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쳐묵쳐묵한 것과 그냥 돌아다니던 것 따로 끄적일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밀린 글들이 많아서 그냥 합쳤다.
항상 좀 먼 외지에 갈 때마다 나름대로 기대하고 또 그것 때문에 정보를 모으는 것이 그 지방 특유의 먹거리다. 물론 통영은 항구 도시이자 어업이 아직 비중있게 여겨지는 곳이니 이런저런 해산물을 쳐묵쳐묵...하면 좋겠지만, 혼자서 몇 만원이나 되는 장어구이를 먹거나 다찌집을 정ㅋ벅ㅋ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어쨌든 주 목적이 음악제 참가였던 만큼, 식탐이 그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핸디캡' 도 있었다. 그런 탓에 이번에도 결국 욕지도나 사량도 등 섬 구경은 커녕 먹는 것도 여전히 제한해서 먹어야 했는데, 그래도 이번 방문을 계기로 처음 입에 댄 두 가지 음식도 있었으니 그리 손해봤다고 생각하기는 힘들 듯 하다.
국밥의 경우, 역시 경남 지방이라 그런지 돼지국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물론 부산에서 먹어보고 꽤 감탄한 음식이었지만, 통영에서는 어떨까 하고 일단 시켜봤다.
주문한 뒤 깔리기 시작한 밑반찬들. 이 짤방에는 쌈장과 새우젓, 풋고추+양파+마늘 썬 것만 나와있지만, 그 뒤로 부추무침과 깍두기 두 가지 더 나왔다. 특히 부추무침은 이거 없으면 돼지국밥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필수적인 밑반찬이다.
그리고 돼지국밥. 다대기가 올라와 있어서 설마 이거 매우려나 했지만, 생각보다 빨갛지는 않았고 휘저어 섞은 뒤 국물을 한 술 떠먹었을 때도 거의 맵지 않았다. 일부러 밑간을 약하게 한 것 같아서 부추무침을 싹 덜어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본 뒤 먹기 시작했다.
'세팅' 후 찍은 짤방. 돼지 잡내나 지나친 기름기 없이 깔끔한 맛이기는 했지만, 고기가 너무 얇고 자잘하게 썰린 것이 좀 아쉬웠다. 그 대신 고기 양 자체는 섭섭치 않을 만큼은 있었고, 국밥 자체와는 관계 없지만 따라나온 쌈장이 묘하게 달착지근해 매운 풋고추나 양파를 찍어먹을 때 그 맛을 어느 정도 중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첫 날 한 끼를 때우고 음악회를 본 뒤, 여독 때문에 꽤 피곤했는지 별다른 뻘짓(???)을 하지 않은 채 자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여관을 나와 몇 발짝 걸으면 보이는 항구 풍경. 서울 쪽은 아직도 쌀쌀했지만, 여기는 아직 한기가 있기는 해도 훨씬 따뜻했다. 날씨도 좋아서였는지 이렇게 해산물을 널어놓고 말리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일단 죽림지구로 다시 가서 돈을 뽑아온 뒤, 이번에는 전날 갔다가 헛걸음친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아침 시간이 지난 탓에 꽤 배가 고팠던 탓에, 두 가지를 연속으로 먹어 배를 채워보자는미련한 생각이었다.
이 날 처음 찾아간 곳은 할매우짜. 이제 우짜도 나름대로 이 곳의 명물 (혹은 괴식)이 되었는지, 여기 말고 이곳저곳에 파는 곳이 생겨 있었다. 하긴, 만드는 법도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분식집이라면 어디든 시도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투박한 손글씨의 차림표. 다만 여기도 결국 가격이 어느 정도 올라가서, 2010년에는 각각 3500원과 3000원이었던 우짜와 빼떼기죽이 모두 4000원이 되어 있었다. 일단 우짜 먹자고 왔으니 그걸로 시켰다.
물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비비기 전에도,
그리고 비비고 나서도. 참 미묘한 모양새와 맛이지만, 이게 또 땡기는게 미묘한 내 입맛이고. 물론 마른 멸치의 일종인 띠포리로 우린 국물에 말아주는 우동을 더 추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내 선택은 여전히 우짜였다. 일단 이렇게 배를 절반 정도 채워주는 느낌으로 비워낸 뒤 멀지 않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바닷가 도시답게 꽤 고양이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사람을 엄청나게 경계해서 마주치면 도망가는 길고양이들과 달리 여기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사람이 다가가도 꿈쩍하기는 커녕, 무심하고 시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길고양이들이 많았다. 쓰다듬어주려는 손길을 계속 피하고 야옹야옹 거리며 나를 주시하던 어느 길고양이.
