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저 포스팅에서 나는 더 많은 녹음이 담긴 CD의 존재를 언급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 CD들을 지난 달 독일 아마존을 통해 주문한 뒤 구매대행 사이트를 이용해 한국에서 배송받을 수 있었다. 다만 저 CD들만 주문한 건 아니었고, 이미 나치 시대의 유사 재즈를 다룬 예전 포스팅들에서 언급한 유베의 음반 네 종류도 같이 주문했다.
베를린의 마이젤 음악출판 그룹(Meisel Musikverlage) 산하 레이블인 모노폴(Monopol)은 주로 독일 팝 뮤직이나 한국으로 따지면 트로트의 위치라고 할 수 있는 장르인 슐라거(Schlager) 음반과 음원을 발매하고 있다. 이 레이블에서는 루돌프 슈뢰더가 동서독 분단 말기였던 1987년부터 동베를린 방송국의 음향 자료실을 조사하면서 찾아낸 독일 무도오락악단의 음원을 순차적으로 음반화하기 시작했다.
슈뢰더의 조사 작업은 약 4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1987~88년에 분류된 28곡의 녹음을 동베를린 방송국의 허가를 받고 LP와 CD로 제작했다. 세트의 '1집' 인 이 더블 앨범에 수록된 녹음들은 1942~43년에 방송용으로 녹음된 아세테이트 디스크에 보존되어 있던 것들인데, 초기 밴드 리더들이었던 게오르크 헨셸(Georg Haentzschel, 1907-1992)과 프란츠 그로테(Franz Grothe, 1908-1982)가 지휘자로 기재되어 있다.
속지에는 이 밴드의 창단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1940년 겨울에 그로테가 어느 친분 있던 독일군 공군 조종사와 나눈 대화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공군 조종사들은 폭격과 전투 임무 때문에 독일 영공 바깥으로 자주 나갔고, 또 그 과정에서 독일 현지에서는 청취가 법적으로 엄금되어 있던 영국과 미국의 방송을 아무 제재 없이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테는 이 대화에서 많은 독일군 조종사들이 맨날 행진곡과 민요, 클래식만 나오는 독일 방송에 신물이 난 상태고, 오히려 BBC에서 방송하던 강렬한 리듬의 스윙 재즈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로테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만약 나치 선전성에서도 이런 사실을 안다면, 그 쪽에서도 그들이 고수해 온 재즈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저 조종사의 고백 말고도, 전쟁 중의 독일에서 아직도 적국의 재즈 방송을 몰래 듣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은 친위대 산하 게슈타포의 방첩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그로테가 저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기 전에도 이미 괴벨스가 각종 연설문이나 일기, 편지에서 재즈의 수용/거부와 관련해 꽤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보여준 바 있었다. 결국 이 밴드는 음악인 그로테와 선전선동가 괴벨스의 이해 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괴벨스의 지시를 받아 독일 무도오락악단을 창단한 이는 그로테였지만, 이 음반에서 그로테가 지휘한 녹음은 여섯 곡(*)에 불과하다. 나머지 곡들은 모두 헨셸이 지휘했는데, 속지에 언급된 바로는 그로테가 영화음악 작곡이라는 업무의 과중함 때문에 헨셸을 영입했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실상 밴드를 이끈 이는 그로테가 아닌 헨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밴드의 주요 활동이 공연장 라이브가 아니라 방송용 녹음이었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헨셸은 이 밴드의 리더로서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일천한 독일어 실력 때문에 오역이나 도가 지나친 의역이 있을 수 있지만, 대충 번역해 본 수록곡은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의 정보는 독일어 원제/영화나 오페레타에서 따온 곡이라면 그 출처/편곡자/녹음 일자 순이다.)
