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이베르: 축전 서곡
기원2600년 봉축 교향악단/야마다 코사쿠
(일본 콜럼비아 S3007-8. 1940년 녹음)
베레슈 샨도르: 교향곡
기원2600년 봉축 교향악단/하시모토 쿠니히코
(일본 콜럼비아 S3009-11. 1940년 녹음)
이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음원. 해당 포스팅에 지겨울 정도로 길게 늘여썼으므로 짧게 툭 던지자면;
"이딴 데다 쓸 재능이 아니었을 텐데?"
정식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라 방송녹음이었기 때문에, 음질은 다른 음원들보다는 좀 떨어지는 편이다. 연주회 때의 대편성 그대로 방송에 임했기 때문에 전체 합주의 강음 부분에서는 소리가 뭉개지기 일쑤고, 게다가 당시 일본의 막장 전시 경제 상황 때문에 출반되는 음반들 자체도 품질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그것도 원인일 듯.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이구치 모토나리/도쿄 교향악단/사이토 히데오
(일본 빅터 VH4086-90. 1943년 녹음)
2집의 베토벤 로망스와 마찬가지로 전쟁이 패전으로 가닥이 잡혀가던 시기의 녹음. 하지만 약 8분 가량의 로망스와 달리, 이 음원은 본격적인 협주곡 녹음이다. 악단과 지휘자는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하지만, 피아니스트는 따로 써둘 필요가 있다.
이구치는 이브 나트에게 배운 프랑스 유학파로, 훗날 사이토와 함께 도호음대를 설립하고 학장도 역임하는 등 전후 일본 음악계의 재건에 큰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피아노 악보 편집도 많이 했는데, 현재 한국에서 태림출판사 판본으로 구할 수 있는 피아노곡 악보의 상당수가 이 사람의 편집이라고 되어 있을 정도다.
연주 스타일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처럼 손을 높이 치켜들어 중력으로 타건하는 계통이었다는데, 그래서 현이 끊어져라 꽝꽝 때려대기만 한다는 등의 악평도 자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녹음만 들어봐서는 얼마나 강한 음량을 자랑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당시 녹음 기술의 한계도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얌전하게' 연주한 듯. 음질은 원판 SP가 바뀔 때마다 음정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다.
-CD 3- (일본인 음악가 해외 녹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협주 교향곡 K.App.9 (의심작)
에리히 벤츠케/알프레드 뷔르크너/마르틴 칠러/오스카 로텐슈타이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코노에 히데마로
(일본 콜럼비아 J8692~5S. 1937년 녹음)
오쿠 요시이사 또는 하야시 아키모리: 기미가요 (관현악 편곡: 코노에 히데마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코노에 히데마로
(일본 폴리도르 A310. 1938년 녹음)
2집에서도 볼 수 있었던 코노에와 베를린 필의 녹음. 모차르트의 경우 EMI의 독일 지사였던 독일 콜럼비아에서 녹음한 물건이었는데, 여기서는 일본 지사의 SP를 복각에 사용했다고 되어 있다. 독주자들은 아마 당시 베를린 필의 수석들로 추정되고, 2집의 하이든 협주곡에서처럼 반복이 많은 리토르넬로 부분들을 상당 부분 날려버리고 연주했다.
기미가요의 경우 2집에 있는 하이든과 무소륵스키의 음원과 같은 시기에 녹음한 물건인데, 국가를 굳이 녹음한 것으로 봐서는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었음이 분명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 세트에는 없지만, 하이든 작곡의 독일 국가와 나치 당가였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도 같이 녹음했으니 더 이상 말이 必要韓紙?
나치 당가를 굳이 녹음한 것에서부터 잘 드러나지만, 코노에는 1930~40년대에 유럽에서 활동했을 때 제대로 군국주의 추종자의 면모를 보여준 음악인이었다. 하지만 위키피디아 일본판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본 문헌들에서 이를 언급하는 경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데, 음악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흑역사를 덮어두고 쉬쉬하려는 의도인 건지 모르겠다.
