜어 놓았다.
주문한 쇼유톤코츠라멘. 흐릿한 조명 때문에 좀 맛없게 나온 홍대와 달리, 신촌점은 바로 위에 조명이 있어서 그런 지 사진빨이 훨씬 잘 받는 편이었다.
물론 음식에서 차이는 발견하지 못했다. 얇게 저민 차슈와 꼬들꼬들한 면발도 그랬고. 다만 국물은 확실히 토코톤코츠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돼지 육수가 기본인 만큼 결국 이 라멘도 반 가량 먹었을 때부터 김치를 입에 넣어 가며 균형을 맞춰야 한 건 비슷했다.
그렇게 이 라멘도 조금 힘들게 비워냈다. 이렇게 두 번 먹은 뒤, 너무 자주 가면 물릴 까봐 세 번째 방문은 좀 시간을 두고 4월 말에 했다. 이번에는 다시 홍대로 갔다.
이번에는 다시 진한 걸로 가보자며 토코시오톤코츠라멘을 골랐는데, 따로 토핑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일본식 볶음밥인 차항이 같이 나오는 세트를 골랐다. 그저 볶음밥이 같이 먹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한 주문이었지만, 이게 이후 내 주문 행태에 큰 변화를 주게 되었다.
담백한 맛이라고 되어 있기는 했지만, 토코시오톤코츠도 내 입에는 상당히 진하고 느끼했다. 물론 이 방면의 지존 급이라는 토코톤코츠 만큼은 아니었지만, 결국 김치가 들어가야 한 건 비슷했다.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던 게 볶음밥이었는데, 물론 라멘용 차슈 썰면서 나오는 자투리 고기에 파와 달걀 만으로 단순하게 볶은 것이었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볶음밥 하면 군침을 삼키는 나의 염통에 니코니코니직격탄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신촌점으로 가서 아예 라멘은 제껴두고 볶음밥을 주문했다. 다만 좀 허전할 것 같아서 교자도 같이 주문했다.
역시 사진빨은 신촌점이 더 잘 받았다. 다만 볶음밥 옆에 예상치 못한 게 같이 나와서 좀 벙쪘는데, 바로 초생강(베니쇼가)이었다. 결국 교자 접시 한켠에 덜어내고 먹어야 했다. 초생강 외에는 특이하게 김이 한 장 곁들여져 나왔다.
교자는 비록 볶음밥 만큼의 강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난한 편이었다. 너무 딱딱해지지 않게 잘 구워내서, 딱딱한 식감이 되기 쉬운 군만두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 취향에도 비교적 괜찮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후에도 내 볶음밥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노동절 이튿날에는 신촌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볶음밥과 교자를 시켜 먹었다. 이번에는 베니쇼가를 확실히 빼달라고 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사진빨이 여전히 안받기는 하지만, 본점도 볶음밥의 양이나 질에 있어서 차이는 없었다.
교자도 마찬가지였고. 이렇게 해서 라멘집에 볶음밥을 먹으러 가는 한 중년 남자의 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주일 후에도 다시 신촌점에서 똑같은 주문으로 한 끼를 기분좋게 해결했다. 이번에도 베니쇼가는 뺐다.
고슬고슬하게 잘 볶은 볶음밥과,
노릇노릇하게 잘 지져낸 교자는 김치의 도움을 바라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6월 까지는 꽤 자주 가서 볶음밥 혹은 볶음밥+교자를 먹었다. 다만 이후 날씨가 더워지면서 식욕이 다소 감퇴하고 일에 치여 사느라, 또 먹는 것 대신 음반이나 여타 물품에 투자하느라 식도락 재미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방문이 뜸한 실정이다. 다만 오랜 침묵 기간 동안 몇 군데를 더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포스팅할 거리는 어느 정도 있고, 또 한 데 묶어서 정리할 먹부림 사진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길게 끄적이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