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드플레이스가 몰락한 뒤 코믹월드의 사실상 독과점 체제에 일종의 '도전장' 을 던진 것이 동네 페스타와 케이크 스퀘어라는 행사들이다. 이들 행사는 코믹월드 만큼 자주 열리지는 않고 있지만, 동인이라는 유형의 문화가 일본에서 유입되었고, 또 그 일본의 대표 행사인 코믹마켓도 1년에 여름과 겨울에만 두 차례 열리는 것을 보면 행사 개최의 빈도 수보다 내실에 집중하려는 포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1회 행사 때는 가지 못해 이번이 첫 방문이었는데, 다만 사보텐 스토어에서 미리 인터넷 예매를 하고 갔음에도 들어가는 시간이 일반 입장객과 비교해 조금 빠른 정도여서 행사 진행의 미숙함이 처음부터 드러났다. 행사는 SETEC의 1관 한 군데를 대관했는데, 장르/작품별 온리전과 일반 부스, 동인 게임/음악 참가 부스, 상업 부스를 따로따로 나눈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그 나눈 정도가 너무 복잡해 관람 동선이 좀 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구입 품목은 이게 다였다. 맨 오른쪽은 행사 팜플렛이니 딱 두 권. 맨 오른쪽의 세일러문 컬러 러프북은 나르닥 화백의 작품이고, 중앙의 19금 러프북은 Mytyl 화백과 Bu-nong 화백의 합동지. 두 권 다 크기가 크지 않아 팜플렛에 쉽게 은닉해올(???) 수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다소 싱거우면서도 혼란스럽게 끝난 케이크 스퀘어 탐방 후, 이 날의 메인 이벤트인 지구촌나눔한마당의 부대 행사인 세계음식축제에서 쳐묵쳐묵을 위해 곧바로 시청으로 이동했다. 시청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이렇게 아시아 국가들의 음식 부스들이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른 음식은 키르기스스탄 부스의 쁠로프. 영어로는 필라프라고 부르는 일종의 볶음밥인데, 키르기스스탄 외에도 ~스탄 돌림의 국가들과 이란, 인도, 기타 중동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다. 다만 이게 정말 땡긴 것은 모리 카오루 화백의 신부이야기 3권에서 나온 바자르(재래시장)의 음식 노점상 장면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수북한 당근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주문했다.
다행히 당근은 푹 익혀서 매우 부드러웠는데, 평소 느끼한 것을 잘 먹기는 하지만 이건 유달리 튈 정도로 그 기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샐러드를 곁들여준 것 같은데, 샐러드에는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독극물이나 마찬가지인 오이가 들어 있어서 결국 패스. 샐러드의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진한 맛의 밥과 당근, 고기가 어우러진 푸짐한 모양새는 이후에도 한 번 더 이 음식을 찾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베네수엘라 부스에서 사먹은 아레빠 콘 하몽 이 께소. 영국식 머핀 비스무리하게 생긴 옥수수빵 사이에 햄과 치즈를 끼운 것은 그 때와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추가로 아보카도 간 것까지 더해져 더 진한 맛이었다.
입가심 하려고 샀지만 집에 가서 가족들과 나눠 먹었던 우루과이 부스의 알파호르. 쿠키 사이에 모과잼으로 보이는 것을 발라 겹친 과자였는데, 원래는 일종의 끈적하고 부드러운 캐러멜 소스인 둘쎄 데 레체(dulce de leche)를 넣는 것이 제대로 된 조리법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둘쎄 데 레체 자체도 칠레 부스에서 팔고는 있었지만, 집에서 제대로 먹을 수 있을 지 몰라서 사오지는 못했다.
