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저 '동인계' 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최초의 행사는 코믹월드였고, 또 지금도 가장 많이 갔고 많이 질렀다는 기록도 저 행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 행사를 숭배한다거나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히 소위 '코스프레' 와 관련해서 이미 행사장 주변 지역 주민들의 항의 민원까지 받은 경력이 있었을 정도로 무개념 코스프레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되어 벌어지는 민폐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코믹월드 측에서 코스프레를 전면 금지하지 않는 이상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마음에 안들어할 것이고 또 계속 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비록 코믹월드 측에서는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동종 행사에 대한 의식적인 견제 행위로 보이는 일을 꽤 자주 벌인다는 것이다. 물론 결정타는 내부의 중상과 공금 횡령에 의한 것이었지만, 코믹월드에서 행사장 대관을 거의 알박기 식으로 하면서 개최 일정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는 서드플레이스가 아마 그 동안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물론 회장 자체가 코믹월드가 수시로 대관하는 SETEC이나 aT센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좁았기 때문에 일단 '양적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그 때 구입한 것은...
...이게 전부였다. 쇼핑백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들어갈 때 받은 것이고, 흑백 인쇄된 책자는 카탈로그니까 결국 구입한 것은 카탈로그 옆의 보컬로이드 트윈지가 전부였다. 그나마 저 트윈지도 사실은 2008년 11월 서코에서 구입한 것의 개정판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새로 구입한 것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참담했다.
행사의 성향 자체가 여성향이 압도적인 모습이었던 서드플레이스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었는데, 물론 코믹월드도 일단 부스 비율을 따져보면 여성향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거기는 일단 규모가 크고 그 만큼 참가 부스도 많기 때문에 그 중에 건질 것도 찾아보면 꽤 된다. 하지만 일단 여성향에 관심이 없는 인남캐에게는 막말로 '소문난 잔치에 남자라서 먹을 것이 없다' 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냥 '이런 행사가 있구나' 하고 확인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멸망한다던 지구가 여전히 돌고 있던 2012년 연말에 코믹월드와 동네 페스타의 두 번째 '빅 매치' 가 성사되었다. 동네 페스타의 경우 그 동안은 하루만 열리는 행사였지만, 이번에는 12월 29~30일 이틀 동안 개최되었다. 동네 페스타가 이렇게 일정을 잡자 코믹월드도 똑같은 날 SETEC에서 행사를 개최해 맞불 작전을 펼치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일단 동네 페스타는 지난 번 가서 '데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있었다.
바로 동인 행사로서는 최초로 COEX를 대관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는데, SETEC이나 aT센터와 달리 COEX는 장내 질서를 어지럽히는 노점상이나 무개념 코스플레이어의 창궐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시설이었기 때문에 동네 페스타의 입성 소식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물론 이는 동네 페스타라는 행사 자체가 부스 참가자와 일반 참가자를 막론하고 코스프레를 전면 금지하기 때문에, COEX로서도 대관 허용에 큰 무리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전히 구매욕에 관해서는 코믹월드 쪽이 더 땡긴 관계로, 일단 토요일(29일)에 SETEC에 먼저 가는 것으로 연말의 마지막 동인 행사 순례를 시작했다. 행사장은 여느 때처럼 무척 번잡해 바깥의 추위나 폭설을 느끼기는 커녕 더워서 땀까지 흘릴 정도였고, 그 와중에도 이런 것들을 건질 수 있었다.
★sparkling citrus★ (1관 B14): 컬러 일러스트북 'LINK & LINK' (3500\), 컬러 일러스트 & 러프북 'Snowflake' (3500\), 보컬로이드 엽서달력 세트 (4000\)
원래는 바로 옆 부스인 Dessert Candy와 함께 '포니테일' 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는 부스였지만, 멤버 중 cocoon 화백의 업계 일이 많아지면서 Mca 화백의 Dessert Candy 부스만 정기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록 부스 명칭은 달랐지만 사실상 트윈 부스 형태로 참가했는데, 일단 Dessert Candy 쪽은 팬시 구매객으로 미어터지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였던-어디까지나 상대적이었다-이 부스에서 구입했다.