CD 1
1. 게오르크 헨셸: 그대가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바래요 (Ich wünsche mir, dass du mir sagst - Ich liebe dich/아돌프 슈타이멜 Adolf Steimel/1943년 6월 30일)
2. 호르스트 쿠드리츠키(Horst Kudritzki, 1911-1970): 8시에서 8시까지 (Von Acht bis um Acht/프란츠 뮈크 Franz Mück/1942년 10월 14일)
3. 빌리 슈미트-겐트너(Willy Schmidt-Gentner, 1894-1964): 나는 오늘 정말 사랑에 빠졌어요 (Ich bin heute ja so verliebt/영화 '빈 기질(Wiener Blut)'/1943년 5월)
4. 페터 크로이더 (Peter Kreuder, 1905-1981): 행복이 가득한 밤을 위해 (Für eine Nacht voller Seligkeit/영화 '코라 테리(Kora Terry)'/아돌프 슈타이멜/1943년 3월 24일)
5. 레오 뢰 (Leo Leux, 1893-1951): 별들이 빛나네 (Es leuchten die Sterne/동명의 영화/프란츠 슈톨첸발트 Franz Stolzenwald/1943년 10월 8일)
6. 테오 마케벤 (Theo Mackeben, 1897-1953): 그대에게 그건 늘 너무 아름다워요 (Bei dir war es immer so schön/음악 희극 '아니타와 악마(Anita und der Teufel)'/호르스트 쿠드리츠키/1942년 6월 26일)*
7. 프란츠 그로테: 나는 그대의 그림자가 되겠어요 (Ich will dein Schatten sein/영화 '그대와 왈츠를(Ein Walzer mit dir)'/발터 레셰티츠키 Walter Leschetizky/1943년 3월 19일)*
8. 빌리 콜로 (Willi Kollo, 1904-1988): 언젠가 그대가 다시 내게 온다면 (Einmal wirst du wieder bei mir sein/영화 '우리는 세계를 돌며 춤추네(Wir tanzen um die Welt)'/빌리 베르킹 Willi Berking/1942년 7월 13일)
9. 아돌프 슈타이멜 (1907-1962): 남자들은 정말 사랑할 가치가 있어요 (Die Männer sind schon die Liebe wert/1942년 8월 26일)
10. 테오 마케벤: 여자들은 천사가 아니에요 (Frauen sind keine Engel/동명의 영화/1943년 1월 6일)*
11. 테오 마케벤: 아시발꿈 단지 꿈일 뿐 (Träume nur/영화 '대모험(Das große Abenteuer)'/발터 레셰티츠키/1943년 1월)
12. 미하엘 야리 (Michael Jary, 1906-1988): 사랑을 위한 나의 삶 (Mein Leben für die Liebe/영화 '크나큰 사랑(Die große Liebe)'/아돌프 슈타이멜/1942년 8월 21일)
13. 페터 크로이더: 그대를 사랑해요 (Ich liebe dich/영화 '나네테(Nanette)'/1943년 6월)*
14. 미하엘 야리: 그대를 통해 세계는 비로소 아름다워지네 (Durch dich wird diese Welt erst schön/영화 '사랑의 카니발(Karneval der Liebe)'/프란츠 뮈크/1943년 10월 11일)
CD 2
1. 헬무트 코흐 (Helmut Koch, 1908-1975): 푸른 바다의 꿈 (Träume am blauen Meer/1943년 6월 30일)
2. 페터 이겔호프 (Peter Igelhoff, 1904-1978)+아돌프 슈타이멜: 우린 음악을 만들죠 (Wir machen Musik/아돌프 슈타이멜/1942년 10월 14일)
3. 빌리 콜로: 어느 대도시의 두 사람 (Zwei in einer großen Stadt/동명의 영화/아돌프 슈타이멜/1942년 9월 4일)
4. 페터 이겔호프: 의사양반이 말하길, 난 키스하면 안된다네요 (Der Onkel Doktor hat gesagt, ich darf nicht küssen/영화 '두 여자(Zwei Frauen)'/1942년 12월 4일)
5. 미하엘 야리: 내게 더 이상 붉은 장미를 선물하지 말아요 (Du darfst mir nie mehr rote Rosen schenken/1943년 5월)
