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일단 음악으로 따져 보면 모든 대목이 최소한 축약 총보(Particell) 형태로라도 작곡되어 있어서 가장 유명한 데릭 쿡의 판본을 비롯해 조 휠러, 클린턴 카펜터, 레모 마체티 2세, 루돌프 바르샤이, 니콜라 사말레+주세페 마추카, 그리고 이번에 DVD를 구입한 요엘 감주(Yoel Gamzou)의 판본까지 모두 일곱 종류를 음반/영상물로 접할 수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신의 감주는 현재 카셀 국립극장의 제1카펠마이스터 겸 음악 총감독 대리를 맡고 있는 지휘자인데, 2014년 현재 기준으로 아직 20대 후반인 상당히 젊은 음악인이다. 10대 시절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마지막 제자로 지휘를 배웠고, 2006년에는 19세의 나이로 비상설 관현악단인 인터내셔널 말러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금까지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감주가 말러의 교향곡 10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미 10대 초반의 일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설명으로는 16세 때인 2003년에 이 곡의 보완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 작업은 2010년에 마무리되었고, 독일 마인츠의 쇼트 음악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감주는 출판 직후 자신이 직접 인터내셔널 말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초연 무대도 잡았는데, 9월 5일에 베를린의 뤼커슈트라세 시나고그에서 열린 유대 문화제 폐막 공연 때였다.
감주는 자신의 판본과 연주에 상당히 자신이 있었는지, 이 초연 무대의 실황을 녹화해 공연 후 편집한 뒤 베를린의 폴리프로라는 업체를 통해 DVD로 발매했다. 이 DVD는 이미 예전부터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공식 시판품은 아닌 것 같아서 구입할 수 있는 경로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독일 아마존에서 매우 쉽게 찾아냈는데, 다만 다른 DVD와 달리 신품만, 그것도 29유로 75센트라는 상당히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주저했다.
하지만 이미 나머지 여섯 개 판본의 음반/음원을 다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감주의 음원을 추가해야 직성이 풀리는 연속성의 노예로서 결국 돈을 들여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DVD는 딸랑 한 장 뿐이었지만, 말러 교향곡 뿐 아니라 공연의 1부 순서에서 연주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앙코르인 쇼팽의 마주르카 B단조 작품 33-4까지 싣고 있고 감주와 협연 피아니스트인 엘리샤 아바스(Elisha Abas)의 인터뷰까지 서플먼트로 제공하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DVD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게 말러 교향곡이었으므로 이것부터 먼저 들어봤다. 사실 말러 10번 음반 목록을 보면 쿡 판이 압도적이고 나머지 판본들은 쩌리 취급받는 느낌이 강한데, 일단 쿡이 말러의 미망인 알마의 승인을 얻었다는 신용 문제 외에도 가장 중도적으로 접근한 판본이라는 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중도적인 판본이 있으면 극단적인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카펜터의 판본은 매우 자유자재로 보필을 가했고, 바르샤이의 판본은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에 사용한 거의 모든 악기를 동원해 상당한 대편성의 관현악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감주 판본은?
감주의 판본은 일단 악기 편성만 보면 그럭저럭 상식적이다. 모든 목관악기와 튜바를 제외한 금관악기를 네 대씩 맞춰놓았고, 타악기는 팀파니 포함 네 명의 주자, 하프는 한 파트로 편성했다. 어찌 보면 전작인 9번에 맞춘 금욕적인(?) 편성인데, 희한한 건 현악기의 숫자가 상당히 적게 잡혔다는 것이었다.
영상에서도 볼 수 있고, 또 DVD의 속지에 인쇄된 참가 연주자 명부에도 나와 있지만 제1바이올린 12-제2바이올린 12-비올라 8-첼로 7-콘트라베이스 4라는 현악 편성은 4번 같은 소편성 곡에나 어울릴 법할 정도로 빈약해 보이는데, 녹음으로 커버했는 지 몰라도 음향의 불균형 같은 건 별로 느낄 수 없었다.