그리고 '2차' 로 택한 집 역시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원조시락국. 물론 여기서도 내 선택은 딱 하나였다. 어차피 여기는 시락국만 하는 곳이니까.
뜨끈한 시락국에...
잘게 부순 김과 부추 넣고 산초가루 약간 뿌려서 밥말아먹으면 만사형통. 그리고 이번에는 좀 도전적인 밑반찬 선택을 해봤는데, 배추김치와 콩나물, 멸치조림과 미역무침은 예전과 별 다를 바 없지만 삭힌 멸치젓을 추가로 덜었다.
하지만 저 멸치젓이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는데, 원래 그렇게 담그는 건지 몰라도 엄청나게 짰다. 조금 던다고 덜었는데도 다른 반찬을 압도할 정도였는데, 물론 역한 냄새나 맛은 아니긴 했고 뼈도 부드럽게 다 씹힐 정도로 잘 삭은 것이었지만 비교적 짜게 먹는 내 입에도 짰다면야. 아무래도 다음에 기회가 있어서 또 오게 되면 그 때는 정말로 콩알만큼 덜어 먹어야 될 것 같다.
어쨌든 덜어놓은 반찬이니 무리해서라도 싹 비웠고, 소화도 시킬 겸 늘 오면 가는 코스인 해저터널로 향했다. 거기서 멀지 않은 오미사꿀빵 본점을 찾아가 봤지만 하필이면 이 날이 정기 휴일.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내가 먹으려고 사는게 아니라 선물용으로 사는 거면 마지막 날이나 그 전날 사는게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미륵도의 대형 할인마트. 건물은 다소 오래되어 보였는데, 마침 멸치젓 때문에 갈증도 생겨서 음료수나 사볼까 하고 들어가봤다.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꽤 규모도 컸고 웬만한 생필품도 다 갖춰져 있었다. 물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부산우유 같은 품목도 있었고. 하지만 정작 가격은 남양 같은 다른 회사 것이 더 쌌는데, 그럼에도 서울촌놈에게는 레어템인 탓에 일단 딸기우유와 초코우유를 골랐다.
그러고 나오다가 마트에 같이 입점해 있는 제과점에서 뭘 파나 하고 살펴봤다. 물론 여느 동네 빵집과 다를 바 없었지만, 역시 여기서도 꿀빵을 팔고 있었다. 물론 오미사 쪽을 쳐준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빵집의 꿀빵은 어떨까 싶어서 세 개를 샀다. 값은 개당 800원. 중앙시장 인근에서 이것보다 작은 데도 개당 1000원에 파는 외지인 낚는 상술의 가게들보다는 양심적인 가격이었다.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다른 꿀빵과 달리 빵 색깔이 갈색에 가까웠고 좀 더 달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달다고 싫어할 수도 있었을 맛이지만, 유난히 danger한 단걸 좋아하던 탓에 맛있게 쳐묵할 수 있었다. 만드는 법도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이는데 왜 통영이나 진주만 벗어나면 유사품조차 찾아볼 수도 없는 걸까.
그리고 돌아갈 때도 여전히 해저터널. 사실 통영에 올 때마다 여기를 자주 지나가는 이유는, 단순히 바다 밑을 걸어간다는 유치한 호기심 외에도 후덥지근한 바깥 날씨에 별 영향을 안받는 시원함 때문이다. 벤치 같은 거라도 있으면 아예 앉아서 쉬어가고 싶을 정도다.
터널 안에는 이렇게 '그래피티 작품' 을 남겨놓은 익명의 작가라던가,
터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듯한 사람의 '선언문' 도 눈에 띄었다. 현지인들이야 그냥 맨날 오가는 터널이겠지만 이렇게 눈독 들이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가?
어쨌든 터널을 나와 윤이상기념공원으로 가기 위해 계속 걸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날 사로잡은 고양이 한 마리. 목줄이 있어서 길고양이가 아니라 기르는 고양이임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시크한 표정으로 자기 발을 핥는 모습에 모에해 꽤 한참을 쓰다듬어줄 수 있었다. 사카키의 기분이 이해가 된다고 하면 씹덕스럽나?
아무튼 고양이는 신체가 하도 유연하다 보니 쓰다듬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인데, 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애교물기-일본어로는 아마가미(甘噛み)라고 하는데, 한국어로는 이상하게 비슷한 뜻의 단어가 없어서 의역했다-를 시전할 때는 아무래도 이빨이 날카롭다 보니 장난으로 무는 건데도 개보다 훨씬 아팠다. 아니면 애교물기가 아니라 '귀찮으니 껒여' 라는 식으로 진짜 물어제낀 건가?
