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글까지 올리고 일단 끝낼까 싶었더니만, 이런저런 곳에 웹서핑을 해보니 서울에만도 자그마치 아홉 군데의 가게가 추가로 눈에 띄어 되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물론 예전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기준은 확고한데, 우선 오이넣어 볶아주는 집은 열외로 쳤다. 그리고 작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실시한 중식당 위생 단속 기록도 확인해주는 정도의 센스.
시즌 3의 시작은 지금 독일어 배우고 있는 종로의 모 학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다동빌딩' 이라는 건물에 입점해 있는 곳으로 정했다. 가게 이름은 원흥(元興) 이었는데, 여기도 지난 번 갔던 영화루와 마찬가지로 볶음밥 위에 달걀 부친 것을 얹어준다는 말에 솔깃했고. (사실 지금 목록에 올려둔 가게들 중 상당수가 이런 데코레이션을 취하고 있어서, 드물다고 여겼던 내 판단은 착오로 여겨진다.)
사실 이 날은 이 곳이 목표 지점이 아니었다. 우선 2월 서코 예매권을 구입하기 위해 홍대 쪽에 갔다가 그 곳과 비교적 가까운 두 곳 중 하나를 택하려고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려던 찰나 을지로입구에 내려서 들렀다. 사실 학원 끝나고 바로 갔다면 비슷한 거리를 왕복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가게 앞 풍경. 많은 중국집들에서 쓰는 빨강색 위주의 디자인도 아니었고 어찌 보면 굉장히 수수하고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다. 왼쪽에는 양복점이, 오른쪽에는 주류 도매점이 입점해 있는 것이 체크 포인트.
점심 때도 아니고 저녁 때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라 손님은 나밖에 없었는데, 종업원인 아주머니 두 분도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 식재료를 다듬고 계셨다. 두 분 다 화교임이 확실했는데, 주문을 받거나 할 때는 물론 능숙한 억양의 한국어를 구사했지만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는 무척 강한 중국어 억양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할 정도.
가게 안은 그다지 크다고는 볼 수 없었는데, 4인용 식탁이 여섯 개 정도였고 따로 연회석은 없었다. 빌딩숲 속에 있다 보니 여럿이서 거하게 차려먹는 술자리 보다는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단촐하게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인 듯 하다.
메뉴판. 마침 앉은 자리 윗쪽에 회전식 온열기가 돌아가고 있던 터라, 찍고 옮겨보니 무슨 '업소삘' 이 나서 좀 민망했다. 구린 화질도 여전하고. 가격의 경우 한자로 표기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종로 쪽에 있는 가게다 보니 서울 시대 중국집들의 평균 가격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볶음밥 보통은 5500원.
다만 음식을 시키고 좀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 요리 도중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린 탓인 것 같다. 빌딩 쪽에서 배선을 손보다 실수로 퓨즈를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는데, 아무튼 그 때까지 시간 죽이는 겸 해서 짤방 좀 더 박고 단어/숙어 프린트물을 체크하고 하면서 기다렸다.
수수한 외관과 달리, 가게 안은 각종 중국 관련 장식물 등으로 치장해 놓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귀여운 중국 전통복 차림의 어린이 캐릭터들이 도안된 장식들. 딱히 중빠는 아니지만, 이런 장식물은 한두 개 쯤 방에 걸어놓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받은 볶음밥 곱배기(6000\). 좀 작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달걀부침이 올라앉은 모습이다. 양은 곱배기인 만큼 비교적 많았는데, 곁들임 짜장을 담아놓은 그릇 가에 맺힌 액체가 신경쓰일 것 같기도 하다. 바로 물이 아니라 기름이었는데, 실제로 지금까지 먹어본 볶음밥 중 가장 기름기가 많았다. 내가 아무리 기름진 것을 잘 먹는다고는 하지만, 짬뽕국물과 단무지, 양파의 적절한 지원이 없었다면 다먹기 좀 힘들었을 듯.
밥은 고슬고슬하게 잘 볶아져 나왔는데, 다만 이 쪽 매니아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불맛' 은 약간 부족해 보였다. 정전 때문에 볶는 것이 좀 더뎌져서 그랬을까? 아무튼 다소 기름기가 많았다는 것 빼면 맛은 전체적으로 훌륭한 편이었다.
곁들임으로 나온 짬뽕국물과 단무지-양파-춘장 삼연성 셋트. 물론 특별할 것은 없었는데, 짬뽕국물도 볶음밥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기름진 맛이었다. 술마신 다음 해장할 때 딱일 듯 한데, 짬뽕도 어떤 맛일지 살짝 궁금해 졌다.
발컨 마우스로 그린 약도는 대략 이렇다. 1호선 종각역과 2호선 을지로입구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느 역에서 내려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서 가는 것이 큰길 건널 일도 없고 해서 더 편해 보인다.
다음 가게들도 아마 서울 내의 중국집들 위주로 돌 것 같은데, 그리 자주 가지는 않는 구의동 쪽의 모 화상에서 달걀부침은 얹어주지 않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스펙의 볶음밥을 낸다는 소문이 솔깃해 여덟 번째 방문지로 결정했다. 아마 토요일 서코 끝나고 갈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