자비를 들여 악단원을 모집하고 진행한 초연이라 그랬는지, 시나고그의 내부가 좁아서 그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카셀 국립 관현악단 연주 때도 현악 편성이 여기서 파트 당 두세 명 정도만 더해져 있는 걸로 봐서는 감주 자신의 의도로 보인다. 다만 편성보다 더 깨는 건 음악 그 자체다.
카펜터판을 들었을 때도 보완이라기 보다는 작곡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카펜터판이 그냥 커피면 감주판은 TOP다 싶을 정도였다. 특히 짝수 악장들인 스케르초들에서 이런 면모가 상당히 심하게 나타나는데, 몇 마디를 느리게 진행했다면 다음 몇 마디는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나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같은 것도 없이 바로 곱절은 빨라진다거나 하는 식의 악구가 빈번히 나온다. 이렇게 하도 흐름이 왔다갔다 하니 연주에서도 꽤 실수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물론 말러의 중기 이후 작품에서 템포의 격심한 변동은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렇게 짧은 대목마다 거듭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그 자체로는 상당히 개성적인 판본이기는 하지만, 완성도나 진정성 면에서는 좀 회의적으로 보인다. 초연 이후에도 감주가 연주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2010년 초연 이후에도 감주 외에 다른 지휘자가 이 판본을 택해 연주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는 것도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녹음은 예전에 독일 체류 시절 구입한 베네수엘라 금관 합주단의 데뷰 CD와 마찬가지로 샬로란 톤스튜디오의 크리스티안 펠트겐이 담당했다고 되어 있는데, 해당 CD처럼 음량이 과포화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종교 시설의 실황이라는 점 때문에 잔향을 인위적으로 많이 줄인 느낌이고 전체적인 음질도 좀 거칠거칠하다. 또 감주 자신이 마치 스포츠 선수나 댄서 마냥 상당히 과격하게 지휘를 하기 때문에 발구름 소리 같은 것도 상당히 자주 들려서 이것도 좀 거슬린다.
일단 말러 10번의 판본 별 모든 음원을 갖췄다는 걸로 만족했는데, 이제 10번 외에 1번의 교향시 시절 판본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함부르크판과 거기서 좀 더 손을 봤다는 바이마르판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은데, 둘 중 하나의 음반을 찾고 있는 중이다.
구입 품목 중 나머지 하나는 나치 시대의 관제 빅 밴드인 독일 무도오락악단의 CD였는데, 일단 모노폴의 CD 세 종류와 유베의 컴필레이션 한 종류로 모두 갖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코흐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Intermezzo' 라는 타이틀로 나온 음반인데, 이건 모노폴과 유베 음반보다 더 희귀한지 신품 가격이 30유로 가까이다. 물론 딱 하나 남은 중고로 샀는데, 사고 나서 좀 복잡한 심정이 드는 물건이었다.
우선 음반 커버와 뒷면에는 연주 단체로 독일 무도오락악단만이 언급되고, 지휘자는 이 악단의 전속들이었던 게오르크 헨셸과 빌리 슈테히, 버르너바스 폰 게치에 베르너 아이스브레너(Werner Eisbrenner, 1908-1981)라는 생소한 이름의 인물이 추가되어 있다. 이것만 봐서는 모든 곡을 저 악단이 연주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또 최초 출반(Erstveröffentlichung)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모든 곡이 이 음반으로 처음 나온 거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속지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전체 수록곡 18곡 중 독일 무도오락악단의 연주곡은 13곡이고, 나머지는 다른 악단들의 것이다. 그리고 최초 출반된 음원도 15곡으로 나와 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얄팍한 상술인지는 몰라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 커버에는 1941-43년 동안의 녹음이라고 되어 있으면서 뒷면에는 1942-44년 녹음이라고 적힌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최초 출반이 됐든 아니든 수록곡들은 모두 이 음반을 통해 처음 듣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딱히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모노폴이나 유베 음반에는 없는 대규모 작품이 든 것이 우선 눈에 띄는데, 다섯 번째 트랙에 수록된 헨셸의 '작은 뮌히하우젠 모음곡(Kleine Münchhausen-Suite)' 이 특히 그렇다.