그렇게 나름대로 황홀한 시간을 보낸 뒤 윤이상기념공원으로 갔다. 여기서는 지난 포스팅에 쓴 대로 전시실을 둘러보고 비매품 CD를 구입했는데, 다만 CD와 달력이 더해져 가방이 무거웠던 관계로 여관에 가서 갔다놓은 뒤 윤이상기념공원 메모리홀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던 베아트 푸러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했다.
원래는 세미나를 본 뒤 시간이 남으면 좀 일찍 저녁을 먹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공연을 보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개최 시간이 지연되었다. 게다가 그 날 티켓도 갖고 오지 않아서 결국 세미나가 끝나갈 즈음에 다시 나와야 했다. 그러고 나니 공연 때까지 시간도 별로 없고 해서, 결국 음식점을 찾는 대신 사온 꿀빵과 우유로 대충 때운 뒤 시민문화회관에 가야 했다. 여행지의 그 귀한 한 끼니가 날아가다니...lllorz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한 뒤, 묵었던 여관 1층에 있는 음식점인 금정국밥으로 갔다.
사실 여기는 여관방 잡을 때부터 여관 주인이 '맛있으니까 식사는 여기서 하라' 고 추천한 집이었는데, 다만 다른 곳부터 가려던 계획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날 오전에는 현찰 보충하러 왔다갔다 하는 통에 찾을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폐막날 아침이 첫 방문이 되었다.
약간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친절했던 여주인이 운영하는 식당 분위기는 평범한 밥집 같은 모양새였고, 웬만한 국밥 종류는 다 된다고 했지만 무엇보다 여기서 먹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어서 그걸로 올인했다. 먼저 택한 것은 굴국밥(6000\).
알아주는 굴덕후들이었던 발자크나 아이젠하워 정도는 물론 아니겠지만, 나도 생굴이든 굴전이든 굴튀김이든 굴요리를 꽤 좋아한다. 다만 가격이 다른 해산물에 비해 저렴하지는 않아서인지 집에서도 자주 식탁에 오르는 편이 아니라서, 아예 바닷가 오는 김에 국으로라도 좀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국은 굴에 콩나물과 미역 등 해조류 정도만 넣어 담백하고 맑게 끓이는 스타일이었는데, 주재료인 굴은 너무 바싹 익지 않았고 콩나물 덕인지 술마신 일도 없었는데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서 싱싱한 해산물은 커녕 냉동한 것도 너무 비싸 참치나 정어리, 청어 통조림 정도만으로 욕구불만을 달랬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사무친다고 해도 될 정도의 맛이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뒤, 소화도 시키고 꿀빵도 사올 겸 다시 여관을 나왔다. 그러다가 전날 아침에 거북선이 몇 대 늘어난 것 같아서, 그걸 먼저 보기로 했다.
실제로 통영항에 정박 중이던 거북선은 내가 아는 한 두 대 더 늘어나 있었다. 다만 내부 리모델링 중이었는지, 아직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배는 예전에 봤던 것 한 척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판옥선까지 같이 정박해 있었는데, 이것도 이렇게 정식 인도 절차를 밟지 못했는지 아직 들어가볼 수 없었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실제로 전쟁 뛴 그 배들이 아닌 복제품이라,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오미사꿀빵 본점. 아직 오전 시간대라 꿀빵은 충분히 있었지만, 분점과의 형평성(??) 고려를 위해 여기서 한 상자, 그리고 분점에서 한 상자 해서 총 두 상자를 샀다.
점심은 다시 할매우짜에서 빼떼기죽으로 해결했는데, 투박하면서도 독특한 맛과 먹고 나면 꽤 든든해지는 느낌 역시 2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에는 깍두기를 같이 곁들여 먹어봤는데,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내 입맛에는 그냥 죽만 먹는게 더 나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기서 팔고 있던 빼떼기 1kg들이 한 봉지까지 사들고 왔다. 물론 이걸로 죽을 끓일 수도 있지만, 치아가 튼튼하면 그냥 씹어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이 빼떼기는 외할머니가 처음 잡수셨다. 본가든 외가든 경남 쪽이 고향이신 분이 없으니 처음 보는 신기한 먹거리 취급을 받더라.
