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고음반 쇼핑몰인 뮤직앤시네마에서 주문한 물건이다. SKC는 1980년대 후반 CD 제작에 뛰어들면서 주로 상업용 음반을 만들었지만, 드물게 소위 '사가반' 도 만든 적이 있다. 그 증거가 이 CD인데, 음반 번호도 당시 통상적으로 붙던 'SKCD-C-XXXX' 가 아니라 'JYL 01' 이다. 아마 이 음반 제작을 위탁한 첼리스트 이름의 영어 알파벳식 이니셜을 따서 붙인 것 같다.
첼리스트 이주영은 음반 속지의 이력을 참조하면 1993년 당시 미국의 커티스 음악원에 재학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음반에는 각각 전년도 5월과 9월의 협주곡 연주 실황을 담고 있다. 둘 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실황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고 정확한 날짜는 없는데, 홍연택 지휘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엘가 첼로 협주곡의 경우 집에 소장하고 있는 홍연택 추모 연주회 프로그램의 공연 기록 목록을 참조하면 5월 26일의 특별초청연주회 실황이다.
당시 국내 첼리스트가 협주곡 연주를 모아 음반으로 발매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도 꽤 귀한 앨범으로 보인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실내 관현악단과 협연한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 보다는 엘가 협주곡에 관심이 있어서 구입한 것인데, 이것 외의 예가 없다면 아마 이 음반이 홍연택과 코심이 남긴 유일한 본격 클래식 음반일 것이기 때문이다.
연주와 음질은 당일치기 실황임을 고려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인데, 당시 코심이 비슷한 시기였던 정재동 (상임 지휘자) 재임기의 서울시향이나 금난새 (전임 지휘자) 재임기의 KBS향과 달리 찬송가 녹음을 제외하면 제대로 클래식 음반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예술의 전당 유튜브 채널에서 꼬박꼬박 정기연주회 실황 동영상이 업데이트되고 있는 것이 위안이지만.
마찬가지로 뮤직앤시네마에서 구입한 음반. 서울바로크합주단은 지금까지 꽤 여러 종류의 음반을 내놓고 있는데, 그 중 아마 최초의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 이 물건이다. 당시 음반 사전심의제 때문에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번호는 나와 있지만 정확한 녹음 일자와 장소 같은 정보는 없고, 녹음 감독이 일본인인 요시무라 스나오로 되어 있어서 혹시 일본에서 녹음한 것인지, 혹은 일본인 스탭을 불러서 녹음한 것인지도 도무지 알 수 없다.
작곡된 순서대로 텔레만의 모음곡 '돈 키호테' 와 칼 슈타미츠의 플루트 협주곡 G장조,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춤곡, 김병곤의 신포니에타 네 작품을 담고 있는데, 슈타미츠 곡에서는 재일교포 플루티스트인 김창국이 협연했다. 텔레만의 작품은 요즘 하도 원전연주가 대세가 되다 보니 현대악기로 연주한 음반이나 음원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개인적으로도 그나마 '함부르크의 밀물과 썰물' 과 식탁음악 제3집의 일부 정도만 들어봤을 뿐이다.
재미교포 작곡가 김병곤의 작품으로 마지막을 장식한 것도 크게 눈에 띄는 대목인데, 작곡자 자신이 직접 쓴 곡목 해설에 따르면 1987년 3월에 완성해 서울바로크합주단과 리더인 김민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꽤 전위적인 형태의 난곡인데, 그 때문인지 나머지 곡들에서는 무지휘로 연주했지만 이 곡에 한해서 김병곤 자신이 지휘를 맡았다고 되어 있다.
속지는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이주영 첼로 협주곡집과 마찬가지로 읽기가 좀 힘들다. 특히 김병곤 곡의 해설과 작곡자 이력의 경우 한자로 엄청나게 떡칠이 돼서 한글전용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무슨 암호문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 음반 속지의 백미는 김창국과 김민의 프로필 사진을 완전히 반대로 게재한 것인데, 김창국 사진의 오른쪽 밑에 플루트가 보이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쓰면 편집 오류를 어렵잖게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편집 담당자가 엄청나게 깨졌을 것은 분명하겠지만.여담으로, 이 음반에 수록된 녹음들 중 버르토크 곡을 제외한 세 곡이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창단 30주년이었던 1995년에 해동물산에서 발매한 기념 음반에 그대로 들어갔다. 해동물산의 음반에는 버르토크 대신 자사에서 제작한 KBS 음반 시리즈에 있던 바흐의 세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넣었는데, 왜 이렇게 이상하게 짜깁기가 된 음반을 창단 기념반으로 제작했는 지는 모르겠다.
수원시립예술단 유료회원 가입 특전으로 받은 CD인데, 박은성 재임기에 제작한 음반 중 예술단 측에 재고가 남아 있는 것은 2013년 4월 현재 이 음반 하나 뿐이라고 한다. 비매품인 만큼 언제 재생산이 될 지, 혹은 가능할 지도 모르는 물건인데, 이것도 지난 번의 바그너 관현악곡집처럼 성남의 분당요한성당에서 2003년 2월 18-21일 동안 스튜디오 녹음으로 제작된 음반이라고 되어 있다.
수록곡은 환상교향곡과 서곡 '로마의 사육제', 파우스트의 겁벌 중 헝가리 행진곡 세 곡인데, 악보의 지시를 꽤 깐깐하게 지키는 타입의 지휘자답게 이 녹음에서도 다른 음반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면모가 종종 보인다. 특히 환상교향곡에서 이런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2악장에서는 보통 작게 인쇄되어 있어서 많은 지휘자들이 생략하곤 하는 코넷의 오블리가토 악구를 그대로 살리고 있고, 4악장에서는 전반부를 한 번 더 반복하고 있다. 현악기 배치도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각각 지휘자 왼쪽과 오른쪽에 오는 소위 '양익 배치' 를 통해 당대 악기 배치 스타일을 재현하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베를리오즈 관현악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는 소위 '똘끼' 는 좀 부족한 점잖은 타입의 연주로 여겨졌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세심하게 준비해서 제작되는 스튜디오 녹음의 강점인 깔끔한 음질이나 편집이라는 강점은 여전하다. 녹음된 소리의 질감도 다소 어둡고 두터웠던 바그너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편이고. 새삼스럽게 이 녹음을 제작한 정남일의 이른 죽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모은 한국 관현악단의 환상교향곡 음반은 박탕 조르다니아 지휘의 KBS향(1992 서울음반)을 시작으로 임헌정 지휘의 부천 필(2002 악단 자체 사가반), 이 녹음, 그리고 백진현 지휘로 (지금은 창원시향에 통합된) 마산시향(2008 오디오가이 위탁 사가반)이 녹음한 것까지 네 종류로 늘어났다. 기괴한 내용임에도 오케스트레이션의 달인이 쓴 작품 답게 한국 청중들도 꽤 애호하는 곡이라는 게 이 음반 장수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한국 관현악단의 음반 사냥은 일단 잠정적으로는 이렇게 끝나 있고, 다음에는 회현 지하상가의 중고음반점 중 한 군데인 '미스티레코드' 에서 수집해 온 음반들을 다루고자 한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