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때는 온라인 예매를 하고 갔지만, 이번 행사는 예전처럼 온라인 예매자 확인에 시간이 걸릴 까봐 코믹월드 갈 때처럼 아예 사보텐스토어에 가서 예매권을 직접 구입했다. 다행히 행사 당일 SETEC에 도착했을 때는 예전처럼 예매 입장객과 일반 입장객의 입장 속도가 비슷해지는 이상한 상황은 없었다.
예매 입장객이라는 혜택을 받아 빨리 입장하기는 했지만, 공식 개장(11시)한 지 30분 좀 넘은 뒤의 행사장 안은 꽤 혼잡했다. 흔히 서코 때 SETEC은 1~3관이 모두 대관되지만, 이번 행사는 1관에서 골프 용품 전시회가 열렸기 때문에 2관과 3관 만을 대관해 치른 것 같다. 물론 2회 때는 딱히 겹치는 행사가 없었는 데도 1관만 대관해 치른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일단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여러 온리전의 연합체들과 성인 전용 레드존 부스들로 구성된 피오케(Piece of Cake)가 열린 2관이었다. 물론 서코 때도 2관이 대관되기는 하지만, 애초에 물품 구매에만 관심이 있고 코스프레나 노래자랑 같은 부대 행사는 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SETEC 2관에 동인 판매전 목적으로 들어간 건 매우 드문 경우였다.
성장통 (R-16a): 신부 이야기 19금 회지 '소년은 남자가 되어 입을 맞추리' (5000\)
예전 2회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19금 회지를 하나 구입했다. 타팬이라는 작가의 회지였는데, 사실 모리 카오루의 작품들은 인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동인지에 도전하는 이들이 적은 편이다. 특히 신부 이야기의 경우 작가의 장신구나 옷무늬 묘사가 엄청나게 세밀한 관계로 동인지 구경하기가 정말 힘든데, 그 중에서도 성인용 회지라는 이유로 또 관심이 갔던 회지였다.
원작에서 하도 나이 차가 많아 진도가 잘 안나가는 아미르X카를룩 커플을 보다 못했는지, 이 회지에서도 이 부부의 '레알' 첫 경험을 간단히 그려내고 있었다. 다만 그게 너무 간단해서 '이거 정말 19금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물론 성 묘사에 아직도 매우 수구적이고 전/현 정권 하에서는 그 기준이 오히려 퇴보되는 느낌인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 묘사에 관대함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2관에서 구입한 것은 저것 뿐이었지만, 진짜 지름 포텐은 3관에서 터졌다. 물론 지난 코믹월드 때처럼 양적으로 충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구입할 때 심한 갈등을 겪는다거나 하는 일 없이 바로 삘꽂힌 것들을 골랐기 때문에 심적 충만감은 상당했다.
힘과꾸망+레인보우쑾 (H-15): 창작 회지 '눈의 꽃' (3500\)
이 겨울편도 원래는 2월 서코 때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작가가 위성아카데미 플라네테스라는 합동지에 참가하게 된 바람에 결국 또 밀려서 봄 기운이 완연한(?) 3월 초에 발매되었다. 근 1년 동안 계속 예약 구매하면서 예약특전도 각 편당 하나 씩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컬렉션을 이루게 됐다. 연속성을 중시하는 내 취향에 이 만큼 뿌듯한 순간도 없다.
특이하게 인간이 아닌 기능 정지 일보직전의 여성 안드로이드가 주연이라 내용은 좀 무거운 편이지만, 최후가 그렇게 처절하게 묘사되지는 않았고 여운을 남기며 끝났기 때문에 뒷맛이 씁쓸한 정도는 아니었다. 작가가 노래에서 영감을 자주 얻는 것 같은데, 이 회지에서 언급된 나카시마 미카의 '눈의 꽃' 은 군 시절에 한국어 번안곡이 어느 드라마와 관련되어 자주 나왔기 때문에 꽤 자주 들을 수 있었던 곡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행사 가기 이전에 미리 점찍어둔 것들이었지만, 이후 두 가지가 추가로 손에 들어왔다.