또 프란츠 마르살레크 지휘의 도이칠란트젠더 대관현악단이 사실상 클래식 관현악단 편성으로 녹음한 영화 '아넬리(Annelie)' 의 OST에서 따온 두 곡인 인테르메초-이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하다-와 자장가에서는 각각 빌리 슈테히의 기교파 피아노 솔로와 당시 그의 아내였던 스위스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 나나 튀셔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외에도 뮌히하우젠 모음곡과 헨셸의 '아넬리의 꿈(Annelies Traum)' 에서는 드물게 독일 무도오락악단이 합창을 동반하고 녹음한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가장 화려한 편성의 연주곡은 맨 마지막 곡인 아이스브레너의 영화 '함부르크와 아이티 사이(Zwischen Hamburg und Haiti)' OST에서 편곡한 환상곡인데, 작곡자 자신이 지휘봉을 잡고 빌리 슈테히가 독일 무도오락악단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끌었던 도이칠란트젠더 무도악단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오토 도브린트 악단의 단원들이 가세한 특별 편성의 악단을 기용해 녹음했다.
길이나 편성의 특이함 외에도 눈에 띄는 곡들이 더 있는데, 독일 무도오락악단이 프라하로 거점을 옮긴 뒤인 1944년에 녹음한 1분 반 가량의 짧은 곡인 '사과주 만큼 달콤한 이다(Ida, sweet as apple cider)' 라는 곡은 미국 작곡가 에디 먼슨(Eddie Munson)의 1903년 작품이다. 전쟁이 말기로 치달았던 때에 적국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거기에 연주도 현악 합주 그딴 거 다 집어치우고 정통 딕시랜드 스타일을 취했다는 게 더욱 그렇다.
당장 이 악단을 창단하고 통제한 괴벨스가 대영/대미 선전용 비밀 악단인 '찰리와 그의 악단' 외에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던 미국식 스윙 재즈를, 그것도 신독일 무도음악의 총아였던 독일 무도오락악단이 연주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인데, 속지에서는 그냥 단순히 '베를린보다 먼 프라하에서는 통제가 잘 되지 않았을 것' 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만 추측하고 있다. 만약 이게 진짜 독일 무도오락악단 연주의 녹음이라면, 그 동안 이 악단이 괴벨스의 선전성으로부터 연주 레퍼토리와 스타일을 세세하게 통제받았다는 연구 결과에 일부 수정을 가해야 할 지도 모른다.
복각 상태는 아세테이트 디스크와 오픈릴 테이프라는 매체 차이에 따른 음질 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양호한 편이고, 디스크 원본 녹음의 경우 모노폴 녹음 보다는 좀 더 잡음이 줄어든 느낌이다. 다만 수록곡 중 빌리 슈테히 지휘의 도이칠란트젠더 무도악단이 연주한 안살도라는 작곡가의 '이건 나를 위한 음악(Das ist Musik für mich)' 라는 곡은 녹음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은데, 잡음은 없지만 고음역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어서 음원 보존 상태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상당히 두꺼운 속지에 빼곡히 기재된 해설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팔아먹어야 하는 음반의 특성상 논조는 완곡한 편이지만, 곳곳에 진귀한 사진 자료들이 게재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당시 신문 기사나 선전성에서 발표한 대중음악 규제안, 악단의 녹음 현장 등 이 음반에서 처음 보는 희귀한 것들이 많다.
영화음악 원곡 해설의 경우 해당 영화의 스틸컷까지 첨부하고 있는데, 독일 영화사 우파(UFA)의 창립 25주년작인 뮌히하우젠(1943)의 경우 작중에서 뮌히하우젠 남작이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 초대받았을 때 토플리스 궁녀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담은 스틸컷을 두 페이지를 할애해 싣고 있다. 속지를 공공 장소에서 보다가는 식겁할 대목인데, 2차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상황에서 노골적인 정치 선전영화보다 이렇게 단순 오락영화가 많이 양산되었다는 것도 괴벨스가 대중들을 향락으로 유인하려던 책략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모른다면 아마 이해하기 힘들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일단 독일 무도오락악단의 음원들을 또 갖추게 됐는데, 방송 녹음에 전념하다시피 한 악단의 특성상 더 많은 미발표 음원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이외에 썰풀려는 음반은 예고했던 대로 수원시향/김대진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1~6번 세트 음반인데, 이건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