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는 현악 합주단인 화음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2000년에 소니 뮤직 코리아에서 엘가와 펜데레츠키, 시벨리우스, 버르토크 작품을 담은 첫 CD를 냈고, 이어 2002년에는 KBS에서 비발디의 '사계' 전곡과 보케리니의 교향곡 한 곡을 담은 두 번째 CD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또 하나의 비매품 사가반이 있는데, 이번에 인터넷 중고음반점인 뮤직앤시네마를 통해 구입한 세 가지 품목 중에도 저게 있었다.
스튜디오 녹음으로 제작된 소니/KBS의 CD와 달리, 더블 앨범으로 구성된 이 세 번째 CD는 1999~2004년 동안 저 악단이 남긴 실황 중에서 선곡한 라이브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수록곡은 이렇다.
모차르트: 세레나데 제13번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2004.8.10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보테시니: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와 현을 위한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 (배익환/분야 미치노리 협연. 1999.10.3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차이콥스키: 현악 6중주 '피렌체의 추억' (현악 합주판. 2001.3.16 LG아트센터)
힌데미트: 현을 위한 다섯 개의 소품 (1999.10.3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메르카단테: 플루트 협주곡 (제임스 골웨이 협연. 2003.10.8 LG아트센터)
슈베르트: 현악 4중주 제14번 '죽음과 소녀' (말러 현악 합주 편곡판. 2003.8.24 LG아트센터)
비슷한 편제의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함께 한국에서 무지휘 현악 합주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보기 드문 악단 답게 연주의 응집력과 자발성이 꽤 강한 편인데, 무대에서도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합주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차이콥스키나 보테시니, 슈베르트의 경우 가끔 좀 뻣뻣하다는 인상인데, 녹음도 악단에 너무 바짝 갖다댄 마이크 때문인지 귀가 쉽게 피곤해지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한국 독주자나 성악가 음반은 흔해도 악단 음반은 귀한 현실에서 매우 진귀한 음반인 것도 확실한데, 녹음이 좀 더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일단 그 만한 가치는 충분히 하는 음반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사가반이기는 하지만, 악단 측에서 엘피스탁이라는 중고 LP샵과 계약을 맺고 판매하고 있으니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해당 페이지
역시 뮤직앤시네마에서 구입한 것 중에 이 사가반 CD는 희귀함과 특이함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연주자의 자필이 든 CD라는 점에서도 희귀하고, 또 협주곡 반주이기는 하지만 정재동 재임기의 서울시향 연주를 담고 있는 CD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독주자가 정식 기타 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라는 점이 특이하다.
공교롭게도 지난 번 포스팅한 이주영 첼로 협주곡집과 같은 해(1993)에 SKC에서 제작한 음반인데, 물론 시중에 판매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음반의 주인공인 기타리스트 최병택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정식 기타 전공자가 아니라, 15세 때부터 독학으로 클래식 기타를 익히기 시작했고 1975년에 서울대 치대에 입학해 치의학을 전공하면서 교내 클래식 기타 동아리를 만들어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본업은 치과의사라서 로스윌 최병택 치과라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래도 음악 취미는 계속 버리지 않았는지 졸업 후에도 계속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1983년 2월 22일에 정재동이 지휘한 서울시향의 '범세대 연주회' 에서 관현악단과 협연 무대까지 가졌다.
그리고 이 앨범에 첫 번째 곡으로 수록된 마우로 줄리아니의 기타 협주곡 제1번이 저 공연의 실황이다. 사실 꽤 많은 국립교향악단(=KBS 교향악단)과 서울시향 실황 녹음들이 국립예술자료원과 국립극장 자료실에 보존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 연주와 녹음 상태가 처참하게 낮아서 크게 기대는 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틀어 보니 기타 독주에 음량이 좀 크게 치우쳐 있지만 의외로 꽤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고, 연주 수준도 최상급은 아닐 지언정 깔끔하고 절도 있게 마무리되어 있다.
줄리아니 협주곡 외의 음원도 1992년 11월 2일에 일본 교토의 아오야마 음악기념관 개관 기념 공연 시리즈에 초청받았을 때의 실황인데,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초청을 받았다고 하니 그 당시에 꽤 화제가 되었을 법하다. 교토 실황은 영화 '금지된 장난' 에 나르시소 예페스의 연주로 삽입되어 유명한 로망스와 비발디의 기타 협주곡 D장조인데, 비발디 협주곡에서는 일본의 실내악단인 텔레만 앙상블이 현악 5중주(바이올린 2-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의 형태로 반주했다.
이후 최병택이 기타리스트로서 또 어떤 음반을 만들었는 지는 모르겠는데, 다만 있다고 해도 클래식 음반은 아닐 것 같다. 위의 병원 홈페이지에 있는 '원장님의 생각스케치' 라는 코너에서 언제부턴가 클래식에서 플라멩코로 연주 영역을 바꾸었고, 또 요즘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때문인지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서는 기회마저도 무척 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뮤직앤시네마에서 구입한 또 하나의 음반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999년에 음악원 지휘과 교수 정치용의 지휘로 진행한 공연의 실황들을 발췌 수록한 학교 자체 사가반이다. 크누아심은 1993년에 첫 정기연주회를 개최했을 때부터 꾸준히 1년 주기로 사가반을 제작하고 있다는데, 일단 내가 아는 가장 최근의 것이 이 CD다. 다만 '한 해의 연주 중 가장 나은 것만 골라 수록한다' 는 방침 때문에 교향곡 같은 다악장 곡은 전곡이 아니라 발췌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아쉽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3~4악장 (1999.6.26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제12회 정기연주회)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3~4악장 (1999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정확한 녹음 일자 불명)
브람스: 애도의 노래 (1999.11.27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제13회 정기연주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돈 후안' (1999.11.27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제13회 정기연주회)
CD의 주 구입 목적은 당연히 온전한 형태로 수록된 브람스와 슈트라우스 작품이었다. 브람스의 합창 작품은 독일 레퀴엠을 들어봐도 알 수 있듯이, 겉보기에는 어려워 보이지 않으면서도 합창단의 역량을 시험하는 성향이 강하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 붙인 이 곡도 마찬가지인데, 일단 내가 한국 합창단을 '소리를 지르는 데는 강하지만 표현력은 역부족이다' 라고 어느 정도 편견을 깔고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렇게 혹평할 정도의 연주는 아니었다.
