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방법에서' 라는 부제로 다룬 첫 번째 글에 제시한 목록 중 단편의 10번은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슈베르트는 저 10번을 정말로 구상하고 있던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슈베르트의 친구였던 에두아르트 폰 바우어른펠트가 1829년에 빈의 한 예술 잡지에 행한 증언과 자필 스케치가 유력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바우어른펠트의 증언과 후대 음악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10번은 슈베르트가 마지막 삶을 겨우겨우 유지하던 몇 주동안에 창작이 시도되었다고 한다. 다만 형식상으로는 아주 특이하게 기존 4악장 구성이 아닌 3악장 구성으로 착상되었다고 하는데, 피날레 악장 없이 3악장 스케르초만으로 끝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3악장의 경우, 그 동안 슈베르트가 그렇게 즐겨 시도하지는 않았던 푸가 등 대위법 기교를 각별히 신경쓴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아마 선배인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특히 현악 4중주-을 듣고 쇼크에 가까울 정도의 강렬한 반응을 보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슈베르트는 이 10번을 쓰는 동안 당대 대위법 교육의 대가였던 지몬 제히터에게 개인 교습을 신청하기도 했으나, 결국 수업도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참고로 제히터 문하생 중 작곡가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안톤 브루크너였다.
하지만 지병이었던 매독의 합병증 악화로 가뜩이나 건강도 좋지 않았던 상황에다가, 겨우 몇 주 남겨진 시간 동안 교향곡을 완성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슈베르트가 세상에 남긴 10번은 각 악장이 정말 부분적으로 스케치된 자투리 악보들로만 존재하고 있다. 그나마 축약본 형태로 완성된 상태였던 7번에 비하면 관련 자료가 너무도 빈약한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빈약한 단편에도 손을 대서 '완성본' 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또 나왔다는 것인데, 7번의 에피소드에 잠깐 언급했던 영국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트(Brian Newbould)가 그랬다. 뉴볼트는 1970년대에 자신이 곡을 완성했다며 음악계에 악보를 공표했고, 이 완성본은 이후 네빌 매리너 지휘의 세인트 마틴 아카데미 합주단이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을 녹음할 때 포함시켜 음반으로 출반되었다.
하지만 뉴볼트의 작업은 8번 '미완성' 의 완성본과 마찬가지로 꽤 강도높은 비판에 노출되었는데, 애초부터 관련 자료가 빈약한 것을 억지로 끼워맞추고 살을 붙여 완성하려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포스팅한 바 있는, 배리 쿠퍼의 삽질을 생각해 보라.)
뉴볼트의 '고전적인' 방법으로 행한 리모델링이 치기어린 작업으로 비판을 받던 사이,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리모델링을 시도한 이도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1925-2003)였는데, 다만 뉴볼트처럼 '교향곡 제 10번' 이라고 제목을 달지도 않았다.
베리오는 1989년에 만든 자신의 버전에 '렌더링(Rendering)' 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듬해 리카르도 샤이의 지휘로 암스테르담에서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이 초연했다. 교향곡이라는 제목을 포기한 것에서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 모습인데, 실제로 들었을 때의 느낌도 마찬가지였다.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는 조너선 노트(Jonathan Nott) 지휘의 밤베르크 교향악단(Bamberger Symphoniker) 연주로 스위스 음반사 투도르(Tudor)에 취입한 '슈베르트 에필로그' 라는 제목의 CD가 올라와 있는데, 베리오 외에 아리베르트 라이만이나 한스 베르너 헨체, 한스 첸더, 쿠르트 슈베르칙 등의 현대 작곡가들이 슈베르트 곡을 가지고 베리오와 비슷하게 재창작한 곡들을 같이 커플링한 물건이다(음반 번호 TUDOR7131).
ⓟ 2004 Tudor Recording AG
베리오는 원곡이 단편적인 자료만 남아 제대로 완성하기 힘들다는 점을 역으로 활용해 아예 자신의 주장을 적극 투영한 '작곡' 을 시도했는데, 악장 수만 슈베르트가 의도한 3악장으로 맞췄을 뿐이다. 일단 1악장의 전반부에서는 슈베르트가 남긴 악상을 그 시대의 양식에 맞춰서 진행시킨 까닭에 '이게 뭐가 현대적이야?' 라고 의문을 남길 법하다.