점심을 먹은 뒤에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 전날 구입한 CD 상태도 체크해볼 겸 갖고 간 노트북으로 들어보며 쉬다가, 잠깐 메일 체크하러 PC방에 들른 뒤 도착 첫 날 저녁을 먹었던 충무족발순대에서 조금 일찍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 주문한 것은 내장국밥. 돼지국밥이 고기만 넣어주는데 비해 내장국밥은 돼지 내장과 부속물만 넣어준다고 하는데, 실제로 먹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전에 먹은 돼지국밥이 그럭저럭 괜찮았고, 내장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아서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다.
내용물도 들어본 대로 오소리감투와 허파, 곱창 등 부속물이었는데, 내장만 넣었음에도 꼬릿한 잡내도 나지 않았고 쫄깃한 부위와 부드러운 부위 등 다양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어느 부산 토박이들은 평가절하할 지도 모르겠지만, 크게 기대 안하고 불가피하게 들어가서 먹게 된 곳 치고는 꽤 괜찮게 만들어주는 집으로 여겨졌다.
폐막 공연이 끝나고 곧장 밤차를 타고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그렇게 힘들게 움직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왔다. 그래서 잠을 푹 자고 아침을 먹은 뒤 돌아가자고 생각했는데, 날씨 변수를 예상 못했다.
아침에 창문 밖을 보니 웬 비가 오고 있었고, 덕분에 우산을 사러 급히 편의점까지 뛰어가야 했다. 그러고도 무거운 가방+노트북 가방+꿀빵과 빼떼기 등 부쩍 늘어난 짐을 건사하는 것도 꽤 힘들었다. 물론 그건 돌아가던 때의 고충이었고, 일단 그 전에 여기서 마지막으로 먹은 아침식사 때까지는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
이제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전날 굴국밥을 먹었던 금정국밥에서 마지막 메뉴로 선택한 것은 단품으로 먹은 것중에 가장 고가인 멍게비빔밥(10000\)이었다. 손질해 양념한 멍게살과 날치알, 잘게 썬 야채 등을 밥에 비벼먹는 독특한 음식이었는데, 다만 주문하기 전에 오이가 들어가면 빼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멍게비빔밥. 아랫쪽에 갈색으로 나온게 멍게고, 거기서 시계 방향으로 적양배추와 날치알, 양배추, 김가루가 담겨져 나왔다. 여주인 분은 '오이가 빠지니 색깔이 좀 먹음직스럽지 않구마' 라고 했지만, 때깔은 좀 떨어지더라도 괜히 객기부리고 오이넣어 그대로 먹다가 토사물로 만들어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밑반찬도 이것저것 나왔지만, 멍게비빔밥 자체에 신경쓰느라 제대로 손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전날 굴국밥을 맛있게 먹었다고 한 것을 기억하셨는지, 이렇게 굴국도 작은 뚝배기에 서비스로 담겨져 나왔다. 물론 이건 멍게비빔밥과 함께 싹 비웠고.
일단 여주인분 말씀대로 우선 젓가락으로 살살 비비다가 나중에 숟가락으로 마무리했다. 약간 비릿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비릿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따로 간을 안해도 될 정도로 적당히 짭짤한 맛이었다. 흔히 술안주로 먹는 멍게를 이렇게 밥에 비벼먹는 것 자체도 이채로운 경험이었는데, 이렇게 해서 마지막 끼니도 흡족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구질구질한 날씨와 엄청난 짐에 시달리며 터미널로, 그리고 거기서 남부터미널까지 네시간 반의 버스 여정을 마치고 나니 꽤 피곤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오래 걸리고 시차 피로도 작살인 해외 여행도 경험한 터라, 그렇게까지 곤죽이 되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물론 돌아오는 길이 좀 힘들었다고는 해도 그걸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전리품과 미각 충족, 고양이와의 놀이를 경험하고 왔으니 불만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던 여행이었다. 다만 다음에 또 갈 일이 있다면 그 때는 음악제가 목표가 아닌, 정말 주변 섬을 돌아볼 수 있는 바닷가 여행 자체를 여유롭게 해봤으면 하는 바램도 여전히 있다.
항상 좀 먼 외지에 갈 때마다 나름대로 기대하고 또 그것 때문에 정보를 모으는 것이 그 지방 특유의 먹거리다. 물론 통영은 항구 도시이자 어업이 아직 비중있게 여겨지는 곳이니 이런저런 해산물을 쳐묵쳐묵...하면 좋겠지만, 혼자서 몇 만원이나 되는 장어구이를 먹거나 다찌집을 정ㅋ벅ㅋ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어쨌든 주 목적이 음악제 참가였던 만큼, 식탐이 그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핸디캡' 도 있었다. 그런 탓에 이번에도 결국 욕지도나 사량도 등 섬 구경은 커녕 먹는 것도 여전히 제한해서 먹어야 했는데, 그래도 이번 방문을 계기로 처음 입에 댄 두 가지 음식도 있었으니 그리 손해봤다고 생각하기는 힘들 듯 하다.