사보텐스토어 기업 부스: 사보리 아트북 00 (5000\)
케이크 스퀘어는 코믹월드와 달리 기업의 참가를 공식적으로 받고 있어서 첫 행사 이래로 계속 주최 측인 사보텐스토어를 비롯해 이런저런 상업 부스가 같이 설치되어 있다. 다만 이런 기업 부스에서 뭔가를 사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중 저 동인 업체의 공식 캐릭터인 사보리의 아트북이 눈에 띄었다.
기업의 공식 캐릭터 아트북인 만큼 유명 작가들이 여럿 참가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그림퀄도 꽤 우수한 편이었는데, 몇 장 넘겨본 뒤 바로 구입을 결정했다. 다만 다키마쿠라 커버라던가 담요 등은 아직 내겐 너무 매니악한 물품이고 가격도 좀 비싼 편이라 이 아트북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AMOROMEO (C-29): 창작 회지 'Lemon Shower' (5000\)
도믹이라는 작가의 작품. 사실 이 케이크 스퀘어도 여느 동인 행사들과 마찬가지로 여성향이 강세인 행사라, 2회 때도 미리 점찍어둔 것들 외에 뭔가를 더 구입하고 온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노멀 커플을, 그것도 창작을 당당히 들고 나온 부스들도 물론 있었다.
특히 이 회지는 작가와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표지 그림부터 상당히 매력적이라 바로 샘플을 집어들고 읽어봤다. 그리고 바로 구입. 작가의 마비노기 캐릭터를 가지고 덕질을 한 회지라고 하지만, 캐릭터는 단순히 모티브일 뿐이고 작품 배경은 현대에 차도남과 순둥이 쑥맥녀의 서툴면서도 달달한 연애질(?)이라는 구도의 작품이었다.
스토리가 딱히 튀거나 개성적인 면은 아니고 오히려 클리셰라면 클리셰겠지만, 이렇게 노멀한 연애물을 한국 동인 행사에서 본 것도 꽤 드물었고 그림퀄도 상당히 괜찮았기 때문에 거의 본능적으로 지갑에 손이 간 회지였다.
이렇게 해서 공식적인 지름은 모두 마무리되었지만, 2관 한켠에 임시 카페를 차려놓았던 또 다른 사보텐스토어 부스를 지나칠 수 없었다. 사실 사보텐스토어는 예매권만 사고 후딱 빠져나온 첫 방문 외에도 행사 하루 전인 3월 1일에 한 차례 더 가봤지만, 가게 전체가 어느 게임 행사에 대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진짜 카페로서의 사보텐스토어를 맛본 건 이 자리에서였다.
물론 임시 부스 형태의 카페다 보니 판매 품목은 한정되어 있었는데, 메론소다가 잘나가는 음료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멜론이나 멜론맛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쉬퐁에이드라는 다른 음료를 대안으로 택해 주문했다.
사실 메론소다든 쉬퐁에이드든 만드는 법은 매우 단순한 편이라, 5000원이라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전날 못간 한이 맺혀서인지(...) 기어코 마셔야 겠다는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물론 행사장 내부도 인파 때문에 꽤 더웠던 편이라 차가운 음료를 갈구하는 본능도 있었고. 다만 진짜 카페 분위기는 역시 거기에 직접 가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 주말에라도 시간이 나면 직접 방문해 그 분위기를 즐겨볼 생각이다.
회를 거듭하면서 여러 아이디어도 새로 도입하고 시행착오도 수정해 가며 규모를 점차 키워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분야의 또 다른 후발 주자인 동네 페스타와 함께 코믹월드의 사실상 독점 체제였던 한국 동인계의 균형축을 과연 흔들 수 있을 지 기대해보고 싶다. 특히 코믹월드의 아킬레스 건인 코스프레 전면 금지가 이 행사에도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무개념 코스어들의 민폐로부터 자유롭다는 큰 이점이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물론 아직 세 살짜리 행사인 만큼,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