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에서 넌지시 썼던 대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이하 시몬 볼리바르)이 1990년대 동안 내놓은 아홉 장의 앨범 모두를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나오고 있는 두다멜 지휘의 CD와 DVD가 라이센스반으로 나올 정도로 보급률이 높은데 비해, 먼저 나온 도리안 음반들은 한국에서 구하기가 대단히 힘든 상태다.
특히 이 악단과 처음으로 CD를 내놓았던 에두아르도 마타(Eduardo Mata) 지휘의 녹음들이 관건이었는데, 다행히 시몬 볼리바르의 유명세에 자극받았는지 도리안에서 여섯 장 짜리 염가 세트를 만들어 재발매하고 있다. 다만 이것도 국내 수입이 아직 되고 있지 않아서, 아마존을 통해 주문을 넣어야 했고.
ⓟ 2009 Dorian Recordings
멕시코 태생인 마타는 원래 기타리스트를 지망했지만, 멕시코 국립음악원에 입학한 뒤에는 카를로스 차베스 등에게 작곡을 배웠고 쿠세비츠키 장학금으로 미국에 유학해서는 막스 루돌프와 에리히 라인스도르프에게 지휘를 배웠다. 1960년대까지는 작곡과 지휘를 병행했지만, 이후 지휘 활동에 중점을 두면서 멕시코 국립 대학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미국의 피닉스 심포니, 댈러스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마타는 아브레우가 엘 시스테마를 막 시작했던 1975년에 베네수엘라에 와서 시몬 볼리바르-당시에는 호세 란다에타 국립 청소년 관현악단-의 리허설을 참관했다고 하는데, 그 때는 별로 좋게 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후 악단 활동의 기틀이 제대로 마련되고 나름대로의 실력을 갖추게 되자, 아브레우는 1989년에 재차 마타를 지휘자로 초빙했다.
이 두 번째 만남에서 다행히 마타는 악단의 가능성을 예전보다 훨씬 높게 점쳤고, 그 이후 나머지 생애 동안 이 악단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활동했다. 특히 이듬해인 1990년에 도리안에서 출반한 음반은 해외에서도 꽤 좋은 평판을 얻었다고 하며, 이후 1992~94년 동안 CD 다섯 장을 추가로 제작하게 되었다.
1990년의 첫 CD는 이미 국립예술자료원에 소장된 단품으로 들어볼 수 있었지만, 나머지 것들은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서 들어본 것을 빼면 CD로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파야나 히나스테라, 빌라-로부스 같이 나름대로 유명한 작곡가들 외에 좀 덜 알려진 라틴아메리카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다만 두다멜의 음반과 중복되는 몇몇 곡들에서는 해석 상의 차이인지 약간 날렵함과 깔끔함이 모자르다는 인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음반을 통해 처음 접한 곡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었고 연주와 녹음의 질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편이라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아직은 낼 계획이 없어 보이는 오페라 전곡도 이 마타 세트에는-파야의 '허무한 인생'-들어 있어서, 시몬 볼리바르의 오페라 반주 능력은 어떤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솔깃한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마타는 음반 작업과 베네수엘라 국내 공연 외에도 이 악단과 유럽 등지로 순회 공연을 다니며 엘 시스테마와 시몬 볼리바르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는데, 불행히도 이 공동 작업은 1995년 1월 4일에 마타가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려다 엔진 고장으로 추락사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마타 사후에도 도리안에서든 아니면 시몬 볼리바르에서든 계속 음반 작업을 속행하고자 했고, 이후 세 장의 앨범이 더 나왔다.
마타 사후 맨 처음 나온 앨범은 지난 번에 포스팅했던 막시미아노 발데스 지휘의 라틴아메리카 관현악 소품집 음반이었고, 이어 빌라-로부스의 작품들을 담은 멕시코 지휘자 엔리케 아르투로 디에메케(Enrique Arturo Diemecke)의 음반과 캐나다 지휘자 케리-린 윌슨(Keri-Lynn Wilson)의 라틴아메리카 관현악 소품집이 1995~98년 사이에 차례로 나왔다.
ⓟ 1995 Dorian Recordings
ⓟ 1996 Dorian Recordings
ⓟ 1998 Dorian Recordings
발데스 음반은 썼던 것처럼 명동 부루의 뜨락에서 딱 한 장 남아 있던 재고를 찾아내 구입하는데 성공했지만, 디에메케 음반은 내가 뒤져본 바로는 한국에서 구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이 음반도 마타 세트의 주문을 넣을 때 같이 질렀고, 윌슨 음반은 정말 놀랍게도 아이뮤직에 딱 한 장 재고가 있어서 구매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도리안과 시몬 볼리바르의 앨범 아홉 장이 모두 손에 들어왔다.
마타 세트와 마찬가지로 이 세 장의 연주도 꽤 출중한 편인데, 특히 디에메케 지휘의 음반에서는 안드레스 디아스(Andrés Díaz)라는 칠레 첼리스트가 협연한 빌라-로부스의 첼로 협주곡 제 2번이, 윌슨 지휘의 음반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작품 치고는 꽤 도시적이고 쿨한 이미지의 현악 합주 작품인 하이메 알바레스의 '차바카노 지하철역' 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교보 핫트랙스에서 온라인 주문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루체른 음악제에서 지휘한 실황으로 제작된 아첸투스(Accentus)의 최신 DVD까지 합하면 도이체 그라모폰 외의 음반사에서 제작한 웬만한 시몬 볼리바르 연주의 앨범들은 모두 손에 넣은 셈이 되었는데, 이것들 말고도 같은 혹은 비슷한 부류의 진귀한 '청소년 관현악단' 앨범을 황학동 중고 시장에서 하나 더 건졌다. 비록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기회가 되면 다음에 포스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