일단 통영에 떨궈지고 나서 처음 한 일은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신한은행-통영에서는 영업점이 오직 죽림지구에만 딱 하나 있다-에서 돈 넉넉히 인출하고, 그 돈으로 시민문화회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여관방을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관에 투숙해본 지가 꽤 되었고, 그 동안 오른 물가 덕에 하룻밤 자는데 4만원이나 든다는 것을 알고 잠깐 충격과 공포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덕에 결국 현찰이 모자라 다음날 아침에 또 죽림지구로 가서 돈을 더 뽑아와야 했다.
아무튼 여관방을 잡고 난 뒤, 시민문화회관까지 올라가서 전화로 예매한 공연 티켓을 받아오고 나니 저녁먹을 시간이었다. 다만 첫 날 공연은 한밤 중이었기 때문에, 집에서처럼 느긋하게 야식 비스무리한 저녁을 먹자니 식곤증에 시달릴 것 같아 밤 8시가 되기 전에 뭐라도 먹기로 하고 나왔다.
하지만 서호시장 쪽은 문을 빨리 닫는지, 먹으려던 곳은 다 폐점한 뒤였다. 그나마 중앙시장 쪽은 늦게까지 여는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이 쪽은 사전에 알아본 것도 없었다. 그럼 뭘 먹지? 그러다가 시장 초입에 있는 어느 족발과 순대를 판다는 집에 눈이 갔다.
국밥의 경우, 역시 경남 지방이라 그런지 돼지국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물론 부산에서 먹어보고 꽤 감탄한 음식이었지만, 통영에서는 어떨까 하고 일단 시켜봤다.
주문한 뒤 깔리기 시작한 밑반찬들. 이 짤방에는 쌈장과 새우젓, 풋고추+양파+마늘 썬 것만 나와있지만, 그 뒤로 부추무침과 깍두기 두 가지 더 나왔다. 특히 부추무침은 이거 없으면 돼지국밥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필수적인 밑반찬이다.
그리고 돼지국밥. 다대기가 올라와 있어서 설마 이거 매우려나 했지만, 생각보다 빨갛지는 않았고 휘저어 섞은 뒤 국물을 한 술 떠먹었을 때도 거의 맵지 않았다. 일부러 밑간을 약하게 한 것 같아서 부추무침을 싹 덜어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본 뒤 먹기 시작했다.
'세팅' 후 찍은 짤방. 돼지 잡내나 지나친 기름기 없이 깔끔한 맛이기는 했지만, 고기가 너무 얇고 자잘하게 썰린 것이 좀 아쉬웠다. 그 대신 고기 양 자체는 섭섭치 않을 만큼은 있었고, 국밥 자체와는 관계 없지만 따라나온 쌈장이 묘하게 달착지근해 매운 풋고추나 양파를 찍어먹을 때 그 맛을 어느 정도 중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첫 날 한 끼를 때우고 음악회를 본 뒤, 여독 때문에 꽤 피곤했는지 별다른 뻘짓(???)을 하지 않은 채 자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여관을 나와 몇 발짝 걸으면 보이는 항구 풍경. 서울 쪽은 아직도 쌀쌀했지만, 여기는 아직 한기가 있기는 해도 훨씬 따뜻했다. 날씨도 좋아서였는지 이렇게 해산물을 널어놓고 말리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일단 죽림지구로 다시 가서 돈을 뽑아온 뒤, 이번에는 전날 갔다가 헛걸음친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아침 시간이 지난 탓에 꽤 배가 고팠던 탓에, 두 가지를 연속으로 먹어 배를 채워보자는
이 날 처음 찾아간 곳은 할매우짜. 이제 우짜도 나름대로 이 곳의 명물 (혹은 괴식)이 되었는지, 여기 말고 이곳저곳에 파는 곳이 생겨 있었다. 하긴, 만드는 법도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분식집이라면 어디든 시도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투박한 손글씨의 차림표. 다만 여기도 결국 가격이 어느 정도 올라가서, 2010년에는 각각 3500원과 3000원이었던 우짜와 빼떼기죽이 모두 4000원이 되어 있었다. 일단 우짜 먹자고 왔으니 그걸로 시켰다.
