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는 다행히도(?) 서코가 없어서 그냥 지나가나 했는데, 그 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온리전 쪽에 눈길을 돌려 보니 뭔가 행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특정 작품에 버닝하는 행사가 아니라 관심이 간 모양이었는데, BL이나 GL이 판을 치는(???) 동인계에서 남녀 간의 애정 행각을 주제로 다룬다는 '설레임' 이라는 행사였다.
행사 장소인 동작구민회관도 예전에 백합제를 비롯한 동인 행사 때 가본 적이 있어서 낯익은 곳이었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에 바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 안팎을 통틀어 사진은 딱 두 장만 찍었다. 일반 입장 시간인 11시 30분을 좀 넘겨 도착했을 때의 모습. 역시 코리안 타임이 적용되어 약 5분 가량 지난 뒤인 35분에 입장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작구민회관이라는 공간 자체는 그리 큰 편이 아니고, 행사 자체도 온리전인 만큼 매우 조촐하게 치러졌다. 무대에는 추첨을 통해 돌아갔을 등신대 포스터들이 걸려 있었고, 나머지는 부스들과 일반 입장객들을 위한 의자들이 마련된 공간이 전부였다. 물론 그렇다고 살풍경이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노멀 커플을 다뤘다고는 해도, 참가자들의 성비는 다른 동인 행사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초현상이 강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고, 이 날 이것만이 외출 용건은 아니어서 가능한한 살거 빨리 사고 나오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나라에서 2011년 현재 임기 중인 모 대통령의 비공식 명언(???)을 제목으로 한 전자는 여우귀 머스마와 고양이귀 아낙네의 닭살돋는 이야기로, Aile 화백과 녹차 화백의 합동지였다. 후자는 녹차 화백의 개인지. 다만 제목대로 손발이 그리 오그라들지는 않던 진지한 스토리였고. 둘 다 작가들이 몸담고 있는 비툴 커뮤니티들의 자캐와 설정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라고 했는데, 커뮤니티 비회원이라도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게 그려놓았다.
딸 시집보내는 엄마마음은...그런데 엄마가 미혼: 개인지 '하여가(何如歌)' (2500\)
시레노이 화백의 개인지. 이번 행사에는 특이하게도 기존 작품들의 2차 창작 외에 소위 '동양풍' 컨셉의 개인지도 꽤 자주 눈에 띄었다. 원래 기획한 내용은 남자 주인공에게 고자드립(...)을 시전하며 돌림빵 먹이는 스토리였다고 했는데, '노멀 온리전' 이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그냥 평범하게 달달한 짤막한 연애 스토리로 바꿨다고 한다. 사실 그 설정대로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특별히 이 쪽에 각별한 관심이나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석하게도(...) 2차 창작의 대상이 된 작품들 대부분에 관심이 없어서 뭔가 이입이 안된 것이 창작 쪽에 더 관심을 주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제레베리아: 트윈지 '우리들이 사랑하는 이유' (4500\)
이번 행사에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 가장 중요한 물건인데, 96회 서코(2010.8)에서 우수 회지로 선정된 회지이기도 한 물건이다. 다만 그 당시에는 좀 흐릿한 듯한 그림체가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 사지 않았는데, 나중에 한 번 사볼까 했을 때는 늦었다. 해당 동인들이 코믹 참가를 그다지 자주 하지 않아서 어느 행사에 나오려나 했는데, 여기에서 그 회지를 다시 선보인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잎새 화백과 소고 화백이 비툴 커뮤니티 자캐들을 내세워 그렸는데, 나름대로 두꺼운 분량에 정말로 '손발리 오그라드는' 솔로염장 스토리를 담담한 펜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원체 의심 많은 성격이라 우수 회지를 모두 경배하고 찬양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선정될 만한 매력이 충분히 있다고 여겨지는 책이었다. 다만 택배 회사의 발송 문제였는지 회지 도착이 늦어져서 구입에 다소 애를 먹었고, 이거 말고 설정 카피본 같은 다른 책들은 기다리다가 안와서 포기해 버렸다.
돈의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몇 권 더 샀겠지만, 한정된 현찰은 물품에 대한 기대치를 자연스레(?) 높여주었고 나머지 것들은 비정하게 내쳐지고 말았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란(?????). 나머지 하루 일정은 용산 아이파크 던전을 지인과 잠시 돌아다니다가 거기 푸드코트에서 점심+티타임, 그리고 다시 혼자 오랜만에 풍월당에 들러 이 포스팅에서 주절댔던 '일본작곡가선집' 의 호소카와 토시오 CD를 구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실 돈 걱정은 노파심이었고, 설레임 말고 쓴 돈으로는 기껏해야 밥먹고 커피 산 정도였다. 풍월당에서 산 CD도 그 동안 모은 적립금으로 산 거라, 실제 지출액은 20000원이 채 안되었다. 교통비 포함하면 넘겠지만. 아무튼 추위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고, 유학 계획도 이런저런 이유로 틀어지고 있어서 봄이 되어야 갈 수 있을 모양이니 과연 마지막 동인행사 참가가 되려는지 어쩐지. 하지만 정황상 2월 서코는 확실히 갈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인간의 운명은 모르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