6. 칼 밀뢰커 (Carl Millöcker, 1842-1899): 검붉은 장미 (Dunkelrote Rosen/오페레타 '가스파로네(Gasparone)'/1943년 11월)
7. 프란츠 그로테: 모든 여자는 달콤한 비밀을 갖고 있지 (Jede Frau hat ein süßes Geheimnis/영화 '모험은 계속 된다(Das Abenteuer geht weiter)/1943년 5월)
8. 베르너 보흐만 (Werner Bochmann, 1900-1993): 술집의 밤 (Abends in der Taverne/영화 '완벽한 녀석(Ein Ganzer Kerl)/헤르베르트 뮐러 Herbert Müller/1942년 7월 28일)
9. 요제프 릭스너 (Josef Rixner, 1902-1973): 오늘 밤 내게 와줘 (Komm' zu mir heut' nacht/오페레타 '불쌍한 요나탄(Der arme Jonathan)' 신판/1943년 5월)
10. 페터 크로이더: 봄이 오고 해가 비치면 (Wenn es Frühling wird und die Sonne scheint/영화 '코라 테리'/1942년 8월 26일)
11. 에릭 데네케 (Erik Deneke, 생몰년 불명): 마리아, 내게 미소를 보내줘요 (Schenk mir dein Lächeln, Maria/1942년 8월 21일)
12. 알렉산더 슈타인브레허 (Alexander Steinbrecher, 1910-1982): 밤에 한 우산 속에서 (Unter einem Regenschirm am Abend/희가극 '내 조카딸 수잔네(Meine Nichte Susanne)'/1943년 3월 5일)*
13. 에드문트 니크 (Edmund Nick, 1891-1974): 한여름 동안 (Einen Sommer lang/음악 희극 '작은 궁정음악회(Das kleine Hofkonzert)/에른스트 피셔 Ernst Fischer/1942년 10월 30일)*
14. 프란츠 그로테: Franz Grothe: 눈을 감고 꿈을 꿔요 (Schliess deine Augen und träume/영화 '통 속의 결혼(Ehe in Dosen)'/호르스트 쿠드리츠키/1943년 7월 9일)
목록을 보면 유행가나 밴드 멤버들이 작곡한 오리지널 연주곡도 있지만, 대부분은 영화 주제가나 삽입곡, 오페레타나 레뷰 등 대중적인 무대 작품의 아리아 혹은 히트 송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로테와 헨셸이 모두 영화음악 쪽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이고, 또 괴벨스가 전화에 허덕이던 독일 국민들을 위한 일종의 우민화 정책으로 오락 영화를 더욱 많이 제작할 것을 명령하면서 나온 부산물로도 여겨진다.
물론 녹음 시기가 시기고, 또 녹음된 매체가 매체인 만큼 깔끔한 소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원판의 표면 잡음도 대부분 제거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 독일의 방송 기술이 세계 어느 방송국과 비교해도 결코 꿀리지 않던 터라 잡음만 감수한다면 들을 만한 수준이다.
다만 녹음들 중에 좌우 채널의 정위가 불균형하거나 심지어 스테레오 식의 임장감이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서, 당시 제국방송에서 스테레오 녹음을 시험한 것인지 아니면 EMI 독일 지사인 엘렉트롤라 등이 사용한 브라이트클랑(Breitklang) 방식의 의사 스테레오-모노 녹음의 주파수 대역을 분석해 인위적으로 스테레오화 시키는 것-로 복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리송한 음향 균형 외에 음반 수록 시간도 좀 불만스러운데, 원래대로라면 한 장당 적어도 1시간 내외는 수록해야 했겠지만 장당 평균 수록 시간은 겨우 45분 대에 불과하다. 이는 2집과 3집도 마찬가지라서, 괜히 음반 장수만 늘어나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1집이 발매되고 약 3년 뒤, 모노폴에서는 마찬가지로 루돌프 슈뢰더가 추가 분류한 28곡의 녹음으로 2집 음반을 제작했다. 이 음반도 마찬가지로 한 장에 14곡 씩의 녹음을 담고 있고, 녹음 시기와 밴드 리더도 동일하다. 그로테 지휘의 녹음은 이 앨범에서 아홉 곡(*)이 수록되어 있지만, 역시 나머지 녹음들은 모두 헨셸의 지휘로 제작되었다.