물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비비기 전에도,
그리고 비비고 나서도. 참 미묘한 모양새와 맛이지만, 이게 또 땡기는게 미묘한 내 입맛이고. 물론 마른 멸치의 일종인 띠포리로 우린 국물에 말아주는 우동을 더 추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내 선택은 여전히 우짜였다. 일단 이렇게 배를 절반 정도 채워주는 느낌으로 비워낸 뒤 멀지 않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바닷가 도시답게 꽤 고양이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사람을 엄청나게 경계해서 마주치면 도망가는 길고양이들과 달리 여기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사람이 다가가도 꿈쩍하기는 커녕, 무심하고 시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길고양이들이 많았다. 쓰다듬어주려는 손길을 계속 피하고 야옹야옹 거리며 나를 주시하던 어느 길고양이.
그리고 '2차' 로 택한 집 역시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원조시락국. 물론 여기서도 내 선택은 딱 하나였다. 어차피 여기는 시락국만 하는 곳이니까.
뜨끈한 시락국에...
잘게 부순 김과 부추 넣고 산초가루 약간 뿌려서 밥말아먹으면 만사형통. 그리고 이번에는 좀 도전적인 밑반찬 선택을 해봤는데, 배추김치와 콩나물, 멸치조림과 미역무침은 예전과 별 다를 바 없지만 삭힌 멸치젓을 추가로 덜었다.
하지만 저 멸치젓이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는데, 원래 그렇게 담그는 건지 몰라도 엄청나게 짰다. 조금 던다고 덜었는데도 다른 반찬을 압도할 정도였는데, 물론 역한 냄새나 맛은 아니긴 했고 뼈도 부드럽게 다 씹힐 정도로 잘 삭은 것이었지만 비교적 짜게 먹는 내 입에도 짰다면야. 아무래도 다음에 기회가 있어서 또 오게 되면 그 때는 정말로 콩알만큼 덜어 먹어야 될 것 같다.
어쨌든 덜어놓은 반찬이니 무리해서라도 싹 비웠고, 소화도 시킬 겸 늘 오면 가는 코스인 해저터널로 향했다. 거기서 멀지 않은 오미사꿀빵 본점을 찾아가 봤지만 하필이면 이 날이 정기 휴일.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내가 먹으려고 사는게 아니라 선물용으로 사는 거면 마지막 날이나 그 전날 사는게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미륵도의 대형 할인마트. 건물은 다소 오래되어 보였는데, 마침 멸치젓 때문에 갈증도 생겨서 음료수나 사볼까 하고 들어가봤다.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꽤 규모도 컸고 웬만한 생필품도 다 갖춰져 있었다. 물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부산우유 같은 품목도 있었고. 하지만 정작 가격은 남양 같은 다른 회사 것이 더 쌌는데, 그럼에도 서울촌놈에게는 레어템인 탓에 일단 딸기우유와 초코우유를 골랐다.
그러고 나오다가 마트에 같이 입점해 있는 제과점에서 뭘 파나 하고 살펴봤다. 물론 여느 동네 빵집과 다를 바 없었지만, 역시 여기서도 꿀빵을 팔고 있었다. 물론 오미사 쪽을 쳐준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빵집의 꿀빵은 어떨까 싶어서 세 개를 샀다. 값은 개당 800원. 중앙시장 인근에서 이것보다 작은 데도 개당 1000원에 파는 외지인 낚는 상술의 가게들보다는 양심적인 가격이었다.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다른 꿀빵과 달리 빵 색깔이 갈색에 가까웠고 좀 더 달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달다고 싫어할 수도 있었을 맛이지만, 유난히 danger한 단걸 좋아하던 탓에 맛있게 쳐묵할 수 있었다. 만드는 법도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이는데 왜 통영이나 진주만 벗어나면 유사품조차 찾아볼 수도 없는 걸까.
그리고 돌아갈 때도 여전히 해저터널. 사실 통영에 올 때마다 여기를 자주 지나가는 이유는, 단순히 바다 밑을 걸어간다는 유치한 호기심 외에도 후덥지근한 바깥 날씨에 별 영향을 안받는 시원함 때문이다. 벤치 같은 거라도 있으면 아예 앉아서 쉬어가고 싶을 정도다.
터널 안에는 이렇게 '그래피티 작품' 을 남겨놓은 익명의 작가라던가,
터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듯한 사람의 '선언문' 도 눈에 띄었다. 현지인들이야 그냥 맨날 오가는 터널이겠지만 이렇게 눈독 들이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가?
