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학교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협주곡 CD.

종합대학 내에 편성된 음악대학이나 예술대학이던, 유럽식 콘서바토리건 간에 기악과 혹은 음악과 기악학부가 있으면 늘 편성되는 것이 관현악단이다. 물론 독주나 실내악 과정도 커리큘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대규모 합주의 경험도 연주자로서 활동하려면 필수적이기 때문에 대개 1학년 때부터 피아노 전공을 제외한 기악과 학생들은 관현악 합주 수업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한다.

물론 대학교 관현악단 내에서의 활동은 길어야 4년을 넘기지 않으므로, 대학 관현악단도 청소년 관현악단처럼 일종의 연주자 훈련 과정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이들의 연주회는 어떻게 보면 복불복인데, 물론 나도 어떤 때는 '이게 학생 악단이라고?' 라고 자문할 정도로 멋진 연주를 들은 적도 있고, 반대로 중간에 나가고 싶을 정도로 민망한 연주를 공연 내내 들어야 했던 적도 있다.

그 때문에 이들 악단이 음반을 내는 것은 학교 이미지까지 달려 있어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신나라레코드와 오디오가이 두 한국 음반사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관현악단인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CD들을 당당히 상업용으로 출반해 충공깽을 선사한 극히 드문 예를 제외하면, 대개 이들 악단의 음반은 비매품 사가반 형태로 일정 영역과 시기 때만 배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음반은 그 특수성 때문에 해당 학교 재학생이 아닌 이상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당연한데, 그래도 누군가가 이런저런 경로로 중고 시장에 내놓을 경우 드물게 구할 수는 있다. 이번에 구입한 것도 그 케이스인데, 아름다운가게 광화문 헌책방에 들어갔다가 사들고 나올 수 있었다.

아름다운가게가 서울 시내에 차린 헌책방은 2012년 현재 총 다섯 곳인데, 물론 모든 곳에서 내가 원한 음반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극히 희귀한 비매품 음반이나 절판 음반을 매우 싼 값에 살 수 있어서 요 근래 주목하고 있다. 이 CD도 겨우 2000원이라는 '푼돈' 을 주고 사왔는데, 사가반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클래식 음반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드문 음반사인 게누인(Genuin)의 음반이라 흥미로웠다.

ⓟ 2002(?) Genuin Music Productions

원래 독일에 본사를 둔 게누인은 엔지니어 겸 바이올리니스트 고(故) 정남일이 한국에도 지사를 두고 독일에서 제작한 음반을 수입해 오거나 독자적인 녹음 프로젝트들을 진행해 왔는데, 지난 번 끄적인 강남 심포니의 베토벤/브람스 교향곡 전집에도 이 게누인 한국 지사가 제작한 녹음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중 상업용으로 시판된 것은 저 강남심 음반과 서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창단 25주년 기념 음반 정도를 빼면 별로 없고, 박은성 재임기의 수원시향 녹음들과 이 녹음처럼 비매품으로만 제작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예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던 수원시향 CD들과 달리, 이 CD는 아예 있는 지도 모르던 상태였다.

앨범 커버에 나온 대로 차이콥스키와 브람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담고 있는데, 다만 CD 한 장의 수록 시간 한계 때문에 모든 협주곡이 전곡 녹음은 아니다. 앨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차이콥스키와 멘델스존은 전곡이지만, 브람스 협주곡은 2악장 만이 녹음되어 있다. 그리고 학교 홍보를 위해 제작했기 때문인지, 커버 밑에는 학교 이름이 부각되어 있고 연주진은 악단 이름의 영문 명칭 뿐이라는 것이 눈에 확 띄었다.

독주자는 앨범을 뒤집어야 확인할 수 있는데, 서울바로크합주단 단원이고 지금도 해당 대학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 중인 윤경희가 맡았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휘자는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곡목과 러닝 타임, 녹음 시기와 장소(2002년 2월 세종대학교 대양홀) 정도가 전부다. 그리고 그 밑에는 '국내 최정상급 두뇌 파워' 라던가 '2002 전국대학평가 각종 부문 상위 랭크' 등등 자화자찬성 대학 홍보 문구가 가득한데, 그런거야 아무래도 좋으니 속지를 읽어봤다.

물론 속지도 부실하고 학교 자랑으로 치중된 것은 똑같았는데, 음악적인 설명도 독주자의 이력, 바데너 타크블라트(독일)와 바즐러 차이퉁(스위스) 같은 해외 언론의 비평 인용, 지휘자와 악단 소개가 전부였다. 그나마 지휘자의 정체가 속지에 언급된 것이 다행이었는데, 독주자와 마찬가지로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첼로 단원이고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지훈이 맡았다고 나와 있다.

학교 자랑이야 타대 출신이니 그냥 넘겼고, 내용물이 중요하니 일단 들어봤다. 정남일이 직접 녹음을 맡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편집이 자유로운 스튜디오 녹음이라 그런지 녹음과 연주 모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다만 연주가 조금 심심한 편이고, 특히 차이콥스키 협주곡에서는 독주자와 악단 모두 너무 조심스럽게 연주하는 기색이라 드라마틱한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면이 멘델스존 협주곡에서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해서 좀 더 낫게 들렸고.

비록 악단 자체의 연주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교향곡이나 여타 관현악 작품이 없어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유명 회사에 맡겨 제작한 녹음인 만큼 비매품임에도 꽤 괜찮은 수준의 연주를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이외에 다른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에서도 이런저런 레어템을 입수했는데, 다음에는 신논현역 근처의 강남점에서 입수한 부천필 비매품 CD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