CD 1
1. 헬무트 베르니케 (Helmut Wernicke, 생년불명-1994): 게르다 양 (Das Fräulein Gerda/1943년 5월 21일)
2. 아돌프 슈타이멜: 햇빛 가득한 비오는 날 (Ein Regentag voll Sonnenschein/1943년 5월)
3. 쿠르트 드라베크 (Kurt Drabek, 1912-1995): 난 음악 듣는게 정말 좋아요 (Ich hör' so gern Musik/1943년 5월)*
4. 헬무트 리터 (Helmut Ritter, 생몰년 불명): 붉은 장미 (Rote Rosen/1943년 10월 25일)
5. 코시모 디 첼리에 (Cosimo di Ceglie, 1913-1980: 오, 마리 (Oh, Marie/1943년 1월)*
6. 빌리 베르킹 (Willi Berking, 1910-1979): 선율이 조용히 흘렀네 (Leise klang eine Weise/1942년 9월 9일)*
7. 테오 마케벤: 난 음악과 함께 모든 걸 하지 (Ich mache alles mit Musik/1942년 9월 9일)
8. 엘도 디 라자로 (Eldo di Lazzaro, 1902-1968): 금발의 여자친구 (Das blonde Kätchen/1942년 10월 12일)
9. 프리드리히 슈뢰더 (Friedrich Schröder, 1910-1972): 그대와 천국 속에서 춤추네 (Ich tanze mit dir in den Himmel hinein/1943년 1월)
10. 테오 마케벤: 내 작은 테디베어 (Mein kleiner Teddybär/1942년 7월 28일)
11. 에릭 플레소 (Eric Plessow, 1899-1977): 여자들은 사랑할 때 아름다워지지 (Frauen sind so schön, wenn sie lieben/1943년 9월 27일)
12. 게르하르트 빙클러 (Gerhard Winkler, 1906-1977): 키안티의 노래 (Chianti-Lied/에른스트 피셔/1943년 6월 29일)
13. 에릭 데네케: 마리아, 내게 미소를 보내줘요 (Schenk mir dein Lächeln, Maria/1942년 8월 21일)
14. 아돌프 슈타이멜+페터 이겔호프: 내 마음은 오늘 초연(初演)이네 (Mein Herz hat heut' Premiere/1943년 2월)
CD 2
1. 프란츠 그로테: 산꼭대기에서 (Hoch drob'n auf dem Berg/1942년 7월 27일)*
2. 프리드리히 슈뢰더: 매일 밤 당신의 꿈을 꿀 거에요 (Ich werde jede Nacht von Ihnen träumen/1943년 5월)*
3. 미하엘 야리: 언젠가 기적이 일어날 걸 알아요 (Ich weiß, es wird einmal ein Wunder geschehn/1943년 3월 24일)
4. 헬무트 가르덴스 (Helmut Gardens, 생몰년 불명): 내게 항상 머물러 줘요 (Bleib' immer bei mir/1943년 1월)*
5. 아돌프 슈타이멜+페터 이겔호프: 언제 다시 내게 올거에요? (Wann wirst du wieder bei mir sein?/1943년 2월)
6. 프란츠 그로테: 그건 단지 사랑일 뿐 (Es ist nur die Liebe/1942년 9월)*
7. 프리드리히 슈뢰더: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건 행운 (Ein Glück, dass man sich so verlieben kann/1942년 12월 9일)
8. 프란츠 그로테: 왜, 어째서, 그리고 왜 (Warum, weshalb und wieso/1942년 7월 6일)*
9. 프란츠 그로테: 왈츠 (Walzer/영화 '환상(Illusion)'/1942년 8월 1일)*
10. 게르하르트 빙클러: 작은 우편 마차 (Der kleine Postillon/1942년 7월)
11. 디노 올리비에리 (Dino Olivieri, 1905-1963): 돌아와요 (Komm zurück/1942년 8월 13일)
12. 루트비히 슈미트제더 (Ludwig Schmidseder, 1904-1971): 내 팔에 안겨줘요 (Komm doch in meine Arme/1942년 11월 2일)
13. 후안 요사스 (Juan Llossas, 1900-1957): 탱고 볼레로 (Tango Bolero/1943년 5월)
14. 세바스티안 이라디에르 (Sebastián Iradier, 1809-1865): 라 팔로마 (La Paloma/게오르크 헨셸/1942년 7월 16일)
아직 분단 시기라 다소 동독 측의 눈치를 봐야 했을 듯한 1집 때와 달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공식적으로 통일된 시점이라 좀 더 음원 소재 조사가 자유로웠을 거라고 여겨진다. 다만 이 앨범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는데, 1집의 두 번째 음반에 열한 번째로 수록된 에릭 데네케의 곡이 여기서도 중복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기울임체로 표기한 것 참조).