어쨌든 터널을 나와 윤이상기념공원으로 가기 위해 계속 걸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날 사로잡은 고양이 한 마리. 목줄이 있어서 길고양이가 아니라 기르는 고양이임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시크한 표정으로 자기 발을 핥는 모습에 모에해 꽤 한참을 쓰다듬어줄 수 있었다. 사카키의 기분이 이해가 된다고 하면 씹덕스럽나?
아무튼 고양이는 신체가 하도 유연하다 보니 쓰다듬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인데, 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애교물기-일본어로는 아마가미(甘噛み)라고 하는데, 한국어로는 이상하게 비슷한 뜻의 단어가 없어서 의역했다-를 시전할 때는 아무래도 이빨이 날카롭다 보니 장난으로 무는 건데도 개보다 훨씬 아팠다. 아니면 애교물기가 아니라 '귀찮으니 껒여' 라는 식으로 진짜 물어제낀 건가?
그렇게 나름대로 황홀한 시간을 보낸 뒤 윤이상기념공원으로 갔다. 여기서는 지난 포스팅에 쓴 대로 전시실을 둘러보고 비매품 CD를 구입했는데, 다만 CD와 달력이 더해져 가방이 무거웠던 관계로 여관에 가서 갔다놓은 뒤 윤이상기념공원 메모리홀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던 베아트 푸러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했다.
원래는 세미나를 본 뒤 시간이 남으면 좀 일찍 저녁을 먹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공연을 보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개최 시간이 지연되었다. 게다가 그 날 티켓도 갖고 오지 않아서 결국 세미나가 끝나갈 즈음에 다시 나와야 했다. 그러고 나니 공연 때까지 시간도 별로 없고 해서, 결국 음식점을 찾는 대신 사온 꿀빵과 우유로 대충 때운 뒤 시민문화회관에 가야 했다. 여행지의 그 귀한 한 끼니가 날아가다니...lllorz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한 뒤, 묵었던 여관 1층에 있는 음식점인 금정국밥으로 갔다.
사실 여기는 여관방 잡을 때부터 여관 주인이 '맛있으니까 식사는 여기서 하라' 고 추천한 집이었는데, 다만 다른 곳부터 가려던 계획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날 오전에는 현찰 보충하러 왔다갔다 하는 통에 찾을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폐막날 아침이 첫 방문이 되었다.
약간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친절했던 여주인이 운영하는 식당 분위기는 평범한 밥집 같은 모양새였고, 웬만한 국밥 종류는 다 된다고 했지만 무엇보다 여기서 먹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어서 그걸로 올인했다. 먼저 택한 것은 굴국밥(6000\).
알아주는 굴덕후들이었던 발자크나 아이젠하워 정도는 물론 아니겠지만, 나도 생굴이든 굴전이든 굴튀김이든 굴요리를 꽤 좋아한다. 다만 가격이 다른 해산물에 비해 저렴하지는 않아서인지 집에서도 자주 식탁에 오르는 편이 아니라서, 아예 바닷가 오는 김에 국으로라도 좀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국은 굴에 콩나물과 미역 등 해조류 정도만 넣어 담백하고 맑게 끓이는 스타일이었는데, 주재료인 굴은 너무 바싹 익지 않았고 콩나물 덕인지 술마신 일도 없었는데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서 싱싱한 해산물은 커녕 냉동한 것도 너무 비싸 참치나 정어리, 청어 통조림 정도만으로 욕구불만을 달랬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사무친다고 해도 될 정도의 맛이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뒤, 소화도 시키고 꿀빵도 사올 겸 다시 여관을 나왔다. 그러다가 전날 아침에 거북선이 몇 대 늘어난 것 같아서, 그걸 먼저 보기로 했다.
실제로 통영항에 정박 중이던 거북선은 내가 아는 한 두 대 더 늘어나 있었다. 다만 내부 리모델링 중이었는지, 아직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배는 예전에 봤던 것 한 척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판옥선까지 같이 정박해 있었는데, 이것도 이렇게 정식 인도 절차를 밟지 못했는지 아직 들어가볼 수 없었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실제로 전쟁 뛴 그 배들이 아닌 복제품이라,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오미사꿀빵 본점. 아직 오전 시간대라 꿀빵은 충분히 있었지만, 분점과의 형평성(??) 고려를 위해 여기서 한 상자, 그리고 분점에서 한 상자 해서 총 두 상자를 샀다.
