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들어 단순히 원작에 충실한 편곡 외에, 편곡과 창작의 영역을 교묘히 넘나들며 꽤 신선하고 때로는 충격적인 컨셉의 작품을 내놓은 사례를 종종 찾아보게 된다. 지난 번 슈베르트 리모델링 시리즈 중 베리오의 것이 특히 그랬고, 이번에 소개할 사례도 마찬가지다.
파울 데사우(Paul Dessau, 1894-1979)는 함부르크 출신 작곡가인데,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나치 집권 후 일자리를 잃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미국에서는 주로 영화음악 작곡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 같은데, 이미 망명 이전에도 각종 독일 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한 바 있다. 심지어 1920년대 후반에는 월트 디즈니의 단편 애니메이션에 곡을 붙인 사례도 있을 정도다.
영화음악 외에도 극음악, 오페라 등 무대가 수반되는 영역에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망명 시기에는 동향인 브레히트와 가깝게 지내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2차대전 후 동독으로 거처를 옮겨 작곡된 작품들 중에는 브레히트의 희곡들에 붙인 부수음악이나 오페라가 여럿 눈에 띄고 있다.
물론 기악 작품도 작곡했는데, 교향곡에서부터 협주곡, 실내악까지 가짓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댔다. 그리고 제목에서처럼 편곡인지 2차 창작인지 분류하기가 참 애매한 형태인 '모차르트의 현악 5중주 E플랫장조 K.614에 의한 교향 각색(Sinfonische Adaptation des Streichquintetts Es-dur KV 614 von W.A.Mozart)' 라는 곡도 남겼다.
1943년에 데사우는 미국 망명 초기에 머물던 뉴욕을 떠나 헐리우드로 이사했는데, 헐리우드와 그 인근인 로스앤젤레스, 산타바바라, 비벌리 힐스 등에는 수많은 독일계 망명 인사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브레히트 외에도 한스 아이슬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토마스 만, 오토 클렘페러, 브루노 발터 등이 대표적인데, 클렘페러와 발터는 데사우가 각각 쾰른과 베를린의 시립오페라에서 오페라 지휘자로 경력을 쌓도록 가르치고 도와준 선배들이었다.
쇤베르크의 직계 제자였던 아이슬러와 달리 데사우는 쇤베르크와 직접적인 접점은 없었지만, 미국으로 가기 전에 프랑스에 머물며 르네 라이보비츠로부터 12음 기법을 배우고 창작에 응용한 경험이 있어서 쉽게 말을 터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 전후에 쇤베르크는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1번을 정규 관현악용으로 편곡했는데, 아마 그 편곡에 관해서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교향 각색' 은 데사우가 동독으로 이주한 뒤인 1965년에 쓰여졌는데, 쇤베르크의 편곡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거기에서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원작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던 쇤베르크와 달리, 데사우는 모차르트 원곡의 요소를 조각조각 잘라내고 다양한 악기나 악기군에 흩뿌리듯 배치해 단순한 편곡 이상의 시도를 하고 있다. 심지어 원곡의 음역을 옥타브 위나 아래로 갑자기 도약시키거나 따로 작곡한 서주와 이행부를 덧붙이는 등의 파격도 행하고 있다.
관현악 편성도 독특한데, 목관은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세 대씩 쓰이는 변칙 2관 편성을 취하고 있고 호른 4-트럼펫 2-트롬본 1의 금관, 팀파니 외 여러 다양한 타악기들이 중용되고 있다. 다만 현악 파트는 제 1바이올린 8-제 2바이올린 7-비올라 6-첼로 5-콘트라베이스 4로 인원 지정이 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관현악의 현악 파트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인원수고 짝수로 맞아떨어지지도 않게 해놨다. (통상 대편성 관현악의 현 파트는 16-14-12-10-8의 짝수 순으로 채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보다 작은 편성도 마찬가지)
물론 골격 자체는 모차르트 작품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듣기에는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원곡의 모습을 살려낸 전통적인 편곡이라고 기대한 사람에게는 '뭥미?' 스러울 컨셉이겠고. 그렇기는 해도 서방 쪽에서 베리오나 슈네벨 등이 행한 '원곡의 완전한 해체를 통한 새로운 작품의 창조' 같은 극단적인 모습은 볼 수 없고, 모차르트 냄새도 나면서 관현악 편성에서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텍스처 변화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