물론 다른 날에 다른 편곡으로 되어 있다면 모르겠는데, 녹음 일자도 1942년 8월 21일로 동일해서 같은 녹음이 두 번 들어있는 모양새다. 다만 마스터링 면에서는 차이가 있는데, 1집에서는 좌우 정위가 잘 맞지 않던 것이 여기서는 일반적인 모노 녹음처럼 평탄화(??)되어 있다. 그리고 편곡물의 경우 어지간해서는 편곡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던 1집에 비해, 여기서는 일체의 편곡자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이건 아마 당시 녹음 담당자의 귀차니즘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원판에 편곡자 정보가 기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 불능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시 방송용 아세테이트 디스크의 곡명과 매트릭스 번호(원판 분류용 번호), 연주 단체명은 대개 담당자가 자필 혹은 타이프라이터로 적어 기입해야 했는데, 편곡자의 경우에는 필수 기입 사항이 아닌지 누락된 것이 꽤 된다. 하지만 적어도 앨범 커버 사진으로 쓰인 원판들 중 편곡자 이름이 확실히 기재된 두 곡-키안티의 노래와 라 팔로마-은 속지에도 써놓아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CD 제작 담당자도 똑같이 귀찮았던 건가
그로테의 왈츠를 제외하면 따로 영화나 오페레타 등의 언급이 없는 것을 봐서는 수록곡 대부분이 기존의 유행가 혹은 밴드 멤버들의 오리지널 넘버인 것으로 보이는데,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인 첼리에와 라자로, 올리비에리의 곡과, 명목상 중립국이었지만 실제로는 독일과 어느 정도 긴밀한 관계였던 스페인의 작곡가들인 요사스와 이라디에르의 곡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꽤 인상적이다.
그리고 사소해 보이지만 또 흥미로운 것을 1집과 2집의 라벨에서 찾을 수 있었다. 1집과 3집에서 대독일 방송국(Großdeutscher Rundfunk) 명의로 된 원판 사진에는 방송국명 밑에 인쇄된 나치 문양을 먹으로 검게 칠하거나 지워버린 흔적이 보이지만, 2집에서는 문양이 그대로 살아 있는 원판 라벨 하나를 볼 수 있다. 이 나치 문양 삭제 작업은 아마 패전 후 방송국을 점령한 연합군 혹은 동독 소유가 된 방송국이 나치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행한 것 같은데, 원판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이렇게 누락된 것도 종종 나온 것 같다.
모노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세트는 다른 것보다 좀 더 늦은 1995년에야 나왔는데, 다른 세트와 달리 자유 베를린 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Radio Berlin 88,8' 로고가 찍힌 걸로 봐서는 아마 저 프로그램에서 스폰서를 서준 것 같다. 음반 해설도 호르스트 H. 랑에가 집필한 1~2집(내용 동일)과 달리 저 프로그램 관계자로 추측되는 괴츠 크론부르거가 맡았고, 나머지 상세한 스탭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제 드디어 잡음 많고 수록 시간이 한정된 아세테이트 디스크 대신 당시로서는 최신 매체였던 오픈릴 테이프를 사용하는 녹음기인 마그네토폰(Magnetophon)으로 제작된 녹음을 들을 수 있는데, 확실히 음질 면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상태가 좋은 테이프의 경우 거의 1950~60년대의 모노 녹음에 비견될 만큼의 깨끗한 소리인데, 테이프를 처음으로 방송 제작에 도입한 나라로서의 저력까지 느껴질 정도다.
다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클래식 관현악단 공연의 경우 1942년 초에 이미 테이프로 실황녹음이 제작되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꽤 늦은 셈인데, 아마 연주곡 대부분이 아세테이트 디스크 한 장으로 해결될 만큼 짤막했기 때문에 1943년 후반이 될 때까지 계속 테이프 녹음 도입이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향상된 음질과 함께 음악의 질도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이 세트에서는 밴드 리더가 무려 다섯 명으로 늘어나 있다. 1942~45년이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이 밴드의 과도기~종말기를 포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초기 리더들인 헨셸과 그로테(*)의 녹음도 들어가 있지만 그들이 나치 당국으로부터 '영화음악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라는 공식적인 이유를 대면서 물러난 뒤 후임자로 영입된 빌리 슈테히(Willi Stech, 1905-1979. #)와 버르너바스 폰 게치(Barnabás von Géczy, 1897-1971. @), 그리고 창단 이래 해산될 때까지 줄곧 부지휘자로 자리를 지켰던 호르스트 쿠드리츠키(+)의 녹음도 같이 들어볼 수 있다.
