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전이라는 행사들은 내게 복불복인 경우가 많다. 아니, 복불복이라는 말도 적당치 않다. 시쳇말로 '빠는' 특정 작품도 매우 적고, BL이나 여성향 전반에도 별 관심이 없고, 스포츠물과 탐정물은 싫어하는 편이고, 점프 만화랑도 거의 인연이 없는 상당한 편식가인 만큼, 온리전 소식에 별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럼에도 특정 작품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관심이 가는 온리전이 없는 건 아니다. 백합제 같은 GL 성향 행사가 그렇고, 또 NL-절대 정치적 용어가 아니다!-성향 행사가 그렇다. 후자의 경우 약 3년 전 갔다온 '설레임'이 그 증거인데, 그 뒤로 한참 소식을 못들었다가 이번에 다른 이름의 행사가 개최된다는 것을 매우 뒤늦게 알았다.
주중에 일에 절어 있다가 불금에 퇴근 후 무심하게 트위터로 인생의 낭비를 즐기던 중, 노멀온리전 '러브 레터' 라는 행사와 관련된 트윗들이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계정을 통해 활발히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서야 이 행사의 정체와 열리는 날짜를 알 수 있었는데, 다만 그 때 쯤이면 선입금 혹은 일반 예약 품목들의 경우 예약이 다 완료되었을 시점이었기 때문에 결국 행사장 현장에 가서야 뭘 살 건지, 또는 사고 싶은 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장은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 5층의 실내체육관이라고 했는데, 대중교통편으로 접근하기에 상당히 불편한 위치였다.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나마 가장 가깝다는 5호선 답십리역이나 장한평역, 2호선 용답역 세 군데도 모두 400~600m를 걸어야 한다는 게 갈 의욕을 뚝 떨어뜨렸는데, 물론 봄이나 가을, 잘 봐줘도 겨울이면 모르지만 더위에 매우 약한 내게 그 만한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게 좀 그랬다.
어쨌든 늦게나마 얻은 정보였고, 또 가기는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더 무게가 실리면서 용답역을 통해 걸어갔다. 하지만 대충 만든 듯한 지도로 찾아가기는 그다지 쉽지 않았고,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옥을 보고 나서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행사장 건물에 도착한 뒤에도 주최 측의 다소 안일한 행사장 안내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일요일이라 행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한 군데만 열려 있었다. 적어도 건물 주위에 동선이라도 표시했다면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지 헤매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들어가는 쪽 앞에만 이정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니 바로 오른쪽에 체육관이 보였는데, 도착한 시점은 오후 1시를 넘긴 상태였고 카탈로그도 매진되어 원래 3000원이었던 입장료가 2000원으로 인하되어 있었다. 카탈로그가 없는 대신 기념품처럼 돌리던 플라스틱 부채가 한 장 더 주어졌다.
행사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그 만큼 내 선택의 폭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내가 구입한 두 가지 품목은 모두 올해 초 열린 제4회 백합제를 통해 접한 작가들이 참가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GL을 통해 NL로 향한다는 아이러니함(????)이 느껴졌는데, 우선 구입한 건 신견지멍의 달꿈이라는 카피본(2500\)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너무 빠듯한 시간 동안 안떠오르는 생각 잡고 그리다 보니 노잼 회지가 되었다고 자평했는데, 다만 백합제 때 맺은 인연(?)도 있어서 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이 행사의 구매 금액을 딱 만원으로 맞출 또 하나의 동인지를 발견했는데, 연수라는 필명의 작가가 참가한 오리지널 판타지 앤솔로지 '꽃피는 성녀님' (7500\)이었다. 작가들이 한 명씩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설정한 뒤 그에 맞추어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그린 것이었는데, 물론 작가들 마다 그림이나 스토리 전개의 역량이 천차만별이었던 탓에 모든 작품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저 작가가 참가했다는 것 때문에 결국 구입했다. 그렇게 해서 2011년의 노멀커플 온리전 '설레임' 으로 시작한 저 작가와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비교적 간소하게 마무리 되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굳이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더라도 구매 금액이 여기서 더 많아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앤솔로지 같은 경우에는 사전 예약자에게만 주어지는 특전 러프 스케치가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런 품목은 완전판으로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에 상당히 아쉬울 따름이었다. 물론 어떻게 보든 결국 코믹월드나 케이크 스퀘어, 동네 페스타 같은 대규모 종합 동인 행사에만 집중하다가 행사 정보 자체를 놓친 내 책임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7월 서코 종료 1주일 뒤 있었던 이 행사를 끝으로 이제 가장 덥다는 8월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과연 그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일거리는 계속 주어지고 있지만, 그걸로 벌어들이는 돈이 과연 8월 행사들에서 쓸 수 있을 시기에 입금될 지 아직 불확실한 만큼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내 지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음반 쪽에서 이제 웬만큼 살 건 다 산 상태로 보이는데, 물론 어느 중고 사이트에서 예상 외의 물건이 올라올 지는 모르니 방심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