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미스티레코드에서 집어온 것들인데, 저 경축 연주회에서 하시모토 쿠니히코의 지휘로 두 번째로 연주된 헝가리 작곡가 베레슈 샨도르의 교향곡 1번을 담은 헝가리 음반사 훙가로톤의 음반이 그 씁쓸함의 원인이었다.
2002년 2월 2~6일 동안 솜버트헤이(영어/라틴어로는 사바리아)의 버르토크 콘서트홀에서 녹음된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은 예의 교향곡 1번 외에 현을 위한 네 개의 트란실바니아 춤곡, 호르바트 라즐로가 협연한 클라리넷 협주곡 세 곡이고, 연주는 팔 터마시 지휘의 솜버트헤이 교향악단이 맡았다.
1940년에 초연 직후 JOAK/일본 콜럼비아에서 제작된 방송녹음 이후로 이 곡의 후속 음반은 내가 아는 한, 그리고 일본에서 공표한 바로도 전혀 없었다. 베레슈 자신이 2차대전 후 공산당 정권이 득세하자 스위스로 이주해 눌러앉은 뒤로 이 곡의 악보를 출판 혹은 재출판하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둔 뒤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음악적인 이유인 지 정치적인 이유인 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해설지에 따르면, 이 곡은 초연 후 60년 만인 2000년에 도쿄에서 재공연 되었고 곧이어 이 음반에서 연주한 솜버트헤이 교향악단이 헝가리에서도 마찬가지로 60주년 재공연을 진행했다고 한다. 베레슈는 1992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사후 유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자필보나 여타 악보들을 다시 공개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리바이벌이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1년에는-일본에서 1940년 세계 초연 전후로 판매된 포켓 스코어를 제외하면-이 곡의 첫 공식 출판본 악보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비니 체르보니 음악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베레슈 사후 10주년이 된 2002년에 헝가리 정부의 문화유산 기금과 일본-헝가리 우호 협회의 후원으로 이 곡을 녹음했다고 되어 있다.
물론 현재 헝가리든 일본이든, 두 나라의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2차대전 시기의 국수주의/군국주의 노선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덴노가 현인신이나 마찬가지 위치에 있었던 당시 일본과, 내륙국의 해군 제독 호르티 미클로시가 강압적인 독재를 행하며 추축국의 일원으로 자리하고 있던 당시 헝가리 사이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탄생한 작품이 이렇게 극적으로 리바이벌되는 걸 그다지 탐탁치 않게 보는 게 나만의 시각은 아닐 것이다.
일단 연주 자체로 본다면, 연주와 음질 모든 면에서 1940년의 첫 녹음을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다. 하시모토가 1악장/3악장에서 잡은 빠른 템포를 따라가지 못해 곳곳에서 뒤엉키는 2600년 봉축 교향악단의 어설픔 대신, 그보다는 좀 느리게 연주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잡히고 비교적 자연스러운 여음이 잘 잡힌 녹음 상태는 확실히 듣는 데 있어서 '청각적인'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 편안함이 내 불편한 심사까지 파고들지는 못하더라도.
다만 훙가로톤이나 솜버트헤이 교향악단 측이 이 곡의 공연 기록이나 음원 정보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아서인지, CD에는 이 녹음이 첫 녹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초연 직후 상술한 하시모토 지휘의 2600년 봉축 교향악단이 방송 연주회에서 녹음한 음원이 일본 한정이라도 버젓이 팔리고 있으니, 이 기록은 일단 틀렸다. 물론 첫 디지털/스테레오 녹음이라고 하면 그건 맞겠지만.
그래도 다른 곡들은 아직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라 이건 좀 관심을 갖고 들었다. 트란실바니아 춤곡들은 해당 지역이 아직 헝가리 땅이었을 적에 선배 버르토크와 코다이가 그랬듯이 베레슈가 고향 땅이기도 했던 그 곳의 민요나 전통음악을 녹음하고 채보한 것을 토대로 작곡된 곡인데, 일단 1943~44년 동안 써서 완성한 초판은 네 곡이 아니라 세 곡이었다. 하지만 1949년에 베레슈가 스위스로 이주한 뒤 거기서 친해진 바젤 실내 관현악단 지휘자 파울 자허가 한 곡을 추가해 달라고 부탁해서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아직 작곡가가 30~40대 시절 작곡한 여타 두 곡과 달리, 마지막 수록곡인 클라리넷 협주곡은 생애 후반기인 1981~82년에 작곡한 작품이다. 작풍은 헝가리 혹은 동유럽권의 민족색과 통속성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교향곡이나 트란실바니아 춤곡과 달리 다소 추상적인데, 해설에 따르면 교회 선법과 음렬을 주로 사용하고 헝가리 민속음악의 특징적인 즉흥 연주의 단편 등이 더해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음악에 익숙한 사람 입장에서는 '80년대에 선법과 음렬 타령이냐' 라고 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1940년의 저 교향곡 이후 베레슈가 한 곡을 더 작곡했다는 건 롬 뮤직 파운데이션 세트의 해설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곡의 녹음은 여지껏 듣지 못했는데, 마찬가지로 미스티레코드의 진열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음반은 베레슈의 고향 음반사인 훙가로톤이 아닌, 베레슈가 이주 후 눌러앉았던 스위스의 미그로스 문화사회 협동조합 연맹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회사에서 스위스 음악계(Musikszene Schweiz)라는 제목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위스 작곡가 작품 선집에 속해 있다. 연주는 두 곡 모두 메사로슈 야노슈가 지휘한 미슈콜츠 교향악단이 맡았고, 녹음은 1994년 9월에 미슈콜츠의 시립 음악당에서 제작되었다고 속지에 나와 있다.
