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한창 히피 문화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떠들썩할 때, 특히 그 히피들이 정신적인 원류 혹은 배움터로 자주 언급한 나라가 바로 인도다. 불교와 힌두교라는 종교의 발상지이자 동양철학의 큰 줄기에 있는 나라인 만큼 그런 경외감이 생긴게 당연할 지도 모르는 일인데, 물론 이런 시각이 항상 공정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인도라는 나라가 가진 그런 '경외감' 은 심지어 히피가 아닌 클래식계 유명 인사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가령 카라얀 같은 경우에는 자기 선전의 일환으로 요가를 배우기도 했다. 그의 라이벌이었던 첼리비다케도 집에 인도산 부처상을 모셔놓기도 했고, 철학에 관해 논할 때 후설의 현상학 외에도 인도 철학의 개념들을 섞어가며 난해한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나 미국 작곡가 헨리 카웰 등은 인도 전통음악을 연구한 성과를 자신들의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물론 그 당시 권위주의적인 독재 체제가 지배하고 있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런 히피 문화가 자생은 커녕 제대로 수입도 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서방으로 흘러들어간 인도 문화나 철학의 유행도 아주 미미했다. 그나마 요 몇년 전에 달러 멘디의 '투낙 투낙 툰' 이 '뚤훍뚤훍뚥 따다다~' 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한국어 독음판으로 번역(???)되어 퍼지면서 좀 뒤틀리고 비비꼬이긴 했지만 인도 대중음악의 한 유파인 '방그라' 를 한국에 소개했다는 나름대로의 '업적' 이 있던 게 기억나고.
아무튼 히피가 한창 유행일 때 서방에 같이 흘러들어간 인도 음악 중 라비 샨카르(Ravi Shankar, 1920-)의 시타르 연주가 특히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힌, 플루티스트 장-피에르 랑팔, 샤쿠하치 주자 야마모토 호잔, 고토 주자 미야시타 무스미 등 세계 각국의 유명 연주가들과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명성에 힘입은 것이었다.
샨카르는 인도가 아직 영국 식민지였던 1920년에 바라나시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시타르를 배우기 시작해 1930년대부터 형인 우다이 샨카르의 무용단에서 반주를 맡기도 했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은 194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고, 연주 외에도 스스로 영화나 무용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거나 전 인도 라디오(All Indian Radio, 약칭 AlR)의 음악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 해외로 연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1956년에 처음으로 유럽에서 리사이틀을 가지면서 서구에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의 점령국이었던 영국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에든버러 음악제 같은 영국 유수의 음악 축제에서도 연주회를 가질 정도였다.
1960년대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공연하기 시작했는데, 몬테레이 팝 음악제라던가 락 매니아라면 성지나 마찬가지인 우드스탁 등에서까지 연주할 정도의 거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에 쓴 대로 대중음악이건 클래식이건 타국의 전통음악이건 간에 다방면의 음악인들이 샨카르와 여러 차례 공동 작업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시타르라는 악기도 꽤 대중화 되었는데, 심지어 일렉 시타르까지 개발되어 대중음악에서 종종 쓰이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샨카르 자신도 역으로 서양 음악에서 받은 영향으로 두 곡의 협주 작품을 쓰기도 했는데,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들이다.
샨카르가 작곡한 첫 번째 협주 작품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시타르 협주곡' 인데, 시타르와 서양 관현악을 합주시킨다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첫 번째 작품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조성이나 리듬 체계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고, 인도 전통 음악의 두 가지 중요 기본 개념인 라가(rāga. '토리' 에 해당)와 탈라(tala. '장단' 에 해당)를 밑바탕에 깔고 영화음악과 재즈 등에서 받은 영향을 첨가해놓고 있다.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수많은 민족들이 모여 있는 곳인 만큼, 전통 음악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들도 종류가 엄청나게 많고 다채롭다. 그래서 라가나 탈라의 종류도 수백 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라가의 경우에는 서양의 12음 평균율처럼 균등하게 음들이 나누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오선보로 표기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후속작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곡에서 샨카르는 네 개 악장의 표제를 각 악장에서 주로 사용한 라가의 명칭으로 붙이고 있다. (2악장과 3악장은 쉼없이 연주됨) 인도 전통 음악에서도 라가의 명칭이 그대로 곡 제목으로 붙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라가를 기반으로 연주자가 즉흥으로 연주하는 음악이 그렇다.
그리고 특이하게 시타르 외에 봉고 한 쌍이 독주자를 서포트하는 역할로 편성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 시타르 음악에서 쓰이는 타블라라는 북의 역할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4악장에서는 관현악의 타악기 주자들과 화려한 인터플레이를 하기도 하는데, 물론 전체적인 흐름은 시타르 독주가 이끌고 있다.
협주곡은 1971년 5월에 런던에서 EMI에 의해 녹음되었는데, 봉고에는 테렌스 에머리(Terence Emery)가 참가했고 앙드레 프레빈(André Previn)이 지휘하는 런던 교향악단이 협연했다. 프레빈은 예전부터 뮤지컬이나 재즈 등 대중음악 영역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던 만큼, 그 개방적인 사고 방식이 협업을 가능케 한 것 같다.
이 작업이 호평을 받자, 1980년대 초반에 후속작으로 '라가의 영예' 라는 뜻의 '라가 말라(Rāga Mālā)' 라는 제목을 가진 협주 작품을 하나 더 발표했다. 이 작품 역시 서양 관현악과 협주하는 4악장제 작품이라는 컨셉은 전작 협주곡과 비슷했는데, 다만 규모가 더 커져 50분대에 이르는 대곡이 되었다.
전작이 시타르의 주도로 이끌어지던 곡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관현악의 비중을 좀 더 높여 균형을 맞추려 한 것 같다. 팀파니 페달을 이용한 글리산도와 윈드 머신 등 의음 악기도 사용하고 있고, 별도의 타악 독주자를 쓰지 않는 대신 관현악의 타악 주자들에게 솔로 혹은 합주로 단독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악구를 부여하고 있다.
라가 말라는 1982년 3월에 마찬가지로 런던에서 EMI가 녹음했고, 주빈 메타(Zubin Mehta) 지휘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메타는 남인도 출신 지휘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선택된 것 같은데, 전작보다 더 다이내믹한 관현악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곡 전체의 응집력은 전작만큼은 못하다는 느낌인데, 더 커진 스케일에 비해 나열적인 구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통일성이 흐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 1998 EMI Records Ltd.
두 협주곡 모두 EMI의 포르테(forte) 시리즈로 출반되었는데, 2 for 1이라는 적절한 가격으로 팔고 있어서 어렵잖게 입수할 수 있었다. 협주곡 외에도 랑팔이나 메뉴힌과 같이 녹음한 곡들도 수록되어 있는데, 샨카르의 EMI 녹음 모두를 싣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골고루 들을 수 있다는 충분한 장점이 있다. (그리고 포르테 시리즈 폐반 후에는 역시 같은 성격의 시리즈인 제미니(Gemini) 시리즈로 재발매되어 있다.)
샨카르는 지금도 8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데, 2006년에 왼쪽 어깨의 부상으로 일정을 취소한 적은 있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 올해에는 인도 공연 외에도 3월과 6월에 유럽 순회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예전부터 그랬듯이 딸인 아누슈카 샨카르와 같이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