또 지휘자 없이 밴드의 소그룹(^)이 연주한 녹음도 이 세트에 유일하게 수록되어 있는데, 이 소그룹은 밴드의 아코디언 주자였던 알베르트 포센(Albert Vossen, 1910-1971)이 독주를 겸하며 리드하는 식으로 연주했다. 하지만 포센의 경우 이 소그룹이 아니면 딱히 연주할 기회가 없던 모양이었는데, 1집과 2집에서는 밴드 명부에 올라가 있음에도 '이 음반에서는 연주하지 않았음' 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정단원이었는지 어쨌는지도 좀 의심스럽다. 그리고 이 세트에서는 밴드의 악장(콘서트마스터)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쿠르트 헨네베르크(Kurt Henneberg, 생년불명-1945)가 가끔 지나가는 솔로를 연주하는 악장이 아닌 협연자로 참가한 연주($)도 들어볼 수 있다.
CD 1
1. 빌리 베르킹: 왜냐하면 나는 무도회장에서 태어났거든요 (Denn ich bin zum Tanzen geboren/프리드리히 마이어 Friedrich Meyer/1943년 11월 3일)
2. 랄프 베나츠키 (Ralph Benatzky, 1884-1957): 나는 빗속에 서 있네 (Ich steh' im Regen/영화 '새로운 목표를 향해(Zu neuen Ufern)/1944년)*
3. 샤를로테 베렌츠 (Charlotte Baerenz, 생몰년 불명): 난 오늘 밤에 봄을 꿈꿨어요 (Ich habe heute nacht vom Frühling geträumt/1943년 12월 21일)
4. 테오 마케벤: 그대에게 그건 늘 너무 아름다워요 (Bei dir war es immer so schön/음악 희극 '아니타와 악마'/1944년 1월 2일)
5. 한스 카르스테 (Hans Carste, 1909-1971): 난 나를 둘러보고 있어요 (Ich schau mich um/프란츠 슈톨첸발트/1944년 3월 9일)#
6. 헤르만 블루메 (Hermann Blume, 1891-1967): 바이올린과 현을 위한 로망스 (Romanze für Violine und Streicher/에리히 카슈베츠 Erich Kaschubec/1944년 5월 3일)@$
7. 프리드리히 슈뢰더: 그대를 사랑하는 여자를 절대 울리지 말아요 (Lass die Frau, die dich liebt, niemals weinen/프란츠 슈톨첸발트/1944년 6월 5일)#
8. 칼 미하엘 치러 (Carl Michael Ziehrer, 1843-1922): 고요한 밤에 (In lauschiger Nacht/오페레타 '방랑자(Die Landstreicher)'/에리히 카슈베츠/1944년 5월 9일)@
9. 피에리노 코데빌라 (Pierino Codevilla, 생몰년 불명): 우라과하나 (Uraguajana/1944년 5월 15일)#
10. 알베르트 포센: 장난 (Spielerei/헤르베르트 뮐러/1944년 6월 6일)^
11. 게오르크 헨셸: 기회가 사랑을 만들지 (Gelegenheit macht Liebe/프란츠 슈톨첸발트/1944년 8월 3일)@
12. 볼프 로라이 (Wolf Lorey, 생몰년 불명): 갈롭 (Galopp/발터 도브신스키 Walter Dobschinski/1944년 8월 28일)^
13. 율리우스 칼라슈 (Julius Kalaš, 1902-1967): 둘을 위한 세레나데 (Serenade für zwei/1944년 10월 26일)#
CD 2
1. 게르하르트 모어 (Gerhard Mohr, 1901-1979): 스페인 선율 (Spanische Weisen/1944년 11월 3일)
2. 프리드리히 슈뢰더: 행복한 귀향 (Glückliche Heimkehr/현을 위한 모음곡 '네 방랑자(Die vier Landstreicher'/1944년 11월 23일)@
3. 에드문트 니크: 푸른 달밤에 (In der blauen Mondnacht/1945년 1월 21일)^
4. 알베르트 포센: 그래서 우리는 (So sind wir/1945년 2월 24일)@
5. 테오 페르스틀 (Theo Ferstl, 1910-1981): 그대의 사랑이 그리워 (Sehnsucht nach deiner Liebe/1945년 3월 8일)@
6. 알베르트 포센: 플리크 플라크 (Flick Flack/1942년 8월 29일)^
7. 미하엘 야리: 옥수수 (Kukuruz/빌리 베르킹/1942년 10월 2일)
8. 프란츠 그로테: 오늘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니, 얼마나 멋진가요(So schön, wie heut', so müsst es bleiben/호르스트 쿠드리츠키/1942년 11월 11일)*
9. 페루초 아폴로니오 (Ferruccio Apollonio, 생몰년 불명): 시칠리아 (Sicilia/발터 도브신스키/1942년 12월 14일)+
