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음악 하면 흔히들 알아주는 분야가 바로 성악 쪽이다. 실제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라는 두 가지 중요 장르가 탄생한 나라이며, 많은 이탈리아 유학도들의 전공이 성악 쪽이라는 것도 이러한 '주류' 의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성악 말고도 기악이나 작곡 등을 배우러 유학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빼먹으면 안됨)
하지만 이탈리아 작곡가들이라고 줄창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칸타타, 칸초네 같은 '성악곡' 만 쓴 것은 아니다. 로시니는 여섯 곡의 현악 소나타를 남겨 수많은 현악 합주단들의 도전 과제로 만들었으며, 베르디나 푸치니도 현악 4중주나 관현악곡 등을 남긴 바 있다. 다만 이들 작곡가들이 주력했던 장르가 오페라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러한 대세는 꽤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물론 오페라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기악 분야를 전문으로 삼아 곡을 쓰는 작곡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세기 초반에는 걸출한 기악-특히 관현악-작곡가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였다.
레스피기는 볼로냐 태생으로,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에 입문했다. 커서는 바이올린과 주법이 비슷한 비올라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고향의 리세오 음악원에서도 계속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전공하는 한편 작곡도 배웠다. 작곡 스승은 주세페 마르투치(Giuseppe Martucci)라는 인물이었는데, 레스피기보다 이전부터 기악 전문 작곡가를 표방한 인물이었다.
마르투치의 기악 친화적인 창작 자세가 젊은 레스피기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음악원 졸업 후 1900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유학갔을 때도 주 목적은 관현악법의 대가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학비도 벌 겸 러시아 황실극장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도 켜긴 했음)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레스피기는 연주 활동 보다는 작곡과 교육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게 됐는데, 특히 이탈리아에서 가장 열세였던 교향시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겼다. 바로 '로마 3부작' 이라고 불리는 교향시들인 '로마의 분수' 와 '로마의 소나무', 그리고 '로마의 축제' 였는데, 이들 레퍼토리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널리 연주되고 녹음되는 곡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오페라를 아예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던 스승 마르투치와 달리 레스피기는 오페라 분야에도 작품을 여러 편 남겼던 것이 차이점인데, 오페라 작품들은 나름대로 성공한 것들도 있었지만 대개 미온적인 반응을 얻고 레퍼토리에서 빠지면서 잊혀지고 말았다. 그나마 최근에야 몇몇 작품들이 리바이벌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몰두한 작품도 오페라인 '루크레치아' 였던 것을 보면 오페라를 홀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레스피기는 '3부작' 의 첫 곡인 '로마의 분수' 를 쓰기 전에도 여러 편의 관현악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는 교향곡도 있었다. 스승이었던 마르투치도 교향곡 두 편을 남겨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미국에 소개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는데, 레스피기도 내심 기악 분야의 최고봉이라는 저 장르에 욕심을 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극적 교향곡(Sinfonia drammatica)' 이라는 3악장짜리 작품인데, 표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개별 악장들에 표기된 것은 일상적인 속도나 표정 지시 뿐이고, 구체적인 내용의 제목이나 주제를 암시하고 있는 지시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레스피기는 당시 관현악 장르를 작곡하면서 동시대 작곡가들의 양식을 이것저것 흡수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는데, 특히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뷔시 등의 음악이 주요 관심사였다.
이 곡에서도 위 세 작곡가들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고 있는데, 당시 이탈리아 음악계 사정으로 비춰볼 때 대담하게 1시간 가량이나 되는 대규모 교향곡을 (더군다나 파이프 오르간까지 포함하는 대편성 관현악용으로) 작곡한 것은 아마 말러를 벤치마킹한 것 같다. 그리고 관현악법에 있어서는 스승들인 마르투치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가르침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작품들이 참고 대상으로 쓰인 것 같고.
그리고 느린 중간 악장에서도-물론 레스피기 자신의 이탈리아 혈통 때문인지 나름 '노래' 가 부각되기는 하지만-드뷔시 풍의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데, 그래서 상당히 여러 배경과 장르, 작곡가들의 영향력이 복잡하게 얽혀들어간 곡이 되었다. 거기에 이후 '옛 춤곡과 아리아' 에서도 보여지는 중세/르네상스 음악에 관한 관심도 선법(mode) 사용 등을 통해 충분히 엿볼 수 있고.
하지만 이러한 '혼합' 이 그다지 좋은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 같은데, 이 곡을 쓴 뒤로 레스피기는 더 이상 교향곡 작곡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처럼 묘사적인 교향시 분야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러면서 이 교향곡은 거의 잊혀져 연주 기회도 없는 '듣보잡' 이 되고 말았다.
사실 이 대규모 작품에는 전체를 단단히 결속시켜주는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인데, 어떤 때는 서로 다른 성격의 교향시 세 편을 연속으로 듣는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그러나 레스피기가 '로마 3부작' 에 이르기까지 행했던 시행착오의 흔적을 확실히 느낄 수 있고, 지금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이탈리아의 대규모/대편성 교향곡 작품이라는 희소 가치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곡의 작곡이 완료된 해가 1914년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날로 심각해지는 전쟁의 기운을 레스피기가 느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 거대한 교향곡의 대단원이 전통적인 해피 엔딩이 아니라 무겁고 비통한 장송 행진곡이라는 것은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 1999 HNH International Ltd.
이 곡을 처음 음반화한 회사는 낙소스(Naxos) 산하의 희귀 레퍼토리 전문 서브 레이블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였는데, 슬로바키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Slovak Philharmonic Orchestra)를 기용해 1986년에 녹음했다. 지휘는 인도 출신의 다니엘 나자레스(Daniel Nazareth)가 맡았는데, 당시 낙소스의 녹음 실력은 그다지 뛰어난 편도 아니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력 면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이리저리 까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낙소스를 통해 재발매되어 있고, 지금도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음원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위 짤방은 낙소스 발매 CD 커버임)
ⓟ 1993 Chandos Records Ltd.
낙소스 것보다 평이 좋은 물건은 영국 음반사 샨도스(Chandos)에서 나온 것인데(위 짤방 참조), 맨체스터 소재 악단인 BBC 필하모닉(BBC Philharmonic)이 에드워드 다운스(Edward Downes)의 지휘로 1992년에 녹음한 음반이다. 두 음반 모두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서 서비스되고 있는데, 비교해 들어보니 다운스의 것은 나자레스보다 템포 운용이나 악단의 음색 면에서 좀 고지식하다고 생각되긴 해도 전체적인 합주력이나 표현력은 더 탁월했다. 특히 느린 템포로 준엄하게 연주된 마지막의 장송 행진곡은 묵직한 저음의 위력과 함께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음반으로 갖고 있는 것은 낙소스인데, 샨도스도 지름 계획이 있긴 했지만 원체 저 회사의 CD가 비싼 데다가 재고도 별로 없어서 보류 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지를 예정이고. 중고음반점의 기적도 바라고 있는데, 그나마 샨도스 음반은 중고음반점에서 가장 찾기 힘든 물건이라는 점도 문제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