세사르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스즈키 신이치/만프레드 구를리트
(일본 폴리도르 40352~5. 1928년 녹음)
유일하게 비관현악 계통 음원으로 주목한 물건. 바이올리니스트 활동 보다는 '스즈키 교본' 의 집필 등 교육 활동으로 더 유명한 스즈키 신이치가 독일 유학 중 만든 첫 녹음이고, 피아노는 훗날 나치의 반유대주의 정책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한 만프레드 구를리트가 맡았다.
일본 바이올리니스트가 처음으로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다는 역사적인 가치가 큰 음원인데, 다만 연주의 질은 그렇게까지 좋다고 보기 힘들다. 스즈키의 독주는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곳곳에서 불안불안한 음정이 나와서 편안히 듣기가 쉽지 않다. 진짜 연주가 미숙해서였는지, 아니면 복각에 사용한 SP의 회전수가 불안정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일본 가가쿠의 명곡을 서양 관현악용으로 개편한 작품인데, 여기서는 음반 수록 시간 문제인지 3분 대로 팍 줄여서 녹음했다. 음질은 그리 좋지 않고, 마이크가 너무 악단에 바짝 붙어있었는지 곡의 부드러운 음색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낙소스의 일본작곡가선집 1집에 실린 누마지리 류스케 지휘의 도쿄도 교향악단 연주가 음질과 연주, 그리고 가격 면에서도 훨씬 나은 선택일 듯.
여담으로, 이 '에텐라쿠' 는 안익태(라고 쓰고 에키타이 안이라고 읽는다)가 1930~40년대 유럽 활동기에 보여준 일빠 행각에 나름대로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기도 하다. 음악적으로만 따져보면 단순한 편곡인 코노에의 것보다는 나름대로 세련되게 창작한 안익태의 '강천성악(이라고 쓰고 환상곡 '에텐라쿠' 라고 읽는다)' 이 다소 나아 보이지만, 가가쿠 원곡으로 작곡된 음악을 세종대왕이 만든 음악이라고 개드립친 것 때문에 무효.
하시모토 쿠니히코: 일본 역사의 노래 두루마리
우에노 음악학교 어린이 합창단/관현악단(상세 불명)/키노시타 타모츠
(일본 콜럼비아 S143~8. 1937년 녹음)
1940년 '황기 2600주년' 의 병크 곡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고 싶은 똥덩어리. 군국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던 일본 정부가 '일본사를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리고자' 촉탁한 작품인데, 물론 코지키와 니혼쇼키의 구랏빨과 선민사상 쩌는 역사를 그대로 주입시키려는 의도였다. 가사는 사이조 야소가 썼다고 되어 있다.
총 12개 섹션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부분인 '신병(神兵): 진구 황후' 는 일본이 백제와 신라, 가야를 정벌해 식민지로 삼았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 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매우 진한 깨진병맛을 풍기고 있다. 촉탁한 일본 정부도 그렇고, 작사가 사이조와 작곡가 하시모토도 그렇고 제대로 정신줄 놓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당시 일본 양악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물건.
추가로 속지에서 우에노 음악학교 어린이 합창단이 당시 일본에서 최고 수준에 있었다고 쓰고 있는데, 이 녹음만 들어 봐서는...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천진난만한 동심이 표현되어 있다고 봐줄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음정과 어긋나는 악구는 빈 소년 합창단 등 ㅎㄷㄷ한 명성의 어린이 합창단들이 들려주는 노래와는 비교하기도 뭣할 정도.
-CD 5- (외국인 음악가 국내 녹음 1)
일데브란도 피체티: 교향곡 A조
기원2600년 봉축 교향악단/가에타노 코멜리
(일본 콜럼비아 S3012-8. 1940년 녹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일본 축전 음악
기원2600년 봉축 교향악단/헬무트 펠머
(일본 콜럼비아 S3019-21. 1940년 녹음)
첫 번째 CD에 이은 '황기 2600주년' 해외 봉축곡들 중 나머지. 음질도 마찬가지이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라고 싶지만, 슈트라우스 녹음의 경우 작곡가가 지정한 '종' 이라는 악기를 진짜 일본 범종으로 간주하고 전국 사찰을 돌며 음정 맞는 종을 구해다가 연주한 병크가 추가로 더해져 있다는 것을 첨언한다. (슈트라우스가 지정한 것은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음악에서 쓰는 작은 크기의 음정 있는 공(gong)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