일러스트의 대부분은 구작에서 전용하거나 '소드 걸스' 라는 게임의 카드 일러스트를 수록한 것이었는데, 비록 온라인 게임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저 게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게임은 몰라도 일러스트의 미려함은 명불허전이라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다만 'Snowflake' 의 경우 이번에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돈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못살 뻔했다.
orange shabette (3관 I29): 컬러 일러스트북 'NOVELETTE:re' (4000\)
이것도 전혀 예상 못했던 신작이었다. SALT 화백의 세 번째 개인지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소드 걸스의 카드 일러스트와 노블엔진의 2013년 달력 일러스트 등 소위 '업계' 쪽 일러스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개인 취향의 차는 있겠지만, 카드의 일러스트로 상당 부분 어필하고 있는 게임인 만큼 이 게임의 일러스트 작업에 참가한 소위 '존잘러' 들이 낸 일러스트북 자체도 그 만큼의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의 것들과 함께 세 일러스트북 모두 일본의 코믹마켓에서도 판매 예정인지 한국어와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기도 했다. 소드 걸스라는 게임 자체가 이미 일본과 북미 지역에도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쪽 동인들의 수요도 의식하고 책을 만든 것으로 여겨졌다.
시나브로 (3관 J28): 시유, 마그넷 카가미네 린렌 버전 안경클리너 (1500x2=3000\), 시유 천필통 (3500\)
7월 코믹 때 이미 같은 품목들을 구입한 바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품들의 일러스트가 새로이 바뀌었기 때문에 구입했다. 이것도 예정에 없었기 때문에, 구입하기까지 꽤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은 샀지만. 덕분에 동네 페스타에서 쓸 예정이었던 돈은 점점 줄고 있었다.
Cat of Fish (1관 D04): 패러디 회지 'Cat or Fish?! zero', 책갈피들 (...공짜...)
참 오래간 만의 참가였는데, 이번에도 예전처럼 쿄애니(케이온!)와 가지버섯(Fate/Zero) 두 요소는 여전했고 저 회지도 후자의 것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공백 기간 동안 헐벗은 그림을 많이 연습해 19금 회지로 부활할까 싶었지만...은 훼이크.
아무튼 저 작가의 하츠네 미쿠 카드 케이스와 럭키☆스타 천필통은 나와 함께 독일까지 갔다온 바 있는 만큼 공짜가 아니어도 어차피 살 물건이었다. 물론 정말 강탈 수준의 공짜는 아니었고, 공포의 칼로리 폭탄 과자인 팀탐 초콜릿맛+바닐라맛 각 120g씩과 네스티 500ml 한 병을 조공으로 바치고 받았지만.
그 외에 새로 나온 책갈피들도 몇 종류 받았는데, 그 중엔 리그 오브 레전드(약칭 LOL)가 있어서 크게 눈에 띄었다. 실제로 이번 서코에서 LOL 관련 부스들이 꽤 여럿 참가한 것이 눈에 띄었는데, 물론 상술한 대로 온라인 게임을 안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에 비견될 만큼의 폐인 양성 게임이라 급속한 중독성으로 동인계에서도 어필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게임 자체가 천조국 쌀나라 것이라서, 참가한 부스들 중 상당수가 캐릭터들의 일러스트들을 한국식 (혹은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팬시나 일러스트북을 내놓고 있었다.