하지만 어느덧 음향이 잦아들면서, 슈베르트 시대에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건반악기인 첼레스타가 슬그머니 끼어들자 고전적인 모습을 띄던 곡의 형체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슈베르트가 남긴 자료가 단편적이라는 것을 대놓고 강조하는 듯해서 좀 냉소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곡 전체는 이렇게 고전적인 악상과 베리오가 자신의 주관으로 재조합한 단편의 파편들이 묘하게 맞물리며 공존하는 식으로 짜여져 있다.
자료도 빈약한 미완성작을 당시 어법으로 완성하는 것이 '위선' 이라고 생각한다면, 베리오의 작업이 던져주는 화두는 꽤 흥미로울 것이다. 베리오는 슈베르트가 남긴 자료를 존중하고는 있지만, 그 자료의 시대성과 정격성에 자신을 맹목적으로 끌어맞추는 작업은 극구 사양하고 있다.
오히려 자료의 단편성을 자신이 줄곧 추구해온 패러디/콜라주 기법이나 새로운 음향에 대한 탐구 정신으로 치환한 셈인데, 편곡과 작곡이나 보완과 재창조의 경계에 대한 논쟁 거리를 원하는 이들에게 꽤 유용한 떡밥으로 쓰일 법하다.
개인적으로는 베리오가 이렇게 작업한 곡들만 모아놓은 CD를 구하고 싶어서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가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교향악단(Orchestra Sinfonica di Milano Giuseppe Verdi)을 이끌고 2004년에 전속사인 데카에 취입한 물건이 그 의도에 딱 맞는 물건이었다. 실제로 샤이는 베리오 생전에 그와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신포니아' 같은 대표적인 작품들도 이미 80년대 후반에 데카에서 음반으로 만든 바 있다.
ⓟ 2004 Universal Music Italia s.r.l.
음반에는 퍼셀부터 브람스에 이르는 대선배들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퍼셀이나 브람스처럼 원곡의 어법에 맞추어 '편곡' 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하고 흥미를 끄는 것은 역시 슈베르트에서처럼 '재창조' 한 작품들일 텐데, 보케리니의 유명한 기타 5중주 '마드리드의 귀영 나팔' 마지막 악장을 보로딘의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 와 비슷한 아이디어로 풀 오케스트라를 위해 재창작한 것도 꽤 신선했다. (군악대가 멀리서 오기 시작해 다시 사라져 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거대한 크레센도 디미누엔도 스타일의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의 낙천적인 민요풍 아리아를 가지고 작업한 것인데, 원곡의 음들을 모조리 조각조각 잘라낸 것을 베베른 식의 점묘법으로 사방에 흩뿌려 2분 반 정도의 변주곡을 만들어 놓았다. 이쯤 되면 도저히 고전적인 의미의 편곡이라고 할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 트랙 리스트를 만들 때 베리오의 입김이 강하다고 판단한 곡들은 아예 베리오 작품으로 분류했다.
위의 노트 음반에서 미리 힌트가 주어지기는 했지만, 굳이 미완성작이 아니더라도 슈베르트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편곡하거나 재창작한 사례들은 꽤 여러가지 존재하고 있다. 특히 한스 첸더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를 피아노 반주 대신 실내 앙상블용으로 편곡한 것은 꽤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외에도 디터 슈네벨 같은 작곡가는 굳이 한 작곡가에 국한하지 않고 수많은 선배 작곡가들의 작품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배열하는 식으로 연작을 만들기도 했고, 만하임 국립극장에서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를 가지고 현대 작곡가들에게 비슷한 아이디어의 신작들을 위촉해 초연하는 무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한켠에서는 시대 고증을 충실히 지켜 과거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고, 다른 한켠에서는 과거의 유산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현대 연주와 작곡 양식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양 쪽의 음악을 모두 음미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