다만 합창이 아니라 개성 강한 독창자들의 목소리를 그냥 모아놓은 듯한 형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떨쳐주지는 못했는데, 물론 성악 뿐 아니라 기악도 합주가 아닌 독주 위주로 지나치게 커리큘럼이 편중되어 있는 한국 음대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쉽게 고쳐지지는 않을 문제이기도 하다.
'돈 후안' 은 평소 절제하는 경향이 강한 정치용의 성향에 비춰보면 꽤 추진력이 강한 연주인데, 아마 이런 면모도 악단의 역량이 어느 정도 받쳐주기 때문에 어색함을 느끼기 힘든 것 같다. 물론 당일치기 실황이라는 점 때문에 혈기를 주체 못해 어긋나는 대목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화려하고 변덕스러운 성향의 곡을 이 정도로 뽑아내는 한국 대학 관현악단은 아직도 흔치 않다.
녹음이나 연주 외의 문제가 있다면, 곡의 공연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위의 녹음 일자도 음반에는 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아서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를 검색해서 얻어낸 것이고, 그나마 모차르트는 언제 어디서 연주되었는 지도 확실치 않다. 이는 크누아심 뿐 아니라 크누아 윈드 앙상블의 사가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다만 1999년은 내가 재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고, 그 때 작곡 레슨 선생님에게 표를 얻어서 저 공연을 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클래식 공연을 공연장에서 본다는 '취미' 에 제대로 맛을 들이기 이전이었고, 공연 프로그램도 가져오지 않았는 지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언제 연주한 걸까.
그리고 8월 23일에는 근처의 북한 음식점에 가다가 오랜만에 아름다운가게의 종로 헌책방을 찾아갔다. 사실 뭔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고, 그냥 '오랜만에 갔는 데 뭐 있기는 있으려나' 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 뭔가가 있었다. 1999년 6월 26일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된 서울대학교 윈드 앙상블의 정기연주회 실황을 담은 CD였다. 가격은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답게(??) 겨우 2000원이라, 그냥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바로 사왔다. 공교롭게도 위의 크누아심 CD 중 쇼스타코비치가 같은 날 녹음인데, 데이터 오류인 줄 알고 검색해 보니 크누아심 공연은 15시에, 서울대 윈드 앙상블의 공연은 19시 30분에 개최되었다고 되어 있다.
이 CD도 위의 크누아심과 마찬가지로 학교 측에서 P&A 클래식스라는 업체에 위탁해 만든 사가반인데, 다만 수록 시간이 54분 정도라서 공연 전체를 담은 음반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크누아심 CD와 달리 음반에 수록된 곡은 모두 온전한 형태다.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과 바흐의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 그레인저의 '데리 지방의 아일랜드 선율(=대니 보이로 유명한 런던데리 에어의 취주악 편곡판)', 노먼 델로 조이오의 '중세 선율에 의한 변주', 그리고 앙코르인 에드윈 프랑코 골드먼의 콘서트 행진곡 'On the Mall'.
지휘는 기악과 호른 담당 교수이자 취주악 합주 지도도 하고 있는 호르니스트 김영률이 맡았고, 거슈인 곡에서는 피아노과 교수들인 백혜선과 장형준이 협연했다. 다만 원래 취주악용 곡인 그레인저와 델로 조이오, 골드먼 곡은 둘째 치고 베르디와 바흐, 거슈인은 누가 취주악을 위해 편곡했는 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아마 저작권 문제 등 '어른의 사정' 이 개입된 것이겠지만, 이런 세세한 정보가 없는 것도 내게는 좀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거슈인의 경우 원래 피아노 독주+관현악이라는 편성이지만, 여기서는 특이하게 피아노 독주가 아닌 2중주로 편곡한 악보를 쓰고 있다. 독주 만으로 충분한 곡으로 생각되는데, 누가 이런 아이디어로 편곡했는 지가 매우 궁금하다.
녹음은 편하게 듣기에는 많이 부족한 편인데, 당시 예당 녹음의 고질병인 '마이크 무대에 지나치게 갖다대기' 가 너무 제대로 발휘된 탓이기도 하다. 딱 잘라 말해 피아노와 포르테의 구별이 없고, 그 만큼 섬세한 음향은 내다 버린 수준이다. 녹음이 좀 더 공들여 제작되었더라면 그나마 음반 구하기가 관현악단 만큼이나 힘든 한국의 취주악단 음반으로 소장 가치를 좀 더 높게 쳐줄 수 있었을 텐데, 매우 아쉽다.
그리고 이외에도 회현지하상가의 중고음반점인 미스티레코드와 황학동의 장안레코드, 인터넷 음반 쇼핑몰인 아이뮤직에서도 이런저런 것들을 구입했으니, 맨 앞에 언급한 것처럼 해외 청소년 관현악단과 한국 재즈 식으로 묶어서 끄적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