이외에도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라던가 이런저런 신작 애니의 부스도 여럿 있었는데, 다만 동네 페스타에서 혹시 있을 지 모를 지름신 강림에 대비해 현찰을 최대한 아껴두자고 다짐했기 때문에 이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쌓인 눈이 얼어붙어 빙판으로 화한 일요일(30일)에는 COEX로 갔다. 물론 가기 전에 미리 행사 홈페이지에서 부스의 숫자와 성향을 체크해본 바로는 이번에도 여성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빈 손으로 나오겠지. 운좋아 봐야 팬시 하나 혹은 회지 한 권 정도?" 라는 식의 다소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코엑스몰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자마자 서 있던 행사 안내 입간판들. 맨 오른쪽에 동네 페스타의 것도 보인다.
행사장인 COEX B2 전시장 입구. 거의 매 번 도떼기 시장인 코믹월드와 비교하면 너무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라 '설마 이번 행사, 흥행 실패했나?' 는 노파심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입장권을 구입했다. 이번에는 대관료 때문인지 입장료가 3000원으로 인상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코믹월드보다는 최대 1000원, 최소 600원 저렴했다.
들어갈 때 일단 신분을 확인한 뒤 이렇게 종이 띠를 팔목에 감아줬다. 쉽게 찢어질 것 같기도 했지만, 막 잡아당겨도 좀처럼 풀리거나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꽤 질겼다. 붉은색이 19세 이상 성인, 푸른색은 19세 미만 청소년 식으로 구분하고 있어서, 이것도 서드플레이스의 그것과 비슷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그 행사처럼 아예 19금 부스만 따로 모아놓는 강한 통제는 하지 않았고, 19금 작품으로 참가한 부스에 개별적으로 손목띠를 확인하도록 자율 규제를 하고 있었다.
행사장 안은 좀 더 사람이 많이 보였지만, 그렇다고 미어터질 정도로 많아 걸어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공간 자체가 꽤 넓었고, 또 코스프레를 배제하다 보니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체로 기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닐 소지가 적은' 쪽이 많아 자정 작용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업 부스의 참가를 잘 안받는 다른 행사와 달리, 이번에는 시유를 개발한 SBS 아트텍을 비롯해 크리크루, 인디켓, 노블엔진 같은 곳의 참가를 같이 받았다.
부스들은 모두 코믹월드 식의 요란한 디스플레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오히러 그 덕에 디스플레이 군축 경쟁으로 부스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코믹월드보다 더 깔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매 부스마다 이렇게 주최 측의 작지만 꼼꼼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기본적으로 책상 하나 당 생수 한 병과 쓰레기 봉투 두 종류(검은 것은 일반쓰레기, 반투명한 것은 재활용쓰레기), 그리고 가볍게 요기할 수 있는 작은 롤샌드위치까지 비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참가한 부스든 이렇게 신청은 했지만 사정상 불참 혹은 늦게 들어온 부스까지 예외가 없었다.
부스와 무대 외에 행사장 한 켠에 조촐한 카페테리아를 만들어 두고 커피나 음료수를 사마실 수 있게 탁자까지 비치한 것도 눈에 띄었다. 미리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오로지 자판기에 의지해야 하는 코믹월드와 달리, 여기서는 음료를 들면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관객에 대한 배려에도 더 신경을 썼다고 볼 수 있겠다.
이건 행사와는 관계 없지만, 행사장 내 남자화장실 소변기 위의 벽에 웬 피카소 그림을 모사한 타일이 있어서 그냥 찍어 봤다. '아비뇽의 처녀들' 로 본격 개막된 큐비즘 시대의 피카소 그림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상당히 기괴해 보이는 것이 많지만, 당시 자신의 애인이었던 마리-테레즈를 모델로 한 저 '꿈(Le Rêve)' 이라는 작품은 몇 안되는 예외로 상당히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라 저렇게 장식해놓은 것 같았다.