10. 프랑크 폭스 (Frank Fox, 1902-1965)+오토 톨디 (Otto Toldi, 1895-1980):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붐붐 (Es klopft mein Herz, bum bum/헹크 브뤼인스 Henk Bruyns/1942년 12월 16일)+
11. 페터 크로이더: 작은 선물로 우정을 얻었네 (Kleine Geschenke erhalten die Freundschaft/1943년 2월 24일)+
12. 테오 마케벤: 발레 장면 (Ballettszene/오페레타 '황금 새장(Der goldene Käfig)'/게오르크 헨셸/1943년 8월 18일)
13. 게르하르트 빙클러: 스캄폴로 (Scampolo/에른스트 피셔/1942년 2월 10일)
14. 발터 도브신스키 (1908-1996): 명랑하고 화려하게 (Heiter und bunt/1945년 1월 21일)^
테이프로 녹음하기 전의 음원도 종종 섞여 있지만, 1~2집과 달리 웬만한 잡음은 모두 제거되어 있어서 한결 듣기 편하다. 그리고 헨셸의 경우 1944년 초에 물러나기는 했지만 같은 해 11월에 '스페인 선율' 을 지휘한 녹음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는 객원 형식으로 종종 지휘한 것 같다.
하지만 헨셸과 그로테의 후임으로 들어온 슈테히와 게치는 이 밴드에 그나마 남아 있던 재즈색을 더 흐릿하게 만들어 버렸는데, 분명히 나치의 압력이 가해진 탓이었다. 특히 게치의 경우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인지 재즈틱한 곡은 이 세트의 가장 마지막 녹음인 '그대의 사랑이 그리워' 정도를 빼면 거의 다루지 않았다. 아예 게치가 지휘한 녹음은 세미클래식 혹은 이지리스닝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인데, 다른 리더들이 그래도 재즈 물을 어느 정도는 먹고 있던 것에 비하면 혼자만 이상하게 동떨어진 느낌이 강하다.
이 세트에 담긴 녹음은 1945년 3월 초에서 끝나지만, 옌스-우베 푈메케가 집필한 유베 음반의 해설지에 따르면 이 밴드의 마지막 녹음이 3월 말~4월 초에 있었다고 하니 추가 자료가 더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음반화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대전 말기의 혼란 때문에 유실되었거나, 아니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음반화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세트는 그 당시 입수 가능한 이 밴드의 모든 녹음들을 긁어모으기 위해 해외 자료실의 협조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물론 대부분은 여전히 베를린의 방송 자료실에 소장된 음원이지만 개중에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점령지였던 체코와 네덜란드, 노르웨이의 방송국에 있는 음원까지 가져와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다만 1~2집과 마찬가지로 수록곡들의 음원 출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속지에는 또 이 밴드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1945년 5월 초에 빨치산들이 들고 일어나 독일 점령군에게 무력 저항을 시작할 때까지도 프라하에는 아직 많은 수의 단원들과 편곡자들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 중 콘서트마스터였던 헨네베르크와 게치가 리더로 부임하면서 같이 데리고 온 편곡자 카슈베츠는 격렬한 시가전에 휘말려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단원들은 체코 빨치산 혹은 점령군으로 진주한 소련군에게 포로가 되거나, 가까스로 탈출해 귀향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괴벨스가 만든 이 나치 관제 밴드에서 헨네베르크와 카슈베츠를 빼면, 죽어나가거나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인물들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대부분 전후에도 비나치화(denazifikation) 심사를 손쉽게 통과한 뒤 서독 재즈계에서 계속 활동을 하면서 천수를 누렸다.