점심은 다시 할매우짜에서 빼떼기죽으로 해결했는데, 투박하면서도 독특한 맛과 먹고 나면 꽤 든든해지는 느낌 역시 2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에는 깍두기를 같이 곁들여 먹어봤는데,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내 입맛에는 그냥 죽만 먹는게 더 나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기서 팔고 있던 빼떼기 1kg들이 한 봉지까지 사들고 왔다. 물론 이걸로 죽을 끓일 수도 있지만, 치아가 튼튼하면 그냥 씹어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이 빼떼기는 외할머니가 처음 잡수셨다. 본가든 외가든 경남 쪽이 고향이신 분이 없으니 처음 보는 신기한 먹거리 취급을 받더라.
점심을 먹은 뒤에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 전날 구입한 CD 상태도 체크해볼 겸 갖고 간 노트북으로 들어보며 쉬다가, 잠깐 메일 체크하러 PC방에 들른 뒤 도착 첫 날 저녁을 먹었던 충무족발순대에서 조금 일찍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 주문한 것은 내장국밥. 돼지국밥이 고기만 넣어주는데 비해 내장국밥은 돼지 내장과 부속물만 넣어준다고 하는데, 실제로 먹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전에 먹은 돼지국밥이 그럭저럭 괜찮았고, 내장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아서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다.
내용물도 들어본 대로 오소리감투와 허파, 곱창 등 부속물이었는데, 내장만 넣었음에도 꼬릿한 잡내도 나지 않았고 쫄깃한 부위와 부드러운 부위 등 다양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어느 부산 토박이들은 평가절하할 지도 모르겠지만, 크게 기대 안하고 불가피하게 들어가서 먹게 된 곳 치고는 꽤 괜찮게 만들어주는 집으로 여겨졌다.
폐막 공연이 끝나고 곧장 밤차를 타고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그렇게 힘들게 움직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왔다. 그래서 잠을 푹 자고 아침을 먹은 뒤 돌아가자고 생각했는데, 날씨 변수를 예상 못했다.
아침에 창문 밖을 보니 웬 비가 오고 있었고, 덕분에 우산을 사러 급히 편의점까지 뛰어가야 했다. 그러고도 무거운 가방+노트북 가방+꿀빵과 빼떼기 등 부쩍 늘어난 짐을 건사하는 것도 꽤 힘들었다. 물론 그건 돌아가던 때의 고충이었고, 일단 그 전에 여기서 마지막으로 먹은 아침식사 때까지는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
이제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전날 굴국밥을 먹었던 금정국밥에서 마지막 메뉴로 선택한 것은 단품으로 먹은 것중에 가장 고가인 멍게비빔밥(10000\)이었다. 손질해 양념한 멍게살과 날치알, 잘게 썬 야채 등을 밥에 비벼먹는 독특한 음식이었는데, 다만 주문하기 전에 오이가 들어가면 빼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멍게비빔밥. 아랫쪽에 갈색으로 나온게 멍게고, 거기서 시계 방향으로 적양배추와 날치알, 양배추, 김가루가 담겨져 나왔다. 여주인 분은 '오이가 빠지니 색깔이 좀 먹음직스럽지 않구마' 라고 했지만, 때깔은 좀 떨어지더라도 괜히 객기부리고 오이넣어 그대로 먹다가 토사물로 만들어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밑반찬도 이것저것 나왔지만, 멍게비빔밥 자체에 신경쓰느라 제대로 손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전날 굴국밥을 맛있게 먹었다고 한 것을 기억하셨는지, 이렇게 굴국도 작은 뚝배기에 서비스로 담겨져 나왔다. 물론 이건 멍게비빔밥과 함께 싹 비웠고.
일단 여주인분 말씀대로 우선 젓가락으로 살살 비비다가 나중에 숟가락으로 마무리했다. 약간 비릿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비릿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따로 간을 안해도 될 정도로 적당히 짭짤한 맛이었다. 흔히 술안주로 먹는 멍게를 이렇게 밥에 비벼먹는 것 자체도 이채로운 경험이었는데, 이렇게 해서 마지막 끼니도 흡족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구질구질한 날씨와 엄청난 짐에 시달리며 터미널로, 그리고 거기서 남부터미널까지 네시간 반의 버스 여정을 마치고 나니 꽤 피곤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오래 걸리고 시차 피로도 작살인 해외 여행도 경험한 터라, 그렇게까지 곤죽이 되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물론 돌아오는 길이 좀 힘들었다고는 해도 그걸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전리품과 미각 충족, 고양이와의 놀이를 경험하고 왔으니 불만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던 여행이었다. 다만 다음에 또 갈 일이 있다면 그 때는 음악제가 목표가 아닌, 정말 주변 섬을 돌아볼 수 있는 바닷가 여행 자체를 여유롭게 해봤으면 하는 바램도 여전히 있다.
Posted by 머나먼정글