행사장 입구 기준으로 맨 오른쪽 부스는 동인 게임이나 음악에 할애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동인 외에도 크리크루에서 공인한 CD를 파는 곳도 있었다. 한국의 시유에 이어 첫 중국어 보컬로이드로 개발된 뤄톈이(洛天依. 한국어식 한자 독음으로는 낙천의)도 여기서 홍보하고 있었는데, 시유와 뤄톈이가 부른 노래들을 담은 CD도 장당 12000원에 팔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CD 한 장 살 돈마저도 없었고,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의 노래 자체에서 나오는 태생적 한계인 기계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구경만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뤄톈이의 노래는 '천년식보송' 과 '28세' 를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다소 국적 불명으로 디자인된 시유의 캐릭터와 달리 뤄톈이의 경우 그림에서도 보이듯 어느 정도 중국풍을 의도하고 만든 캐릭터라서 의외로 반응이 좋은 모양이다.
입장료 3000원을 지불했으니, 이제 나에게 남은 돈은 고작 7000원과 동전 몇 개 뿐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신용카드 결제를 지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부스 대부분이 여성향이라 내 구미에는 맞지 않았던 것도 있어서 결국 빈 손으로 가나 했다.
그렇게 부스를 계속 돌아보다가 NiTe라는 부스(N-10)에서 파는 회지가 눈에 띄었는데, 사실 저 부스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회지가 코믹월드에서도 팔리고 있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는 따로 벽으로 부스를 이전해 놓고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그냥 상큼하게 포기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줄을 설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회지의 내용도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두꺼운 구간이 4000원, 신간이 3000원이라는 가격이라 남아 있는 잔액에 딱 맞아떨어졌고, 결국 구입했다.
문자남매와 문자남매 冬. 이 회지들이 내가 이 날 구입한 물품들이자 역대 동네 페스타 관람 이래 최고액+최다 구매 기록이었다. 그래봤자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회지 밑에 있는건 A4 사이즈 종이 포스터였는데, 클리어 파일을 갖고가지 않아서 미봉책으로 회지 사이에 끼워보아도 좀 삐져나왔기 때문에 갖고 가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지질이 꽤 두껍고 튼튼했기 때문에 집에 와서 가방에서 꺼냈을 때는 귀퉁이만 몇 mm 정도 구부러진 정도여서 다행이었지만.
도무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남매들의 알콩달콩한 '카톡질' 을 가지고 각색한 4컷 개그물이었는데, 뒤집어질 정도로 웃기거나 정교하고 미려한 그림체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박하면서도 의외로 깔끔한 그림과 확고한 캐릭터성 때문에 알거지 신세를 작정하고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입장객에게 배부된 맨 오른쪽의 카탈로그도 마치 잡지 표지처럼 디자인한 것이 이채로웠는데, 부스 배치와 행사 일정, 온리전 홍보 광고 외에 요즘 이 바닥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아청법' 에 대한 비판을 담은 에세이까지 싣고 있었다.
주최 측에서도 아예 행사장 내의 본부석 쪽에서 아청법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 법안 통과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이 새누리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당파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였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 지 회의적이기는 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발휘한 '깡' 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원치 않던 괴상한 문화통제 법안과 대통령 당선자, 시교육감 당선자를 맞이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이했다. 갈 수록 조국과 민족, 애국심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비관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적어도 투표권을 행사해 관료를 자기 손으로 뽑았고, 또 문화를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은 것에 찬성하는 사람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사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라는 기반을 지켜가며 행한 행동이니까.
물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러한 현상에 대한 비판의 자유 역시 보장해야 하고, 법이 통과되고 누가 당선됐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문화계 종사자로서, 새 정권이 이전처럼 문화계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나누는 구시대적 작태를 유지하면서 국수주의의 시녀로 악용하거나 다양성을 보장하지 않는 획일화를 조장 혹은 방치하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으니, 추이를 계속 지켜보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면 내려고 한다.