느끼하고 진한 음식으로 시작한 만큼, 청량감이 필요해 독일 부스에서 크롬바허 500ml 한 캔과 구운 소시지 추가. 소시지로 유명한 나라의 부스에서 팔던 소시지가 너무 작은 게 흠이었지만, 맥주는 더 이상의 말이 必要韓紙?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안주가 땡기길래, 이웃 나라이기도 하고 이웃 부스이기도 했던 프랑스 부스에서 사먹은 일종의 오르되브르 모듬. 얇게 저민 햄과 무스, 테린(고기가 든 파이의 일종)을 섞은 것을 딱딱한 바게트와 함께 먹는 것이었는데, 입이 저렴해서 어떤 것에 무슨 고기를 썼는 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럽고 진한 맛의 냉육류 요리들이라 맥주와도 당연히 잘 어울렸다.
하지만 기름진 볶음밥으로 시작한 데다가 맥주 500 한 캔을 들이붓는 짓을 했기 때문에 벌써부터 위장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음식 부스들은 청계천 자락에서 왼쪽으로 꺾인 길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일단 이 쪽에서 입가심을 좀 하고 싶었다.
세네갈 부스에서 사마신 바오밥 주스. 바오밥이라는 식물은 그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에 언급된 조낸 크고 아름다운 나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도 괴악한 펩시 시리즈 제조의 명가인 산토리에서 내놓은 바오밥 펩시가 있다는 게 내가 아는 모든 정보였다.
다행히 한국어가 통해서 이래저래 물어보고 사마셨는데, 이 날 마신 것 중 가장 강한 인상을 준 음료로 손꼽고 싶다. 굉장히 부드럽고 적당한 단맛이 일품이었는데, 어떻냐고 물어보길래 '마치 부드러운 요구르트를 한 잔 마시는 것 같다' 고 대답했다. 그러자 요구르트는 하나도 넣지 않았다고 웃으면서 답해줬는데, 재료 조달만 제대로 된다면 한국의 카페 체인들에서도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부드럽고 달콤한 주스를 마시고 나니 단 걸 유난히 좋아하는 내 미각은 그 후로도 계속 그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터키 부스의 돈두르마. 예전처럼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농락 기술을 선보이지는 않고 있었지만, 쫀득쫀득한 식감은 여전했다.
다시 프랑스 부스에 가서 사먹은 크레페. 속에는 밤으로 만든 달콤한 퓨레가 들어 있었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부스에서 팔았던 블린니의 아쉬움을 이것으로 달랠 수 있었다.
그러고도 계속 소화를 위해 계속 왔다갔다 했는데, 다시 청계천 쪽에 있던 이집트 부스에서 또 달달한 과자류가 눈에 띄길래 지나칠 수 없었다.
왼쪽이 바스보사, 오른쪽이 바라 엘 샴이었는데, 이미 아랍식 과자들은 여기서 맛보았기 때문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바크라바가 없던 것이 좀 아쉬웠지만, 이 쪽 과자들은 당도가 꽤 높아서 이 정도만 먹어도 충분하다.
그리고 음료 세 종류로 이날의 쳐묵쳐묵을 마무리했다. 지난 번 과테말라 부스에서 마신 오르차따와 콜롬비아(맞나?) 부스에서 마신 사탕수수 주스, 그리고 스페인 부스에서 마신 윗 짤방의 상그리라. 사탕수수 주스는 뭔가 많이 달달할 것 같았지만, 그리 달지는 않았고 상그리라는 레몬 조각만 넣어 급조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실 스페인 부스에서도 일종의 볶음국수인 피데오와 얇게 저민 하몽(생햄), 초리소(소시지) 등을 빵 사이에 끼운 보까디요 같은 것을 팔고 있었지만, 먹고는 싶어도 빵빵한 배가 거부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이 행사는 어린이날이었던 다음날에도 열렸지만, 날이 날인 지라 인파가 훨씬 많을 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재방문을 포기했다.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먹는 것 보다는 CD 같은 것에 훨씬 많은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그나마 좀 이성을 찾자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지만.
그리고 이후 치과 진료 때문에 먹는 것에 꽤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쳐묵활동이 좀 들쭉날쭉한데, 일단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마포만두와 세 번째로 찾아간 동대문 사마르칸트 썰을 동시에 풀려고 한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