물론 그렇게 편한 일생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독일 내에서, 그 중에서도 나치 시대에 대해 암묵적이고 또 묘한 향수를 느끼는 기성 세대의 간접적 추억팔이 수단으로만 취급되는 것 같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록이나 팝에 열광하면 열광했지, 나치 시대를 거쳐온 재즈맨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후에 배출된 재즈 뮤지션들은 다른 장르의 뮤지션 대부분이 그랬듯이, 과거의 유산을 부정하려고 오히려 더 전위적인 노선으로 음악을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독일은 재즈 중에서도 상당히 난해한 프리 재즈 계열의 아티스트들을 상당히 많이 배출하고 있는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밴드를 전후한 독일 재즈사가 일종의 '단절 상황' 을 겪게 된 연유를 생각하며 이 음반들을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이 밴드의 멤버 명부를 정리하면서 이 지루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연주인 명부 자체에는 변동이 없는데, 편곡자의 경우 한 밴드를 위한 것 치고는 지나치게 많이 적혀 있고 1~2집과 3집 사이의 명부에서도 다른 점이 꽤 많다. 밴드의 연주 단원이나 리더를 겸하면서 하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편곡자들은 일종의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활동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밴드 리더:
프란츠 그로테 (Franz Grothe, 1942-44)
게오르크 헨셸 (Georg Haentzschel, 1942-44)
빌리 슈테히 (Willi Stech, 1944-45)
버르너바스 폰 게치 (Barnabás von Géczy, 1944-45)
서브 리더:
호르스트 쿠드리츠키 (Horst Kudritzki, 1942-45)
트럼펫:
헨리크 '헹크' 브뤼인스 (Henryk "Henk" Bruyns)
칼 '제클' 호엔베르거 (Carl "Säckl" Hohenberger)
쿠르트 딜렌베르거 (Kurt Dillenberger)
에리히 푸헤르트 (Erich Puchert)
트롬본:
발터 도브신스키 (Walter Dobschinski)
빌리 베르킹 (Willi Berking)
발터 크루크 (Walter Krug)
에어하르트 크라우제 (Erhard Krause)
알토색소폰 & 클라리넷:
헤르베르트 뮐러 (Herbert Müller)
헬무트 프리드리히 (Helmuth Friedrich)
테너색소폰:
데틀레프 라이스 (Detlev Lais)
테너색소폰 & 바리톤색소폰:
한스 마이어 (Hans Meyer)
피아노:
프란츠 뮈크 (Franz Mück)
아코디언:
알베르트 포센 (Albert Vossen)
기타:
세르게 마툴 (Serge Matull)
콘트라베이스:
막스 쇤라데 (Max Schönrade)
루디 베게너 (Rudi Wegener)
드럼 & 퍼커션:
한스 클라게만 (Hans Klagemann)
발디 루츠코프스키 (Waldi Luczkowski)
바이올린:
쿠르트 헨네베르크 (Kurt Henneberg. 악장)
프리드리히 '프리츠' 프리베 (Friedrich "Fritz" Friebe)
쿠르트 젠츠 (Kurt Sentz)
에른스트 리히터 (Ernst Richter)
프레드 밀러 (Fred Miller)
구스타프 린나르츠 (Gustav Linnartz)
알폰스 하르트만 (Alfons Hartmann)
구스타프 클라인 (Gustav Klein)
아달베르트 루츠코프스키 (Adalbert Luczkowski)
비올라:
빌리 하누슈케 (Willi Hanuschke)
프란츠 도이브너 (Franz Däubner)
첼로:
헬무트 슈타인만 (Helmut Steinmann)
에리히 부흐비츠 (Erich Buchwitz)
작/편곡:
프란츠 뮈크
아돌프 슈타이멜 (Adolf Steimel)
호르스트 쿠드리츠키
발터 레셰티츠키 (Walter Leschetizky)
헤르베르트 뮐러
발터 도브신스키
헨리크 '헹크' 브뤼인스
쿠르트 헨네베르크
발터 크루크
에른스트 피셔
빌리 마테스 (Willi Matthes)
프리드리히 슈뢰더 (Friedrich Schröder)
프란츠 슈톨첸발트 (Franz Stolzenwald)
쿠르트 하젠플루크 (Curt Hasenpflug)
프리드리히 마이어 (Friedrich Meyer)
에리히 카슈베츠 (Erich Kaschubec)
알베르트 포센
빌리 베르킹
게오르크 헨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