특히 소위 '코스프레' 와 관련해서 이미 행사장 주변 지역 주민들의 항의 민원까지 받은 경력이 있었을 정도로 무개념 코스프레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되어 벌어지는 민폐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코믹월드 측에서 코스프레를 전면 금지하지 않는 이상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마음에 안들어할 것이고 또 계속 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비록 코믹월드 측에서는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동종 행사에 대한 의식적인 견제 행위로 보이는 일을 꽤 자주 벌인다는 것이다. 물론 결정타는 내부의 중상과 공금 횡령에 의한 것이었지만, 코믹월드에서 행사장 대관을 거의 알박기 식으로 하면서 개최 일정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는 서드플레이스가 아마 그 동안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서드플레이스가 참 추잡스러운 형태로 자멸한 뒤, 또 하나의 동인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독일 체류 후 귀국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동네 페스타' 라는 행사인데, 물론 아직 규모나 개최 경험에 있어서 다소 열세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코믹월드 측에서 마치 의식이라도 한 것처럼 올해 4월 행사를 저 행사의 3회차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개최한 것에서 뭔가 범상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물론 그 때도 나는 일단 토요일(3월 31일)에는 코믹월드에, 일요일(4월 1일)에 저 동네 페스타를 가는 식으로 주말을 양분했다. 다만 동네 페스타라는 행사 자체가 이번이 첫 방문이었기 때문에 이 행사 쪽에 좀 더 기대가 되었다.
물론 회장 자체가 코믹월드가 수시로 대관하는 SETEC이나 aT센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좁았기 때문에 일단 '양적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그 때 구입한 것은...
...이게 전부였다. 쇼핑백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들어갈 때 받은 것이고, 흑백 인쇄된 책자는 카탈로그니까 결국 구입한 것은 카탈로그 옆의 보컬로이드 트윈지가 전부였다. 그나마 저 트윈지도 사실은 2008년 11월 서코에서 구입한 것의 개정판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새로 구입한 것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참담했다.
행사의 성향 자체가 여성향이 압도적인 모습이었던 서드플레이스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었는데, 물론 코믹월드도 일단 부스 비율을 따져보면 여성향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거기는 일단 규모가 크고 그 만큼 참가 부스도 많기 때문에 그 중에 건질 것도 찾아보면 꽤 된다. 하지만 일단 여성향에 관심이 없는 인남캐에게는 막말로 '소문난 잔치에 남자라서 먹을 것이 없다' 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냥 '이런 행사가 있구나' 하고 확인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멸망한다던 지구가 여전히 돌고 있던 2012년 연말에 코믹월드와 동네 페스타의 두 번째 '빅 매치' 가 성사되었다. 동네 페스타의 경우 그 동안은 하루만 열리는 행사였지만, 이번에는 12월 29~30일 이틀 동안 개최되었다. 동네 페스타가 이렇게 일정을 잡자 코믹월드도 똑같은 날 SETEC에서 행사를 개최해 맞불 작전을 펼치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일단 동네 페스타는 지난 번 가서 '데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있었다.
바로 동인 행사로서는 최초로 COEX를 대관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는데, SETEC이나 aT센터와 달리 COEX는 장내 질서를 어지럽히는 노점상이나 무개념 코스플레이어의 창궐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시설이었기 때문에 동네 페스타의 입성 소식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물론 이는 동네 페스타라는 행사 자체가 부스 참가자와 일반 참가자를 막론하고 코스프레를 전면 금지하기 때문에, COEX로서도 대관 허용에 큰 무리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전히 구매욕에 관해서는 코믹월드 쪽이 더 땡긴 관계로, 일단 토요일(29일)에 SETEC에 먼저 가는 것으로 연말의 마지막 동인 행사 순례를 시작했다. 행사장은 여느 때처럼 무척 번잡해 바깥의 추위나 폭설을 느끼기는 커녕 더워서 땀까지 흘릴 정도였고, 그 와중에도 이런 것들을 건질 수 있었다.
