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형태와 편성의 실내악 작품들을 그보다 큰 규모의 현악/관악 합주나 관현악 용으로 편곡하는 시도는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리고 그 시도들에 관한 포스팅도 몇 차례 한 바 있었는데, 다만 '이게 음반으로 있을까?' 싶던 물건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의 포스로 갑툭튀하는 바람에 주문 목록에 추가했고.
ⓟ 2001 Kojima Recordings Inc.
담겨 있는 작품은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두 곡인데, 바흐의 경우 말러가 1909년에 2번과 3번 두 모음곡에서 각기 두 악장씩 떼어 4악장 형식의 짜깁기 모음곡으로 만든 버전이었다. 다만, 이 버전은 샤이 지휘의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 연주로 된 CD를 이미 갖고 있어서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관련 포스팅은 여기)
템포를 꽤 빠르게 잡고 말러의 의도와 달리 콘티누오 파트에 하프시코드를 사용한 샤이와 이 CD의 연주는 꽤 노선이 달랐다. 여기서는 말러의 낭만주의 사고관에 좀 더 무게를 둔 모양인데, 콘티누오 파트에도 하프시코드 대신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하고 있었다. 오르간도 홀에 설치된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아닌, 당시 무성영화 극장에서 반주 악기로 많이 쓰이던 조립식 소형 오르간을 모방해 전자 오르간으로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해설을 보면, 곡과 관련된 자료에서는 스타인웨이에서 제작한 대형 스피넷(spinet)을 말러가 직접 연주하며 지휘했다고 되어 있다. 곳곳에 하프시코드로는 낼 수 없는 크레센도나 디미누엔도 같은 점층/점강식 강약 기호도 있는 탓에, 그랜드 피아노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듯. 한국에 많이 보급된 김문경의 책과는 내용이 상이한 부분이 있어서 추가 조사가 필요할 듯 하다.
템포도 해설에 쓰여진 대로 바흐보다는 말러 당대의 연주 노선을 중시하기 위해 비교적 느리게 잡고 저음부를 강조해 매우 굵직한 소리를 뽑았는데, 샤이 녹음에 익숙하다 보니 다소 느끼하고 거북이 걸음같이 느껴져 답답할 때도 종종 있다. (특히 'G선상의 아리아' 로도 유명한 3악장)
오히려 가장 구미가 당겼던 곡은 슈베르트의 것이었는데, 현악 4중주에 첼로 하나를 더한 편성인 터라 현악 합주로 증배한 편곡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CD를 받고 살펴보니 정규 관현악 용으로 확대 편곡한 것이라 좀 놀랐고. (사실 이러한 확대 편성의 편곡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다. 조지 셀 편곡의 스메타나 현악 4중주 1번이라던가, 쇤베르크 편곡의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도 마찬가지 아이디어로 행해진 작업이었다.)
슈베르트 곡은 지난 번 롬 뮤직 파운데이션 복각 셋트 포스팅에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지휘자 고노에 히데마로가 1931~32년에 편곡했는데, 나름대로 자신있는 작업이었는지 당시 자신이 맡고 있던 신교향악단의 월간지 '필하모니' 에 상세한 소개글을 직접 집필해 게재했을 정도였다. (이 해설은 현대 일본어로 일부 수정되어 CD 속지에 그대로 기재되어 있다.)
고노에는 자신의 편곡에 '대교향곡 C장조' 라고 따로 제목을 달았는데, 요제프 요아힘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연탄 소나타를 교향곡으로 개편한 사례와 비슷하다. 고노에는 자신이 집필한 해설에서 슈베르트의 후기 기악곡들이 편성에 관계없이 교향곡풍의 웅대한 구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펠릭스 모틀과 요아힘의 관현악 편곡을 예로 들며 '슈베르트가 당시 악장(Kapellmeister) 지위를 갖고 있었다면 분명히 교향곡으로 개편했을 작품들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요즘 음악인들에게 까일 소지가 다분하지만, 편곡 기간이 꽤 길었던 점과 일본에 체류 중이던 요제프 쾨니히 등의 외국 음악인들과 토론까지 해가며 당대의 관현악 편곡법을 적용하려고 애썼다는 내용도 들어 있어서 나름대로 자신을 갖고 있었던 작업으로 여겨진다. 요아힘과 마찬가지로 고노에도 슈베르트 당대의 관현악 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2관편성 기준으로 편곡했고, 원곡에서 두 파트였던 첼로의 경우 첼로 파트를 나누거나(divisi) 콘트라베이스 파트에 인계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초연은 고노에의 해설 뒤에 추가로 실린 지휘자 다카세키 겐의 기고문을 참고하면 1932년 11월에 열린 신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고노에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고 하고, 이듬해 10월에는 역시 고노에의 지휘로 베를린 필이 유럽 초연도 했다고 되어 있다. 해설에는 이 공연이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되어 있지만, 이후 이 편곡은 출판도 되지 않아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한참 동안 잊혀졌던 이 편곡이 재연되어 주목을 받은 것은 고노에 탄생 100주년이었던 1998년 2월에 열린 신일본 필의 공연에서였다고 하는데, 뒤이어 다카세키 겐 지휘의 군마 교향악단도 1998년 6월 20일에 마에바시의 군마 음악센터에서 이 곡을 공연했다. 이 CD에 실린 녹음은 후자의 실황인데, 바흐도 2000년 3월 20일에 도쿄 스미다 트리포니홀에서 열린 같은 악단과 지휘자의 공연 때 녹음된 음원이다.
두 곡 모두 한 번의 공연 만으로 녹음된 물건이고, 악단도 아직 일본 밖에서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은 지방 악단이라 다소 위험 부담을 안고 지른 품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눈에 크게 띄는 실수는 별로 없었고, 실황이라고는 해도 객석의 소음도 많지 않아 듣기에도 편했다. 고노에는 이 슈베르트 곡 외에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도 관현악 편곡했다는데, 이건 또 어떨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경우 아직까지 재연이나 재녹음의 움직임은 없는 듯.
이외에 주문은 넣었지만 '입수 곤란' 이라고 뜨는 바람에 기대를 접어야 했던 CD도 있었고, 비용 문제로 주문하려다가 마지막에 결국 포기한 CD도 있었다. 이들 품목들은 다음 번을 기약해야 할 것 같은데, 일본에 넣은 것 외에도 독일에 주문넣은 CD들도 있어서 이것들이 도착하면 또 포스팅 거리로 삼을 예정. 어쩌면 이번에 지른 것들보다 훨씬 레어템일 지도 모를 물건들이라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