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여름' 에 무진장 약한 체질이다. 안여돼 오덕형 신체구조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애기 때도 여름만 되면 땀띠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하니 애시당초 궁합이 잘 안맞는 계절인 듯. 더군다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워지는 이 지구상의 여름은 참 견디기 힘들다.
심지어 올해 여름에는 그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왕성해서 문제였던 식욕 마저도 갈증에 자리를 양보할 정도로 그 상태가 심각하다. 동사무소 헬스장에 운동을 가도 얼마 뛰지 않아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는데, 그렇게 운동을 하고 와도 먹히는건 물이지 밥이 아니다.
하여튼 이렇게 먹는 것 마저도 귀찮아지는 계절에는 음식도 차라리 시원한걸 먹어야 하는데, 그래서 어디어디가 있나 하고 눈팅을 한 결과 광화문 쪽의 '미진' 과 삼청동 쪽의 '눈나무집' 두 군데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미진' 의 본점과 분점을 잇달아 찾아가서 먹어볼 수 있었다.
*본점을 갔을 때는 사진을 찍는 것을 잊어버렸고, 아래부터 나올 사진은 분점에서 찍은 것임.
본점은 교보문고에서 미국대사관 쪽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의 오른쪽에 있는데, 요즘은 날씨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많아 평일에도 기다렸다가 들어가 먹는 일도 예사라고 한다. 그래서 '혼잡할 때는 분점도 있으니 그 쪽을 이용해 달라' 는 내용의 현수막을 가게 앞 쇼윈도에 달고 있다.
분점은 종각역 쪽으로 가다 보면 지은지 얼마 안되는 르메이에르 빌딩의 1층 아케이드에 조성된 '피맛골' 에 자리잡고 있다. 점포 분위기로 따지면 분점 쪽이 아무래도 '쌔삥' 분위기가 날 수밖에 없는데, 오래된 노포의 분위기는 당연히 본점 쪽이고.
메밀국수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밀가루가 들어가기는 들어가는 음식인지 6000원이라는 좀 만만찮은 가격 인상이 가해져 있었다. 아무튼 시키고 나서 테이블을 둘러보니, 메밀국수 육수에 꼭 필요한 네 가지-곱게 간 무와 송송 썬 파, 잘게 썬 김, 와사비를 탄 물-가 미리 셋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점에서는 특이하게 탁자 밑의 서랍에서 젓가락을 꺼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물론 나같이 단촐하게 메밀국수만 먹고 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에 보쌈이니 메밀전병이니 해서 거하게 차려먹는 단체 손님들을 위해 수저통 공간도 없앤 것 같았다.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분점에서는 주문한 지 5분도 안되어 메밀국수가 나왔는데, 본점과 마찬가지로 한 판에 두 사리씩 말아놓은 국수 두 판과 양은 주전자에 담긴 육수, 배추겉절이와 단무지가 나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밑반찬은 없어도 됐기 때문에, 본점에서건 분점에서건 손대지 않았고.
메밀국수를 처음 먹어본 것이 을지로3가의 '동경우동' 에서였는데, 그 때는 아예 육수에 셋팅이 된 상태로 나왔었고 더군다나 와사비 맛이 강해서 먹는데 좀 고생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먹는 사람이 입맛에 맞게 알아서 섞어먹을 수 있어서 실수할 염려는 없었고.
일단 육수를 같이 나오는 공기 비슷한 그릇에 절반 쯤 붓고, 무 간 것 세 스푼과 파 두 스푼, 김 두 스푼을 넣고 저어준 뒤 국수 한 사리를 통째로 말아넣었다. 와사비는 아예 넣지 않았고.
맛은 본점이나 분점이나 모두 대동소이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사람들이 붐벼서 신경쓰였던 본점보다는 분점에서 좀 더 마음편히 먹을 수 있었고. 제공되는 육수도 적당히 시원하고 감칠맛나는 상태였고, 면은 간혹 제면 과정에서 뭉쳐서 나오는 가락이 더러 있었지만 매끄럽게 잘 넘어갔다.
다만 빈곤한 현재 재정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가격이 계속 신경쓰일 수밖에 없는데, 다음 타깃으로 잡은 '눈나무집' 의 경우에도 약간 덜덜 떨면서 가야 할 듯. 눈나무집 외에도 이글루스에서 흔히 회자되고 있는 '정광수의 돈까스가게' 도 방학 중의 식도락 탐방에 포함시켰는데, 아직 식욕이 완전히 돌지는 않고 있어서 일단은 보류.
뱀다리: 구형 파나소닉 디스냅 디카가 마침내 타계하는 바람에, 꿩 대신 닭으로 폰카로 사진을 찍어왔지만 그것을 컴퓨터로 옮기지 못해 애를 태워 왔다. 그러다가 며칠 전 데이터 매니저라는 프로그램을 익혀서 옮겨놓고 있는데, 물론 화질로 따지면 그거나 폰카나 그게 그거지만 음식 포스팅에 없으면 왠지 허전한 '짤방 확보' 가 되었으니 일단 한숨 돌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