★sparkling citrus★ (1관 B14): 컬러 일러스트북 'LINK & LINK' (3500\), 컬러 일러스트 & 러프북 'Snowflake' (3500\), 보컬로이드 엽서달력 세트 (4000\)
원래는 바로 옆 부스인 Dessert Candy와 함께 '포니테일' 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는 부스였지만, 멤버 중 cocoon 화백의 업계 일이 많아지면서 Mca 화백의 Dessert Candy 부스만 정기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록 부스 명칭은 달랐지만 사실상 트윈 부스 형태로 참가했는데, 일단 Dessert Candy 쪽은 팬시 구매객으로 미어터지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였던-어디까지나 상대적이었다-이 부스에서 구입했다.
일러스트의 대부분은 구작에서 전용하거나 '소드 걸스' 라는 게임의 카드 일러스트를 수록한 것이었는데, 비록 온라인 게임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저 게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게임은 몰라도 일러스트의 미려함은 명불허전이라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다만 'Snowflake' 의 경우 이번에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돈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못살 뻔했다.
orange shabette (3관 I29): 컬러 일러스트북 'NOVELETTE:re' (4000\)
이것도 전혀 예상 못했던 신작이었다. SALT 화백의 세 번째 개인지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소드 걸스의 카드 일러스트와 노블엔진의 2013년 달력 일러스트 등 소위 '업계' 쪽 일러스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개인 취향의 차는 있겠지만, 카드의 일러스트로 상당 부분 어필하고 있는 게임인 만큼 이 게임의 일러스트 작업에 참가한 소위 '존잘러' 들이 낸 일러스트북 자체도 그 만큼의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의 것들과 함께 세 일러스트북 모두 일본의 코믹마켓에서도 판매 예정인지 한국어와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기도 했다. 소드 걸스라는 게임 자체가 이미 일본과 북미 지역에도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쪽 동인들의 수요도 의식하고 책을 만든 것으로 여겨졌다.
시나브로 (3관 J28): 시유, 마그넷 카가미네 린렌 버전 안경클리너 (1500x2=3000\), 시유 천필통 (3500\)
7월 코믹 때 이미 같은 품목들을 구입한 바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품들의 일러스트가 새로이 바뀌었기 때문에 구입했다. 이것도 예정에 없었기 때문에, 구입하기까지 꽤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은 샀지만. 덕분에 동네 페스타에서 쓸 예정이었던 돈은 점점 줄고 있었다.
Cat of Fish (1관 D04): 패러디 회지 'Cat or Fish?! zero', 책갈피들 (...공짜...)
참 오래간 만의 참가였는데, 이번에도 예전처럼 쿄애니(케이온!)와 가지버섯(Fate/Zero) 두 요소는 여전했고 저 회지도 후자의 것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공백 기간 동안 헐벗은 그림을 많이 연습해 19금 회지로 부활할까 싶었지만...은 훼이크.
아무튼 저 작가의 하츠네 미쿠 카드 케이스와 럭키☆스타 천필통은 나와 함께 독일까지 갔다온 바 있는 만큼 공짜가 아니어도 어차피 살 물건이었다. 물론 정말 강탈 수준의 공짜는 아니었고, 공포의 칼로리 폭탄 과자인 팀탐 초콜릿맛+바닐라맛 각 120g씩과 네스티 500ml 한 병을 조공으로 바치고 받았지만.
그 외에 새로 나온 책갈피들도 몇 종류 받았는데, 그 중엔 리그 오브 레전드(약칭 LOL)가 있어서 크게 눈에 띄었다. 실제로 이번 서코에서 LOL 관련 부스들이 꽤 여럿 참가한 것이 눈에 띄었는데, 물론 상술한 대로 온라인 게임을 안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에 비견될 만큼의 폐인 양성 게임이라 급속한 중독성으로 동인계에서도 어필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게임 자체가 천조국 쌀나라 것이라서, 참가한 부스들 중 상당수가 캐릭터들의 일러스트들을 한국식 (혹은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팬시나 일러스트북을 내놓고 있었다.