다만 이 CD의 실질적인 주요 수록곡은 교향곡 2번이 아닌, 헝가리 민화를 각색했다는 희극 단막 발레인 '테르실리 커티처(Térszili Katicza)' 다. 해설지에 수록된 줄거리를 보니 여주인공인 커티처와 음흉한 심복 때문에 폭군으로 오인받고 있는 왕, 커티처를 사랑하고 있는 왕자가 얽히면서 진행되는 발레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진지한 스토리 같지만, 해설지 속에 있는 1949년 초연 때의 무용수들 사진을 보면 거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수준으로 가벼운 동화풍으로 된 발레인 것 같다.
베레슈는 이 발레 이전인 1940년에도 비슷한 단막 발레인 '기적의 피리' 를 작곡해 같은 해 11월에 로마에서 초연했다고 하는데, 무솔리니가 베레슈를 사석에서 만나 칭찬했을 정도로 당시 베레슈의 입지는 탄탄했다. 그 덕인지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로마의 콜레기움 훙가리쿰이라는 일종의 재이 헝가리 예술 센터에서 정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기적의 피리' 에서 안무를 맡은 안무가는 베레슈와 같은 헝가리의 혈통을 지닌 오렐 밀로스였는데, 베레슈는 밀로스의 안무에 상당히 만족했는지 1942~43년 동안 작곡한 이 발레의 공연에도 그를 안무가로 기용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곡 중이었던 1942년 후반에 전황이 악화되자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와야 했고, 결국 거기서 탈고했다.
완성 후 베레슈는 헝가리 국립오페라극장의 발레단과 초연 교섭을 했는데, 베레슈는 그냥 발레단 전속 안무가를 쓰자는 제안에 반대하고 아직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밀로스를 불러와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황의 악화 속에서 발레단 단장은 베레슈의 주장을 계속 거부했고, 결국 베레슈는 아예 발레의 초연을 거부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 발레의 초연은 베레슈가 스위스로 옮겨간 1949년에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가까스로 성사되었다고 한다. 물론 베레슈는 아직도 밀로스를 밀고 있었고, 이 초연과 뒤이은 로마, 피렌체, 빈의 재공연에서도 계속 밀로스의 안무를 택했다고 되어 있다.
발레 다음으로 CD에 수록되어 있는 베레슈의 교향곡 2번은 스위스에 정주하던 초기인 1952~53년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부다페스트 음악원 재학 시절 사귀었고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헝가리를 떠나 활동하고 있던 지휘자이자 작곡가 도라티 언털이 주선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다만 공식적인 위촉 주체는 미국의 프레드릭 R. 만 재단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헌정은 재단 대표인 만에게 이루어졌고, 초연은 당연히 도라티가 당시 상임 지휘자로 있었던 미니애폴리스 심포니(현 미네소타 관현악단)의 연주로 1954년 3월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곡의 부제는 라틴어로 초연지의 이름을 딴 '신포니아 미네아폴리타나(Sinfonia Minneapolitana)' 가 되었다.
강한 민족성과 지역색을 느끼게 하는 1번과 달리, 2번은 베레슈가 막 자신의 작품에 음렬을 도입하던 시기의 곡이라 작풍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형식은 1번처럼 3악장제를 취하고 있지만, 각 악장이 딱딱 나뉘던 전작과 달리 여기서는 전체 악장이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고, 1악장과 3악장은 서로 악상을 공유하는 면이 많아 곡 전체가 통일된 소나타 형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 곡 이후로 베레슈의 작품 목록에서 교향곡이 다시 등장하는 일은 없었는데, 자신이 교향곡이라는 장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베레슈의 교향곡 음원을 모두 입수한 셈인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초기작이 더 귀에 잘 받기는 하지만 활동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베레슈 개인의 경력에서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 스위스 정주기의 작품이라 이 시기의 작품이 담긴 음원은 앞으로 좀 더 찾아다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음에 소개할 건 두 종류의 DVD와 한 종류의 CD인데, 이번에는 클래식에 이어 현재 내 귀를 사로잡고 있는 또 다른 장르인 재즈다. 다만 DVD는 소위 말하는 정규반은 아닌데, 어쨌든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