이외에도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라던가 이런저런 신작 애니의 부스도 여럿 있었는데, 다만 동네 페스타에서 혹시 있을 지 모를 지름신 강림에 대비해 현찰을 최대한 아껴두자고 다짐했기 때문에 이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쌓인 눈이 얼어붙어 빙판으로 화한 일요일(30일)에는 COEX로 갔다. 물론 가기 전에 미리 행사 홈페이지에서 부스의 숫자와 성향을 체크해본 바로는 이번에도 여성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빈 손으로 나오겠지. 운좋아 봐야 팬시 하나 혹은 회지 한 권 정도?" 라는 식의 다소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코엑스몰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자마자 서 있던 행사 안내 입간판들. 맨 오른쪽에 동네 페스타의 것도 보인다.
행사장인 COEX B2 전시장 입구. 거의 매 번 도떼기 시장인 코믹월드와 비교하면 너무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라 '설마 이번 행사, 흥행 실패했나?' 는 노파심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입장권을 구입했다. 이번에는 대관료 때문인지 입장료가 3000원으로 인상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코믹월드보다는 최대 1000원, 최소 600원 저렴했다.
들어갈 때 일단 신분을 확인한 뒤 이렇게 종이 띠를 팔목에 감아줬다. 쉽게 찢어질 것 같기도 했지만, 막 잡아당겨도 좀처럼 풀리거나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꽤 질겼다. 붉은색이 19세 이상 성인, 푸른색은 19세 미만 청소년 식으로 구분하고 있어서, 이것도 서드플레이스의 그것과 비슷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그 행사처럼 아예 19금 부스만 따로 모아놓는 강한 통제는 하지 않았고, 19금 작품으로 참가한 부스에 개별적으로 손목띠를 확인하도록 자율 규제를 하고 있었다.
행사장 안은 좀 더 사람이 많이 보였지만, 그렇다고 미어터질 정도로 많아 걸어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공간 자체가 꽤 넓었고, 또 코스프레를 배제하다 보니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체로 기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닐 소지가 적은' 쪽이 많아 자정 작용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업 부스의 참가를 잘 안받는 다른 행사와 달리, 이번에는 시유를 개발한 SBS 아트텍을 비롯해 크리크루, 인디켓, 노블엔진 같은 곳의 참가를 같이 받았다.
부스들은 모두 코믹월드 식의 요란한 디스플레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오히러 그 덕에 디스플레이 군축 경쟁으로 부스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코믹월드보다 더 깔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매 부스마다 이렇게 주최 측의 작지만 꼼꼼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기본적으로 책상 하나 당 생수 한 병과 쓰레기 봉투 두 종류(검은 것은 일반쓰레기, 반투명한 것은 재활용쓰레기), 그리고 가볍게 요기할 수 있는 작은 롤샌드위치까지 비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참가한 부스든 이렇게 신청은 했지만 사정상 불참 혹은 늦게 들어온 부스까지 예외가 없었다.
부스와 무대 외에 행사장 한 켠에 조촐한 카페테리아를 만들어 두고 커피나 음료수를 사마실 수 있게 탁자까지 비치한 것도 눈에 띄었다. 미리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오로지 자판기에 의지해야 하는 코믹월드와 달리, 여기서는 음료를 들면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관객에 대한 배려에도 더 신경을 썼다고 볼 수 있겠다.
이건 행사와는 관계 없지만, 행사장 내 남자화장실 소변기 위의 벽에 웬 피카소 그림을 모사한 타일이 있어서 그냥 찍어 봤다. '아비뇽의 처녀들' 로 본격 개막된 큐비즘 시대의 피카소 그림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상당히 기괴해 보이는 것이 많지만, 당시 자신의 애인이었던 마리-테레즈를 모델로 한 저 '꿈(Le Rêve)' 이라는 작품은 몇 안되는 예외로 상당히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라 저렇게 장식해놓은 것 같았다.
행사장 입구 기준으로 맨 오른쪽 부스는 동인 게임이나 음악에 할애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동인 외에도 크리크루에서 공인한 CD를 파는 곳도 있었다. 한국의 시유에 이어 첫 중국어 보컬로이드로 개발된 뤄톈이(洛天依. 한국어식 한자 독음으로는 낙천의)도 여기서 홍보하고 있었는데, 시유와 뤄톈이가 부른 노래들을 담은 CD도 장당 12000원에 팔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CD 한 장 살 돈마저도 없었고,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의 노래 자체에서 나오는 태생적 한계인 기계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구경만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뤄톈이의 노래는 '천년식보송' 과 '28세' 를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다소 국적 불명으로 디자인된 시유의 캐릭터와 달리 뤄톈이의 경우 그림에서도 보이듯 어느 정도 중국풍을 의도하고 만든 캐릭터라서 의외로 반응이 좋은 모양이다.
입장료 3000원을 지불했으니, 이제 나에게 남은 돈은 고작 7000원과 동전 몇 개 뿐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신용카드 결제를 지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부스 대부분이 여성향이라 내 구미에는 맞지 않았던 것도 있어서 결국 빈 손으로 가나 했다.
그렇게 부스를 계속 돌아보다가 NiTe라는 부스(N-10)에서 파는 회지가 눈에 띄었는데, 사실 저 부스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회지가 코믹월드에서도 팔리고 있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는 따로 벽으로 부스를 이전해 놓고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그냥 상큼하게 포기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줄을 설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회지의 내용도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두꺼운 구간이 4000원, 신간이 3000원이라는 가격이라 남아 있는 잔액에 딱 맞아떨어졌고, 결국 구입했다.
문자남매와 문자남매 冬. 이 회지들이 내가 이 날 구입한 물품들이자 역대 동네 페스타 관람 이래 최고액+최다 구매 기록이었다. 그래봤자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회지 밑에 있는건 A4 사이즈 종이 포스터였는데, 클리어 파일을 갖고가지 않아서 미봉책으로 회지 사이에 끼워보아도 좀 삐져나왔기 때문에 갖고 가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지질이 꽤 두껍고 튼튼했기 때문에 집에 와서 가방에서 꺼냈을 때는 귀퉁이만 몇 mm 정도 구부러진 정도여서 다행이었지만.
도무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남매들의 알콩달콩한 '카톡질' 을 가지고 각색한 4컷 개그물이었는데, 뒤집어질 정도로 웃기거나 정교하고 미려한 그림체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박하면서도 의외로 깔끔한 그림과 확고한 캐릭터성 때문에 알거지 신세를 작정하고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입장객에게 배부된 맨 오른쪽의 카탈로그도 마치 잡지 표지처럼 디자인한 것이 이채로웠는데, 부스 배치와 행사 일정, 온리전 홍보 광고 외에 요즘 이 바닥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아청법' 에 대한 비판을 담은 에세이까지 싣고 있었다.
주최 측에서도 아예 행사장 내의 본부석 쪽에서 아청법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 법안 통과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이 새누리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당파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였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 지 회의적이기는 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발휘한 '깡' 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원치 않던 괴상한 문화통제 법안과 대통령 당선자, 시교육감 당선자를 맞이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이했다. 갈 수록 조국과 민족, 애국심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비관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적어도 투표권을 행사해 관료를 자기 손으로 뽑았고, 또 문화를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은 것에 찬성하는 사람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사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라는 기반을 지켜가며 행한 행동이니까.
물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러한 현상에 대한 비판의 자유 역시 보장해야 하고, 법이 통과되고 누가 당선됐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문화계 종사자로서, 새 정권이 이전처럼 문화계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나누는 구시대적 작태를 유지하면서 국수주의의 시녀로 악용하거나 다양성을 보장하지 않는 획일화를 조장 혹은 방치하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으니, 추이를 계속 지켜보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면 내려고 한다.
Posted by 머나먼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